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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ooper, Sallie Kate(1886-1987, MS)
 작성자 : 최준혁, 한진우  2019-07-01 01:43:55   조회: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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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사항
1) 이름: Cooper, miss Sallie Kate 또는 Cooper, Sally Kate
케이트 / 한국명: 거포계(巨布計)
2) 생몰연도: 1886.6.25.-1978.8.18.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남감리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4) 한국선교기간: 1908.9.17.-1957.4.13
5) 연표
1886.6.25. 미국 조지아주 더글라스빌, 판사 출신 헨리 토마스 쿠퍼의 3남 4녀로 차녀 출생
1899.3. 더글라스빌 전문대학 졸업
1903.6. 조지아주 메이콘 웨슬리안대학 졸업 및 컬로덴 초등학교 교사 근무
1905. 애쉬번 초등학교 전근 및 갠자스 시 스칼렛대학 여자신학교 입학
1908.3. 스칼렛 신학교 졸업
1908.6. 뉴 오르레안 남감리교 해외여선교부 한국선교사 임명
1908.9.17. 샌프란시스코항 출발
1908.10.6 일본 고베도착
1908.10.22 나가사키 출발 부산도착 후 원산 이동
1909. 보혜성경학교 시작
1919. 3.1운동 참가
1931.6.14. 제1회 중부・동부・서부 연합연회에서 목사안수 받음
1932. 원산거주, 만주선교연회 동만 지방 간도여자 사업인수, 동만성경학원 성경교수 사역
1940.12.9. 일제 선교사 강제 출국령으로 샌프란시스코 도착 후 미국교회 순회 한국알림
1942.9 하트포드신학교 과정, 뉴멕시코주 엘버커비 아메리칸 인디언소녀 감리교선교학교
하우드 여학교 성경교수 사역, 결핵요양원 돌봄
1947.6.25. 해방 후 내한, 서울감리교신학교 성경교수 사역
1953. 한국전쟁 부산피난시절 부산 감리교신학교 강의
1956.3. 대전 감리교신학교 성경교수 사역
1957.4.13. 한국선교사역 은퇴 미국 귀국, 남가주 에이킨 도착
1957.7. 조지아주 햄튼감리교회 주일학교 성경교수 사역
1967. 미국 감리교본부 선교부 한국방문 편지수신
1968.3 서울 도착, 감리교 독신자 선교사 주택 그레이하우스 입주
1976. 미국 조지아 주 웨스트베리홈 거주
1978.8.18. 향년 92세 웨스트베리홈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독신 여자 선교사로 따로 가정을 가지지 않아서 자신의 가족인 부모와 3남 4녀의 형제자매들이 가족이었으며 말년에 미국 조지아 주 소재하고 있는 웨스트베리홈 양로원에 지낼 때 동생 에밀리에 의해서 케어됨

2. 선교사 소개
1) 케이트 쿠퍼의 생애
케이트 쿠퍼는 1886년 6월 25일에 조지아 주에 있는 더글러스 빌이라는 작은 시골집에서 태어났다. 케이트의 아버지 헨리 토마스 쿠퍼(Henry Tomas Cooper)는 깊은 신앙심과 강한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지방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동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는 성품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어머니인 에밀리 쿠퍼(Emily Hester Dorsey Cooper)는 친절하고 겸손한 여인으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에밀리는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활동하였지만 언제나 가정이 우선이었으며 언제나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자라나도록 지도하였다. 이 부부에게는 모두 3남 4녀의 자녀가 있었고 케이트 쿠퍼는 두 번째로 태어났다. 쿠퍼 부부는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성경구절과, 십계명, 주기도문과 몇 곡의 찬송가를 가르쳤으며, 매일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렸다.
이렇듯 케이트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정 속에서 신앙의 유산을 따라 교육을 받으면서 컸다.
케이트 쿠퍼는 어린 시절 부터 남들이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다고 물어보면 그녀는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서 일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앙심이 뛰어났으며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다. 그 다음해에 감리교도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고 그녀가 13살 되었을 때에는 유년 선교부 대회에서 기도를 드리는 중에 불과 열세 살의 나이에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1901년 봄 열다섯 살의 나이로 케이트는 전문대학을 졸업하게 되며 조지아 메이콘에 있는 감리교 소속 최초의 여자 학교 웨슬리안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된다. 그녀는 컬로덴 초등학교에서 2년 여년을 가르친 후에 애시번의 학교로 옮기게 되었고 한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그녀에게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마지막 날 ‘이 시대’(these days)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이 설교를 듣고 외국 선교사로서 살기로 결정했다.
이후 스카렛 성경학교에서 한국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1908년 여름 그녀가 22살에 뉴올리언스에 모인 여자 외국 선교회에서 선교사로 선발되고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2) 한국에서의 선교활동
케이트 쿠퍼가 올 당시의 한국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국가의 위기였지만 교세는 원산 지방을 시점으로 하여 평양 대부흥 운동이 시작되는 시기로 교세가 점차적으로 확장하는 시기이다. 그는 1908년 9월 17일 미국을 떠나게 되고 그해 10월 22일에 드디어 한국 땅에 상륙하게 되었고 기차를 타고 다시 배를 타고 원산항에 도착하였다.
한국에 선교사로서 도착한 케이트 쿠퍼에게는 언어의 어려움과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케이트는 루시커닝김 여자학교의 영어 과정을 가르치는 책임이 주어졌는데 처음에는 영어를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여성들로부터 성경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로 야고보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혜 여자 성경학교는 케이트 쿠퍼의 선교 사업 중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관인데, 왜냐하면 그녀의 50년 선교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공과 정성을 드리고 사랑을 쏟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도부인 양성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는 그녀들을 가르치고, 사역을 돕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케이트 쿠퍼는 이 학교의 원장으로 있었는데 교과 과정 중 포함된 과목은 읽기, 쓰기, 중국어, 위생, 교회역사, 주일학교 운영과 성경이었다. 학생들은 개인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실제적인 훈련을 했으며, 출석하는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1911년 한 선교사는 연말 보고서에서 원산의 복음사역과 성경학교에 관해 이렇게 논평했다. “이 성경학교는 여성전도자들의 사역을 위한 훈련장으로 아주 귀한 가치가 있다. 그들의 효율성을 몇 배로 증가되었다. 다른 여성들, 즉 성경 전도자가 되지 않은 여성들 역시 그들의 가정과 마을에 필요한 요소들을 훈련시켰다.
케이트 쿠퍼가 첫 번째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는 여선교회를 완전한 조직체로 조직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시켰고, 보혜 여자관을 점점 양적으로 확대하고 질적으로 향상시켜서 수많은 일꾼을 길러냈고 또 새로운 회관을 몸소 감독하여 건축하였다. 원산에 여러 개의 유치원과 개량서당을 설립하고 또 넓은 지역을 순행하였다.
그녀가 했던 또 하나 중요한 일은 여선교회를 위한 수고와 공헌이었다. 현재 539개소와 회원 수 13,004명을 포용하고 마산, 논산, 경동, 철원, 충서, 강릉 등 여섯 지방에 국내 선교사들을 보내서 순행과 개척교회 일을 보게 하고 대전 신학교 학생 한명의 교비와 은퇴 여교역자들을 위한 안식관을 경영 유지하는 외에 교회 내에서 물질적, 시간적 영적으로 많이 돕고 있어서 교회의 큰 도움을 주었다. 나중에는 남북 감리회의 여선교회가 연합한 후에는 총무로 섬겼고 또 매년 선교회에서 사용하는 공과지를 편찬하는 등 여러 가지로 여선교회를 직접 간접 지도하고 도와주었다.
학기 중이 아니면 케이트는 원산지방의 시골지역에 나가서 여성들을 위한 성경 반을 개최했다. 1916년 케이트가 선교보고서에 쓴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시골에 사는 여인들이 우리를 간절히 원해서 그곳에 찾아가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도 열심히 찾아 다녔다. 나는 두 명의 신자만 있어도 원산지방 동서쪽의 모든 모임을 방문했다. 매년 며칠씩 20번의 성경 반을 개최했고, 등록한 410명의 여성을 가르쳤고, 370가정을 심방했다. 그러나 통계는 산간 마을과 바닷가 어촌에 흩어져 있는 적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음의 소식을 전한 이야기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안식년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원산시 안에서의 전도사역을 위해서 일했다. 여성을 위한 주간 성경교실이 원산 시내에 5곳이 있는데 그녀는 그것을 책임지고 있었다. 초 신자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격려했고 신앙 안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쳤고, 보건위생에 관한 일반 지식도 가르쳤다. 매 주일 그녀는 새 신자들과 입교인들을 위해서 성경공부를 가르쳤다. 두 번째 선교사역에서 케이트는 지방회 교회들과 연관되어 시작된 5개의 유치원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았다. 어린이들은 교회노래를 배우고, 예수님과 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부모들이 비신자였으므로 유치원은 전도의 발판이 되었다.
3) 1940년까지의 선교사역
그녀는 1931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제 쿠퍼 목사는 지방순회를 할 때에 언제나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면에 목사로서 자격이 주어지는 세례식과 성만찬식을 집례 하였고 또 혼인 주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38년 봄 연회를 모인 결과로 그는 강릉지방 감리사가 되기도 했다.
1940년에 일본의 박해가 심해지자 선교사들은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주한 미국 대사관과 감리교 선교본부는 선교사들을 한국에서 떠나도록 요청했다. 케이트는 굶주리고 감옥에 던져지는 한이 있어도, 한국인 기독교인과 함께 있겠다는 결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한국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자기 때문에 한국의 성도들이 고통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1940년 11월 23일 아침 그녀는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4) 미국 귀환 및 해방 후 선교활동
쿠퍼 목사는 결국 1940년 12월 9일에 한국 사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그 이후 그녀는 스캐릴 신학교의 부탁을 받아 북부 조지아, 앨리바마와 루이지나 주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여 설교했다. 쿠퍼목사는 가는 곳마다 설교할 때에는 한국 옷을 입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한국 사람들에 대하여 선교를 이야기해주었다.
한국이 해방됨에 따라서 다시 1947년에 한국으로 복귀하였지만 한국 전쟁의 발발로 케이트는 다시 한국 땅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 히로시마에 머물면서 한국인 및 일본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였고 1952년 한국 전쟁이 휴전이 되어서야 부산으로 돌아갔고 그 이후부터 1957년 은퇴 때까지 한국에서 계속 봉사하였다.
쿠퍼 목사는 공덕리에서 보혜성경학원을 하는 것 외에 부인과 어린이들을 위하여 야학교를 시작하여 많은 부인들과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한글 수학 등 초등교육을 시키고 또 성경 찬송가를 가르쳐서 신앙생활의 길을 열어 주었다. 또한 이천지방 수원지방 서울북지방의 지방 전도사업 책임을 맡아서 항상 세 지방 안에 있는 교회들을 순행하고 구제 물자를 전해주고 또 설교하고 가르치고 목사가 없는 교회에서는 예식을 주례했다. 쿠퍼목사가 이룬 또 하나의 업적은 하나는 이천 읍에 있는 양정 여학교를 위해 일한 것이다.
또한 쿠퍼목사는 부산에서 감리교 신학교의 교수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신약과 구약주해를 맡아서 일주간에 여덟 시간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서울서 시작한 기도단에서 일주일 두 차례씩 성경을 가르쳤고 거의 주일마다 빼지 아니하고 여려 교회에서 설교했다. 또 집 없는 여자들이 살고 있던 순혜 학사와 자매여숙에서 성경을 가르쳤고 육군병원과 형무소에서 설교하고 지방회, 대사경회 때에 성경을 가르쳤다.
쿠퍼목사는 70의 고령의 나이에 대전에 내려가서 봄 1956년에는 목동리에 임시로 지은 천막 속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여러 가지 불편하고 불완전한 설비 가운데서도 젊은이들과 함께 불평 한마디 없이 즐겁게 지냈다. 대전 신학원에서도 신약과 구약 강해를 가르쳤으며 여학생들의 학비문제와 신앙문제 일신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일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돌보아 주었다.
1957년 4월 13일은 케이트가 49년간의 한국에서의 사역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귀환하는 날이었다. 이날 많은 사람들이 환송 나왔고 대전역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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