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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Deming, Charles Scott(1876-1938, MS) / Deming, C. S.(미상, MS)
 작성자 : 엄익천  2019-06-29 14:05:55   조회: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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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ng, Charles Scott (1876-1938): SM/Seoul, Haeju, Harbin/1902-1937

I. 기본사항
1. Deming, Charles Scott (데밍 / 미국 / MS)
1)생년월일: 1876.11.17.-1938.3.15.

2)출신 및 소속: 미국 일리노이주 출생 / 남감리교 선교사

3)한국선교기간: 1905.3.13 – 1937.12.14

4)학력: 뉴욕대학교, 드루 신학대학원 졸업

5)연표
1876.11.17. 미국 일리노이 주 출생
1902 드루신학 대학원 졸업, 뉴욕연회에서 목사안수 후 뉴욕에서 목회활동
1905.9.13.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인천에서 이학 공부 서울지방과 해주지방 감리사로 시무
1907 평양대부흥운동 강사활동
1911.6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결혼
1911.9 재내한, 감리 교협성신학교에서 15년간 조직신학 교수 역임, 피어선경학원장,
연희전문학교 강사 겸임
1921 조선야소교서회 발행<그리스도교 도리와 경험>
1927-29 벙커 목사에 이어 조선예수교서회 총무로 시무
1929 만주선교사로 자원, 하얼빈에서 8년간 감리사로 복음전도, 주일학교운동
1933 <인류학>에 대해 저술
1937.12.14. 안식년으로 귀국
1938.3.15. 폐렴 악화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망

6)가족사항: Deming. C. S (부인)


II. 선교사 소개

1.한국에서의 사역
남감리회 선교사. 한국명 도이명(都伊明)

강화도에 위치한 기독교 대한감리회 ‘강화중앙교회’는 본인의 모친께서 다니고 계시는 교회이다. 강화도가 다른 지역보다 복음이 빨리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근접했으며 서해안에 위치한 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한국교회사 과제로 조사해야하는 선교사가 ‘도이명(deming)’이라는 사실을 듣고 적잖게 놀라게 되었다.
강화에서는 특별히 데밍 선교사의 보고서에서 ‘피의 세례’라고 칭한 일들이 있다. 강화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일어났으며, 복음을 전하며 일본 편에 서기를 거부한 이들이 여럿 순국하였다. 조선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일진회’에 대한 악행을 심판하여 강화 일진회를 해산하고, 지도자 두 사람을 종신형 처분했다고 데밍(C.S. Deming)이 보고서에 썼다.

도이명(Charles S. Deming)은 1876년 11월 17일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자라서 뉴욕대학교와 드루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02년부터 뉴욕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 했다. 그 후 데밍은 1905년 9월 13일 미남감리회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인천에 거주하여 한국어를 공부하며 서울지방과 해주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1907년 계속 된 장로교와 감리교의 대규모 사경회에서 이전의 성령의 역사가 반복되면서 평양은 전국적인 부흥의 근원지가 되었고, 성령의 역사는 감리교 선교사들과 사경회에서도 재현 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섬겼던 선교사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1907년 영적 각성 운동 당시 스크랜튼, 존스, 노병선과 함께 강사생활을 했다.
당시 숭실학교와 평양대 부흥운동을 감리교의 사경회와 부흥회에서 큰 공헌을 했던 무어와 노블 선교사와 함께 웨슬리안 선교사의 이름에 올린 그가 바로 데밍(c.s.deming)이다. 감리교인 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의 복음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하지고 살아갔다. 교파의식과 함께 복음주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초기 미 감리회와 남감리회 선교사로 한국교회 선교를 주도했던 자들의 이름에 아펜젤러, 노블, 무디, 와그너,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 하디와 함께 ‘데밍’이라는 이름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조선의 선교사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그다지 다양하지 않은 내용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상동, 인천, 강화, 강원도 할 것 없이 중부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한국의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상동감리교회 김진호 목사를 권사로 임명할 만큼 상동감리교회와 연이 있는 듯하다. 그는 서울과 인천 강원도 할 것 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며 한국교회를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이렇게 많은 선교사들이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도우신 결과 기독교는 점차 한국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데밍 선교사가 보고하는 바른 아래와 같아.

“나라 사랑 하는 종교, 민족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종교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초기 사경회 공부는 성경 외우기로 시작했는데, 많은 선교사들이 지금도 놀라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는 성경을 암송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선교역사상 찬사를 받고 있다. 데밍 선교사는

“한국인들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서 공부와 관련하여 다음 세 사람에 대한 보고가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개성에 맹인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들이 그의 눈이 되어 복음서 전체를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서 전체를 순서대로 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무 장, 아무 절이나 물으면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속장(구역장)인데 그는 말씀 공부에 전념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매서인(賣書人)인데 성경에 통달하여 성경의 어느 구절을 읽든 그 장과 절까지 정확히 집어낼 수 있습니다. 미국 교인들 가운데 이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서양생활에서는 이곳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명상과 침묵으로 성경을 배우는 깊은 맛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만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성경을 외우는 것에 힘을 썼으며, 선교사들이 도전을 받았는지 놀랄 일이었다.

도이명은 1911년 6월 안식년에 귀국해서 결혼했다. 그리고 1919년에 데밍(c.s.deming)은 감리교 협성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이는 교장인 하디가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고자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와 피어선성경학교 강사를 역임하였다. 1927~29년에는 벙커 목사에 이어 조선예수교서회 총무로 일했다.

도이명은 1938년 뉴욕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였기에 당연히 양화진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조선의 선교사들의 명단을 찾아봐도 ‘도이명’이라는 이름의 선교사를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10권이 넘는 책을 찾아보아도 도이명이라는 이름은 찾기 힘들었다. 평양대부흥운동(저자 박용규)에서야 겨우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이유가 그가 감리교 선교사라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 거리기는 했지만 무디나, 아펜젤러와 같은 유명한 선교사들이 감리교에서 나왔고 유명인사들이 되었다는 것을 보면 그가 많이 알려지지 않을 것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다.

부흥 운동이 있고나서 감리교가 발전하였고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협성신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존스 이후 5대 도이명(C.S. Deming)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저명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협성신학교는 감리교를 대표하는 신학교이다. 장로교로 따지면 평양신학교에 버금가는 학교가 감리교 협성신학교였다. 평양신학교와 많은 교류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보면 의아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마냥 그는 3.1 운동당시의 내용을 찾아보면 도이명은 친일파 해리스 감독에게 “감독의 행함과 믿음은 과연 사도 요한과 같다.”고 예찬했는데, 서구화를 원했던 그의 정치적인 성향이 아니었겠는가 생각이 된다. 이것은 한국 감리교회의 경우 한국 선교를 감독하는 해리스 감독이 노골적으로 친일 노선을 취하고 있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이명(deming)의 저작활동은 활발하게 일어났다. 1921년에는 조선야소교서회 발행으로 <그리스도교 도리와 경험>이라는 책을 썼다. 또한 1933년 인류학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기독교 신앙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도 깊은 관심과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서 주석가였던 로스는 번역 못지않게 주석에 대해서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인데, 22년부터 데밍을 포함한 클라크와 밀러가 번역하여 조선야소교회가 출간한 신구약 주석서들도 바로 한문 주석 시리즈를 번역한 것인데, 한국교회는 해방 이전에 중국 선교대회 주석서들을 읽었고, 그중에 로스의 주석서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선교사와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참고사진6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요한웨슬리의 서적을 출판하며 문학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지식을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다니는 것이 모범임을 말한다. 복음을 전하며 교회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이후 그는 1929년 만주선교사를 지원했고, 북 감리교에서는 1930년 미국 선교사 도이명을 하얼빈시에 이주시켜 만주선교 사업을 하게 했다. 만주 선교사로 자원하여 하얼빈의 북만주지방 감리사로 8년 동안 전도와 주일학교운동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특이한 점은 그는 주한선교사연합회에서 연보를 하여 얻은 돈 중에서 일부를 동포들에게 농토를 마련해주어 일하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37년 12월 14일 안식년으로 귀국했다가 폐렴이 악화되어 1938년 3월 1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별세했다. 33년간 한국과 만주에서 선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9-06-29 14: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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