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Graham, Agnes(미상, MS)
 작성자 : 장주영, 한창현  2019-06-28 07:05:21   조회: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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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Graham, Agnes / 그레이엄 / 한국명: 구예함(具禮咸)
2. 생몰연도: 미상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국남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3. ~ 1929.
5. 연표
1913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개성에서 선교활동
부인성경반을 통해 전도와 교육활동
1916-1917 미리흠여학교 교장 역임
1922 개성여자성경학원 개관에 주도적 역할
여성교회 지도자
1929 귀국
6. 가족사항: 미상


Ⅱ. 선교사 소개: 그레이엄(Agnes Graham, ?-?)

1. 미국 남감리교의 개성 선교와 그레이엄의 파송

윤치호는 1895년 귀국 이후 남감리교의 지원을 받아 개성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사업과 교육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윤치호는 그의 근대화 사상을 전개하기에 개성이 전략적으로 알맞다고 보았다. 하지만 남감리교의 조선 선교, 특히 개성 선교에 대한 관심 부족과 재정 부족으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본격적인 개성 선교는 리드(C. F. Reid)와 콜리어(C. T. Collyer)가 내한하면서부터였다. 1897년 1월 27일에 내한한 콜리어는 그해 9월 10일 제1회 ‘한국지방회’(Korea District Conference)에서 구역으로 확정된 개성 개척선교사로 임명받아 11월 15일 가족과 함께 개성에 이주하였다. 콜리어는 윤치호의 이모부인 이건혁의 주선으로 북부 산지현(山芝峴)에 있는 삼포막(參圃幕)을 구입해 선교사 사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콜리어는 도착 즉시 이곳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하여 이미 1897년 12월 8일에 열린 남감리회 한국선교회에 학습인 9명이 등록되어 있음을 보고할 수 있었다. 몰려드는 구도자들 때문에 삼포막 사택이 비좁아 남부에 별도로 교회 건물을 마련하고 1899년부터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개성남부교회가 되었다. 이 개성남부교회는 1906년에 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로 커졌다. 콜리어가 나간 뒤 남감리교는 삼포막 교회에 하디(R. A. Hardie)를 파송했다. 하디는 이곳을 병원 겸 예배처소로 사용했고, 사람들은 이곳을 “예배당병원”이라 불렀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1899년 9월에 하디는 서울과 강원도 선교를 맡게 되었고 하디가 간 뒤 1899년 파송된 하인즈(H. Hinds)와 캐롤(A. Carrol)과 같은 여선교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남자 여자가 마주 보고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여성은 여성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였다. 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삼포막 교회는 여성교인들이 많아졌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삼포막 교회가 여성으로 채워지자 남성들은 대부분 개성남부교회로 모여들었다. 이 삼포막 교회가 바로 개성북부교회이다. 그리하여 개성에는 여성중심의 북부교회와 남성중심의 남부교회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개성 선교가 개척되어갔고 이곳을 근거로 하여 1898년에 문산포, 고랑포 등지에도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미국 남감리교의 개성 선교정책과 그에 따른 부흥을 배경으로 1913년, 그레이엄(A. Graham) 선교사가 조선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레이엄은 미국 텍사스의 코만치 지역에 있는 First United Methodist Church의 파송을 받고 한국으로 왔다. 이 사실은 1919년 5월 18일에 감리교 선교 100주년 맞이해 게재한 Houston Post의 기사에도 잘 나타난다. Houston Post는 텍사스인 남감리교 선교사들의 선교국가를 정리하여 기사를 실었다.

2. 개성의 여성 선교사업과 그레이엄의 사역

교육 사업으로 개성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학교는 1899년 12월 19일 캐롤(A. Carroll) 여선교사에 의하여 창립된 “개성 여학당”이다. 처음에 12명의 여아를 데리고 한옥 한 채를 마련하여 시작한 것이 송도에서의 여성교육의 시초가 되었다. 1904년 정식 학교로 설립하면서 교명을 개성여학당이라 하였다. 1908년에는 미국의 홀스턴연회의 재정적 지원을 기념하여, 홀스턴을 한자음으로 가차(假借)한 호수돈여학교로 교명을 정하였으며, 1916년 개성에서는 처음으로 유치원을 병설하고 호수돈여자보통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로 분리, 운영하였다.
1906년 4월에 크램부인(W. C. Cram)이 젊은 과부 및 기혼여성 8명을 데리고 한옥 한 채를 구입하여 시작한 미리흠 여학교(Mary Helm School)도 있었다. 이 사업에 윤치호와 그의 부인이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 학교는 초기에 ‘영어학교’ 혹은 ‘송계학당’으로 불리다가 1909년부터 ‘미리흠’ 학교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남감리회 여선교부에서 보낸 ‘메리 헴(Mary Helm) 기념 선교기금’으로 학교 운영비를 보충한데서 연유한 명칭이었다. 1911년 개성시내 호수돈여학교 구내로 학교를 옮겨 여선교사들이 쓰던 가옥을 교실로 사용했다. 그러나 학생수가 35명을 초과하자 증축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1915년 새 건물을 완공하였고 1917년 4월에는 일제 총독부의 신교육령에 의해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기예과로 부속되었다. 그후 1922년 4월 기예과가 폐지되고 사립 학교령에 의해 사립 미리흠여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그레이엄(A. Graham) 선교사는 1916년부터 1917년까지 바로 이 미리흠 여학교의 제6대 교장을 지냈다. 1916년부터 1917년까지의 기간은 학생수가 점점 늘어나 새 건물을 건축한 직후이다. 이후 그레이엄 선교사는 1917년 일제 총독부의 강제적 개입까지 겪어야 했다.
1922년 5월 2일에는 개성에서 고려여자관을 개관하였는데 전도사업 외에 특별히 교육 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미 공부할 기회를 놓친 가정주부들을 모아 한 주에 4일, 1일에 2시간씩 야학을 했다. 고려여자관은 유치원 사업도 병행했다.
이처럼 개성에서의 여성 교육이 증진되고 발전되어가는 배경 속에서 그레이엄(A. Graham) 선교사는 미리흠 여학교의 교장을 맡았고 교사의 역할도 감당했다.

3. 전도부인의 활동과 여선교회

1900년대 초반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당시 보고서에 여성들의 지위를 한결같이 “노예 같은 삶”이라고 적었다. 그들의 보고에는 한국 여성들을 “일만 하는 고된 생활을 하고 있어 나이가 30세밖에 안되었는데 50세로 보인다”라고 쓰기도 한다.
소외되고 억눌렸던 여성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은 그야말로 해방의 빛이었다. 이름 없던 여성들에게 이름을 찾아줌으로써 온전한 인격체임을 깨닫게 했으며, 읽고 쓰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자아실현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었다. 구체적으로 복음은 부자유했던 여성들에게 예배와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생활의 길을 터주었다. 이러한 생의 전환은 이들로 하여금 전도부인으로 헌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도부인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명감을 필요로 하며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아 한국 여성들을 가르쳐야 했으므로 그들을 교육하는 기관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전도부인이 비교적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1897년 이후부터이다. 전도부인의 교육기관은 성경반(Bible Class), 성경연구반(Bible Institute), 성경학원(Bible Training School)이었다. 성경반은 사경회에서 조직되어 4일에서 2주정도 교육을 받았으며, 성경연구반은 최소한 한 달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수료하면 전도부인으로 파송되었다. 이 두 과정이 임시적인 성격인데 반해 성경학원은 3달에서 1년 이상 교육을 하는 비교적 전문적인 상설기관이었다. 여선교사들의 사역은 대부분 전도부인이라 일컫던 한국인 여성사역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선교의 일선에는 전도부인이 있었고, 여선교사들은 이들의 선교를 관리하고 지도하는 일을 하였다. 여선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선교구역에서 사역하는 전도부인의 선교역량이 선교의 관건이라고 생각하여 선교초기부터 전도부인들에게 전도에 필요한 전도방법과 성경지식과 여성들이 알아야할 일반 지식을 가르쳤다.
1908년 평양보고서에는 89개 성경반이 운영되고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 중에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반은 14개 721명이고, 전도부인들이 운영하는 반은 75개, 2248명 이었다. 그만큼 전도부인들의 활약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성경학원의 교사였던 채핀(Chaffin) 선교사의 1918년 보고에 의하면 성경교과과정은 예비과와 본과로 이루어지는데, 성경 본과는 3년 과정이었다고 한다. 또 케이블(M. E. Cabel) 선교사의 보고에는 매주 이틀 이상 전도실습을 나선다고 하고 있다. 1901년에는 개성 북부교회 안에 여자 사경반이 생겨 전도부인을 훈련시키기까지 했다.
그레이엄(A. Graham) 선교사는 1917년 미리흠여학교 재직당시에 선교 본부에 “49명이 열성적인 선교회가 조직되었다”고 보고한다. 이 선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위한 단체로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이어서 1917년에 역시 그레이엄은 “개성 남부교회에서 기혼여성들이 회를 만들어 매주 모여 예배와 성경공부를 하고 월 1회씩 모여 사무와 사교적인 모임을 갖는다”고 보고했다. 이런 남감리교의 여선교회들은 전도부인 파송을 주요 사업으로 하였다.
미리흠여학교에는 선교회와 별도로 ‘전도대’(preaching band)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 전도대는 미리흠 교사 리드(L. Reed)와 그레이엄이 지도하였는데 이에 대한 1917년 보고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난 해 가을, 우리 학교 진입로 주변의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들을 위해 일할 필요를 느끼게 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전도대를 만들었습니다. 11월 초하루에 전도대를 처음 조직할 때 학생 13명이 참여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토요일 오후마다 학교 주변으로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주일을 지내고 월요일 오후에 함께 모여서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보고 들은 바를 거리낌없이 발표했는데 종종 신입 교인이 생겨났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학생들은 남을 주님께 인도하려 노력하면서 얻는 기쁨과 그리스도의 새로운 빛을 얻곤 합니다. 현재 전도대원은 16명에 이르며 현재는 개성동지방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엄은 미리흠 여학교 교사, 교장으로 일했을 뿐 아니라 미리흠 여학교에서 선교회, 전도대까지 조직하여 지도하고 있었다. 이는 그레이엄이 단순히 교육적 차원의 선교사역을 넘어 영혼 구령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또한 이런 여러 보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레이엄이 조선에서 여성교육 교사로 일했을 뿐 아니라 본국인 미남감리교회에 개성의 현재 상황을 잘 알리는 메신저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레이엄은 개성여자성경학원을 개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레이엄이 개관하는데 크게 공헌한 이 개성여자성경학원을 통해 많은 여성교회지도자와 전도부인 양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4. 개성 기독여성들의 3.1 운동 참여

이 여성 선교사들을 통해 훈련받은 개성의 기독 여성들은 훗날 3.1 운동을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개성지역에 여성 교육이 잘 이루어진 탓에, 개성의 만세시위는 지도급 남성 지도자들이 서울로 올라가 있던 중 3월 3일에 여성들이 주도해서 일으킨 시위로 유명했다. 미리흠여학교 출신으로 개성여자성경학원 사감으로 있던 어윤희와 호수돈여학교 출신 권애라, 미리흠여학교 출신으로 맹인인 심명철, 개성여자성경학원 학생 신관빈 등 전도부인들과 호수돈여학교 학생 조숙경, 조화벽, 이경자, 권명범 외 14명, 미리흠여학교 학생 이신애, 이영숙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덕주, 『한국감리교 여선교회의 역사』 (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1991), 229-230.
이는 기독 여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뒤 일어난 거룩한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무엇보다 잘 나타내는 증표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3.1 운동의 주역들을 길러낸 그레이엄은 일제강점기와 초기 한국교회의 역경의 시간들을 거치며 모든 교육과 전도의 사역을 마친 뒤 1929년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2019-06-28 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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