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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hurch, Marie E.(1885-1972, M)
 작성자 : 임재원, 장영수  2019-07-02 01:27:49   조회: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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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선교사 / Church, Marie E (1885-1972)


Ⅰ. 기본사항


1. 이름: Church, marie E / 처치

2. 생몰연도: 1885.2.13.-1972.6.7.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5.9-1940, 1947.10-1950.6

5. 연표
1885.2.13. 미국 오래곤주 몬마우스에서 출생
오래곤 주립사범학교 및 캘리포니아주 휘티어대학 졸업
1905-1914. 초등학교 교사 5년, 고등학교 교사 5년 역임
1915.9. 미 감리회 파송으로 내한하여 이화학당 교사 역임
1924. 미 감리회 여선교회 연합회 총무 역임
1929. 이화여자보통학교 및 이화여자고등학교장 역임
1935. 이화여자보통학교 폐지 및 전문학교의 대현동 신촌교사 이전
1938. 미일관계 악화로 교장을 신봉조에게 인계한 후 명예 교장으로 추대
1940. 귀국
1947.10. 다시 내한하여 이화여대 교수역임(Division of Christian Service의 파송)
1950.6. 6.25동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센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역임
1950.6. 은퇴 및 귀국
1972.6.7. 고향에서 별세

6. 가족사항
처치의 가족과 관련해서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Ⅱ. 선교사 소개: 처치(Church, marie E, 1885-1972)


1. 시대를 계도하는 여성 지도자

처치는 일찍이 본국(미국)에서 1905년부터 초등학교, 고등학교의 교사로 봉직하며 교육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으며 자신의 은사를 활용하여 1915년 미감리회의 교육선교사로 파송받은 뒤 이화학당 교사로 조선을 섬겼다. 이후 1924년에 이르러서는 미감리회연합선교회 총무로 선출되어 여선교회를 주관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여기서 잠깐 당시 여선교회가 가지는 의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전문직 여성 선교사를 파송하는 여선교회 조직은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을 창설한 메리 라이언의 영향이 컸다. 당시 대졸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었던 그는 자신의 성공을 개종한 여학생의 수로 판단할 만큼 자신의 학교를 ‘하나님의 일’을 대리하는 기관으로 생각했다.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은 1859년까지 60명의 해외 선교사를 배출했다. 선교사업에 꿈을 가졌던 여성들은 그녀를 본보기로 삼아 미국에서 최초로 전문직 여선교사 파송 기구로서 조합교회 산하 여선교부(Woman’sBoard of Missions of the Congregational Church)를 조직했다. 이어 두 번째로1869년 3월 감리교 해외 여선교사회(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이하 WFMS) 가 조직되었다. 20세기 초가 되면 미국 개신교 선교 조직에서 지도력은 여전히 남성들이 보유하고 여성들은 제한적인 권리만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해외 선교 사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여선교사들이 되었다. 여선교회 소속인 이들은 해외의 이방종교를 믿는 ‘여성들을 위한 일’을 전담했던 것이다. 이영분, “근대 한국 미션스쿨의 여성교육과 한국 여성의 삶의 변화 : 초기 이화학당과 정신여학교를 중심으로”,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2015: 10
이러한 정신을 계승받은 처치는 1929-38년(9년 재직)동안 이화여자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의 교장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녀가 이곳 교장의 직무를 맡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화여자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는 이화학당을 근간으로 한다. 당시 조선시대의 교육제도와 교육내용은 남성을 위한 것이지, 여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그 전대(前代)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여성은 독자적인 개인이라기보다 남성의 그늘로 이해되었다.

여기에 1886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튼(Scranton,M.F.) 부인이 한 여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1887년 고종황제가 ‘이화학당(梨花學堂)’이란 이름을 내린 것으로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보통과·중등과·고등과·대학과 등을 포함하여 초등교육·중등교육·대학교육을 다하였다.

이화학당은 한국의 여성교육의 효시이자 여성 지도자를 많이 길러낸 것으로 그 공적이 크다. 1885년 6월에 이 땅을 밟은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은 선교사업의 중요한 분야로 한국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세울 것을 결심하고, 1886년 5월경에 여학생 한 명을 상대로 학교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한국여학교의 요람이 된 이화학당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이화학당을 거부하고 경시하는 풍습 또한 있었다. 이화학당에서 실시하는 체조는 당시 사회적인 풍습에 의하여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당시 여성들의 외출이 허락되지 않던 사회에서 여학생들이 대거 이동하여 학교로 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이화학당에 다닌 여학생은 며느리를 삼지 않겠다는 풍조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사회적인 여건 속에서도 이화학당에서는 점차 남녀평등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조장·촉진하여 수백년의 구습이던 내외법(內外法)과 축첩제도를 폐지시켜 나갔다. 실로 선교사들이 남녀평등관에 입각하여 처음으로 이화학당을 세운 것은 여성교육의 개척자(開拓者)의 역할이었고 여성해방의 큰 기쁨이기도 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618# 2019년 7월 1일 접속
김승태, 이명화, “일제•말기 한국기독교계의 변질•개편과 부일협력”, 「한국기독교와 역사」, 24 (2006): 35
2019년 7월 1일 접속


처치는 이러한 이화학당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화여자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의 교장을 역임했고 특히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마음가짐으로 조선 땅을 섬겼다. 그녀가 보여준 리더십은 충분히 그 시대에 변혁을 일으킬만한 큰 공헌을 했다.


2. 아픈 역사의 짐을 짊어진 선교사

처치가 활동하던 시대 속에서 일제와 기독교 간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관리감독 아래 학교를 운영하던 당시 조선의 여러 기관들은 곤혹을 치루지 않을 수 없었고 일본의 종교정책으로 인해 내한한 많은 교단들이 배교의 위협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처치가 교장으로 있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접어 드는데, 일본은 신사참배를 각 교단에게 요구하였고 조선의 거의 모든 교단들은 이 정책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처치가 속한 감리교도 이것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930년에 조선감리교회의 수장이었던 양주삼 총리사가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총독부의 설득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여 1936년 4월 10일자 <감리회보>에 “신사문제에 대한 통첩”을 게재함으로써 감리교회에서는 신사참배를 문제 삼지 않았다.

처치가 실제로 이 신사참배에 가담하였는지 아닌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일본으로부터 추방 당하고 광복 후 이화여자대학교로 돌아와서 강의를 할 때의 교장이 김활란이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정치적 성향을 유추해볼 수 있다. 김활란은 “일제 강점기 조선 및 남한의 페미니스트 계열 사회운동가이자 처음에는 독립운동가 행보를 보이다 변절 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악질 기회주의자” 나무위키, ‘김활란’ 2019년 7월 1일 접속
로 역사적 판명이 난 사람이다. 김활란은 광복 후 이화여대를 맡아 교장으로 역임했으며 그 때 처치가 복귀한 것이다. 이 근거를 가지고 흑백논리로 나누기는 과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적어도 일본의 식민체제에 대하여 큰 반감을 가지거나 열성으로 반대하는 진영은 아니었지 않았을까 하는 유추는 해볼 수 있다.
2019-07-02 01: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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