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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ourns, Beulah Vernon(1906-1990, UCC)
 작성자 : 김지호, 이영섭  2019-07-02 15:35:35   조회: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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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수(普恩授) 선교사 / Bourns Vernon Beulah(1906-1990)

3-2 김지호, 이영섭

Ⅰ. 기본사항

1. 이름: Beulah Vernon Bourns / 뷸라 V. 번스 / 한국명: 보은수(普恩授)
2. 생몰연도: 1906.3.28.-1990.3.28
3. 출신 및 소속: 캐나다, 캐나다 선교회(UCC, United Church of Canada)
4. 한국선교기간: 1932-1974
5. 연표
1906.03.28. 캐나다 뉴브런즈윅 해블록에서 출생
1929. 위니펙(Winnipeg) 종합 병원 간호사 교육 프로그램을 졸업
1929. 캐나다 선교회 병원에 간호사로 입사
1931. 토론토에서 1년 동안 선교활동 준비
1932. 선교회 간호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
1933. 만주 링진센에 있는 작은 병원에 배정
1934. 평안도 회령에 배정
1938-1939 첫 휴가로 캐나다 귀국, 매니토바 대학에서 공중보건 교육을 받음
1939 휴가 도중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한국으로 돌아옴
1942.6. 제혜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압력으로 캐나다 귀국
1942-1945. 브리티시 콜럼비아에 위치한 레이크 병원으로 배정
1945. 알버타에 있는 포노카에서 정신 의학을 공부, 매스슨으로 발령
1948.10. 다시 내한하여 의료선교 지속
1950-1951. 난민 캠프에서 사역
1951. 6.25 한국 전쟁 때 부산 거제도에 임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활동, 고아원 설립
1957.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간호학과 교수, 간호부장 고문으로 봉직
1962.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음
1970. 장학기금 일백만원을 헌납하여 “번스 장학기금”이 운영됨
1974.4. 영유아 건강관리소 운영기금으로 171만원을 헌납
1974.5. 교수 은퇴
1974.12. 연세대 간호대학 최초의 명예교수로 추대
1974. 은퇴 후 캐나다로 귀국
1979. WGH 간호사 협회로부터 주빌리 상을 받음
1990.3.28. 84번째 생일에 캐나다에서 별세, 양화진 제2묘역(마-3)에 안장
1991.3.28. 연세대 간호대학 구내에 번스선교사 1주기를 맞이하여 동상을 만듦
6. 가족사항부모: Robert Wilson Bourns, Pearl Olivia Mullin.

II. 선교사 소개: 보은수(普恩授) 선교사 / Bourns Vernon Beulah(1906-1990)

1. 연세간호대학 최초 명예교수, 파란 눈의 천사 번스 선교사
번스(Beulah Vernon Bourns, 1906-1990)는 한국에 마더 테레사이었다. 환자들을 돌봤고, 가난하고 어린 아이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녀가 한국에 처음 입국한 1932년부터 은퇴 후 캐나다로 귀국 한 1974년까지 42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였고, 1950년부터 1953년까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국권이 회복되는 시기였고, 한국 전쟁 이후에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복음은 말로만 전해질 수 없었고 전인적인 사역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 사역에 제격이었던 사람은 번스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위니펙 종합 병원에서 간호사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했고, 캐나다 선교회의 파송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함경도 지역에서, 한국 전쟁 당시에는 부산에 임시로 세워진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후에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교수로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녀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고아들, 영유아에 관심을 가졌고, 당시에 고아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영유아의 건강관리에 기초를 놓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상으로는 1962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연세대학교 최초의 명예교수로 추대를 받았다. 그녀는 복음으로 환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끌어안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2. 캐나다 장로교회 소속 간호사
번스는 캐나다 뉴브런즈윅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3000km정도 떨어진 위니펙에 있는 위니펙 종합병원 간호학교(Winnipeg General Hospital School of Nursing)에서 공부했다. 양화진 선교문화신문에 따르면 번스는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그녀는 1887년에 세워진 위니펙 종합병원 간호대학에서 1929년에 학위를 받았고, 1938-1939년에는 매니토바 대학에서 공중보건을 공부했고, 1945년에 포노카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한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1929년 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해포드에 있는 선교회병원에 간호사로 입사하였다. 이후 1931년 1년 동안 토론토에서 선교사역을 준비하였는데, 그것 때문에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알려진 것 같다. 그녀가 언제부터 선교의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간호사로 2년을 일한 후, 그녀는 선교사로서 준비기간을 가졌다.

3. 만주와 함경도에서 사역한 간호 선교사
그녀는 1932년 함흥 제혜병원에 교장이었던 아다 샌들(Ada Sandell)이 휴가를 가게 되어 간호사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캐나다 선교회 소속으로 한국에 파송되었다. 1933년에는 만주 지역에 작은 병원에서 공중보건을 가르쳤고, 엄마와 아기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정한 복음을 알았다. 간호 선교사로서 공중보건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가난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던 엄마와 아기를 돌보았다. 1934년에는 함경도 회령에 배정되었고, 그곳에서 공중보건을 계속해서 가르쳤다.
회령에서 사역했던 캐나다 선교사로는 도널드 맥도날드(Donal A. Mcdonald), 토마스 맨스필드(Thomas D. Mansfield), 에드나 맥렐란(Edna L. McLellan), 윌프레드 버빗지(Wilfred A. Burbidge), 마가렛 버빗지(Margaret P. Burbidge)가 있다.
함경도에서 6년 동안 사역을 했고, 수레, 말, 기차 등의 수단을 통해 만주 경계와 평안도, 함경도를 순회하였다. 이는 선교지 조사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녀는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매월 30-36개의 아기 클리닉을 포함한 공중보건, 간호교육, 엄마 교실, 요리, 바느질 수업 등을 수행했다. 전인적인 사역을 계속 해 온 것이다. 1938-1939년 첫 휴가 때 캐나다로 귀국하여 매니토바 대학에서 공중보건을 공부하였고, 한국 선교사역 모임에서 연설을 하였다. 한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자신이 공중보건에 대하여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을 휴가 기간 동안에 실천하였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다 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휴가 도중에 일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일본군에 의하여 7개월 가택연금을 당했다. 후에 미국과 캐나다에 잡혀있는 일본 군사들과 포로 교환으로 송환되었다.

4.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번스
송환된 후에 캐나다에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그녀는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 있는 레이크 병원에서 사역을 하였고, 1945년에는 포노카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였고 온타리오 병원으로 발령받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의료선교 사역을 위해 공부했다.
1948년 한국인들의 특별한 요청에 따라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사를 훈련시키는 일과 그 외에 일들을 감당하였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한국의 간호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공부해오던 그녀는 한국의 간호교육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북한군이 침공하는 동안 서울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서양 여성이자 유일한 캐나다인이었다. 그녀는 수 백 명의 고아들과 난민들의 대피를 돕는 난민캠프에서 사역했다.
서울에서 결국 부산 지역으로 내려가 부산에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는 것과 거제도를 피난처로 만드는 일에 동참했다. 번스는 희귀 질병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그들이 자랄 때까지 돌보았고, 나중에 아기 클리닉으로 통합된 우유방과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아무도 돌보지 않고 포기했던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봤다. 이는 그녀의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준다. 그녀의 선교사역은 사변적이지 않았다. 매우 실천적이었다. 우유방과 고아원을 설립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5. 한국 전쟁 이후에 모습
세브란스 병원은 연세대학교의 일부가 되었고 1957년부터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간호학과 교수와 간호부장 고문으로 겸임하여 봉직하였다. 후에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의 명예교수로 임명되었고, 자신의 모교인 위니펙에서 명예상을 받았고, 1962년에는 한국 대통령에게 공로상을 받았다. 그녀는 1970년대에 장학기금 일백만원을 헌납하여 대학에서는 “번스 장학기금”으로 운영하였다. 그녀가 세운 우유방은 소득이 낮은 가정의 영유아에게 우유를 무상으로 급여하며, 건강관리에 주력하였다. 이는 나중에 “영유아 건강관리소”로 발전하였다.
1974년 은퇴 이후 매니토바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고, 그녀는 퇴직금을 기부하여 세브란스 병원에 예배당이 지어지도록 하였다. 1979년에는 WGH 간호사 협회로부터 주빌리 상을 받았고, 1990년 3월 28일 자신의 84번째 생일에 사망하였다.
그녀가 죽기 전 2주 동안 한국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푸른 눈의 천사”라고 불렀던 번스의 침대 옆에서 기도로 함께 하였다. 한국에 있던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그녀의 유해는 서울 양화진 국제묘지에 묻혀 있다.
그녀의 추모 1주기인 1991년 3월 28일에는 추모사업으로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구내에 동상을 만들어 벽면에 부착했다.
2019-07-02 15: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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