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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ernard, Elton David(1930-2017, UPCM) / Bernard, Loretta A.(미상, UPCM)
 작성자 : 문강륜  2019-06-27 19:34:22   조회: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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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Bernard, Elton David (버나드 / 변영달 / 미국 / UPCM)
2. 생몰연도: 1930-2017.3.8.
3. 출신 및 소속 : 미국, UPCM(연합오순절교회)
4. 한국선교기간 : 1965~1985.6.
5. 연표
1930.11.21. 루이지애나 베이튼 루즈 출생
1950년경 6.25 전쟁 참전
1955.5.26. 로레타(Loretta)와 결혼
1950년대 루이지애나주립대학 졸업
1960.2.19. 한국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음
1961-63. 루이지애나 해먼 오순절교회에서 시무
1965. 연합오순절교회 선교사로 내한
1966. 서울에서 연합오순절교회 개척
1966.10.21. 총회 설립하여 총회장에 취임
1968. 홍제동 본부 교회 건물 건축
1968.9. 경기도 시흥에 연합오순절신학교 설립, 교장 취임
1969.2.25. 문화체육부에 ‘재단법인 한국 연합 오순절교회’ 등록
1974. 유니온신학교 졸업
1985.6. 한국을 떠나 루이지애나로 돌아감. 이후 곤잘레스에 두 개의 교회 개척
2017.3.8. 소천

6. 가족사항: Bernard, Loretta A.(부인)
David K. Bernard(아들)
Karen Hatcher(딸)
Julie Celey(딸)

7. 논저: “오순절사상: 논설 및 논문모음”, 서울: 한국연합오순절교회, 1973.
The Korean Frontier: A Story of Pentecostal Revival. Hazewood, MO: Word Aflame Press, 1989.
The Oneness View of Jesus Christ. Hazewood, MO: Word Aflame Publications, 1994.
In Search of Holiness. Hazewood, MO: Word Aflame Press. 1998.


Ⅱ. 선교사 소개: 버나드 (Bernard, Elton David, 1930-2017)

1. 부모님을 통해 접한 오순절 신앙
버나드(Bernard, Elton David)는 그의 아버지 월터 버나드(Walter Bernard)와 어머니 릴리안 사이에서 8명의 자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터 버나드는 Acadia 출신의 프랑스인 자손인 루이지애나주의 주민이며, 그의 조부는 프랑스어만 사용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윌터가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가진 릴리안 조지와 결혼했을 때, 윌터는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했다.
그의 부모님은 텐트 부흥회를 통해 오순절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9살 때 기도하면서 천국에서 내려온 밧줄 환상을 보았고, 밧줄을 잡았을 때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인 월터 버나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설교자가 되었고, 그가 17살 때 사망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 기록을 보면 그의 오순절 신앙은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확인되며, 어렸을 때부터 오순절 신앙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까지 준비 기간 (1950년대~1965)
버나드는 한국 6.25 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 온 미군에서 근무를 하였다. 본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1955년 5월 26일 로레타(Loretta Artigue)와 결혼하였고, 그들은 포트 알렌 (Port Allen)에 있는 교회 설립을 도우며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에서 인사 관리학 학사 학위를 받고, 회계사로 일하였다. 1956년 첫째 아들 David K. Bernard이 태어났으며, 1959년 Karen이 태어났다. Julie는 1972년에 입양되었다.
버나드와 그의 아내 로레타는 1960년 2월 19일 한국 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준비기간 동안 그들은 둘 다 목회신임장을 받고, 하몬드에서 교회를 시작하였다.

3. 한국에서의 선교사 사역 (1965~1985년)
이후 버나드 부부는 1965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한국연합오순절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하였다. 1965 년부터 1985 년까지 한국연합오순절교회는 22개의 교회와 미군을 위한 3 개의 영어 연수회로 성장하였다. 또한 버나드 부부는 또한 많은 박해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캠프, 협약, 목회자 세미나 및 부흥 운동을 실시하였다. 그는 한국연합오순절교회의 목사와 연합오순절신학교의 교장으로 복무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약 3천 명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4. 오순절 성령침례와 기적 체험, 재 침례.
그의 사역의 특징은 강력한 성령 체험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그가 한국에서 선교를 한 1965년부터 1985년 동안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준 목회자는 100명이 넘으며 그 외 3000여명의 한국인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한다. 또한 선교사 부부가 인도한 집회나 교회에서 10,000여명이 성령침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무래도 기존 기성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한 복음’을 설교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71년에 인천에서 감리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주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다시’ 침례를 주는 일은 그의 기록에 따르면 계속 반복되는데, 1972년 7월 집회에서도 타교단 목사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이야기하며, 1972년 12월에 12명의 타교단 목자들에게 ‘사도적인 진리’를 가르쳤고, 그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1973년 1월에도 목회자 세미나에서 이미 침례를 받은 6명의 목회자가 예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의 저서에 따르면 1972년 4월 24-29일 기도원에서 집회에서 2000명의 교인들이 모였는데, 수백 명이 성령 침례를 받고, 춤추고 부르짖고 외치며 방언을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였는데, 한 쪽 눈을 실명했던 사람이 다시 보게 되었고, 폐가 망가진 사람도 고침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그의 사역은 강력한 성령체험과 재 침례, 기적 체험 등으로 볼 수 있다.

5. 불교 비방 전단지 사건
버나드 선교사는 그의 신앙적 특징에 의해서인지 과감하게 전도를 하였던 것 같다. 그는 당시 부흥집회를 선전하면서 ‘생명 없고 싫증이 난 종교에 지쳐버렸나요? 그렇다면 오순절을 체험하시죠!’라는 문구와 함께 석굴암의 불상과 교회 건물사진을 대비한 팜플렛을 배포하였다. 그의 사과문에 따르면 팜플렛은 30만매를 인쇄하였다는데, 물량적인 면에서만 봐도 그의 사역의 과감성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그는 조계종 측의 항의를 받고, 공개사과를 하고 경향신문 1974년 8월 16일자에 “사과문”을 기재하였다. 당시 사과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 전략 … 앞으로는 절대 기독교인으로서 불교를 직접 간접으로 비방하지 아니할 것을 약속합니다. 더구나 공산주의를 견제하기 위하여 전국민의 총화체제로 단합되어야할 이 시점에 이러한 민족분열을 조장하는 인상을 준 불의의 사고는 전체 불교도에게 씻기 못할 상처를 준 것으로 사료되옵기에 재삼 사과를 드리며 잔여 팜플렛을 소각하겠습니다.”

그의 사과문에서 주목되는 부분 중 하나는 ‘공산주의를 견제하기 위하여 전국민의 총화체제로 단합되어야 할 이 시점에’라는 표현이다. 당시 그의 이러한 홍보물은 불교와 기독교의 대립을 통한 민족분열 조장행위로 비춰졌고, 그는 종교적 이념을 넘어서 당시 불안한 정치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라도 이러한 사과문을 기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6. 계속되는 비방과 고난
그의 저서에 따르면 1974년 여의도에서 열린 범기독교 연합집회에서 하나님의 성회 조용기 목사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그들을 이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그 때문에 수많은 자들이 실족하였다고 한다. 그는 조용기 목사에게 찾아가 공적으로 사과하라고 강력히 권고했고, 개인적인 사과는 받았으나 공적으로 사과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또한 1976년 교단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한국 정보부에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다고 무고로 제보 당했으며, 공산주의자라고도 고발당했다. 그 결과 중앙정보부는 6주간 면밀한 조사를 하였고, 법무부에서는 무고로 판단하여 계속적인 선교 사역을 할 수 있었다.

7. 루이지애나로 돌아온 이후부터 소천까지 (1985~2017년)
버나드는 1985년에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루이지애나로 돌아와 곤잘레스(Gonzales)에 두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는 루이지애나 지역의 스페인어권 사역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전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았던 엘튼 버나드는 그의 부인이 소천한지 6개월 후인 2017년 3월 8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8. 한국에 오순절 운동을 일으켰던 한 사람
버나드 선교사는 UPCM 소속의 선교사로서 한국에 ‘한국연합오순절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그가 한국에서 사역할 당시 그가 설립한 연합오순절교회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그에 따르면 수많은 부흥회를 통해 강력한 성령 체험과 기적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기존의 타 교단 목회자들도 그에게 다시 침례를 받았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그에 의해 오순절 신앙이 어느 정도 한국 교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는 불교 비방 전단지 사건과 여러 가지 비방 등으로 이후의 사역이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해당 교단은 군소교단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경기도 광명에 본부와 자체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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