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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Anderson, Earl Willis(1879-?, MS) / Anderson, E. W.(미상, M)
 작성자 : 이진환, 임요셉  2019-07-02 09:27:23   조회: 599   
 첨부 : 내한선교사기말보고서_3-1_008_2017210048이진환_2017210051임요셉.pdf (208511 Byte) 
Anderson, Earl Willis(1879~)
연구자: 2017210048 이진환, 2017210051 임요셉

I. 선교사 기본 정보
1. 이름: 영어-Anderson, Earl Willis, / 안데르슨 얼 윌리스 / 한국명: 안열
2. 생몰연도: 1879~?
3. 경력:
1910 목사안수를 받음
1914.10 남가림교회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서울선교부에서 활동 1922 원산 구세병원 의료선교사로 전임
1933-41 세브란스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교수
1934 세브란스외과대학 이사로 취임
1941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4. 가족사항: Anderson, E. W.(부인)


II. 선교사 관련 키워드
1. 출생지: 미국
2. 직업: 선교사, 의사
3. 활동 지역: Seoul, Wonsan(1914-41)
4. 소속: 남감리교회 한국 선교사, SM
5. 활동:
1) 1910년 목사 안수를 받다.
2) 1914년 10월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부인과 함께 내한하다.
3) 1922년부터 19338년까지 원산 구세병원장으로 활동하다.
4) 1940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 및 이사로 시무하다.
5) 1949년 미국으로 귀국하다.


III. 연구 자료 및 사진
<자료 1>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의 앤더슨의 활동
885년부터 초기 선교사들의 기독교 선교지로서 복음이 전파 되었고, 원산의 하디(R.A. Hardie, 河 鯉泳) 선교사가 1900년부터 철원의 지경터(地境里)에 복음 전도하여, 1901년3월31일에 15명에게 세 례를 베풀어 강원도에 첫 신앙공동체인 “철원감리교회”가 세워졌다. 1903년에는 철원 지경터 지방회가 조직 되었으며, 1907년에는 선교지 분할로 철원은 감리교선교 구역이 되었고, 감리교 선교부가 설립되 어 복음전도, 교육, 의료선교 등 활발히 펼쳐 나갔다. 1912년에는 “지경터 지방회”에서 “강원서 지방”으 로 확대 되었고, 철원은 춘천과 함께 강원도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철원읍교회는 1920년5월에 붉은 벽 돌예배당이 건축봉헌 되었고, 유시국, 박연서 목사 등이 시무하였으며, 의료선교사인 앤더슨(E.W. Anderson) 박사부부와 어윈(C. Erwin) 선교사가 주재하며 활동하였다. 1921년에 비로소 앤더슨 의사 (E.W. Anderson M.D 安烈) 부부와 어윈 양(Miss C. Erwin, 魚源), 무스 목사 부부 등 선교사들이 철 원에 주재하며 남선교사들은 전도사업에 여성교사들은 여자야학, 유치원, 재봉강습회, 요리강습회 등 여 자 계몽사업에 주력, 선교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1920년도에 철원지역에서 선교사 주재소가 신설하고 나서 의료선교사 앤더슨(E.W. Anderson, 安烈) 부부와 여선교사 어윈(Cordelia Erwin,魚源)이 상주하게 되었다.

<자료 2> 원산 구세병원장 앤더슨
1901년 작은 진료소로 출발한 원산 구세병원은 북 감리교 맥길과 공동으로 운영되다가 1903년부터
남 감리교 로스(J. B. Ross)에 의해 단독으로 운영되었다. 그동안 형식적으로 개성의 책임자로 임명되 어 있었던 로스가 1905년 원산에 정식으로 임명되면서 구세병원의 의료사업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07년 로스는 병원에서 2마일 떨어진 마을에 진료소를 신설하였다. 마을 진료소에서는 일반 진료를 하 였고, 구세병원에서는 중환자, 외국인 및 세관 관련 업무를 하였다. 1908년부터 메이즈(W. C. Mayes) 가 로스와 함께 의료사업에 참가하였으며, 조수로는 최승현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원산은 개항장이었던 관계로 중국인, 일본인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1922년 10월 병원을 대확장하여 좀더 넓은 병원건물 을 사용하였다. 1915년부터는 캐나다 장로교와 연합의료사업이 결정되어 캐나다 장로교의 맨스필드(T. D. Mansfield)가 로스와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 맨스필드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가면서 원산의 의료사업은 다시 남감리교에서 단독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원산 구세병원에는 앤더 슨(E. W. Anderson), 데마르(E. W. Demaree) 등이 번갈아 가면서 원장을 맡아 근무하게 되었다.

<자료 3> 앤더슨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활동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패권주의 야욕이 노골화되자 미국은 일본을 견제
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더욱 악하되었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전쟁 당사국 관 계로 변하면서 한국 선교사와 일본의 관계가 변화되었다. 신사참배 문제에 있어서 선교사들은 기독교교 를 폐교할지언정 신사참배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일제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기 시작했다. 미국 선 교부에서는 1940년 10월 22일 선교 실행위원회를 열어, “철수해야 할 경우, 선교사 사무 처리 즉 재산 관리를 위해 최소한의 인원(5명을 선출)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나머지 모든 감리교 선교사들은 떠 나기로 결정하였다. 1940년 11월 미국에서 특별 송환선으로 보내온 마리포사(Mariposa)호로 219명 이 떠났다. 감리교 선교사로는 의장 쇼(W.E. Shaw), 앤더슨(E.W. Anderson), 드라미(E.W. Demaree), 두 명의 회계 스나이더(L. H. Snyder), 사우어 등 재산관리를 위한 5인 위원과 평양의 무 어(John D. Moore)부부만이 남았다. 선교부 회게 아펜젤러와 홀 양은 사우어에게 장부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일본 당국의 선교부 재산을 한국인에게 양도하고 떠나라는 계속적인 압력에 "선교본부는 모든 선 교사의 즉각 철수를 무조건 명령함"이라는 본국 지시에 따라 3월 14일에 쇼, 드마리, 스나이더, 앤더슨 이 떠나고 최후로 1941년 8월말 사우어와 무어 부부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한국 감리교회에는 선교사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IV. 앤더슨은 누구인가?
1. 한국에 있는 영혼을 끝까지 사랑한 앤더슨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패권주의 야욕이 노골화되면서 선교사들의 추방 이 될 때 까지 그는 200여명이 넘는 선교사 중에서도 끝까지 남았던 5명의 인물 속에 들어있다. 그는 원 산 구세병원장으로 근무할 뿐만 아니라, 세브란스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교수 및 이사로 취임하면서 한국 에 있는 영혼들을 의료를 통해 선교하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V. 정리
자신이 가진 의료라는 기술을 통해 영혼들을 끝까지 사랑한 앤더슨, 이런 선교사들의 열정이 있었기
에 지금의 한국 교회가 있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이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우리 또한 맡겨진 영 혼들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아가 끝까지 그들을 섬기는 예수님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요한복음 13장 1절 -


VI. 참고문헌
1. 단행본 및 논문
2. 웹사이트
“나라의 독립과 발전 위해 평생을 바친 송춘근”, 세브란스 베스트 닥터 네이버,
“기독교 한국 선교사”, 티스토리,
“북한감리교회사”, 창골산 봉서방 다음, +anderson&re=1>
“선교사 사전”,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 자료 DB,
“찰스 사우어의 생애와 목회 활동 그리고 사상”, 정연이네 집 네이버,
“한국전쟁의 상흔; 철원의 조선노동당사와 교회”, 당당뉴스,
3. 논문
DBpia, Kiss 등 여러 군데에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2019-07-02 09:27:23
121.xxx.xxx.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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