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Edwards, Laura E.(1886-?, MS)
 작성자 : 신승우, 정현  2019-06-30 13:08:11   조회: 576   
 첨부 : 기말보고서_3-3_071__정현_신승우.pdf (346177 Byte) 
 첨부 : 기말보고서_3-3_071__정현_신승우.hwp (1221120 Byte) 
에드워즈 로라 선교사 / Edwards, Laura E. (1886-?, MS)

I. 기본사항

1. 이름: Edwards, Laura E. / 에드워즈 로라 / 한국명: 애도시(愛道是)
2. 생몰연도: 1886-? 미국 텍사스주 맥그리골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남감리교회 여선교사
4. 한국선교기간: 1909.-1940.
5. 연표1909 남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춘천지방 여성사업 책임자로 임명, 춘천여자관 창립
1920 서울 배화학당 교장
1922 안식년 귀국
1923. 09 목사안수 받은 후 태화관 관장에 취임
춘천, 창동 및 경성 북지방 교회 목사 역임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귀국
1946 은퇴
6. 가족사항


II. 선교사 소개: 에드워즈 로라 선교사 / Edwards, Laura E. (1886-?, MS)

1. 여성 선교 발전의 증인, 열정의 에드워즈 로라

에드워즈는 1907년 캔자스시에 있는 스케릿성경학교에 입학했고, 1909년 이를 졸업함으로써 그녀의 선교사로서의 지반을 확고히 하였다.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 대백과 사전 11권』, (서울: 기독교문사, 1984), 170.
같은 해 9월, 미국 남감리회선교사로 파송받아 내한한 그녀는 1910년 9월 제14회 여선교회가 개최되었을 때, 춘천지방에 여선교사를 파송하여 여성사업을 전개하자는 안건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 당시 남감리회 선교부는 춘천지방의 여성 선교사업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춘천지방의 여선교사 파송을 중단하고자 하는 움직임 가운데에서도 에드워즈의 헌신적인 노력은 춘천 선교를 지탱하게 만들었고, 여성 선교가 발전하게 되는 기초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즈는 서울·송도·원산·춘천 등지의 지역선교사업 및 교육사업을 겸임하였는데, 특히 송도와 춘천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 대백과 사전 11권』, 170.
자료를 통해 마주하는 그녀의 열정이 필자에게 이토록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의지와 열심은 마치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 같다. 에드워즈에게 그토록 사명에 불붙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떠한 상황에도 그녀의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2. 춘천여자관 창립부터 배화학당 교장으로 취임하기까지

에드워즈는 춘천지방의 여성전도사업을 전개 시킨 결과로 춘천여자관을 창립하였고 1914년 7월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1년 동안 스카릿전문학교에서 수학한 후 1916년 귀환하였다.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 대백과 사전 11권』, 170.
에드워즈는 1918년에 개성읍내 세 교회엔 이미 여선교회가 조직되었음을 보고하고 있으며, 개성 지방내 거의 모든 교회들에서도 여선교회를 조직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에드워즈는 또한 1918년 보고에서 봄에 개성지방 여선교회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전도부인 두 명을 개성지방 불신자 마을에 보내 전도케 하기로 결정”하였음도 보고하였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1991), 197.
이로 미루어 개성지방 여선교회도 1918년 어간에는 이미 지방 조직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1920년 서울 배화학당 교장으로 취임했다.

3. 여성 최초의 목사

에드워즈는 1922년 7월 다시 안식년을 보냈다. 그리고 1923년 9월, 다시 귀임해서는 춘천 및 서울 등지에서 사회선교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1931년 목사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동부연회에 정회원으로 허입되었다.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 대백과 사전 11권』, 170.
한국 감리교회에 있어 여목사 안수문제는 큰 의의를 가지는 연회 행사였다. 첫째, 미국교회도 없는 여목사제도는 한국교회에서 처음 실시된다는 점, 둘째, 피선교국의 총리사로서 선교사에게 안수하여 목사로 세운다는 것이 선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윤춘병, 『한국감리교 교회성장사』,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97), 602.


이들은 한국에 와서 10~30년씩 수고한 노련한 여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본국(미국) 감리교회 연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1931년 한국에 연회가 창설되고 그 연회에서 안수를 받으므로 한국 교회에 소속되었다. 이들은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바로 연회에 정회원으로 입회하였으니 남성 목사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목회와 교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39.
실제로 미국 남감리회 전권위원으로 내한한 하웰(Miss Mabal K. Hawell)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남자와 동등으로 교역의 특권만 더할 것이 아니라 평신도로서도 남녀의 차별이 없게 하기를 원하였다. 실로 여러분으로 말하면 우리 본국 여자들도 아직까지 받지 못한 특권을 이제 받게 된 것이다. 미국감리교회에서 여자에게…… 평신도로서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가 되는 특권은 아직까지 얻지 못하였다. 얼마 전 미국 남감리회에서 여자들이 간신히 평신도 총대권을 얻기는 하였으나 목사들의 반대로 실패에 돌아갔다. 그런고로 조선 감리교회의 부녀들은 세계 감리교 부녀 중에서 가장 먼저 이 두 가지의 특권을 얻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윤춘병, 『한국감리교 교회성장사』,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97), 603.

이처럼 한국 감리교의 민주정신과 토착화 열의는 세계 어느 곳보다 진보적이었던 것이다.
4. 기독교 여성운동의 요람 태화관에서

태화여자관 설립의 배경에는 미감리회·남감리회·북장로회의 세 교회 연합부인사경회가 있었다. 3백 명이 넘는 세 교회 여성들이 함께 집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셈이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11.
그 뿐 아니라 이곳은 기독교 여성운동의 요람이 되었고, 일반 사회의 여성운동 거점이 되었다.
이렇듯 태화여자관은 세 선교부 교회 여성들의 연합운동체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지 구입 및 시설 마련에는 남감리회 이외의 다른 교회 선교부가 참여하지 못함에 따라 개관에 이은 초기 활동은 남감리회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921년 4월에 개관되면서 태화여자관 사업과 운영은 남감리회에서 맡게 되었고 미감리회와 북장로회에서는 인적 자원만 보충하는 형태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1923년 초에 미감리회에서 기본금의 일차분을 지불하고 매년 경상비 일부 부담을 하게 되면서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감리회에서 그로브(N. L. Grove)를 파견해 태화여자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1923년) 북장로회에서도 하트니스(M. E. Hartness)를 전문 사역자로 파송하였다. 그러나 북장로회에서는 그해 9월에 협동을 철회하고 하트니스를 소환했다가 1924년 가을에 다시 협동을 결의하고 킨슬러(M. Kinsler)를 파송하여 사업에 동참했다. 1925년에 이르러 미감리회에서 기본금 할당액을 완납하였고, 북장로회에서 매년 경상비를 부담하게 됨에 따라 세 선교부 공동 운영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11.

그러나 경제적 부담이나 인원 구성에서 남감리회 몫이 다른 두 선교부보다 컸으며 관장은 남감리회에서 맡아보았다. 즉 초대 관장 마이어스가 1923년 춘천으로 파송되어 감에 에드워즈(L.Edwards)가 2대 관장이 되었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11.


5. 남·북 감리교 여선교회 활동

남·북 감리교 합동이 기정 사실화된 1930년 9월에 제 7회 미감리회 내외국여선교회 총회가 정동교회에서 열렸을 때 대표들은 “남·북 감리교가 연합함에 따라 본 선교회도 남감리 선교회와 피차 타협적 양해를 얻어서 본 회와 합하게 하기로 가결하고 교섭할 위원을 택할 새 본 회 실행위원에게 위임”하기로 결의함으로 합동운동을 본격화시켰다.
그 무렵 남감리회 여선교회 대회에서도 교섭위원을 내두 여선교회 합동을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 남감리회에서는 쿠퍼, 장귀련, 양매륜, 미감리회에서는 최활란, 홍에스더가 합동 실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38.


그러나 두 여선교회의 합동은 감리교 합동이 이루어진 후로 미루어졌다. 대신 1930년 12월의 기독교조선감리회 총회 때 두 여선교회 대표들도 총대로 참석해서 총회 창립에 일조하였다. 총회에 참석한 여선교회 대표들은 다음과 같았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38.


전체 총회 대표가 130명이었으니 여성대표가 24명으로 20%에 못 미치는 여성 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만한 숫자라도 여성 참여율을 보였다는 것은 한국 감리교회 안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아졌음을 반증하는 예다. 아직도 국내 유수한 장로교 총회에 여성들이 총대로 참석치 못하고 있는 점에 비한다면 감리교 여성들의 교회 정치 참여는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이덕주, 『한국 감리교선교회의 역사 1897-1990』, 339.
2019-06-30 13:08:11
121.xxx.xxx.174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8494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8568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19929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29434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6346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1346
1931
  내한선교사_26_Hanson Marjorie Lucy   3학년 2반 박병수     2020-07-06   31
1930
  내한선교사 / 34 / Brockman, Fletcher Slims   지훈박     2020-07-06   22
1929
  내한선교사_14_Judy Carl Wesley   조영대     2020-07-06   20
1928
  내한선교사/63/Watson Robert D.(1886-1935)   김은혁     2020-07-06   26
1927
  내한 선교사 / 54 / Clark, Kathleen M.(미상, UP, 1962-1964)   이혜성     2020-07-06   58
1926
  내한선교사_48_Stewart,Mary S   김태     2020-07-06   21
1925
  내한선교사/46/Campbell, Agnes Marion(1886-1930, AP)   윤슬기     2020-07-06   33
1924
  내한선교사 / 21 / Lampe, Henry Willard(미상, NP) / Lampe, Ruth Heydon   최동권     2020-07-06   26
1923
  내한선교사 / 39 / Bryant, Evans(1839~1918, BFBS)   손요한     2020-07-06   24
1922
  내한선교사 / 21 / Best Margaret(1867-1942, NP)   김영무     2020-07-06   25
1921
  내한선교사_3-1반_14_강기현   강기현     2020-07-06   46
1920
  내한선교사_3학년 3반_65_안정우   안정우     2020-07-06   29
1919
  내한선교사_02_Adams George J   위예찬     2020-07-05   60
1918
  한국교회사_내한선교사 moore, Elizabeth S. 조사(2018210131_하정훈) (pdf)   하정훈     2020-07-05   26
1917
  내한선교사 / 06 / Eversole. Finley Monwell(1879-1967, SP) / Eversole. Edna Earle Pratt   신재승     2020-07-05   27
1916
  내한선교사 3학년2반 김선미 / Gilmore.George William   maple     2020-07-05   28
1915
  내한선교사 알프레드 어빙 선교사 3학년 2반 2018210124 정하영   정하영     2020-07-05   23
1914
  내한선교사_3학년3반_김주영_Dorothy Fairlie Leggatt   데이브     2020-07-05   23
1913
  내한선교사_3학년 3반_36(Robbins Henrietta P)_구원모   구원모     2020-07-04   39
1912
  내한선교사_3-3_11_김병균   김병균     2020-07-04   29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238 / 전체 : 15,412,34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