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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ottrill, W. Stanley(1914-2005, SA) / Cottrill, Kathleen(미상, SA)
 작성자 : 홍성현 홍나엘  2019-07-02 03:45:52   조회: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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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렬 선교사 / Walter Stanley Cottrill (1914-2005)

Ⅰ. 기본사항
1. 이름 : Cottrill, W. Stanley / 워터 스탠리 코트릴 / 한국명 : 고득렬
2. 생몰연도 : 1914.10.14. - 2005.7.28.
3. 출신 및 소속 : 남아프리카, 구세군(The Salvation Army)
4. 한국선교기간 : 1971.12.12. - 1973.8.12.
5. 연표
1914.10.14. 남아프리카 카페타운에서 출생
1937. 우드포드 국제훈련대학 장교훈련 입소
1938. 구세군 임관
1938. 국제훈련대학(ITC)에서 부사관장으로 근무
1939-40. 코번트리 군단 근무
1940. 스트루드 군단 근무
1940. 캐슬린 워드(Alice Kathleen Ward)와 결혼
1941. 싱가포르 선교
1942. 싱가포르 창이 ‘전쟁 포로 수용소’ 수감
1945. 말레이시아 소년단 인턴 복무
1948.-1950. 싱가포르 중앙군단 지휘
1950-52. 싱가포르 소년단(Singapore Boys Home) 담당
1952. 로디지아 사단 근무
1953-56. 시웨쉐 사단장
1956-58. 노스마쇼나 사단장
1958. 하워드 연구소 교장
1969-71. 국제 스태프 밴드 맴버
1962-64. 국제본부(IHQ) 극동부 차관
1963-64. 한국 구세군 사령관 (임시)
1964-69. 일본 구세군 수석비서관
1969-71. 일본 구세군 참모장
1971-73. 한국 구세군 12대 사령관
1973-77. 아프리카 및 극동지역 국제담당 비서관
1977.12-82.4. 세계 구세군 15대 참모장
1982. 구세군 은퇴
1988.2.-2005. 구세군 글로리 임명
1988. 코트릴 기념 기금 설립
2005. 구세군 커미셔너 임명
2005.7.28. 별세
6. 가족사항
부인 : Cottrill, Kathleen
아들 : 두 명



Ⅱ. 선교사 소개 : 고득렬 (Cottrill, W. Stanley)

1. 마지막 외국인 사령관
고득렬 (Cottrill, W. Stanley, 1914.-2005) 사령관은 제12대 한국 구세군으로서, 약 2년간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정확하게 1년하고 8개월간 한국 구세군의 마지막 외국인 사령관으로 그 임무를 다하였다. 사실 고득렬 사령관은 국제본부(IHQ) 극동부 차관을 역임한 이후, 한국 구세군 사령관으로 2년간 임시 파견되었다. 당시 한국 구세군에는 하비 참장이 10대 사령관으로 재임(1957-1965) 중이던 시기였는데,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지만 이 기간중 2년을 사령관으로 파견된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 구세군은 현재 22대 사령관으로 전광표 부장이 재임 중에 있으며, 1908년부터 시작된 한국 구세군 역사에서 고득렬 사령관이 역임한 12대 사령관까지, 역대 사령관은 65년 동안 외국인 사령관이 그 임무를 수행해왔다. 이 65년 동안, 1명의 사령관을 제외하고 모두 영국인 사령관에 의해 발전해 왔는데, 이러한 이유로 한국 구세군의 모습은 주로 사회봉사, 시설확장에 크게 이바지등 영국식 특유의 구세군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고득렬 사령관이 취임한 이후, 한국구세군 발전사에 방향이 바뀌게 되었으며, 고득렬 사령관을 시작으로, 한국식 구세군 발전을 위한 토착화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고득렬 사령관이 1973년 영국으로 떠난 이후, 13대 전용섭 사령관으로부터 한국식 구세군으로서 토착화가 되어갔다. 고득렬 사령관은 한국 구세군이 한국 문화의 옷을 입고 토착화가 진행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마지막 외국인 사령관이었던 것이다.

2. 행정에 치밀한 사령관
고득렬 사령관이 한국에서 활동할 때, 가장 크게 이바지 한 부분이 바로 “구세군 회관”을 준공시킨 사건이다. 당시 구세군 회관은 중앙회관으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대외적인 활동과 행정적인 소요로 인해 새로운 구세군 회관이 필요했다.

“신임 사령관은 행정에 치밀하였고, 사관 개개인의 영성과 기획능력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분이었으며, 1972년도에는 연중행사계획을 달력에 게재하게 하였고 사관 개개인의 신상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대하는 지도자였다.”

20대 사령관 이성덕 부장은 위와 같이 고득렬 사령관을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기치를 보였던 사령관이였기에, 서울 신문로에 지하 2층, 지상 9층으로 신축한 “구세군회관”을 준공하였다. 이러한 구세군회관은 시간이 흘러 2013년도에 서울시에서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이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구세군 영동병원”을 운영이 부실하다는 이유와 함께 구세군 회간 빌딩 건축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당국에 폐원신고를 하고 타인에게 매각함으로 40년의 역사를 마감시킨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득렬 사령관은 65주년 기념 총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 구세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73년 4월 11일, 특별히 미서군국 사령관 카이사부장 동부인을 특별강사로 총청하여 기념 총회를 거행하였고, 556명이 참석한 이날 집회에서 7명이 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동월 13일 ‘대전시 연합축하예배’를 통해 20명의 헌신자와 9명의 회개인을 거두었고, 15일 시내연합 성령회를 통해, 집계상 총 4,732명이 모이고, 133,000원의 헌금이 드려졌으며, 36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다. 이렇듯, 고득렬 사령관은 치밀한 행정과 기획능력에 탁월함을 보였으며,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많은 열매를 맺은 사령관이었다.

3. ‘나아가 전하라’
고득렬 사령관을 통해, 한국 구세군은 특유의 성격을 살려가면서 명실공히 복음 전도와 사라으이 봉사로써 민중 속에서, 문중과 더불어, 민중을 위해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구사하는 교회로 발전해 갔다. 1972년 6월 15일, 한국 구세군 중앙회관에서는 서기장관의 사회로 제48기 사관학생 하기전지훈련 파송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집회에서 고득렬 사령관은 ‘나아가 전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선포함으로, 사관학생들에게 복음전파의 불씨를 타오르게 만들었다. 이 집회에서만 자비석에 나온 구도자의 수가 10명이나 되었다.
특별히, 복음전파의 사명에 더욱 힘을 썼던 고득렬 사령관은 이후, 73년 4월 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의 사관학생 순회전도를 계획하고 경상지방 순회전도를 실시토록 지시했다. 그들은 서울을 떠나 김천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3시간 동안, 그저 쉬지 않고 승객들에게 끊임없이 문서 전도를 실시하였다. 김천이 순회전도의 첫 번째 지역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타고 가던 기차가 순회전도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사관학생 순회전도는 진주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날인 8일, 그들은 진주 교도소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그곳에서 35명의 회개인을 얻었으며, 오후에는 진주영문에서 순교하신 노영수 고등참령의 묘지에서 뜻 깊은 감회의 시간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이렇듯, 고득렬 사령관은 한국 구세군에게 복음의 불씨를 지핀 사람이다.

4. 가족의 해 운동
1973년 한국 구세군 표어는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을 기반으로 “가족의 해 운동”으로 재정되었다. 이에 맞추어 구세군 사관학교에서는 63주년 기념일을 시작으로 매년 2월 둘째 주일을 사관학교 주일로 작정하고 각 영문에서 특별예배와 행사로 모든 이의 관심을 모았다. 특별히, 고득렬 사령관이 재임하던 기간동안에는 코트릴 부인이 한국 가정단 총재로 활동을 하였는데,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전도에 총력을 다하여 온 가족이 말씀과 기도, 찬양으로 영성이 회복되도록 도왔다. 예배, 교육, 친교, 복사라는 4대 목표로 가정단을 이끌며, 여성들의 교회 내외적 활동을 전개해 갔고, 자선봉사단을 통해 돌봄사역을 중심으로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영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찬아가 구체적인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했다.
이러한 가족의 해 운동을 통해, 어두웟던 곳이 밝아지고,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었으며, 이들의 사랑은 훗날 코트릴 기념 기금이 형성된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이 되었다.


5. 20년 사랑의 확증, 코트릴 기념 기금
고득렬 사령관 부부의 한국을 향한 사랑은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1973년 8월 10일, 고득렬 사령관 부부는 코리아 하우스에서 전용섭 사령관 취임식과 계인수 서기장관 환영식을 인도한 후 12일 김포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출국한 이후, 아프리카, 극동지역 국제담당 비서관을 순서대로 역임한 후에 최종적으로 세계 구세군 15대 참모장에 임명되었으며, 1982년에 구세군을 은퇴하게 된다. 은퇴 이후 1988년, 코트릴 여사가 글로리로 임명되었을 때, 이들 부부의 이름으로 기념 기금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코트릴 기념 기금”이다.
한국을 떠난 지 1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이들 부부는 한국을 기억하고서, 코트릴 기념 기금으로 모아진 돈을 통해 한국에 있는 구세군 장교들의 아이들을 후원했다. 비록 그들이 한국 땅을 밟은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었지만, 한국을 향한 사랑은 20년이 넘도록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항상 젊은이들을 사랑했고 세대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주 쉽게 소통했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늘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과 특별한 관심을 가졌음을 보였던 부부임을 증명하고 확증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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