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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Jensen, Anders Kristian(1897-1956, M) / Jensen, Maud K.(1904-1998, M)
 작성자 : 강동구, 강성진  2019-07-02 16:44:19   조회: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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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sen, Anders Kristian(1897.3.14.-1956.11.20.)

Ⅰ. 기본사항

1. 이름: Jensen, Anders Kristian
2. 생몰연도: 1897-1956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 선교기간: 1927.8.-1956.11.20.
5. 연표

1897.3.14. 덴마크 네스보그(Nesborg) 출생, 이후 초등학교 졸업후 전자회사에서 일함.
1914.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1차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에 입대.
1918.11.11. 1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미국 시민권 받음.
1924. 아이오와주 코넬 대학 졸업.
1927. 보스턴 대학 신학부 졸업.
1927.8. 미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1928.7.13. 부인 Jensen, Maud Keister과 결혼. 샌프란시스코 그레이스교회에서 남편 과 함께 1년간 사역.
1929. 내한하여 인천을 중심으로 서해안과 동해안의 섬까지 사역.
1934. 안식년으로 귀국.
1935. 다시 내한하여 수원, 인천, 원주, 서울 등지의 순회 선교사로 시무.
1940. 일본 정부의 주한 외국인 추방령에 의하여 추방당함.
1945. 해방 후 다시 내한하여 서울에서 사역함.
1945.6.24. 개성으로 출장1945.6.25. 6.25전쟁 발발, 개성에 있는 선교사들과 함께 공산군에 납치됨. 3년간 북한 군의 포로가 되어 억류생활을 하고, 평양에서 압록강(만포진)에 이르는 “죽 음의 행렬”에 참가.
1953.5.14. 휴전으로 석방되어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뉴욕에 도착함.
1954.10. 부인과 함께 다시 내한하여 한국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재건하려는 교회와 동역하며 전후 복구사업과 모금활동에 진력함. 한국 교회를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미군 부대를 돌면서 그의 체험을 통한 공산주의 비판강연을 계속함.
1955. 연세대한 재단이사로 활동.
1956.11.20. 한국을 방문한 ‘미국고문단’일행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회담을 마치고 귀가 중 심장마비로 별세.
1956.11.23. 정동제일교회에서 그를 추모하는 교인들과 민간인, 그리고 군인들이 모인 가 운데 성대하고도 엄숙한 장례식을 치른 뒤 양화진 선교사 묘지 제1묘역(자 -2)에 안장됨. 묘비에는 요한복음 15장 13절의 첫 부분을 기록했음. 그리고 그 밑에 “Because man goeth to his long home, and the mourners go about the streets. Then shall the dust return to the earth as it was and the spirit shall return unto God Who gave it(사람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은 거리를 왕래하며, 육은 여전히 땅으로 돌 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라 기록되어 있음. 한국 감 리교회는 그의 한국민족을 위한 헌신적인 선교생애를 높이 평가하여 정동제 일교회 안에 젠센관을 건축하고 그의 흉상과 추모글을 새겨 기념하고 있음.
6. 가족사항
부인: Jensen, Maud Keister. (1904.9.27.-1998.10.12)
딸: Jensen, Clair Lee (192910.11.-1996.2.16.).
아들: Jensen, Philip


Ⅱ. 가족사항

1. 부인: Jensen, Maud Keister. (1904.9.27.-1998.10.12.)

* 연표

1904.9.27. 미국 뉴저지 주 뉴 컴벌랜드 출생, 이후 고향에서 초중등교육과 전 문학교를 마친 후 펜실베니아 버크넬대학교를 졸업 후 교사, 사무 직원, 비서 등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며 선교사의 꿈을 키워감.
1926.5. 선교사로 내한하여 2년간 미국 북감리교 한국 선교부 회계 간사로 활동.
1928.7.13. 남편 Jensen, Kristian Anders와 결혼.
1929.여름. 인천을 중심으로 서해안과 동해안어촌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본격 적인 선교 활동.
1940. 일본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된 후, 미국 드루신학교에서 신학 공부에 전념.
1945. 남편은 선교지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미국에 남아 자녀 교육과 학업에 전념.
1954. 세 번째로 남편과 함께 내한.
1956. 남편의 순직 후에도 한국에 남아 1969년까지 선교사로 헌신함. 연세대학교 와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활 동을 펼쳤음. 감리교의 첫 공직적인 여성목회자로 인정.
1960.12.3. 안식년 기간 중 미국 전역의 교회를 돌며 선교 헌금을 모아 정동제일교회에 젠센기념관을 건축하여 청소년을 위한 교육관으로 봉헌
1969. 43년간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
1978. 74에의 나이에 드루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이수
1998.10.12. 별세, 남편과 딸이 먼저 잠들어 있는 양화진에 묻힘.

2. 딸: Jensen, Clair Lee (192910.11.-1996.2.26.)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외국인학교 오랫동안 교사와 교장을 지낸 후, 미국 뉴저지에서 평생을 사회사업가로 복지와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였다.

3. 아들: 아들: Jensen, Philip
미국에서 교수와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였다.


Ⅲ. 선교사 소개

필자는 참고 문헌의 서적을 중심으로 젠센 선교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젠센 선교사에 대하여 깊이 조사하기 위해서 출신 학교와 교단 등을 포함한 여러 웹사이트를 조사하고, 젠센 기념관이 있는 정동제일교회 등에도 정보와 도움을 요청해보았으나 본 글 이외의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선교사의 삶과 사역의 개괄적인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의 삶을 깊이 있게 소개하고 평가하는 데에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국을 향한 그의 마음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한국 근대화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사랑한 선교사

한국 근대화 과정 가운데 가장 큰 두 상처의 사건을 꼽는다면 바로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젠센 선교사가 한국에서 사역했던 1928년부터 1956년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아픔을 겪는 시대였다. 동시에 한국 기독교가 가장 핍박받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불길을 이 땅에서 결코 꺼지지 않았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졌다면, 젠센 선교사와 같은 선교사가 있었기에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복음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젠센 선교사는 우리나라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게 겪은 선교사였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국내에서 사역하던 도중 그는 두 차례나 큰 어려움을 겪었다. 먼저 1940년 일본 정부의 외국인 추방 정책에 의해 그와 그의 아내, 자녀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1945년 해방 직후 젠센 선교사는 다시 돌아와 한국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어린 자녀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내와 자녀와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서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아내 마우드 젠센 선교사도 미국에서 자녀 교육에 힘쓸 뿐만 아니라 신학을 배우기에 힘쓰며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였다.
그가 겪었던 두 번째 어려움은 한국전쟁 시기에 3년간의 포로 생활이다. 1950년 6월 24일, 한국 전쟁 발발 전날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가 개성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곧바로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고문과 핍박의 3년을 겪었다. 정전 협약 이후 그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지만, 미국에서도 한국교회를 위하여 모금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포로생활로 많이 쇠약해진 몸으로, 이제는 아내와 함께 다시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였다. 1차 세계대전 시기에 미 육군으로 참전했던 그는 잘못된 공산주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2년여간 전국을 순회하며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와 한국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힘쓰다가 과로로 순직하게 되었다.
젠센 선교사의 삶을 보면,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과 이어진 전쟁으로 완전하게 무너진 한국을 향한 복음의 사명을 위하여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쫓겨나는 상황 속에서도 몇 번이고 계속해서 한국에 돌아오며, 결국 한국 땅에 영광스럽게 묻혀있다.

2. 한국을 위해 헌신한 가정

젠센 선교사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었다. 젠센 선교사의 아내 마우드 젠슨은 감리 교회에서 완전한 성직자의 권리와 회의 회원권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었다. 젠센 선교사의 아내 마우드 젠센 선교사는 미국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을 만나 한국에 가려고 결단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을 향한 선교의 꿈을 결혼 전부터 꾸고 있었고, 한국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던 중 남편 젠슨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가르치는데에 힘쓰는 선교사였다. 그녀는 1930년대 초, 한국에서의 초기 사역 기간에 남편의 선교사역을 돕는 한편 한국인 목회자 부인들에게 기독교 진리와 가정관리 등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일본 정부로 인해 한국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미국에 건너가 신학을 배우는데 힘썼으며, 자녀를 바르게 가르쳐 사역자로 양육하였다. 1954년 다시 한국에 와서도 남편과의 사별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한국에 남아 연세대학교와 감리교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서 가르쳤다. 은퇴 후에도 드루 대학교에서 74세의 나이에 철학박사를 받는 배움의 열정을 보였으며, 미국 전역의 교회를 돌며 선교 헌금을 모아서 한국의 청소년을 위해서 젠센 기념관을 봉헌하였다.
이러한 젠센 선교사의 열정적인 사역과 사랑의 가르침으로, 한국 교회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귀한 열매들이 있었다. 딸 클레어 리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외국인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사와 교장으로 힘쓰며 기독교 교육에 이바지했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복지와 장애인을 위해 여생을 헌신하다가 양화진에 묻혔다. 아들 필립도 미국에서 교수와 감리교 목사로 헌신하였다.
2019-07-02 16: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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