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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aker, James Chamberlain(1879-1969, M) / Baker, J. C.(미상, M)
 작성자 : 권혁진, 정인철  2019-06-27 21:54:59   조회: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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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선교사 / James Chamberlain Baker (1879-1969)

I. 기본사항

1. 이름: Baker, James Chamberlain / 베이커 / M
2. 생몰연도: 1879-1969.9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28-1932.
5. 연표
1879.06.02. 일리노이주 쉘던 출생
1898. 일리노이주 웨슬리안대학 졸업
1898-1902. 웨슬리안대학 희랍어 교수로 봉직
1900. 일리노이주연회 허입
1903. 집사목사 안수
1903-1928. 목사로 시무(애쉴랜드교회, 어버나교회, 트리니티교회 등)
1905. 장로목사 안수
1905.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졸업
1928. 웨슬리안대학 명예신학박사 학위
1928. 감독으로 피선
1928. 한국 일본 만주의 감리교 연락 감독으로 선출, 내한, 남북감리교 연합운동에 많은 영향
1928.10.28. 해주 구세 요양원 봉헌식 집전
1930. 코넬대학교
1930.11.18. 남북감리교회 합동전권위원회 미감리교회 특선위원 및 조선주재 감독
1930.11.29. 조선감리교회 합동성명서 발표
1930.12. 기독교조선감리회 발족시 자문역할
1931. 오하이오주 웨슬리안대학교
1932. 귀국
1932-1948. 캘리포니아 감독
1937 옥스퍼드 선교사위원회 위원
1940. 서든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각각 법학박사 학위
1941-1947. 국제선교협의회 회장
1947. 아이트비연회장
1948.1952. 로스앤젤레스 감독
1948-1949. 감독회장
1948-1954.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
1952-1956. 퇴임 후, 서든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로 근속
1969.09. 캘리포니아 클레아먼트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Mrs. Baker, J. C. (레나)
7. 참고문헌
기백 7권; EWM; 베이커-감독약력, 신학세계 13.4 (1928.7); 감신대사; KMYB;
CMYB; 한국 남북감리교회 합동과 조직성명서, 기독신보 영인본 10권, p.100, 106; 한국감리교회 외국인선교사.


II. 선교사 소개: 베이커(James Chamberlain Baker 1879-1969)

1. 감리교회의 지도자이자 아버지
제임스 체임벌린 베이커(James Chamberlain Baker 1879-1969, 이하 베이커)는 1879년 6월 2일 일리노이주 쉘던에서 태어나 1898년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했다. 1900년에 성직자로 입문하여 감리교 성공회 일리노이 연례회의에서 임명되었다. 당시 베이커는 미주리주 카메론의 미주리 웨슬리언 대학 교수였다. 1902년 베이커는 보스턴 대학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미사 아슐랜드에서 학생 목사직을 받아들였다. 1905년 베이커는 신학 학사 학위를 받고 고향인 일리노이로 돌아와 맥린에 있는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1907년 어배너의 트리니티 교회에 임명되었다.
감리교 성공회, 감리교, 통일감리교 등 세 개의 감리교회에서 연속해서 주교로 활동했던 베이커는 공립대학과 대학 캠퍼스의 학생사역에서 "웨슬리 재단 운동의 아버지"로 저명하고, 전 기독교적인 주교로 기억되고 있다. 베이커는 “웨슬리 재단 운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주교”라는 칭호만큼 높게 가치를 두었다.
베이커와 그의 아내 레나는 1928년 감리교 성공회의 주교제도 선거에 앞서, 한 사역을 발전시켰는데, 이 사역은 1907년부터 학생 수가 5,000명이 되지 않았던 일리노이 대학 캠퍼스에 인접한 일리노이 주 어배너 트리니티 감리교회의 학생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베이커가 학생들과 함께 어배너에서 시작한 이 혁신적인 사역은 약 21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믿음의 캠퍼스 학생 사역의 모델이 되었다.
베이커는 선교 사역과 목회 사역을 은퇴한 후에도, 감리교회를 위한 일에 적극적이었다. 은퇴 후에도 베이커는 서든캘리포니아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여러 학기 동안 가르쳤으며, 자신의 개인 신학 도서관의 대부분을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먼트로 옮긴 후, 학교에 기부함으로써 감리교회의 학생들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었다. 베이커는 그의 80세 생일 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많은 청년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라고 대답했다.
학교와 교회를 향한 베이커의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그를 미국을 넘어 한국으로 까지 인도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베이커가 뒤이어 살펴보게 될 ‘남북감리교의 연합’이라는 성과를 거두는 데 이바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가 교수와 목사로서 활동했던 미국에서 학교와 교회의 지도자이자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학교와 교회를, 그러한 공동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 한국에 감리교가 뿌리내리는 데 이바지한 감독
베이커는 1928년 한국, 일본, 만주를 관할하는 감리교 연락 감독으로 선출되어 내한하게 된다. 웰치(Herbert Welch)의 후임으로 한국 감리교의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 베이커는 내한한 1928년부터 미국으로 복귀한 1932년까지 최선을 다해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내한 후 얼마 되지 않은 1928년 10월 28일, 베이커는 셔우드 홀 선교사의 초청으로,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개원하게 된 해주 구세 요양원의 개원식에 갔다. 요양원의 봉헌식 집전을 맡게 된 베이커는 노블 목사와 빌링즈 박사의 보좌를 받아 봉헌식 집전을 했고, 봉헌식에서 베이커는 해주의 남산 기슭에서 지금 시작한 그 요양원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결핵 요양소를 세운 에드워드 리빙스턴 트뤼도(Edward Livingston Trudeau)박사의 요양원과 비교하여 말했다. 이후, 요양원의 봉헌식은 소녀들의 노래로 마무리 되었다.
베이커는 내한 선교 중, 남북 감리교의 합동을 위해서도 힘썼다. 이는 더 나은 한국 선교를 위한 움직임으로써, 미국에서 있었던 내분으로 갈라진 감리교의 갈등이 한국 선교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갈려졌던 감리교가 하나가 되어, 한국인이 중심이 된 기독교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조선의 남북 감리교의 합동은 1928년 5월의 미감리회 총회와 1930년 5월의 남감리회 총회에서 승인을 해줌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베이커는 이를 위해 한국 남북 감리교회 연회에 선출을 받아 특선위원 및 조선주재 감독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조선감리교회 합동성명서가 1930년 11월 29일에 발표됐다.
합동성명서에 뒤이어 기독교 조선 감리회 제1회 총회가 1930년 12월 2일에 소집되었고, 이날 총회를 조직 할 때, 베이커가 전 미국 대통령 링컨의 책상목으로 만든 사회봉을 임시 회장으로 선출되었던 웰치에게 선사하여 이 총회를 집행하는데 사용케 하여 달라고 요청하므로 이 총회를 더욱 감명 깊게 하였다. 그리고 총회 제 3일 차인 1930년 12월 4일에는 베이커가 회무를 맡아 여러 안건을 통과 시키고, 교리적 선언에 대하여 축조 토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베이커는 한국교회와 미국교회 사이에 연락기관으로 설치된 기구인 조선감리회 중앙협의회 제 1회 모임이 있었던 1931년 2월 16일에 협의회의 실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베이커는 자신의 출신지인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에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일에 정말 많은 힘을 썼고, 한국 감리교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국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는 동료 선교사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미국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감리교를 한국에서 다시금 합치는 일을 도모하며, 미국 감리교와 한국 감리교의 소통과 연합을 위해 애썼던 베이커의 이러한 헌신과 섬김은 한국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한국의 감리교가 뿌리내리는 일에 참으로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3. 세계 선교를 위해 힘쓴 주교 선교사
1928년부터 1932년까지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을 최선을 다해 감당한, 베이커는 1932년에 미국으로 귀국했고, 귀국한 후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1952년에 은퇴했다.
베이커는 미국으로 복귀한 후에도 세계 선교에 힘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베이커는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의 거주 주교로서 미국 태평양 및 서부 해안의 많은 부분을 관할하면서, 여러 해 동안 국제선교회의(현 세계선교회의 세계선교 및 복음주의 위원회)에 깊이 관여했다. 베이커는 1937년 옥스퍼드, 1938년 마드라스, 1945년 케임브리지 등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전 기독교적인 생태학 회의에 참가했고, 또한 1947년에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휘트비에서 매우 중요한 세계 선교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베이커가 의장직을 맡았던 이 회의는 선교 생활과 선교 역사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토착 교회들의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게 했다. 1948년부터 1954년 까지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앙위원을 맡았고, 1952년 은퇴한 후에도 서든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69년 9월에 캘리포니아 클레아먼트에서 소천하였다.
2019-06-27 21: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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