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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ethell, Ernest Thomas(1872-1909, 영국)
 작성자 : 김흥준, 서상민  2019-07-01 01:25:53   조회: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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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Bethell, Ernest Thomas/토마스 E. 베델 /한국명: 배설(裴設)
2. 생물연도: 1872. 11. 03(영국) ~ 1909. 05.01(한국, 서대문)
3. 출신 및 소속: 영국, (잉글랜드 성공회교도)
4. 한국선교기간: 1904 ~ 1909
5. 연표
1872. 11. 03 영국 항구도시 브리스틀 출생 3남2녀중 장남
브리스톨의 명문 머천트벤처러스 스쿨 졸업
1888년 (16세) ~ 1904년 (32세) 까지 16년간 일본에서 무역상활동
1889년 일본에서 베델 브라더스 부역상 건립
1890년 마리 모드 게일과 (Mary Maude Gale, 1873. 11. 08 ~ 1965. 07. 02)년 고베에서 결혼
1904년 러일전쟁 발발 때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으로 내한.
1904년 고종황제 베델에게 성명 “배설(裴設)”부여, 편의제공
1904. 07. 18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 창간
1905년 코리아 데일리 뉴스 국한문판 발행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주의 운동가들과 일본제국비판 전개
1908년 일본인 배척 선동혐의로 영국 상하이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 상하이에서 3주 구금
1909. 05. 01 심장비대증으로 인한 사망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
1995년 영국대사관 한국프레스센터와 공동 “베델언론인장학금” 제정
6. 가족사항
부모: 토마스 핸콕 베델(Thomas Hancock Bethell), 마서 제인 홀름(Martha Jane Hollom)
부인, 자녀: 마리 모드 게일(Mary Maude Gale)

Ⅱ. 선교사 소개: 토마스 E. 베델(Bethell, Ernest Thomas, 1872 ~ 1909)

1. 무역상에서 언론인까지
베델은 1872년 11월 3일 영국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베델의 할아버지 토마스 베델은 브리스톨 근처 클리브던에서 바지선을 운행하던 사람이었다. 바지선을 소유할 정도라면 중류 정도의 생활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베델의 아버지 토마스 핸콕(Thomas Hancock Bethell)은 20살이었던 1870년 마서 제인 홀름(Martha Jane Hollom)과 결혼하였다. 제인 홀름의 아버지, 곧 베델의 외할아버지인 존 홀름은 영국 성공회의 전도사였다. 베델은 토마스 핸콕의 네 자녀 중 장남이었다. 베델의 아버지 토마스 핸콕은 188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니콜이라는 사람과 함께 고베시 42번지에 니콜 앤드 컴퍼니라는 소규모 무역상을 차렸다. 베델은 브리스톨의 명문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을 졸업한 후 1888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때 나이는 17살이었다. 베델 형제 세 명은 새로운 무역상을 설립해서 아버지 토마스 핸콕의 영업을 이어받았다. 베델의 무역상은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영국 물품을 일본으로 들여오고 일본의 골동품 등을 영국에 수출하는 업종이었다. 1899년 베델은 두 동생들과 베델 브라더스를 설립하였다. 이 무역상 설립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던지 이 해 영국에 한 번 다녀왔는데, 그때 26살이던 마리 모드 게일(Mary Maude Gale, 1873. 11. 8. ~ 1965. 7. 2.)을 만나 이듬해 고베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베델은 1888년부터 1904년 2월까지, 15년간 고베에서 살았다. 베델은 천성이 외향적이고 활발하였다. 운동을 좋아했고, 체스도 잘 두었다. 술과 담배를 즐겼고 음악에도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베델은 일본에서 한때 돈을 벌었지만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베델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날은 1904년 3월 10일이었다. 러일전쟁이 터진 지 한 달 뒤에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별통신원에 임명되었다.

2.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은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신문을 발행하였다. 창간에 앞서 1904년 6월 29일에는 견본판 신문을 먼저 만들었고, 정식 창간한 날은 20일 뒤인 7월 18일이었다. 창간 당시에는 하루에 6면 발행으로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 4페이지와 한글판 <대한매일신보> 2페이지로 영문판 위주의 2개 국어 신문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두 언어 신문을 분리하여 국한문판 신문과 영문판 두 개의 신문을 발행하였고, 1907년 5월에는 한글 전용 신문을 새로 창간하여 3개의 신문으로 확대하면서 장차 한ㆍ영ㆍ일 세 나라의 외교관계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 신문이 한일 양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여 일본의 한국침략에 큰 장애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3.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영국언론인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이 전국적인 규모의 반일 민족운동으로 확대되던 무렵인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되었다. 창간 4일 만인 7월 22일자에는 외부협판 윤치호가 쓴 「황무지 개간 계획」이라는 글을 독자투고란에 게재하여 일본의 부당한 요구를 비판하였다.

<대한매일신보>의 반일 논조는 날이 갈수록 더욱 날카롭고 강도를 더해갔다. 1905년 11월 27일에는 순한문과 영문 호외를 발행하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였다. 호외는 한쪽 면에 「한일신조약 청체전말(韓日新條約請締顚末)」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다른 한 면은 영문으로 「시일야방성대곡」을 번역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전말을 실었다.

4. 일본의 방해와 공격
일본은 베델과 그의 신문을 근본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구하였다. 통감부는 <대한매일신보>에 더욱 강력한 탄압을 가하는 한편으로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를 무력화하고 마침내는 폐간시키려는 작전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통감부는 영국 측에 여러 차례 끈질기고 강력한 태도로 베델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베델과 그의 신문은 한국 침략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베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의 반일 감정은 더욱 고조될 것이었다. 의병들의 무장투쟁도 이 신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영국은 일본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할지 한동안 망설이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친 끝에 마침내 베델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베델은 두 차례나 재판에 회부되었다. 첫 번째 재판은 1907년 10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열렸다. 주한 영국 공사가 재판을 담당한 영사재판이었다. 일종의 약식재판이었다. 두 번째는 상하이주재 영국 검사와 판사가 서울에 와서 1908년 6월 15일부터 19일까지 4일 동안 서울 덕수궁 옆 현재의 영국 대사관 자리에 있던 영국 총영사관에서 벌인 정식 재판이었다.

5. 한국의 독립운동가 베델
베델은 1909년 5월 1일 37살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의학적인 사인은 심장확장이었으나, 그 전 해에 있었던 자신에 대한 재판과 상하이에서의 금고형, 양기탁 재판 때의 국채보상의연금 문제로 조사받은 일 등의 긴장이 겹쳐 건강을 크게 해친 것이 복합적인 원인이었다. 베델의 죽음에 대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애도하였다. 베델은 한국인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짧지만 정의로웠던 베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베델이 죽은 지 1년 뒤인 1910년 6월, 비석이 완성되었다. 앞면에는 한자로 ‘대한매일신보 사장 대영국인 베델의 묘’라 쓰고 뒷면은 당대의 논객 장지연이 지은 비문을 새긴 한국식 비석이었다, 베델은 죽은 후에도 일제의 미움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일제는 이미 새겨진 비문을 깎아 없애는 옹졸한 짓을 저질렀다. 편집인협회가 전국 언론인들이 성금을 모아 작은 비석 하나를 더 세운 때는 1964년 4월 ‘신문의 날’이었다. 서예가 김응현의 글씨를 받아 깎인 비문을 복원하였다.

그의 마지막 “유언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

그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대한독립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도 대한독립의 염원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1968년에 우리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그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해외 독립유공자로는 처음으로 국가유공자 명패를 손녀인 수잔 선생의 자택에 달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의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 그의 희생에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할 것이다.
2019-07-01 01: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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