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Hoggard, Robert(1861-1935, SA) / Annie Johns(1862-1941, SA)
 작성자 : 송철원  2019-07-01 19:45:20   조회: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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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두 선교사 / Robert Hoggard(1861-1935)

Ⅰ. 기본사항
1. 이름: Robert Hoggard / 호가드 / 한국명: 허가두(許嘉斗)
2. 생몰연도: 1861년 11월 16일~ 1935년 8월 13일.
3. 출신 및 소속: 영국(오크셔주 베벌리), 구세군
4. 한국 선교기간: 1908.10.1~1916. 6. 29.
5. 연표
1881년 1월 사관이 됨. (Became an Officer)
1881년 7월~1889년 1월 17일 17개 영문 담임사관(17 Corps)
1886년 3월 22일 정위, 결혼
1889년 1월 17일 부관(Adjutant)
1889년 6월 27일 브라이턴 지방장관(Brighton Division D.C.)
1890년 3월 27일 참모정위, 리버풀 지방장관(S. Captain, Liverpool Dvision D.C.)
1891년 10월 29일 타인 지방장관(Tyne Division D.C.)
1892년 10월 27일 쉐필드 지방장관(Sheffield Division D.C.)
1893년 4월 11일 참령(Major)
1893년 5월 4일 남 웨일즈 지방장관(S. Wales Province)
1895년 6월 27일 캠브리지 지방관장(Cambridge Province)
1895년 7월 18일 부령(Brigadier)
1896년 12월 30일 남부 런던 지방장관(S. London Province)
1900년 11월 29일 서부 지방장관(Western Province)
1901년 8월 29일 부정령(Lt. Colonel)
1901년 10월 10일 아일랜드 지방장관(Ireland Province)
1905년 8월 17일 영국군국 본영 사관후보생 서기관(N.H.Q. Candidate Secretary)
1905년 11월 22일 남부지역 지방장관(Southern Province)
1908년 8월 18일 허가두 정령, 한국개척항해(Colonel. Sailed for Korea)
1908년 10월 1일 허가두 정령 한국도착
1916년 9월 9일 정령, 영국에 귀국(Colonel. Returned to England)
1917년 8월 준부장(Acting Commissioner)
스코틀랜드 사령관(Scotland T.C.)
1919년 10월 부장(Commissioner)
1919년 12월 23일 남아프리카 사령관(T.C., S. Africa)
1922년 9월 5일 뉴질랜드를 위해 아프리카를 떠남.(Left Africa for New Zealand)
1922년 10월 1일 뉴질랜드 사령관(T.C., New Zealand)
1926년 7월 휴가(Furlough). 특별봉사(Special Service)
1929년 7월 19일 캐나다 서군국 사령관(Canada West T.C.)
1931년 1월 23일 국제본영 서기관(IHQ Secs. Dept)
1932년 1월 은퇴(Retired)
1935년 8월 13일 승천(Promoted to Glory)
1941년 1월 14일 허가두 부장 부인 애니 존스 승천(Promoted to Glory)
6. 가족사항
부인: Annie Johns (1862. 12. 31 ~ 1941. 1. 14)
자녀들: 딸 – Hoggard, Annie R. (1887. 2. 28일생)
딸 - Hoggard, Evangeline. (1888. 11. 14일생)
아들 – Hoggard, Robert A. (1892. 2. 23일생)
딸 - Hoggard, Maud J. (1893. 5. 7일생)
딸 - Hoggard, Dorothy. (1898. 2. 21일생)


Ⅱ. 선교사 소개: 허가두(Robert Hoggard, 許嘉斗, 1861-1935)

1. 구세군 한국선교 개척 사관 허가두, 한국 구세군의 기초를 다지다.
허가두(Robert Hoggard, 許嘉斗, 1861-1935) 정령은 1908년 10월 1일부터 1916년 6월 29일까지 8년 동안 한국 구세군 개척 선교 사역을 기쁨으로 수행하였으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문맹하고 미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의료봉사로 치료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던 선교사였다. 허가두 정령은 한국에서 사역하는 기간 중 한국 구세군의 기초를 세우는데 혁혁한 이바지를 하였음을 「구세신문」을 통하여 상세하게 알 수 있다.
허가두 정령이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기 2개월 전인 1916. 7월에 발행된 「구세신문」에 의하면 허가두 정령의 한국에서의 사역결과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단한 사역을 감당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사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동안 구세군 사업은 매우 속성으로 진보되어 현재 사관 87명, 영문임원(하사관) 189명, 병사 1201명, 예비병 740명, 입회인(개심자) 1,084명, 유년 주일학생 1,231명, 영문학생 205명, 소년대원163명, 지영(영문) 및 기도실(분영) 78개 처에 달했으며, 매월 발행하는 구세신문이 3,500매에 달하였음으로 이는 오직 허가두 정령과 동부인의 힘써 일한 증거요 또한 결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영문(교회)을 설립하고, 한국인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전도하기 위하여 의료봉사를 행한 것을 보면, 초대교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선교방법으로 사역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선원을 꿈꾸던 소년 시절의 허가두
9살의 어린 시절 허가두는 아버지에게 ‘바다로 나가 선원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선원의 꿈을 가지고, 7년 동안 노력하여 1급 선원이 되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바닷가 선원들의 나쁜 것들만 흉내 내면서 타락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고 만다.
젊은 시절의 허가두는 갱단 두목까지 되고 말았다. 1861년 선술집이 즐비한 헐강 유역 베벌리 마을에서 태어난 허가두는 15세까지 지역불량 청소년들의 대장노릇을 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매일 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춤의 노예로 살다시피 하면서 소년시절을 방탕으로 지냈던 것이다.
3. 회심 후 구세군을 만난 허가두
맥주병을 한손에 든 채 베벌리 시장을 배회하던 어느 날 허가두는 구세군 가로 전도대와 맞닥뜨렸다. “방황하는 자여 돌아오라”는 노랫말이 하나님 음성처럼 허가두의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자비석(Penitent From)’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부위’로 임명되어 사역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 설교를 시작한 곳을 술집이었다. 변화한 삶 자체가 설교였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를 듣기위해 몰려들었고 회개했다. 브리스톨 영문집회에는 3,000명이 참여할 정도였다. 27년 동안 영국사역을 한 허가두 부부는 “영혼구원의 불모지 한국에 헌신하라”는 명령을 받고 한국 구세군 개척사관으로 오게 된 것이다.

4. 한국 구세군 개척 후 허가두 정령의 주요 활동
1908년 10월 1일 영국인 허가두 정령과 그의 부인 애니 존스가 한국에 선교사로 부임함에 따라 구세군 선교가 최초로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이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이 침탈될 직전의 국가 정치적 위기 상황을 겪고 있던 조선에서 민중계몽, 여성지위 향상 등의 사회개혁운동을 내세우면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빈민구호 및 고아원 설립 등의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허가두 정령의 주요 활동사항을 살펴보면, 1908년 10월 20일 허가두 정령은 최초의 병사집회를 인도하였다고 「사령관일지」에 기록 되어있다. 1908년 10월 18일 주일에 첫 번째 街路전도모임을 하였고, 1908년 10월 18일 주일 오전예배시간에 담 밖 잔디밭으로 나와 120명의 남자들과 12명의 여자들이 구세군의 찬양을 들으며 예배에 참석하므로 첫 번째 여성 집회를 가졌고, 1908년 11월경 모여드는 사람들을 수용할만한 건물의 필요성을 갖게 되어 새 건물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어서 1908년 11월 11일 한국에서 첫 번째 영문을 개영(서울 제1영문)하였다. 서울 제1영문에서 1908년 12월 17일 목요일 처음으로 주일학교 어린이 집회를 시작하였다.
1909년 3월 9일 화요일 병사집회에서는 서울 1영문과 2영문에서 모든 병사들에게 봉투가 배부되면서 구세군의 ‘탄약금 제도(The Cartridge System)’가 처음으로 소개되었으며, 허가두 정령은 1909년 3월 24일 ‘임 문상’을 첫 한국인 사관으로 승인하여 강경리에 견습 참위로 임명하였다.
이어서 1909년 4월 20일 허가두 정령은 사관 양성을 위하여 사관교육훈련의 일환으로 최초의 사관훈련 반을 서울에서 온 16명의 남자들과 지방에서 온 4명의 남자들, 모두 20명으로 시작하였으며, 경성 서대문 밖 평동(현 종로구 평동)에 양옥 건물로 성경대학교를 설립하고 1910년 2월 15일 20명의 사관학생이 입학함으로써 개학을 하였다.
「구세신문」 창간호(제1권 1호)가 1909년 7월 1일 허가두 정령 명으로 발행되었고, 매월 1일 1회 발행하며 가격은 3전이었다.
처음에는 “사관훈련 반”으로 시작한 사관양성기관이, 다음에는 “성경대학”이란 명칭으로 사관을 양성하였으며, 1912년 8월호 「구세신문」을 통하여 “구세군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改名하였다.
그리고 허가두 정령은 이듬해인 1913년 1월 11일 오후 3시에 월리엄 부스 기념 사관학교를 신축하고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1914년 6월 중순 영국런던에서 개최한 ‘구세군 만국총회’에 조선총사령관 허가두 정령이 조선 구세군 대표로 처음으로 조선사관 몇 명을 대동하고 총회에 참석하였다.
한국에서의 임기 마지막해인 1916년 5월 1일부터 6월 26일까지 56일간 총사령관 허가두 정령 동부인은 런던에서 온 부령 쏠터와 총부서기관 참령 허온, 그리고 사관학생 일동과 경성 제1영 음악수 일동을 대동하여 전북 정읍을 시작으로 지방 대전도회를 가졌다. 전라도와 충청도 두 지방 각처에서 예배에 모인 숫자만 해도 20,000명 정도였고, 회개한 사람도 700명이었다고 한다.

5. 한국 교회사(선교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교사
허가두 정령의 한국선교방법은 악대를 동원한 가두 대중전도 집회를 먼저하고, 모인 회중을 회관으로 인도하여 전도한 후, 결신자는 ‘자비석(회개석)’으로 나오게 하는 단계를 계속 반복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지방에서 상경한 인사들을 구세군에 입교시킴으로써, 이들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구세군 전도에 힘썼고, 이들 지역에는 선교사관의 파송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시 내한 선교사들의 중심은 장로교와 감리교 위주였는데, 이 두 교파가 당시에 맺고 있던 ‘지역 간 선교구역 협정’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을 교구로 하여 선교에 임했다는 것도 선교역사의 한 특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허가두 사령관은 직접 각 지방을 다니면서 순회전도를 하였다고 한다. 특히 허가두 사령관은 다른 교파 선교사들과도 깊은 교분을 맺어 서로 협력했다고 한다. 언더우드, 마펫, 게일, 에비슨 등의 선교사들과 크게 협력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만국본영’과도 연락, 협조를 공고히 하여 한국선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증대시켰으며, 그 결과 국내에 많은 선교기지의 확보와 투자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허가두 사령관의 부인 애니 존스여사는 채성신, 윤부인 등 한국인 동역자들과 함께 ‘부인(婦人) 반’을 지도하면서 여성교육에 심혈을 쏟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영문(교회)은 부인들이 병사로 균형이 잘 잡힌 영문이다”라고 한 애니 존스 부인의 이 한마디 말에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의료봉사, 소학교운영, 문맹퇴치사업, 빈민구제, 청소년선도, 교도소 및 경찰 선교, 독립운동가에 대한 지원 등에서 많은 공로를 남겼다.
6. 한국에서의 사역이후의 허가두 정령의 활동과 승천
1916년 한국을 떠난 허가두 정령은 남아프리카와 뉴질랜드에서 활동한 후 ‘국제본영 만국 해외순회선교사(부장)’에 임명되는 등, 전체 51년간 현역으로 활동하다가 1932년 1월 은퇴하였다. 1935년 8월 13일(화요일) 자택 에섹스(Essex)의 헤드레이(Hadleigh)에서 승천하셨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슬하에 자녀들은 1남 4녀를 두었다.
7. 허가두 개척사관에 대한 공적비 全文
<한국구세군 개척 선교사관 부장 허가두>
“1908년 10월 1일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Commissioner Robert Hoggard (1861-1935. 부장 허가두)는 진취적 구령정신으로, 고난의 시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그의 주된 활동은 예배와 교육 그리고 사회봉사였다.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든 예배를 드려 믿음을 심어주었고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여 소망을 갖게 하였으며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사랑으로 돌봐주었다.
그의 손에서 휘날리던 한국 구세군 최초의 혈화기는 한국 땅 이곳, 저곳으로 퍼져 그의 사령관 재임기간(1908-1916) 동안 사관 87명, 병사 1,201명, 구세신문 3,500부, 영문 78개소 개척 등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으며, 현재 한국구세군 선교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순간의 초석이 되었다.
이에 모든 한국 구세군인들은 Robert Hoggard 부장의 헌신적 생애와 열정을 기리며 그의 구령 정신을 계승하고자 이곳에 기념 묘석을 세운다.”
2019-07-01 19:45:20
121.xxx.xxx.174


작성자 :  비밀번호 : 

song7046 (58.xxx.xxx.116) 2019-07-01 20:11:58
샬롬 교수님, 3-7반 송철원, 박미희 학생입니다. 사진첨부자료가 많아서 그런지 10M 용량초과로 pdf 파일 한개만 첨부 되었습니다. 한글 파일은 사진을 좀 줄여서 다시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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