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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산선교사 /Barker, Archibald H.(?-1927, CP) / Barker, R. W.(미상, CP)
 작성자 : 명순구 / 강하람  2019-07-02 11:45:59   조회: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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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벌드 바커 / 박걸 선교사 (Archibald H. Barker, ?-1927)

I. 기본사항
1. 이름 : Archibald H. Barker / 바커 / 한국명: 박걸(朴傑); ‘박걸부’, ‘바클’, ‘베이커’, ‘빠카’로도 부름)
2. 생몰년도 : ?-1927
3. 출신 및 소속 : 캐나다, CP(캐나다 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 1911-1923
5. 연표
? 낙스 대학, 토론토 대학 졸업
1909년 부인 레베카와 결혼
1911년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로 한국 입국
1912년 회령 부임
1913년 6월 -용정 선교지부 설립
-용정 중앙교회, 동산교회 설립
-은진 중학교, 명신 여학교(구_상정여학교) 설립
-제창병원 설립
1917년 (7월) 전일제 성경학원(용정 예수교회 운영 학교) 교육
1919년 간도중심 만세운동
(3월 12일) 서간도 만세운동
(3월 13일) 북간도, 용정 만세운동(사망자, 부상자 사진을 찍어 서울 선교사, 캐나다 선교본부에 보고)
*경신참변의 실상을 알려 1968년 독립장 수여받음
1920년(21년) 은진중학교 2대 교장 취임(일제가 금지한 한글과 국사 가르치며 민족의식 교육)
1923년 병으로 캐나다 귀국
1927년 토론토에서 생을 마감

6. 가족사항
부인: 바커 레베카


II. 선교사 소개

1. 1911년 복음의 불모지인 한국 땅에 온 캐나다 선교사 아치벌드 바커
캐나다에서 온 바커 선교사는 낙스 대학과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1909년 레베카와 결혼 후 2년 뒤인 1911년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의 자격으로 복음의 물모지였던 한국 땅에 방문했다. 그 후 1년 후인 1912년 회령에 부임했다. 바커가 회령에 부임한 1912년 5월은 한국과 중국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회령이 만주와 교역으로 신흥 중심지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캐나다 선교부는 1910년부터 회령에 건물을 짓고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하면서 1911년에 한국에 들어와 성진에서 선교준비를 하던 바커부부를 맨스필드와 함께 회령으로 파송했다. 이제 막 개척된 회령 선교지부는 할 일이 많았고, 바커는 교회와 학교 설립 등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바커는 새로 시작한 회령 선교지부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펼쳐보기도 전에 다시 용정지역에 개척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런 상황 변화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있었다. 간도지역은 1910년 이후 일제의 학정을 피해 수 많은 한국인이 모여들어 한국인 인구가 50만명에 육박하였는데, 이들을 위한 선교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령과 용정을 오가며 선교지부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바커는 1913년 6월에 용정선교지부를 개척했다. 캐나다 선교부의 용정사역은 원래 1907년부터 시작되었지만 바커가 선교지부를 세우고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용정은 현재 중국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이다. 두만강 건너 만주벌판에는 일제시대에 한민족이 거주하며,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용정촌(龍井村)이 있다. 용정은 나라 잃은 한민족에 의해서 황무지에 건설된 마을이 집단화되었으므로, 용정은 한민족의 결집력을 강화한 최초의 공동시설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민족 번영과 항일 독립을 위한 교육시설로 자리매김 했던 곳이다. 용정이 이러한 교육시설의 본 고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최초로 선교지부를 설립하여 교회와 학교 사역을 동시에 감당했던 바커의 열정 덕분 이었다.

2. 병원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치유의 복음을 삶으로 전했던 바커 선교사
1914년 바커 부부는 용천동동산에 제창병원을 설립했다. 이 병원은 독립운동가의 정치적 피난처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특히 이 병원의 지하실은 북간도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이 인쇄된 곳이다. 또한 간도의 만세운동 이후 일본군의 저격으로 쓰러진 애국동포의 시체안치소 및 부상자에 대한 치료소로도 이용되었다. 한편 이 병원에서는 실비진료와 더불어 빈곤자에 대해 무료 시료를 실시 했고 순회의료진료도 시행하여 오지에 있는 한인 이주촌을 찾아 다니면서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3. 학교설립에 주력한 바커 선교사
바커는 교회사역과 더불어 교육사역에 열심을 냈다. 바커 부부는 용정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여성교육을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명신 여학교와 은진 중학교를 설립했다.
명신 여학교는 바커 부부가 1913년 기존에 설립되었던 상정 여학교의 규모를 확대해 학생 158명을 모집하고 교원 12명을 초빙해서 재탄생된 학교이다. 이후 1920년에 명신 여학교는 명신 중학교로 승격되었고 1941년 광명 여학교와 통합되기까지 21회에 걸쳐 졸업생 255명을 배출했다. 지금은 용정시 제 4중학교 안에 은진 중학교 옛 터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들은 비록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고국을 떠나 이방 땅에 살고 있었지만 한반도 내에 일어난 일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30년에는 광주 학생의 반일 애국운동을 응원하기 위해 명신 여중과 광명여중 학생 수십명과 함께 시위행진과 동맹휴학을 단행했다.
그리고 은진중학교는 1920년에 민족운동가이자 목사인 김야경과 이동휘의 요청에 따라 캐나다 선교부가 설립한 학교이다. 함경도 출신의 목사 김야경은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용종 위쪽에 있는 명동 천에 들어와 명동 학교를 짓고 민족의 독립을 위한 교육과 신앙의 역점을 두었다. 이곳에서 민족의 지도자 윤동주와 문익환 등이 배출되었다. 캐나다 선교사 그루이엇슨에게 설교자 위치를 부탁한 이동휘는 캐나다 선교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강화도에서 김호재 전도사를 통해 예수를 영접한 이동휘는 이상호, 윤치호를 비롯한 YCMA의 지도자들과 같은 인물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또한 아펜젤러와 벙커와도 교분을 가지면서 신앙을 키워온 이동희는 강화도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기도 했다. 이동휘는 스스로 기독교야 말로 쓰러져가는 나라와 민족을 구할 수 있다고 기록했다. 이들의 요청에 따라 세워진 은진 중학교의 은진은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를 배운다는 뜻을 가졌다. 개학 당시에는 6명의 학생이 성경서원 건물 2층에서 수업을 받았다. 제 1대 교장으로 호투가 새로운 교사 건축에 착수했지만 휴양을 겸해 귀국하는 바람에 뒤이어 바커가 2대 교장으로 취임해 1921년 3층짜리 검은 벽돌 건물에 학교를 완성했다. 당시 보기 힘든 3층 건물은 스팀보일러로 안방을 했으며 심지어 학교를 관리하는 인부들이 있어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은진학교는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일제가 금지한 한글과 국사를 가르쳐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개교한지 20일 만에 삼일운동 1주년을 맞아 기념 의식에서 나누어줄 경문을 등사하다 교원 2명과 학생 20여명이 체포 구금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은진 중학교는 간도지역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일제 강점기에 견디다가 1941년 캐나다 선교사들이 간도에서 철수하면서 일본인 교장이 부임하게 되어 우리말 교육은 전면 금지되고 심지어 체육활동 대신 군사훈련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은진 중학교는 1946년 결국 용정의 다른 학교와 통합되면서 용정 제3국민 고등학교로 재편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 바커와 함께 용정에서 사역했던 사람들
바커는 용정 선교부 선교사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사역하지 않았다. 바커가 사역 할 당시에 그리어슨, 마틴, 스코필드가 함께 한국 땅에서 산발적으로 사역을 도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에 대한 미국 선교사와 캐나다 선교사들의 태도가 달랐다. 왜냐하면 미국은 일제와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맺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지배에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따라서 미국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자유로웠던 캐나다 선교사들은 아주 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도왔다.
그리어슨은 일본을 하나님의 뜻에 대적해 일어난 사탄의 앞잡이로 지탄하며 설교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독립정신을 고취 시켰다. 그리어슨은 성진에서, 스코필드는 서울에서 독립 운동을 도왔고 바커와 마틴은 함께 용정에서 사역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이들 사역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병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데 있다. 외국인이 세운 치외법권 지대인 병원은 일제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독립운동 물밑작업을 하도록 도와주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한편, 독립운동가들을 숨겨 주기도 해 선교사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바커와 마틴이 도와준 용정의 만세운동은 만 명 이상이 모여 역대 만세운동 가운데 규모가 제일 컸다. 성진에서 만세운동 다음날 전교인이 감옥에 갇히자 그리어슨은 오랫동안 종을 쳐서 감옥에 있는 교인들이 종소리를 듣고 힘을 얻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스코필드는 세브란스 병원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의 민족대표가 33인인데, 스코필드 박사를 포함 34인이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깊이 독립운동에 관여했다. 특히 제암리 학살사건을 포함, 일제의 만행을 사진으로 찍어 세계에 타전해 널리 알렸다. 캐나다의 한인들은 스코필드 박사의 업적을 기려 2011년 토론토 동물원에 이 분의 동상을 세웠다. 동상 제막식에는 전 국무총리 정운찬 씨가 방문했는데, 이 분을 포함 고 김근태 씨 등이 그 분의 제자이기도 하다.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의 잔악한 압제는 도를 더 해갔고 모진 핍박 속에서도 캐나다 선교사들의 사역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바커가 1911년에 용정으로 와서 선교지부를 개척하고 홀로 사역한 후 3년이 지난 시기인 1914년에 원산을 근거를 두면서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순회 전도활동을 하던 “푸트”“푸트”(W. R. Foote)가 용정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5년 의료선교사 “마틴”(Martin)이 합류해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용정 외곽에 있는 동산언덕을 구입해서 선교사 사택과 병원, 학교와 예배당을 점차 지어갔다. 이 언덕은 영국사람이 살던 언덕을 줄인 말인 “영국더기”로 불렸는데 이는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들이 영국국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5. 항일 운동가 아치벌드 바커
1919년 3월 13일 간도지방에서 해란강반에 ‘봄 우뢰’로 불리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국내에서 3·1운동의 거센 물결이 일어나자 간도 지방에서도 이에 대한 반응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 된 것이다. 간도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2일서간도 지방의 중심지인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와 통화현 금두(通化縣金斗)에서 독립선언축하회를 개최하고, 만세시위운동을 벌인 데서 비롯되었다. 북간도 지방의 만세운동은 다음날인 3월 13일, 이 지방의 중심지이고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는 용정(龍井)에서 처음 일어났다.이날 정오, 천주교회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용정 북쪽의 서전대야(瑞甸大野)에는 1만 명 가량의 한국인이 모여들었다. 용정의 한국인은 거의 다 참석했고, 부근 1백리 안의 동포가 거의 다 모여들어 독립축하회 식장의 넓은 뜰을 꽉 메웠다.독립축하식은 김영학(金永學)의 ‘독립선언포고문’의 낭독으로 시작되었고, 축하회를 마친 군중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앞세우고 만세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이러한 배경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1913년 용정 선교지부를 설립한 바커가 건설한 주택과 선교부지는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지역이었기에 이후 독립운동을 ‘모이’하는 장소로 종종 활용되었다.
독립만세운동이 간도에서 일어났을 당시에 일본은 ‘맹 부덕’이 이끄는 중국군을 사주해 한인들의 시위를 진압했는데, 이 때 진압군이 군중에게 총을 발사해 17명이 죽고 30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바커는 일제의 만행에 침묵하지 않고 현장에 있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사진을 찍어 서울에 선교사들과, 캐나다 선교본부에 보냈다.이러한 용감한 바커의 행동은 캐나다 선교사로 1919년 서울에서 열린 3일 독립만세 현장을 사진 찍어 전 세계에 알린 후 프랭크 스코필드의 기질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바커는 용정에 부임해 제창병원을 돌보던 마틴과 함께 부상자들을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했다.
중요한 점은 제창병원 지하실에서 바로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이 인쇄된 것이다. 마틴 선교사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사상자의 몸에서 빼낸 탄환이 일본제 탄환임을 확인하고 중국군 배후에 일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대한민국은 바커와 마틴이 일제의 악행을 폭로한 공로를 인정해서 1968년 그들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했다.

6. 가족과 일생을 받친 윌리컴 바커 선교사
용정에서 평생을 사역하던 바커는 1923년 병에 걸려 캐나다로 귀국해 1927년 토론토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1929년에 그의 아내가 다시 한국에 입국해서 원산에 있는 성경학교에서 교장으로 활동하며 계속적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레베카는 바커의 유일한 가족이자 사역 동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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