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Anderson, Leonard Porter(1888-1976, MS) / Florie P. Betts Anderson(1889-1963, MS)
 작성자 : 김상범 정영교  2019-06-28 16:09:37   조회: 611   
 첨부 : 기말보고서_ M009_2017210009_김상범_2017210055_정영교.hwp (2496512 Byte) 
앤더슨 선교사 / Leonard Porter Anderson (1888-1976)

I. 기본사항

1. 이름: Leonard Porter Anderson / 앤더슨 / 한국명: 안지선(安至善)
2. 생몰연도: 1888.9.5.-1976.9.27.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4-1941, 1946-1950
5. 연표1888.9.5.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생
1914 남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개성 송도선교부에 부임
1915 남감리회 조선연회에 허입
1922 개성북지방으로 전임
1923 이천감리교회(개성북지방) 담임
1923 개성중앙감리교회 담임 (임두화 목사님과 함께)
1923-24 남천감리교회 담임 (김종만 목사님과 함께)
1925-26 춘천, 1926-29 원산 등지에서 선교사, 광명학교 교장
1930 원산지방 감리사 역임
1932 개성동지방으로 파송 1934-1935 중앙회관에서 근무
1935-38 남성병원 원장, 개성지방 감리사 역임, 평천지방 선교사
1941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귀국
1946 부인과 함께 다시 내한하여 송도선교부에서 활동
1950 6.25 사변을 전후로 귀국
1976.9.27. 사망

6. 가족사항부인: Florie P. Betts Anderson (1889-1963)아들: Leonard Porter Anderson (1925-2009)딸: Mary Anderson Hunter (1922-2005)


II. 선교사 소개: 앤더슨(안지선/ Anderson, Leonard Porter, 1888-1976)

1. 1920년대 전반, 남감리교의 유력한 교회들을 담임하며 부흥을 이끈 선교사
앤더슨(L.P. Anderson, 1888-1976) 선교사는 남감리교회의 대표적 선교지인 개성과 1903년 한국의 첫 부흥운동의 출발지였던 원산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그는 1920년대 전반에 걸쳐 남감리교회에 소속된 세 교회를 담임했는데 각 교회마다 한국교회사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교회들이었다.
첫째, 이천감리교회. 1923년에 앤더슨 선교사가 담임한 이천(伊川)감리교회는 개성북지방에 속한 곳으로 6.25 때 순교자를 많이 배출한 교회였다. 앤더슨 선교사의 담임 이후 1925년 담임한 전진규 목사님이 6.25 때 순교하셨고, 1931~1935년 담임한 신석구 목사님은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시기도 했는데 그분 역시 공산당에게 순교당하셨다. 1937년부터 담임한 백학신 목사님도 공산군에게 강제 납치되셨다. 이처럼 담임목사가 순교자의 길을 걸었던 신앙의 절개가 깊은 교회가 이천감리교회였는데, 앤더슨 선교사는 그 신앙의 계보에 걸맞게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될 때까지 선교활동을 했다. 해방된 다음엔 다시 한국에 와서 개성에서 사역할 만큼 수고를 아끼지 않다가 6.25를 전후로 선교를 마친다.
둘째, 개성중앙감리교회. 1923년에 앤더슨 선교사가 임두화 목사님과 함께 담임했던 개성중앙감리교회는 1899년 세워진 개성북부감리교회와 1901년 세워진 개성남부감리교회 다음으로 세워진 교회로서 처음에는 개성에서 가장 작은 교회였다. 그러나 1923년에 남감리교회 제6회 매년회(每年會)에서 개성지방 장로사(長老司) 윔스(C.M.Weems, 한국명: 위임세) 선교사는 중앙교회에 대해 이렇게 보고했다. “중앙예배당은 초에는 3교회 중 제일 적은 교회로 흥왕하였으며 더욱이 동부와 연합함으로 우하야 지금은 148명의 세례교인이 있고 또한 여자관이 신축건물로 더부러 확장됨에 따라 더욱이 강장하여졌으며 수년 내로 시내에서 유력한 교회가 될 희망이 있습니다. 중앙예배당이 준공되는 시에는 전 시내를 위한 유력한 기관이 되겠나이다.” 윔스 선교사가 보고하던 그 해 1923년 12월에 남감리교회가 사회선교기관으로서 야심차게 중앙회관과 중앙교회당을 겸한 건물로 3층 웅장한 석조건물을 준공했다. 그곳에서 1924년 9월 조선남감리회 제7회 매년회가 열렸다. 제일 적은 교회로 시작했지만 영적으로 흥왕했을 뿐만 아니라 윔스 선교사의 전망대로 실제로 중앙예배당의 준공과 함께 유력한 교회가 된 곳이 개성중앙감리교회였으며, 그 부흥의 중심에 앤더슨 선교사가 있었다.
셋째, 남천감리교회. 1923-24년 무렵, 앤더슨 선교사는 황해도 평산군에 위치한 남천감리교회를 김종만 목사님과 함께 담임했다. 평산군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875년 3월 26일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황해도에는 장로교회들이 많았지만 감리교회도 여럿 있었는데 남천감리교회가 그 중의 하나이다. 남천교회는 교회 유지를 위한 논과 밭, 잡종지를 모두 2만 평 넘게 갖고 있을 만큼 규모가 매우 큰 교회였다. 방도 열여섯 칸이나 되는 목조건물로서 목사주택과 전도부인 주택도 있었다. 1935년에 열린 제5회 중부연회에서 남천교회 담임목사 겸 평천지방 감리사인 이석원 목사님이 이와 같이 보고한다. “남천교회는 평천지방 안에서 제일 부흥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앤더슨 선교사는 순교자를 많이 배출한 ‘이천감리교회’,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엔 창성할 뿐만 아니라 남감리교회의 중심이 된 ‘개성중앙감리교회’, 그리고 황해도 평천 지방에서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장 부흥된 모습을 보여준 ‘남촌감리교회’를 담임하면서 1920년대 전반기 남감리교회 성장과 부흥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2. 1920년대 중반 이후, 감리교의 사회복음 중심의 신학적 변천을 보여주는 선교사
감리교는 1920년대 이후 복음전도에서 사회복음 중심으로 신학적으로 급격히 선회한다. 대표적으로 1923년에 앤더슨 선교사가 담임하던 개성중앙감리교회 그곳에 그해 12월 3층 석조건물로 웅장하게 사회선교기관인 중앙회관을 준공한 것이 좋은 예다. 남감리교회가 개성 한 가운데에 복음전도에서 소위 사회복음으로의 신학적 변천을 천명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그 뒤 남감리교는 영적 생명력을 점점 잃고 침체기로 접어든다. 사회복음으로 치우친 탓인지 앤더슨 선교사 다음으로 1924년에 개성중앙감리교회를 담임했던 정춘수 목사님은 3.1 독립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셨지만 뒤에는 변절해서 대표적인 친일인사가 되고 만다. 물론 정춘수 목사님 개인에 국한된 문제로 볼 수 있지만 남감리교회의 선교적 중심에 있던 인물의 변절은 감리교회의 사회복음적 신학 색채로의 변신의 영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앤더슨 선교사의 추후 선교사역을 볼 때도 감리교회의 신학적 변천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일단 1923년 이천교회, 개성중앙교회, 1923~24년 남천교회를 끝으로 더 이상 교회의 담임으로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1926~29년 원산 등지에서 선교하되 광명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1932년에는 중앙회관에서 근무하며, 1935년에는 남성병원에서 원장으로 섬긴다. 물론 얼마나 헌신적으로 섬겼는지 2006년 10월 21일 자 「로동신문」 5면에는 앤더슨 선교사에 대해서 이렇게 힐난했다. “선교사의 탈을 쓰고 개성 땅에 기여든 앤디슨(안지선)놈은 남성병원을 차려놓고 원장으로 있으면서 종교를 퍼뜨리였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병을 고치려면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기도실을 꾸려놓고 매일 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놈들은 입원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삼고 교활한 방법으로 극비밀리에 살해하고는 인민들의 눈이 무서워 사체실로부터 병원뒤산으로 빠지는 통로로 밤에만 시체를 내다 묻어버리였다.” 비록 지나친 욕설과 비난이 불쾌하긴 해도 그만큼 개성에서의 감리교회의 성장세가 대단했고, 그 중심에 앤더슨 선교사의 각별한 섬김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어디서든 헌신을 통해 신앙의 족적을 남겼던 앤더슨 선교사가 남감리교회의 유력한 세 교회들을 끝으로 더 이상 목회의 현장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이 아쉽다. 1920년대 전반기, 중요한 교회들을 담임으로 맡길 만큼 감리회 측에서 깊이 신뢰했던 앤더슨 선교사인데 1925년 이후로 광명학교나 중앙회관, 남성병원 등의 사회선교 중심의 사역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그때를 기점으로 감리교회의 사회복음 중심의 신학적 변천이 급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앤더슨 선교사는 1920년대 전반에는 남감리교회의 유력한 교회들을 담임하며 부흥을 이끈 선교사였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감리교의 사회복음 중심의 신학적 변천의 흐름 속에서 학교와 병원 및 기관 사역을 중심으로 섬김으로써 복음의 저변을 넓힌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그가 조선 땅에 남긴 마지막 이력은 1935-38년 평촌지방 선교사이다. 일제에게 추방당해 다시 돌아온 뒤에도 사회기관이 아닌 송도선교부에서 활동한다. 이는 그가 가장 인생의 보람을 느낀 사역은 학교 교장이나 병원 원장이 아닌, 역시 한 영혼을 복음으로 살리는 복음전도자로서의 선교 사역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2019-06-28 16:09:37
121.xxx.xxx.174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9720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9799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21155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30657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7567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4350
1916
  내한선교사 / 13 / Baird, Richard Hamilton(1898-1995)   강기백     2020-07-06   41
1915
  내한 선교사 / 62 /Cornelson, James J.(1930-2005) / Cornelson, Barbara A.(1931-?)   조아론     2020-07-06   51
1914
  내한선교사_26_Hanson Marjorie Lucy   3학년 2반 박병수     2020-07-06   44
1913
  내한선교사 / 34 / Brockman, Fletcher Slims   지훈박     2020-07-06   34
1912
  내한선교사_14_Judy Carl Wesley   조영대     2020-07-06   32
1911
  내한선교사/63/Watson Robert D.(1886-1935)   김은혁     2020-07-06   39
1910
  내한 선교사 / 54 / Clark, Kathleen M.(미상, UP, 1962-1964)   이혜성     2020-07-06   70
1909
  내한선교사_48_Stewart,Mary S   김태     2020-07-06   33
1908
  내한선교사/46/Campbell, Agnes Marion(1886-1930, AP)   윤슬기     2020-07-06   46
1907
  내한선교사 / 21 / Lampe, Henry Willard(미상, NP) / Lampe, Ruth Heydon   최동권     2020-07-06   40
1906
  내한선교사 / 39 / Bryant, Evans(1839~1918, BFBS)   손요한     2020-07-06   35
1905
  내한선교사 / 21 / Best Margaret(1867-1942, NP)   김영무     2020-07-06   36
1904
  내한선교사_3-1반_14_강기현   강기현     2020-07-06   60
1903
  내한선교사_3학년 3반_65_안정우   안정우     2020-07-06   46
1902
  내한선교사_02_Adams George J   위예찬     2020-07-05   78
1901
  한국교회사_내한선교사 moore, Elizabeth S. 조사(2018210131_하정훈) (pdf)   하정훈     2020-07-05   40
1900
  내한선교사 / 06 / Eversole. Finley Monwell(1879-1967, SP) / Eversole. Edna Earle Pratt   신재승     2020-07-05   42
1899
  내한선교사 3학년2반 김선미 / Gilmore.George William   maple     2020-07-05   43
1898
  내한선교사_3학년3반_김주영_Dorothy Fairlie Leggatt   데이브     2020-07-05   38
1897
  내한선교사_3학년 3반_36(Robbins Henrietta P)_구원모   구원모     2020-07-04   55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930 / 전체 : 15,421,400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