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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hase, John T.(1905-1987, CC) / Wahneta Smith(1901-2002)
 작성자 : 이우해, 이주향  2019-07-01 22:57:54   조회: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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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채이스 선교사 / John T. Chase(1905-1987)

3학년 2반 2017210112 이우해
3학년 2반 2017210113 이주향

Ⅰ. 기본사항

1. 이름 : 존 채이스 / John T. Chase /
2. 생몰연도 : 1905.09.17 - 1987.12.23
3. 출신 및 소속 :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4. 한국선교기간 : 1937. 01 – 1940. 06.01
5. 연표
1905.09.17.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Louisville) 출생
1926. 신시내티기독교대학교와 성서대학원 졸업
1926.01. 와네타 스미스(Wahneta Smith)와 결혼
1927–1934.11. W.D. 커닝햄(Cunningham)의 요츠야선교부에서 월급선교사로 헌신(일본)
1931.09. 첫 한국 방문
1934. W.D. 커닝험과 결별
1936.11.07. 독립선교사로 서울에 도착
1936.12. 서울 송월동에 위치한 영국 해외성서공회 소유 건물 임대
1937.01. 기독교회 선교부, 격월간지 ‘한국인 전령’, 한국 성서 훈련원 설립
1937.03.07. 제1호 신당동 리스도의 교회 설립 예배
1937.10.17. 제2호 돈암동 리스도의 교회 설립
1939. 제3호 내수동 리스도의 교회 설립
1939. 제4호 산 돈암동 리스도의 교회 설립
1939. 제5호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
1940.06.01. 안식년과 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
6. 가족사항
부인 : Wahneta Smith(1901-2002)
아들 : Kenneth / Robert
딸 : Nadine / Lois


Ⅱ. 선교사 소개 : 존 채이스(John T. Chase)(1905-1987)

1.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존재와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체이스의 족적..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출발은 존 채이스(John T. Chase) 선교사가 1937년에 서울 송월동에서 시작한 한국성서훈련원(Korean Bible Training Institute)이었다. 이것을 힐 요한 선교사와 테일러 선교사가 1950년대 말까지 이어갔다.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최수열의 한국기독학교(현 KC대학교), 힐 요한의 한국성서신학교, 1960년대에 세워진 테일러와 배도은의 서울성서신학교, 최윤권, 최순국 등의 서울기독신학교,김찬영의 한성신학교, 최윤권의 서울 기독대학교가 존재했음으로써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생존해 있을 수 있었다. 요즘 그리스도의 교회 교단의 영향력이 한국교회에서 크게 감소해 있는 상황에서 존 채이스의 족적은 큰 교훈을 준다.
채이스 선교사는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신학교부터 세웠다. 그래서 이미 모든 학업을 마치고 안수를 받은 목사들에게 4년 동안 교육을 받게 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소속으로 있던 커닝햄의 요츠야선교부와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 것이었다. 그 당시 한국 목회자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기였다. 커닝햄의 요츠야 선교부의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채이스는 커닝햄과는 다르게 생각하였다. 철저한 교육만이 선교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족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아닌 모든 교단이 다 같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붙들어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2. 한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딛기 전, 존 채이스의 생애(1905-1936)

존 채이스는 1905년 9월 17일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출생하였고, 다섯 살에 고아가 되었으며, 인디애나 주 체스터필드에 살고 있던 숙모(혹은 고모할머니)의 집에서 양육되었다. 15세에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고, 테네시 주 녹스빌에 소재한 현재의 존슨대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켄터키 주 루이빌에 소재한 맥가비성서학교로 옮겼으며, 이 학교가 1924년에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소재한 신시내티성서학교로 통합되면서 지금의 신시내티기독대학교(Cincinnati Christian University)와 성서대학원(Bible Seminary)을 1926년에 졸업하였다. 그곳에서 성서대학원생이던 와네타 스미스(Wahneta Smith) 양을 만났다. 채이스는 2016년 졸업 직후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Baton Rouge)로 내려가 목회를 시작하였고, 곧이어 7월에 스미스와 결혼하였다. 채이스 부부는 신시내티성서대학원 졸업생들로서는 부부 선교사 1호가 되었다. 1927년에 일본 도쿄로 건너가 1934년 11월까지 W. D. 커닝햄(Cunningham)의 요츠야선교부에서 월급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참고로 요츠야선교부에 소속된 모든 사역자들은 선교부에 고용된 직원들이었다.
채이스는 1931년 9월 하순에 요츠야선교부의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바가 있었다. 이 무렵 요츠야선교부는 한국을 “추수를 기다리는 지상 최고의 황금들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채이스는 한국방문 후 소감을 말하기를, 한국은 반드시 신약성서기독교를 전파할 선교사가 필요한 곳이라고 하였다. 채이스는 일본 선교 7년만인 1934년에 커닝햄과 결별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 선교를 준비하였으며, 독립선교사로서 1936년 11월 7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채이스는 1934년 말에 본국으로 돌아가 캘리포니아 주 잉글우드하이츠 그리스도의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청빙되었다. 채이스는 1936년 3월에 교회를 사임하고 기금모금에 돌입하였고, 그해 10월 11일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가족이 한국행 배에 승선할 수 있었다. 그의 꿈은 인구 2천만이 사는 은둔의 왕국에 신약성서기독교가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에 채이스는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캐네스(Kenneth)는 10살, 로버트(Robert)는 7살로써 둘 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네이딘(Nadine)은 4살로써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나중에 로이스(Lois)가 한국에서 태어났다.


3. 한국 선교사로서의 존 체이스의 업적(1937-1940)

채이스는 1936년 11월 7일에 서울에 도착하였으나 12월말에 가서야 서울 송월동, 곧 게이조 쇼게추조 32-6번지에 위치한 큰 건물(영국 해외성서공회 소유)을 임대할 수 있었다. 채이스는 193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선교 사역에 돌입하여 ‘기독교회 선교부’, 격월간지 ‘한국인 전령’및 ‘한국 성서 훈련원’을 설립하였다. 채이스 부부는 한국어를 익히기 위해서 한국어 교사를 채용하였는데, 그에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르쳐 한국성서훈련원 제1호 학생과 제1호 개척교회 사역자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김요한 목사로서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B.D.(오늘날의 M.Div)를 마친 감리교 목사였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제1호 교회가 1937년 3월 7일에 첫 예배를 드린 신당동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그리고 연희전문학교와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다년간 신학교에서 강사와 감리교 잡지 ‘신학세계’의 편집인을 지냈던 최상현 목사 역시 한국성서훈련원에서 학습하기 시작하였고, 1937년 9월 1일에 한강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최상현 목사는 채이스 선교사의 제2교회 사역자가 되어 1937년 10월 17일에 첫 예배를 드린 돈암동 그리스도의 교회를 창립하였다.
채이스의 제3교회는 1939년에 편입된 성낙소 목사의 내수동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성낙소 목사는 채이스로부터 1938년에 침례를 받은 후, 이때로부터 3년간 한국성서훈련원에서 학습하였다. 체이스의 제4교회는 박판조 목사가 1939년에 개척만 하고, 담임은 김문화 목사가 맡았던 산 돈암동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채이스의 제5교회는 박판조 목사가 1939년에 개척한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채이스 선교사가 총애하고 아꼈던 젊은 전도자였다.
채이스 선교사 가족이 1940년 6월 1일 안식년과 모금을 위해서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3년 7여개 월에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이들 다섯 명의 사역자들과 다섯 개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이었다. 나중에 채이스는 일본기독교회 조선교단 가입과 신사참배 및 동방요배를 거부한 것과 그로 인해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박해와 폐쇄조치에도 불구하고, 돈암동 그리스도의 교회와 내수동 그리스도의 교회가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을 소식으로 듣고, 눈으로 확인한 채이스는 자신이 한국성서훈련원에서 이들에게 신약성서기독교를 철저히 교육한 결실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후의 선교는 살아남은 이 두 개의 교회를 기반으로 확장되어나갔다.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사항이지만 목회자이신 아버지가 처음 속했던 교단이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교단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날에도 존 체이스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와 같은 지도자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남긴 족적이 후대에 빛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2019-07-01 22: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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