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Johnson, Walter Virgil(1873-1903, NP) / Johnson, Emily Hartman(1876-1903)
 작성자 : 이범석_임찬미  2019-07-02 09:56:47   조회: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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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터 V. 존슨 선교사 / Johnson, Walter Virgil (1874-1903)

I. 기본사항
1. 이름: Johnson, Walter Virgil / 존슨, 왈터 V
2. 생몰연도: 1874.8.30.-1903.3.18.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주리 출생,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4. 한국선교기간: 1903.2.12.-1903.3.18
5. 연표
1874년 8월 30일 미국 미주리에서 출생
1898년 파크대학 졸업
1901년 오번 신학교 졸업
1902년 중순 워싱턴에서 목회
1903년 2월 12일 홀로 내한 미국 북 장로회 선교사로 한국 선교를 자원하여 내한함
1903년 3월 천연두 병으로 소천
6. 가족사항부인: 에일리 H. 존슨 (Johnson, Emily Hartman) - 존슨 목사 부부는 한국에 선교사로 부임하기 위하여 미국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항해 중일 때, 부인은 귓병(化膿, Abscess)을 앓게되었다. 불행하게도 병균이 뇌에 침투되어 건강이 더 악화되자 한국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1903년 1월 13일,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도중 27세에 일본 코베(Kobe)에서 숨지고 말았다.

II. 선교사 소개: 왈터 V. 존슨 선교사 / Johnson, Walter Virgil

◆ 한국을 지극히 사랑했던 선교사1900년대 초반 동아시아의 작은 땅인 조선을 많은 미국 선교사 후보생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 선교사 후보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토마스 선교사의 헌신이었다. 토마스 선교사를 보고 미국 선교사 후보생들은 자신의 선교를 조선에서 감당하길 원했다. 이때 한명의 선교사 후보생이 한국 땅에 발을 드려 놓게 된다. 미국 선교사 후보생중 한명인 왈터 V. 존슨이였다. 존슨은 사랑하던 부인을 일본 땅에 묻고 한 달 정도를 일본에 머물다가 1903년 2월 12일 홀로 내한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념하며 온갖 충성을 다하려고 다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선 땅에서 오는 도중 아내를 잃었던 상심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기로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 결심은 얼마 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조선 땅에 들와서 한 달 정도 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것을 내어 놓기 위해 찾아온 왈터 V. 존슨이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 왈터 V. 존슨은 피지 못한 꽃이 되어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묻히는 것이 아니라, 이국땅에 묻히게 되었다. 비록 한국 체재기간이 너무 짧아 그를 기억하거나 아는 이가 별로 없을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묘비에는 "Faithful unto death(죽도록 충성을 다하였느니라)"라는 기록도 있다.

◆ 미주리 사람왈터 V. 존슨은 1874년 미국 미주리에서 출생하고 자랐다. 왈터 V. 존슨은 미주리에서 자리고 거기에서 사역도 하고 학업을 하며 미주리에서 성장을 했다. 그래서 왈터 V. 존슨을 미주리 사람이라고 불렀다. 왈터 V. 존슨은 1875년 설립된 파크대학을 다녔다. 장로교와 수십년동안 협약을 맺고 운영했다. 왈터 V. 존슨의 장로교 배경은 이 시기에 만들어 졌다고 봐도 괜찮을 듯 하다. 왈터 V. 존슨은 대부분의 시간을 출생한 미주리 주에서 보냈다. 하지만 미주리를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오번 신학교를 입학하면서 미주리주를 벗어나게 되었다. 오번 신학교는 제네바 장로회 총회의 조치로 설립되었다.
◆ 고난의 시작왈터 V. 존슨은 에일리 H. 존슨(Johnson, Emily Hartman)과 결혼했다. 파크대학을 다닐 당시 서로 만나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에일리 H. 존슨은 사역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을 것이다. 왈터 V. 존슨은 오번 신학교를 졸업하고 약 1년 반 정도를 워싱턴에서 교역자 생활을 하고,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조선으로 항해를 하고 있던 중 에일리 H. 존슨이 귓병을 앓게 되었다. 조선을 들어오기 전에 일본에들려 수술을 받게 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인을 잃은 슬픈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왈터 V. 존슨은 그대로 선교 사역을 멈추지 않고 부인을 일본에 묻고 조선으로 향했다.
◆ 고난의 연속부인을 잃은 슬픔도 잠시 왈터 V. 존슨은 조선에 도착하게 되었다. 조선에 도착한 왈터 V. 존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념하며 온갖 충성을 다짐했다. 그것도 잠시 한달 정도의 선교사 준비 과업을 수행하다가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되었다. 부인과의 이별을 경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왈터 V. 존슨은 세상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 고난의 정점왈터 V. 존슨은 조선에 도착해서는 선교사역도 해보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진 것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교사의 사명을 바라보며 조선 땅으로 건너왔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살다가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 죽도록 충성을 다한 사람우리들이 생각할 때에는 뭐 선교사로와서 한 것이 있을까?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의 헌신과 복음을 전하려는 그 마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토마스 선교사가 이 땅에 발을 들이자마자 죽었지만, 토마스 선교사의 피흘려 죽음이 이 땅에 많은 선교사들을 불러 들이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는 토마스 선교사는 뜻깊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왈터 V. 존슨 역시 마찬가지이다.우리는 왈터 V. 존슨의 죽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는 것이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출생하고 자랐던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이국땅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들이 왈터 V. 존슨의 헌신을 보며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 한걸음 더
양화진 제1묘역에는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해도 한국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한국을 지극히 사랑했던 선교사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을 위해 헌신한 기간이 너무 짧아, 비록 선교의 꽃은 피우지 못하고 젊은 나이로 이 땅에서 숨졌으나, 한국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묘지에 세워진 비문처럼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겨우 한 달의 선교 준비 기간에 천연두로 인하여 29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한 존슨 선교사의 묘비에는 "贊牧師至死盡忠於上帝(존슨 목사가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하였다)"라 쓰여 있다. 그리고 독신 여성선교사로 8개월의 선교사역 기간에 급성 맹장염으로 25세에 별세한 캔드릭 선교사 묘비에는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이라는 어록이 기록되어 있다.
천의 생명이라도 모두 한국에 바치려던 켄드릭(Kendrik) 선교사에 대해서도 조사하며 알게되었다. 루비 R. 켄드릭(Kendrik, Ruby Rachel, 1883-1908)은 1883년 1월 28일 미국 텍사스에서 출생했다. 1905년 캔자스 여자 성경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남감리회에 선교사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미달로 2년을 기다려야 했다. 1년은 교사로, 1년은 대학 특별과를 더 공부한 뒤 1907년 9월 텍사스 엡윗 청년회 후원으로 미국 남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한국에 체재하는 기간이 1년도 못되었지만 황해도 개성에서 여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이 기간의 주된 일은 선교사역의 준비와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 불과하여 선교의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급성 맹장염으로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으나 1908년 8월 15일 25세의 젊은 처녀 선교사로 별세하여 양화진 제1묘역(나-6)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지에는 고향 엡윗 청년회원들이 모금하여 묘비를 세웠는데, 화강석을 조각하여 만든 비문 상단에“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만일 내게 천의 생명이 있다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이라는 인상적인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碑文)은 그가 생존시 텍사스 엡윗 청년회에 보낸 편지 속에 있었던 내용이며, 이 편지가 미국에 배달되었을 때 이 청년회는 연합 대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그들의 후원으로 한국에서 열정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켄드릭 편지에 참석자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고 난 바로 다음날 엡윗 청년회에는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켄드릭 선교사가 한국에서 별세하였다는 전보였다. 회의 참석자들 모두는 놀라고 슬퍼했다. 그러나 이 대회 참석자 중 20명이 선교사로 자원하는 놀라운 결단의 기회가 되었다. 그 후부터 텍사스 엡윗 청년회는 해마다 헌금하여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지원했다. 캔드릭은 "내가 죽거든 텍사스 청년들에게 10명, 20명, 50명씩 한국으로 나오라고 일러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2019-07-02 09: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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