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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illman, Mary R.(1870-1928, M)
 작성자 : 배제후 오신혁  2019-07-02 11:10:41   조회: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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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사항

1. 이름 : Hillman, Mary R.
2. 생몰연도 : 1870.4.21.-1928.2.1.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미감리회
4. 학력:
5. 경력:
1900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1900-06 제물포선교부에서 15년간 여성 선교사업 종사
1907- 강화, 삼산, 교동, 연안, 해주까지 순회하며 복음전도
여자사경회 조직·인도, 매일학교(Day School) 지도
1916 원주선교부로 전임, 원주, 강릉지역 선교사업에 헌신
1925 서울로 이전, 정동에서 조선예수교서회 번역 도움
1928.2.1. 서울에서 소천, 양화진에 안장
6. 가족사항


Ⅱ. 선교사 소개: Hillman, Mary R. (생몰연도 : 1870.4.21.-1928.2.1)

1. 생애 Mary R. Hillman은 1870 년 4월 21일 오하이오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링컨에서 초등학교와 그램-마르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에서 몇 년 후에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로 가서 오하이오 웨슬리란 대학을 다녔다. 그녀는 1892년 바시포드 주교가 대통령이었을 때 졸업했다. 이후 그녀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 있는 개신교 병원에서 1년간의 간호 훈련을 받았고, 뉴욕 헤르키머에 있는 폴츠 선교 연구소에서 잠시 공부하기도 했다. 그녀는 19세기의 마지막 날에 서울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이 2세기에 이르렀다고 말하곤 했다. 서울에서 몇 달 후에 그녀는 제물포에서 여성 선교회의 첫 번째 직원으로 임명되었다.
그 센터에서 지시된 일에 그녀는 생애 최고의 세월을 보냈다. 몇 년 전 그녀는 원주에 임명되었다. 이후 건강이 나빠져서 서울에 와서 한국여성을 위한 번역 작업에 마지막 해를 보냈다. 이것은 한국인과 그녀의 선교사 동료와 친구들에게 축복이 넘치는 멋진 삶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의 메시지가 어떤 식으로든 더해질 것이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회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우리의 주의를 매우 분명하게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힐만 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몇몇 친구들에게 그들이 그녀를 그렇게 사랑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첫 번째 답변 중 하나는 "그녀의 깊은 영성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대답은 진정한 통찰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더 고상한(고결한)" 분위기가 전혀 없었지만, 베다니의 마리아와 함께 주 발 앞에 앉아 주님을 알게 되고, 주의 영으로 들어가는 모든 여성에게 주어진 위대한 분명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주의 발 앞에 앉았다. 그녀의 잘 표시된 성경이 그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언이다. 그녀의 기도의 힘은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였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기도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완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깊은 영적 삶의 또 다른 증거는 그녀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이었다. 사람들이 육지와 바다에는 결코 비치지 않는 그 영광의 빛을 보기 위해 온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한 목사가 "나는 힐먼 양을 보러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얼굴은 항상 빛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님의 영광을 정직한 얼굴로 보았고, 주님의 영에 의해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뀌었다. 영적 생명과 권능의 숨겨진 샘에서 그렇게 먹이는 삶이 그녀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넘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여기에는 자기 추구와 이기적인 야심에서 비롯된 마음의 기쁨이 있었다. 그녀는 남을 돕고 축복하기 위해 살았다. 오랜 세월의 시골 여행과 성경 수업 일을 생각해 보라. 그녀의 주인처럼 착한 일을 하면서 친절과 사랑의 작은 행동들을 기억하라. "그녀를 그렇게 사랑하게 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것은 그녀의 애정 어린 동정이었다. 그녀는 완벽한 친구였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 속에 들어갔다. 그녀는 한국인들을 사랑했고 그녀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동료들을 똑같이 아름답게 사랑했다. "그녀는 시야가 넓었다."라고 한 사람이 말했다. 물론 그녀는 사랑을 보기 때문에 그랬고, 진정한 사랑은 홀로 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일을 끝내고 육체적인 병폐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서 인생에 찬란한 입문식을 갖도록 그녀에게 주어졌다. 그녀의 여행은 정말 멋졌다. 그것은 죽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러 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녀는 "생각해보니, 나는 밤중에 가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조금 후에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들어왔을 때, 그녀는 간단히 "모든 것이 준비됐어."라고 말했다.


2. 한국선교에 헌신을 보여준 힐만선교사
미감리회 여선교사. 힐만선교사는 1900년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내한하였다. 그는 제물포 선교부에 파송받아 이후 15년간 제물포를 중심으로 한 여성 선교사업에 종사하였다. 이미 제물포에는 존스(G.H. Jones)부인에 의해 여선교사업이 시작되었으나 독신인 힐먼이 부임함으로 본격적인 선교사업이 추진되었는데 1908년 이후 밀러(L.A.Miller)까지 가세하게 되자 선교사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1900-1906년 인천지방, 1907년부터 밀러 양과 같이 강화, 삼산, 교동, 연안 및 해주까지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고 여자사경회 조직, 매일학교(Day School)를 지도하였다.
힐만 선교사는 1916년 원주선교부로 전임 활동하였고, 1935년 서울로 옮겨 조선예수교서회의 번역 일을 도왔다. 또한 제6회 부인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3. 십일조회
1909년 9월, 평북 영변에서는 감리교인들을 중심으로 ‘십일조회’(Tither's Class)가 조직되었다. 돈이 아닌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기로 서약한 부인들의 모임이었다. 즉, 1년(52주) 중에 5주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고, 2주 동안 교리와 전도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후 3주 동안 ‘둘씩, 둘씩짝지어’365) 농촌으로 들어가 전도하였다. 경제력이 없는 부인들이기에 여행경비만큼은 선교사들이 지원했다. 앞서 살펴본 ‘날 연보’ 보다 한층 발전된 헌신과 전도법이었다. 전도부인들의 열기는 선교사들을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십일조회”는 다른 지역 선교사들에게도 자극이 되었다. 1910년 1월에는 평양에서도 십일조회가 조직되어 52명이 교육을 받고 자원 전도에 참여했는데 마침 백만명구령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여서 여성들의 호응이 날로 증가했다. 인천에서도 힐만과 밀러 주도하에 십일조회를 운영했다. 인천에서는 교육 내용을 십일조부인들에게만 인쇄해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피교육자들에게도 나누어 주도록 준비하였다.
2019-07-02 11: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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