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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Gamble, Foster Kirk(1880-1969, MS) / Gamble, Beatrice Jenkins(1889-1927, MS)
 작성자 : 박병헌,길태인  2019-06-27 19:37:24   조회: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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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ble, Foster Kirk / Gamble, Beatrice Jenkins (079)

Ⅰ. Gamble, Foster Kirk선교사는 누구인가

Gamble, Foster Kirk (갬블 / 감보리(甘保利) / 미국 / MS)
1. 생몰연도: 1880-1969 미국 앨라배마주 출생

2. 학력: 1900 Birmingham-Southen College 졸업
1902 동대학원 졸업
1907 밴더빌트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3. 경력: 1902- 고향에서 목회 생활, 문서전도
1908. 9. 16 젠킨스와 결혼
1908.10 남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1909-10,1913-14 남감리회 연회 서기
개성 북부교회 시무, 춘천지방 전도
1915 귀국, 선교부 간사로 행정직에 시무
1921 재내한, 목회서신, 감리교엽성신학교 교수
1927. 1. 13 부인 사망후 귀국
이후 목회와 교회 행정에 공헌, 문서전도, 선교부 간사, 연회 서기 등 역임
1940-52 감리교해외구제위원회 조직, 한국전쟁 한국감리교 재건에 협력
1952 은퇴

4. 가족사항 : Gamble, Beatrice Jenkins(부인)

Gamble, Beatrice Jenkins (갬블 / 미국 / MS)
1. 생몰연도: 1889.8,5-1927.1.13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생

2. 학력: 래들톤 여자전문학교, 남감리교선교사 양성신학교 졸업

3. 경력: 1908 남감리회 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내한.
개성과 경성에서 선교활동 1927. 1. 13 47세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

4. 가족사항: Gamble, Foster Kirk (남편) 김승태·박혜진 역, 「자료총서 제18집 내한 선교사 종합 1884-1984」, (한국기독교역사 연구소).


Ⅱ. Gamble, Foster Kirk의 생애와 사역

1. Gamble, Foster Kirk의 생애

Gamble, Foster Kirk 선교사는 1880-1969 한국명 감보리(甘保利) 미국 남감리회 목사, 선교사, 교육가, 편집인이다.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출생하여 1900년 버밍헴 사우던 대학(Birmingham-Southen College)과 동대학원을 졸업(1902)한 뒤, 1907년 밴더빌트 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02년 7월부터 전도자가 되기 위하여 북부 앨라배마 연회 (North Alabama Conference)에 입회하여 고향에서 목회생활을 하였고, 한편 (앨라배마 크리스찬회보)의 편집차장으로 2년간 문서전도활동에도 참가하였다.
1908년 9월 16일 젠킨스 (Beatrice Jenkins)와 결혼하였다. 아내인 젠킨스는 1889년 8월 5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생, 래틀톤 여자전문학교와 남감리교 선교사 양성신학교를 졸업한 후 감보리 목사와 결혼 1908년 함께 내한하여 개성과 경성에서 선교활동 하다가 1927년 1월 14일 향년 47세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였다.
다시 갬블의 생애로 이야기 한다면 젠킨스와 결혼 이후 남감리회 선교사로 10월에 내한하였다. 남감리회 선교사로 매 연회 서기(1909-10, 1913 -14)를 맡아 당시 한국선교 정책에 관여하는 한편 친히 개성 북부교회를 맡아 오화영 목사와 함께 복음을 직접 전파하면서 한국인의 좋은 벗이 되었고 춘천지방에서도 전도사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1915년에 귀국하여 선교부 간사로서 행정직에 시무하였고 1921년 다시 헌신하였고, 감리교회 협성신학교의 교수로 신학생들에게 목회경험을 통한 실천신학을 교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5남매를 거느리고, 여선교사로 내조의 역할을 하던 사랑하는 아내가 1927년 1월 13일 죽자, 남은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을 떠나 귀국하였다. 1927년부터 8년간 선교부의 간사로 있으면서 페어필드(Fairfield, Ala)에서 목회자로 크게 활동하였고, 로아노크(Roanoke, Ala)지방의 감리사로 지방교회 발전에도 공헌하였다.
1935년부터 1941년까지는 전에 근무한 바 있는 <앨러배마 크리스찬회보> (Alabama Christian Advocate)의 편집인으로 문서전도에 헌신하였다. 1942년 이후에도 교회 담임자로서 감리사 및 연회서기 (North Alabama Conference)로 10여 년간 목회와 교회행정에 공헌하였고 1940년부터 1952년은 은퇴하기까지 감리교 해외구제 위원회 (Methodist Committee for Overseas Relief)를 조직하여 한국동란 때 한국감리교 재건에 크게 협력하였다.



2. Gamble, Foster Kirk의 구체적인 사역

2.1 남감리회 합동 연구위원으로 활동한 Gamble, Foster Kirk

미국에서 남·북감리회 합동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다. 1924년 미감리회 총회는 남감리회와의 합동을 가결했으며 남감리회는 1925년 총회에서 그 문제를 다룰 예정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두 교회 ‘진흥방침연구회’ 회원들은 미국에서 합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1925년 남감리회 총회는 합동안을 부결시켰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 감리교회 대표들은 “조선 남북 감리교회는 불가불 단독으로라도 통합하여야만 되겠다”고 생각하고 두 교회의 합동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연구위원을 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1926년 두 교회 연회는 다음과 같이 합동 연구위원을 5명씩 선정했다.

미감리회: 김찬홍, 오기선, 김종우, 노블(W. A. Noble), 모리스 C. D. Morris)
남감리회: 신공숙, 양주삼, 정춘수, 저다인(J. L. Gerdine), 갬블(F. K. Gamble)

각 감리회에서 선정한 연구위원 표1

“이 위원들을 택한 목적은 조선에 감리교회를 한 단체로 조직하여 조선을 복음화 하는데 더욱 유력하게 하며,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더욱 상당하게 하자는 것” 이었다. 이 위원들로 구성된 ‘조선 남북감리 교회 통합 방침 연구 위원회’는 1926년 12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6차례의 회합을 가졌다.
이후 6차 모임을 가진 결과 1927년 3월에 다음과 같은 3개 항의 청원서를 마련해 미국의 남·북 감리회 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1) 미·남 감리교회 조선매년회로 하여금 남·미 감리교회 조선매년회와 통합하여 조선감리교회를 조직할 권리를 허락하였다.
단, 남·미 감리교회 총회에서도 그 교회 매년회에 그와 같은 허락이 있어야 함
2) 전권위원을 택하여 남·미 감리교회 총회에서 택하는 전권위원과 조선에 있는 두 매년회에서 택하는 전권위원으로 더불어 연합하여 통합의 기초법을 제정하며 조선에서 총회를 소집하며 조선감리교회를 조직하기에 필요한 기타 사무를 집행할 권리를 허락하였다.
3) 전권위원들이 통합의 기초법을 제정하며 조선감리교회의 조직을 계획할 때에 미국에 있는 남북감리교회와 조직적 관계가 있게 규정하기를 명령하였다.

이간은 한국의 두 감리교회 청원서에 대해 미감리회 총회는 1928년 5월에, 남감리회 총회는 1930년 5월에 각각 승인하였다. 이로써 한국에서 두 교회 합동의 길이 열린 셈이다.

2.2 백만구령운동을 일으킨 Gamble, Foster Kirk

백만인구령운동은 1909년 7월 12일,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남감리교 개성 선교부의 몇 명의 선교사들. 갬블(F. K. Gamble), 리드(C, F. Reid), 스톡스(M, B. Stokes)가 한국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는 기도모임을 함께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열기가 시들어지면서 “기도와 봉사에서 자신들의 능력의 결핍을 깊이 염려한” 이들 남감리교 선교사들은 이 민족 가운데 다시 한번 놀라운 부흥운동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경공부와 기도로 일주일을 온전히 보내기로 결정했다.
기도회 4일째 되던 날 한밤중까지 기도회가 계속되었고, 그날 리드의 고백대로 “우리 중 몇이 상당한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에 응답하셔서 만족하실 때까지 간절히 기도했고, 성령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새벽 4시에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그들 가운데 임한 것이다. “갑자기 성령의 부으심으로 우리의 기도가 중단되었고, 우리는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중 한 사람이 그리스도가 손을 쭉 펴시고 한국을 축복하시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 세 명의 선교사들은 기도의 열정에 사로잡혔다.
며칠 후 세 사람(갬블, 리드, 스톡스)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도원에 올라가 며칠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꼈다. 개성의 세 교회를 대표하는 한국인 지도자 가운데 10명이 함께 산으로 올라갔고, 같은 시기 5명의 개성의 남감리교 소속선교사들이 “성령의 권능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 다른 산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15명이 민족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들 모두는 기도 가운데 큰 은혜를 경험했다. 이에 고무된 스톡스는 자기가 올라갔던 그곳에 20명을 데리고 다시 올라가 4일 후에 내려왔다. 스톡스가 고백한 것처럼 이때 “주님께서 놀라운 권능으로 자신의 영을 그와 함께 올라간 20명위에 부어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앞서 올라갔던 10명의 한국인 교회 지도자들과 5명의 선교사들, 그리고 뒤에 올라간 20명의 한국인 조사를 합쳐 35명의 사람들이 은혜를 충만히 받고 “열정과 능력이 충만한 제자들같이 자신들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선교사들이 이들 지역들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은 여기저기서 전보다 더 강도 높게 하나님의 축복이 현시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맡은 선교구에서 놀라운 선교의 결실을 목격한 스톡스는 성령의 감동하심 속에서 자신이 맡은 두 선교구에서만 5만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1909년 9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남감리교 연회에서는 “이십만을 그리스도에게로" 라는 캐치 플레어를 내걸고 이 운동을 선교회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았다. 연회에서는 히브리서 10:35-36에 근거해 20만 명의 영혼을 금년에 달성하자는 것을 결의하고 모국의 선교본부와 본국 해외 여선교회에 전도사역을 위해 가까운 시일 안에 6명의 남자 선교사와 4명의 여자 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결의했다. 스톡스를 비롯해 의식 있는 몇 명의 선교사들이 기도하고 바랐던 그 일들이 너무도 놀랍게 응답된 것이다.

2.3 한국 선교를 회로하며 작성한 Gamble, Foster Kirk의 편지

REPORT OF SONGDO NORTH CIRCUIT.

The past year has been one of large privilege and blessing to me. The call of God to come to Korea for work in this “field white unto harvest” was answered with a glad heart. My vision of the greatness of the opportunity for service in leading men out of darkness into the true Light in this land has been broadening since my first arrival. During the months of language study and the several trips that I have taken in the country the Lord has been gracious, and to-day I stand on higher spiritual ground than a year ago. the cordial welcome given us by those already on the field and their many acts of kindness are greatly appreciated, and we are expecting these friendships to grow stronger and dearer as the months and years go by .
The work of the Songdo North Circuit was turned over into my hands by Brother W. G. Cram when he left for his furlough in June. I had travelled over the entire ciruit in company with him, and was directed as to the details of the work. With the assistance of four well trained and efficient native helpers, the work was not found so difficult as it would have been had not my predecessor left all things in such good condition. The statistics will show a good growth during the year. there have been 180 adult and 51 infant baptisms. Three new societies have been organized, and seven new church buildings erected. The contributions for all purposes have been 1,365.44, about 1.92 each for the baptized members. The demand for education is almost importunate, far greater quality of teachers is being improved.
We look out upon the new year with a strong faith and hope for a large ingathering of souls, and for a general advance along all the lines of work. Trusting in our Great Leader, we shall not be disappointed.
- F. K. GAMBLE. -

북 송도 회로보고 (번역)

작년 한해는 제게 큰 특권이자 축복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하얗게 무르익은 추수 밭”에서 일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제 마음에 큰 기쁨으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함으로 섬길 수 있는 이 큰 기회에 대한 저의 비전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지경이 넓어져왔습니다. 한국 안에서 몇 달 동안 진행되어 온 언어의 공부와 여러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셨고, 그리고 오늘은 작년보다 더 높은 영적인 고지에 서있다고 느낍니다. 본래 사역 현장에 계시던 분들의 따뜻한 환영과 그리고 그분들의 많은 친절의 행위들을 정말 귀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달들이 지나고 년들이 지나면서 이 교제가 더 튼튼하고 애틋하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송도 북쪽 지역에 있는 사역은 w. g. cran 형제님이 6월 달에 휴가를 떠나면서 형제님으로부터 저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저는 형제님과 함께 전체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리고 사역의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 지도를 받았습니다. 네 명의 잘 훈련되고 유능한 현지인 분들의 도움과 함께, 저의 전임자 분께서 너무나 좋은 상태로 사역을 물려주셔서 사역을 하는 것에 있어서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일 년 동안 좋은 성장을 이루어 냈다는 것을 통계가 보여 줍니다. 180명의 어른과 51명의 신생아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 개의 새로운 단체가 형성이 되었으며, 그리고 일곱 개의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데에 거두어진 금액이 1365.44이며, 세례교인 한 사람 당 약 1.92이란 금액을 낸 셈 입니다. 교육에 대한 필요는 너무나 시급한 상태이며, 우리가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필요가 더 큽니다. 학교의 등급이나 선생님들의 수준 또한 발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해를 사람들을 더 거두어들일 강건한 믿음과 소망으로 바라보며, 그리고 모든 일에 전체적인 성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크신 지도자를 믿으며,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 감보리 -

Ⅲ. Gamble, Foster Kirk 선교를 통해 느낀점

첫째로 Gamble, Foster Kirk의 가진 은사와 달란트가 선교의 큰 힘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Gamble를 소개하는 글을 보게 되면 그를 목사, 선교사, 교육가, 편집인으로 소개한다. 그는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뛰어난 교육가로 교회와 선교기관에 중요한 직무와 역할을 맡았으며 교수로도 활동하였다. 성실한 생활과 학업에 대한 열정이 그를 영향력 있는 자리로 가게 한다. 편집인으로서도 교회와 목회 행정, 감리교 재건에서도 큰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즉 Gamble은 학업과 주어진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은사와 달란트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능력 많은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끗한 그릇으로서 성실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할 것이며, ‘땅 속에 달란트를 심지 말고, 작은 일에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가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달란트와 은사들을 복음전파에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Gamble, Foster Kirk는 체계적이면서 전략적인 선교를 하였다. Gamble선교사의 선교활동을 살펴볼수록 무모한 도전이 아닌 믿음과 함께 성실함과 계획을 동반한 선교였다. 예로 W. G. Cram 선교사는 Gamble선교사에게 원할한 인수인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체계적인 선교 지침서가 있었고 아주 오래전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문서화 하고, 자료로 남기고 하는 것들이 선교만 나가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영향을 갖을 수 있도록 함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찾아볼 수 도록 체계화 한것이 정말 놀라웠다. 이는 Gamble선교사가 선교 사역을 위해 동역자간의 관계를 잘 형성하고 무모한 선교가 되지 않도록 자료 수집과 선교 전략을 잘 세운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전도와 복음 전파에 있어서 믿음이라는 오해 아래 무모한 도전과 무책임한 사역을 조심하고 하나님께 사역을 맡기는 믿음과 함께 성실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함을 배우게 된다.

셋째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백만인구령운동의 모습을 보면서 갬블과 그 동역자들의 기도가 불길의 시작점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들이 있었고 그 고백은 기도라는 자세에서 나오는 믿음의 확신이었다. 그들의 기도는 결국 부흥이라는 기적을 보여주게 된다. 오늘날 사역과 복음전파의 가장 근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일 것이다. 우리들은 얼마나 기도의 시간을 따로 떼어 하나님께 쏟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기도는 막연한 행동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마땅한 자세이다. Gamble을 통해서 오늘날 사역자와 전도자로서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2019-06-27 19: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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