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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Found, Norman(?-1971, M) / Found, M.(미상, M)
 작성자 : 조형준, 심기호  2019-06-27 20:09:42   조회: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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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Found, Norman (파운드 / 方恩斗 / 캐나다 /M)
2. 학력: 1919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3. 경력: 1921.12 미감리회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충남 공주선교부에 배속되어 5년간 지방순회, 진료활동
1927 서울 세브란스병원 의사 겸 의전 교수로 임명
1931 인턴제도 혁신하여 한국인 의사 자질향상에 공헌
1935 휴양차 귀국했다가 일제의 활동제한으로 귀환 못함
1937-67 터론토에서 개인병원 경영
감리회선교부나 캐나다 연합교회선교부 통해 한국선교 후원
1971.3 온타리오주 피터버러에서 병으로 소천
4. 가족사항: Found, N.(부인)
5. 논저 [논문] Laboratory Work in Korean Mission Hospital, China Medical Journal, vol44, 1930.

Ⅱ. 선교사 소개: 노만 파운드(Found, Norman(?-1971, M)

1. 의료선교의 필요성
1860년대 조선시대 사람들은 천연두와 콜레라를 일종의 귀신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의료적인 방법보다는 미신적인 주술을 사용해서 병을 치료하려고 했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전국에서 한 해 10만 명 정도가 콜레라로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의료 행위는 콜레라를 치료하는 것에 무의미 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런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쥐의 영혼에 의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랬기에 그들은 종이로 고양이를 만들어서 벽과 문에 걸어 놓는 치료 방식을 취했다. 그렇기에 콜레라는 엄청난 비율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노먼 파운드 의사는 서울에서 하루에 300명 정도가 콜레라로 죽는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콜레라는 쥐의 영혼이 아니라 오염된 음식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50,000장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포스터의 내용이다. “콜레라는 악한 영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균에 인한 것입니다. 이 세균이 당신의 위로 들어가서 증식하는 것이 병의 원입니다. 만약 당신이 콜레라에 걸리기를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 모든 음식을 완전히 익혀서 드십시오. 당신이 만약 생수를 먹는다면, 그전에 꼭 그것을 끓이고 깨끗한 병에 먹어야 합니다. 가장 많은 세균이 있는 곳은 우리의 손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기 전 항상 당신의 손을 완전히 씻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모든 것을 지키면 당신은 콜레라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당시의 의료 선교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서 잘 못 된 세계관을 바로잡아주고 사람들을 계몽해 주는 역할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공주의료 사업소부터 세브란스병원 의료선교 맥을 이어간 선교사
1908년 9월 28일 반 버스커크(J.D. Van Buskirk) 의사가 공주 진료소로 부임했다. 작은 규모의 진료소였지만 이후 캔자스 시티 베다니 감리교병원 해외분원의 설립이 취소되면서 반 버스커크 선교사는 1913년 공주를 떠났다. 그래도 그는 3년 8개월 간 16,553명을 진료하고 140명을 왕진하며 100명이 넘는 개종자를 얻었다.
반 버스커크가 떠나고 9년간 중지 되었던 의료 사업은 1921년 노먼 파운드(Norman Found) 의사와 간호사인 그의 부인이 임명됨으로써 재개 되었다.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하여 20*40피트(6*12미터) 규모의 진료소를 만들어 외래환자만 치료했다. 1923년에 보딩이 간호사로 임명되어 한국인 간호사와 함께 간호업무를 맡았고, 이때 한국인 의사 1명도 근무를 시작해서 2,8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후 1925년에는 한국인 의사가 보강됨으로써 대성장을 이루었다. 공주의 의료사업은 일반지료와 어린이 복지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25년에는 13개 지방에 순회 진료를 실시하면서 4개 분원진료소를 설치하여 정기적으로 방문하였다. 그리하여 매달 500여 명을 병원에서 그리고 600여 명을 순회 진료에서 치료하였다.
파운드 의사는 1926년 119일간에 걸쳐 1,200여 명을 순회 진료하였다. 그러나 그는 1927년 1월 휴가로 병원을 떠났다가 노튼(A. H. Norton) 의사 후임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임명되었고, 이후 공주에는 외국인 의사가 임명되어 오지 않았다. 하지만 1927년 세브란스를 졸업한 양재순 청년이 무보수로 병원을 맡았고 세브란스에서 세균과를 담당하던 파운드 의시가 매달 1회씩 공주로 내려와서 진료를 보았다.
한편 보딩 간호사의 유아 복지 사업이 훌륭하게 수행되어 유아 사망률이 격감되고 아이들에게 우유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1930년 이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선교부의 지원이 중단 되어 폐쇄되었거나 한국인에게 운영권이 넘어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의료선교 중심으로 펼쳐진 사회복지사업
1921년부터 공주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했던 의료선교사 파운드(Norman Found) 박사를 돕기 위해 1923년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로부터 마렌 보딩을 공주로 파송되었다. 보딩은 방문 진료를 돕는 과정에서 아기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을 목격한다. 1923년 공주에 파송된 마렌 보딩은 진료소 일과 더불어 부녀자와 어린이를 위한 방문 진료 과정에서 아기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특별한 지원조직 없이 개인적으로 유아복지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처럼 의료선교사 파운드 박사는 의료진료 뿐만 아니라 진료소에서 의료간호선교사들과 함께 유아진료소를 운영하는 한편, 아기들을 위한 순회 방문 진료도 계속했다. 유아들을 위해 거의 무료로 1,400번의 순회방문 진료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4. 세브란스의료기술 발전에 공헌
1922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사용된 생화학 실습노트를 보니 표지에 “Laboratory of Biochemistry in Severance Medical C(ollege), 2nd Year"라 되어 있어 생화학(biochemistry)이라는 용어가 당시 의과대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실습공책은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가 통합하여 연세대학교가 된 후 초대 의과대학장을 지낸 김명선 선생님(1925년 졸업)이 대학교 2학년이던 1922년에 작성하신 것으로 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 1927년부터 1935년까지 내과 교수로 있었던 노만 파운드(Norman Found)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그의 아들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생화학교실이 독립된 것은 1928년의 일이었다. 그 전에는 미국인 선교사인 밴 버스커크(Van Birskirk)가 생화학과 생리학을 함께 담당하였고, 이석신이 생화학 교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이석신은 생화학을, 밴 버스커크는 생리학을 담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김명선 실습공책은 밴 버스커크가 담당했던 강좌임을 알 수가 있다. 이 공책의 기증자인 노만 파운드는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로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 내과 교수로 일하면서 각종 자료의 수집이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록의 발굴 및 직접 기록을 하는데 공헌한 인물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많이 남겨 주었는데 아마도 김명선의 실습공책도 노만 파운드가 수집을 했던 것을 그의 아들 브루스 파운드(Bruce Found)가 유품 속에서 발견하여 기증한 것으로 보여진다.
1912년 한국에 온 밴 버스커크가 아무리 한국말을 잘 했다 할 지라도 수업시간에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어만을 사용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김명선의 실습공책은 적은 양의 단어만 영어로 표기되었을 뿐이고, 한글과 한문이 어우러져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데 한문의 사용이 워낙 많아서 혹시나 실습이 끝난 후 집에서 다시 재정리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1920년대라지만 의과대학생이 한 과목에 집중투자하여 공책정리를 다시 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수업 시간에 이 정도로 공책을 정리했다면 공책 정리에 꽤 관심을 가지고 성의와 노력을 보여주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5. 가르치고 전하고 고친 의료선교사
노먼 파운드 박사님은 세브란스 대학 병원의 졸업생들과 함께 한국 결핵 조사를 실시했다. 그 연구는 한국인 최 바울 박사님과 함께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 한국에는 대략 20,000명의 나병 환자가 있었고, 대략 수십만 명이 폐결핵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병이나 천연두의 경우 공공시설과 여관 식당 등에서 즉시 격리가 되어 지지만, 그에 비해서 결핵 등 질병에 대해서는 어떤 의사에 대해서도 위험이 경고되어지지 않았고 식당과 여관 등 공공시설에서 질병이 전염되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더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의료 선교사들은 노력했고 그 결과 전국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으며, 그들은 치료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2019-06-27 20: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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