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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andler, Warren Akin(1857-1941, MS)
 작성자 : 안진실 양선웅  2019-06-28 23:01:30   조회: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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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아킨 캔들러(Candler, Warren Akin)


Ⅰ 기본사항

1. 이름: 워렌 아킨 캔들러, Candler, Warren Akin,
2. 생몰(生歿)년도: 1857. 8. 23 - 1941(84세)
3. 출생: 미국 조지아주 빌라리카
4. 소속: 미국 남감리교
5. 학력: 1875년 에모리대학 졸업
6. 연표
ⅰ. 1875년 에모리대학 졸업
ⅱ. 1886년 목사 안수
ⅲ. 1888년 에모리대학 학장 취임 후 10년간 봉직
- 학문적 기준을 높이고 커리큘럼을 다양화하며 “신학과”를 추가
ⅳ. 1886년, 1890년 총회 대의원, 1891년과 1911년 범세계감리회 총회 대의원
ⅴ. 1893년 윤치호와의 만남
ⅵ. 1898년 남감리교회 감독 임직
ⅶ. 1914-1921년까지 에모리대학 명예총창 봉직
ⅷ. 1906년 9. 17 경성에서 제10회 남감리교 선교회를 사회하기 위해 내한
ⅸ. 1941년 84세로 소천

7. 가족사항: Son of Samuel Charles Candler Martha, Bernetta Candler
Husband of Sarah Antoinette Candler
Father of John Curtwright Candler; Warren Akin Candler, Jr.; Emory Candler 외 Samuel Charles Candler
Brother of Milton Anthony Candler; Lt. Ezekiel Samuel Candler, CSA; Samuel Charles Candler; Noble Daniel Candler; Sarah Justiana Candler 외 5 명 더

8. 논저
ⅰ. Georgia's Educational Work: What It Has Been, What It Should Be (1893)
ⅱ. Christus Auctor: A Manual of Christian Evidences (1900)
ⅲ. High Living and High Lives (1901)
ⅳ. Wesley and his Work (1912)
ⅴ. Kingdom of God's Dear Son (1921)
ⅵ. Life of Thomas Coke (1923)
ⅶ. Current Comments on Timely Topics (1926)
ⅷ. Bishop Charles Betts Galloway: A Prince of Preachers and Christian Statesman (1927)
ⅸ. Christ and the Creed (1927)
ⅹ. Easter Meditations (1930)
ⅺ. Young J. Allen: The Man Who Seeded China (1931)


Ⅱ선교사 소개

워렌 캔들러는 남감리회의 감독과 에모리대학의 전신인 에모리 칼리지(Emory College)의 학장이자 나중 에모리대학교의 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직접 파송된 선교사로 볼 수는 없으나, 남감리회의 감독 시절 선교활동을 적극 추진하였으며,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고,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던 윤치호를 도와 개성에 한영학원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
캔들러의 자료들은 편지와 저술 외에도 재정 기록, 각종 업무 자료, 다이어리와 스크랩, 사진, 각종 잡기(雜記), 수집품 등이다. 편지들은 대부분 그가 거쳐 간 감리교단의 여러 직위와 관련된 것들이며, 에모리대학교, 쿠바와 멕시코 및 아시아 선교, 여성과 흑인 인권, 반(反)린치 운동, 여성 참정권, 금주법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총 9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지 묶음만도 약 800개에 각종 저술이 600여 편에 달하는 매우 방대한 분량이다.
일선 선교사들과 달리 교단의 지도자이자 대학의 수장으로서 캔들러의 위치와, 또 한국의 대표적인 초기 서구적 개화지식인으로서 관계, 학계, 종교계 및 시민사회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통한 서구적 근대화 논리를 고수하던 문제적 인물 윤치호와의 깊은 관련성만으로도 이 자료 역시 한국 근대사 연구를 위해 또 다른 차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겠다.


1. 생애
8월 23일 조지아주 빌라 라카에서 아버지 사무엘 찰스(Samuel Charles)와 어머지 마르다 캔들러(Martha Candler) 부부의 아들로 출생한 후 1875년 에모리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에 북조지아연회에 허입하고 1886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내슈빌 크리스천회보 부편집인을 지낸 후 1888년 에모리대학 학장에 취임하여 감독으로 선출될 때까지 10년간 봉직하였다. 1886년과 1890년 총회에 참석한 대의원이었고 1891년과 1911년 범세계감리회 총회에도 파송된 대의원이었다. 1914년 에모리대학교가 애틀랜타로 이사하자 그는 명예총장에 취임하여 1921년까지 봉직하였다.

1888년부터 1898년까지 에모리 대학(Emory College)의 총장이었던 워렌 아킨 캔들러 (Warren Akin Candler)는 대학을 부채 없는 상태로 만들고 신축 건물에 돈을 모으고 학자금 기금과 기부금에 자신의 부를 공헌하도록 부지런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모교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유산은 운동에 대한 그의 태도다. 캔들러는 교내 스포츠를 통해 "모든 운동 경기"를 홍보하는 도박 및 기타 관중 "악"때문에 대학 간 스포츠를 금지했습니다. 1898 년 캔들러는 감리교 성공회 (MECS)에서 감독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감독으로서 그는 Emory College가 신학, 법률 및 의학 학교가 있는 대학으로 확장되는 것을 감독 한 MECS위원회의 일원이었습니다.
2. 미국 남감리회의 한국선교 결정 과정
미국 남감리회 해외선교부에서 1926년에 출판한 『미국남감리회 선교역사』는 한국 선교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남감리회가 한국에 관심을 갖고 접촉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충국 선교회가 한국에 접근한 것이고, 둘째는 윤치호를 통해 미국에서 남감리회 지도자들이 한국과 접촉하게 된 것이다.”

남감리회의 한국 선교는 1)중국 선교의 연장선상에서, 2)윤치호의 선교 요청에 대한 응답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것이 한국 선교에 관한 미국 남감리회의 ‘공식적인’(official) 진술인 셈이다.

1) 윤치호와 남감리회 한국선교
미국 남감리교회에서 한국에 선교함에는 윤치호의 공이 크다. 윤치호는 고종 황제 아래서 판서(장관급)을 지낸 윤웅렬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일본에서 영어를 배운 후 주한 미국 초대공사 푸트(L.H.Foote)의 통역관으로 정계에 진출하였고, 맥클레이가 내한하여 고종 황제로부터 선교 윤허를 얻을 때에도 통역으로 미 감리교의 한국선교에 협력한 분이다.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의 실패로 김옥균, 박영호,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당 인사들이 망명하게 되자 김옥균을 따르던 윤치호도 상해로 망명, 남감리교 선교회에서 경영하는 중서대학(中西大學;Anglo-Chiness College)에서 공부하던 중 1887년 4월 3일 본넬 목사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한국인으로는 첫 남감리교인이 되었다.

윤치호는 1888년 10월 중서대학을 졸업하는 길로 도미하여 밴더빌드대학과 에모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893년 상해로 귀환하여 중서대학에서 교수로 있었고, 1895년 2월 14일에 고국을 떠난 지 10년만에 귀국하였다. 캔들러는 감독이기 이전, 윤치호가 공부하는 에모리대학 총장이었다. 윤치호가 1893년 에모리대학을 마치고 학교를 떠날 무렵 고학생활을 하며 근근이 모아두었던 돈 200달러를 캔들러에게 기탁하였다. 윤치호는 정치적 망명을 한 몸이기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1893년 11월 모교인 상해 중서대학으로 가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894년 새해 갑오 동학 혁명이 청일전쟁으로 확대되어 일본이 승리하게 되자 청국을 배경으로 하던 정권이 무너지고 친일정권이 조직되자 윤치호는 조국을 떠난지 10년 만인 1895년 2월 그리던 조국의 품 안에 돌아왔다. 1895년 4월 청일간의 조약이 체결되자 잠시나마 한국은 청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다. 윤치호는 귀국하자 곧 갠들러총장과 중서대학장(Allen,Y.J.)에게 하루빨리 한국선교에 착수하도록 간청하였다.

“여기에 200달러의 금액을 학장님에게 기탁합니다. 이것으로 조선에 기독교학교 설립할 기금으로 삼아 주십시오. 제가 상해로 가서 먼저 귀국하게 되면 이 기금으로 선교학교를 세우겠고 제가 귀국하기 전에 교회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이 기금을 교육 목적에 임의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1893년 3월 11일 윤치호는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떠나기 전 에모리대학의 캔들러 학장 앞으로 한 장의 편지와 함께 돈이 든 봉투를 전하였다. 갑신정변 이후 몸을 피해 중국과 미국으로 망명하였던 윤치호에게 조국의 희망은 곧 새로운 인재의 양성이었다. 그 인재는 그리고 복음을 기반으로 교육하는 학교를 통해 배출될 것이었다. 이 돈은 미국 남감리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모갯돈이 되었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본넬 교수는 윤치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이 젊은 청년은 다윗처럼 고상한 독립정신을 타고났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돈을 마련하고 쓸 수 있었음에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방학 때면 학비를 벌기 위해 여러 주를 순회하며 강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도 그의 재능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조지아를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여윳돈 200달러가 있어 그것을 캔들러 박사에게 주면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길이 열려 조선 선교를 하게 될 때 그 모갯돈으로 써 달라 하였습니다.”
1896년에 시작된 미국 남감리회의 한국 선교에는 개화파 인사였고 중국의 중서학원(中西學院)을 거쳐 미국의 밴더빌트와 에모리대학에서 수학한 윤치호(尹致昊)의 공헌이 크다. 그는 미국 재학 시절 한국 선교를 호소했고 귀국에 앞서 에모리대학의 캔들러(W.A.Candler) 총장에게 한국 선교를 위하여 200달러를 기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귀국 후에도 남감리회의 선교를 요청하였다. 그 결과 1895년 10월 중국에서 내한하여 선교 상황을 점검한 바 있는 리드(C. F. Reid, 李德)가 그 이듬해 한국 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1898년 남감리교회에서 감독이 된 캔들러 박사가 1906년 9월 내한하여 조선남감리교회 제10회 선교회를 주재하면서 개성에 윤치호가 원하던 선교학교를 세우기로 결의한 후 그해 10월 3일 학생 14명을 비롯하여 개성 유지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개교예배를 드렸다. 학교 이름은 한영서원이라 했다. 한영서원의 설립기금은 윤치호가 캔들러 학장에게 기탁했던 200달러를 비롯하여 윤치호 선친이 기부한 정동 토지대금 1,000원과 윤치호 부자가 별도로 마련한 1,000원 등 3,000원으로 개교했다. 당시 캔들러 감독은 윤치호의 선친 윤웅렬 장군을 방문하여 학교가 발전하도록 후원하여 줄 것을 부탁한 바도 있다. 한영서원은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을 얻어 소학 과정과 중학 과정, 그리고 중학 과정 졸업생이 들어가 공부하는 영어과가 있었다. 영어과의 목적은 당장 국내 중등학교의 영어교사를 양성하자는 것이었고, 성적이 좋은 학생은 외국 유학을 보내 국가와 사회 차원의 일꾼을 양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차 한영서원에 대학부를 설치할 목적에서 그 예과격으로 두었던 것이다.

2) 3.1 운동 이전 한국 내한
1906년 한국을 방문하였던 에모리대학의 총장 캔들러의 글은 당시 한국 사람들의 나라 잃은 박탈감을 잘 보여준다.

“여러분은 마음이 깨진, 심통(心統)의 나라를 본 일이 있습니까? 보지 못하였다면 한국을 보지 못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한국을 보기 전까지는 온 겨레가 온통 그 뿌리에서부터 좌절한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한국은 이제 땅 위의 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안팎에서 완전히 절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며 지금 한국은 온 겨레가 뿌리에서부터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06-28 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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