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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Albertson, Millie May (1870-1918, M)
 작성자 : 최수원 양석원  2019-06-27 15:40:19   조회: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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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Albertson, Millie May / 알버트손 / 한국명: 알비순
2. 생물연도: 1870. 10. 10 ~ 1918. 12. 24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07, ~ 1918.
5. 연표
1870. 10. 10 미국 펜실베니아 페어 마운트 스프링스에서 출생
딕킨슨대학 신학부 졸업
무디성서학원에서 9개월간 신학과정 수료
1901. 워싱턴 헤이즈신학원 석사과정 수료
1901. 콜럼버스 M. E. Church 목사 사역
1907.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부 선교사로 한국 파송
1908. 2. 서울 인사동 부인성서학원 건물 구입 및 시작
1917. 서대문 밖 죽첨정에 독자적 건물을 짓고 ‘로드와일러성경학원’ 개원.
1918. 어머니의 병세 악화로 귀국
1918. 12. 24 향년 48세 대장암으로 페어 마운트 스프링스에서 사망
6. 가족사항
부모: Mrs. alonzo B. Alberetson
형제, 자매: O H. Albertson / W. E. Albertson/ A. Byron Albertson. /Stanley L. Albertson, / Phoebe Albertson


Ⅱ. 선교사 소개: 알버트손(Albertson, Millie May, 1870~1918)

1. 준비된 선교사이자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알버트손

알버트손은 1870년 미국 펜실베니아 페어 마운트 스프링스에서 출생하였다. 19세기는 구미 교회의 부흥이 있었고 세계적인 복음주의 선교 운동의 확산과 교회 연합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 시기에 태어나고 자랐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길 희망하였고 이에 딕킨슨대학 신학부를 입학하였다. 이후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던 무디 성경학교에 입학하여 9개월간 신학과정을 수료한다. 뿐만아니라 워싱턴 헤이즈 신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다. 이처럼 알버트손은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며 선교를 준비했다. 헤이즈 신학원 졸업후 알버트손은 콜럼버스 M.E Church에서 목사로서 7년간 열심히 사역을 했다. 말 그대로 준비된 선교사이자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것이다.

2. 드디어 기다리던 선교사역의 첫 걸음

알버트손은 1907년 27세의 나이에 미 감리회 해외선교부 파송을 받아서 내한했다. 당시에 1890년대 중반 남대문 안 상동에 있던 스크랜튼 대부인 사택, 혹은 상동교회에서 부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형태로 시작된 전도부인 양성 과정은 1900년에 이르러 전도부인으로 헌신하려는 여성들에게 성경과 기독교 기초 교리를 가르치는 정규 여자성경학원으로 발전하였다. 학원 일은 여전히 스크랜튼 대부인이 맡아 보았는데 그가 자리를 비울 땐 피어스(N. Pierce)가 대신 일을 맡았다. 피어스는 1904년 영국 성서공회 한국지부 총무 밀러(H. Miller)와 결혼하면서 장로교회로 옮긴 후에도 틈틈이 학교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나이 칠십이 넘은 스크랜튼 대부인이나 다른 교파로 옮긴 선교사 부인이 감당하기엔 학교 일이 너무 많았다. 특히나 1907년은 백낙준 박사가 일대각성운동이라고 불렀고, 알렌이 “놀라운 부흥운동”이라고 말했던 가장 강력한 영적각성운동인 평양대부흥이 일어난 해였다. 이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흥했다. 이 영향으로 인해 감리교도 큰 부흥이 있었고 여자성경학원도 점차 확장되어 갔다. 그렇기에 학교 일을 전담할 젊은 선교사가 필요했다. 즉 27세의 알버트손은 전도 부인 양성이라는 목적과 여자성경학원을 운영해야 할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선교사역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었다.

3. 교육선교사로서의 발걸음

알버트손은 성서학원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임 직후직후부터 건물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그 결과 1908년 2월 서울 종로, 인사동에 한옥 건물을 마련하였다. 전에 중앙교회에서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는데 비록 낡았지만 방이 여섯 개나 있어 아쉬운대로 교사와 기숙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때부터 학교 명칭을 ‘부인성서학원’(婦人聖書學院)으로 하였다. 알버트손은 선교사 스크랜턴의 제자인 하란사(河蘭史, 1875~1919)와 함께 최선을 다해서 학교를 돌보았다. 알버트손과 하란사의 헌신을 통해 학교는 나날이 발전해갔고 안정되어갔다. 학교의 과정은 3년으로 매년 10월 첫 주부터 이듬해 5월 셋째 주까지 8개월간 수업을 하였다. 1910년 들어 학생 수가 40명을 넘게 되면서 더 이상 종로 한옥 건물에서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다시 동대문 부인병원, 혹은 정동의 이화학당 대학부 건물을 빌려 이동식 수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향한 알버트손의 열정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1912년 이 학교의 모든 과정을 마친 첫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름은 문알베르토, 손메례, 양로우더, 박마불이었다. 이들은 한국교회여성운동사에 남을 헌신적인 활동을 하였다. 문알베르토는 모교의 교사로 남아 후진들을 가르쳤고, 박마불은 동대문 교회 전도부인으로 헌신하였으며, 손메례는 절제운동가로 한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양우로더는 여선교회의 파송으로 만주 하르빈에 가서 힘써 복음을 전하였다.

4. 감리교협성여자 신학교의 시초이자 전도부인의 후원자

부인성서학원은 1917년에 서대문 밖 청정로에 회벽돌로 웅장한 4층 건물을 짓고 이사하였다. 부인성서학원은 이후 북감리회와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1921년부터 연합으로 여자 신학교를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그때부터 감리교협성여자신학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이 학교는 감리교신학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건물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알버트손은 1917년 미감리회 해외여선교부 한국 선교회 연례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한다.

“지난 금요일(6월 15일) 저녁에 웰치 감독님과 해리스 감독님께서 정초식을 집례해 주셨는데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예식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 쌓은 담과 그 너머 도시를 내려보고 있노라면 벅찬 감격 속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신하는 바는 장차 이 학교가 언덕 위의 등불처럼 이 땅 구석구석에 빛을 비출 것이란 점입니다.”

학교 건물이 완공된 후 여성에 대한 교육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본격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도부인들은 지방으로 복음을 들고 나갔다. 전도부인이 영어로 ‘Bible Woman’으로 지칭되듯이 전도부인은 바깥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안방의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성경, 찬송가를 팔고 한글을 가르쳐주며 기독교복음을 전했던 권서인(勸書人)이자 복음전도자였다. 전도부인들은 점차 초기 권서인의 역할에서 벗어나 지방을 순행하며 성경 공부반을 열고, 교회를 설립하고, 미약한 교회의 부흥을 꾀하였다. 또한 선교부가 세운 학교와 병원에 근무하며 복음을 전하고, 국내외 선교를 담당하는 전문 목회자로 활동하였다.
특별히 부인성서학원에서는 학생들이 별도로 선교회를 조직해서 선교비를 모아 전도부인을 파송하였다. 알버트손은 이에 대해

“빌링스 부인이 매주 나와서 교사들에게 사도서신과 주일학교 공과를 가르치고 또 학생선교회(Students Missionary Society)를 돌보아주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본국에 보고하였다. 또한 계속해서 알버트손은 1918년 보고에서 선교회가 졸업생 1명을 원주지방 선교사로 파송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알버트손은 단순히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선교비를 모아 미개척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귀한 사역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버트손은 이처럼 감리교협성여자 신학교의 시초인 부인성서학원 잘 관리하고 교육하였다. 커리큘럼도 확정했고 독자적인 건물을 마련하는 등 그는 학교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겼던 교육 선교사였다. 알버트손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한국 감리교 여성들은 복음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지금까지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억눌려 왔던 잠재능력이 기독교를 통해 개발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5. 잠시 귀국과 영원한 이별

알버트손은 1918년 여름, 미국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간호하기 위해 귀국했는데, 어머니는 회생했지만 오히려 그가 병에 걸려 회복하지 못하고 그해 성탄 전날 별세하고 말았다. 그의 급작스런 별세 소식은 한국에 있던 동료 선교사들과 성서학원에 큰 충격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성서학원을 책임지게 된 채핀(A.B. Chaffin)은 다음과 같이 추모하였다.

“그는 타고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을 기꺼이 도왔으며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겐 보다 나은 목적을 위해 일하도록 격려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도와주었습니다. 학교 선생들 사이에서 보여준 동료의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만을 위해 헌신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그는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성서학원 미래 속에, 그리고 한국 여성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그가 남긴 영향력은 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A.B. Chaffin, "Miss Millie M. Albertson", Korea Mission Field, May, 1919, p. 104.)

한국의 교육을 위해 특별히 한국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헌신했던 여선교사 알버트손. 여성이지만 뛰어다니며 여성성서학원과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일구어 내고, 그를 통하여 수많은 전도부인들과 신학생들을 배출되었음을 기억할 때 우리를 그녀의 헌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2019-06-27 15: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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