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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rown, Arther Judson(1856-1945, NP)
 작성자 : 김재준 / 김재현  2019-07-02 17:24:52   조회: 799   
 첨부 : 기말보고서_3-2_039_김재준_김재현.hwp (8890880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Brown, Arthur Judson / 아서 브라운
2. 생몰연도: 1856. 12. 3 - 1963. 1. 11
3. 가족사항: 배우자 - 제니 토마스 (jennie Elizabeth Thomas)
4.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NP)
5. 한국선교기간: 1901년, 1909년 한국 방문
6. 연표:
•1880년: 워바쉬대학 학위 수여 (B. A.)
•1883년: 레인신학교 졸업
•1886년: 워바쉬대학 학위 수여 (M. A.)
•1890년: 포틀랜드시 자선위원회 위원장
•1895-1929년: 사무 총장 (나중에는 장로교 임원으로 봉사)
•1896년: 북미 대외 선교 대회 참석
•1898-1900년: 에큐메니칼 선교사 협의회 뉴욕 회원 집행위원회 의장
•1901-1902년: 아시아 선교
•1909년: 세계 여행
•1910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세계 선교사 대회 집행위원회 의장
•1910년: 프랑스와 벨기에의 개신교 교회 구제 연방 교회 협의회의위원회 차장
•1913년: 예일대학교 명예신학박사 학위 수여.
•1913-1963년: 종교 및 국제 문제위원회 (구 교회 평화 연합) 헌장 이사
•1914년: 영국 및 외국 성서 공회 외래 회원
•1914-1937년: 베이징 유니언 의과 대학 중국 수탁자 (1937년 자문위원회 자문위원)
•1915-1919년: 벨기에 아동 복지위원회 회원
•1915-1963년: 미국인 명예의 전당에 선정.
•1917년: 북미 대외 선교 회의 의장/ 국제 연맹 비회원 협회 명예 부통령
•1918-1940년: 헝가리 집행위원회 위원장
•1919년: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의 황폐화 된 지역에 개신교회 구호위원회
•1920-1937: 미국 종교 및 소수 민족위원회 의장/ 1937년 명예 회장.
•1920년: 미국 연방 교회 협의기구 대표단 대표
•1921년: 국제 선교 협의회 주최자
•1924년: 미국-일본 관계위원회 위원
•1925년: 스웨덴 스톡홀름 생명과 일에 관한 범세계적인 기독교 회의 합동 회장
•1928-1936년: 제네바 본부 의장
•1927년: 세계 신앙 질서 회의(스위스 로잔) 대표단
•1931-1936년: Save the Children 명예 회장
•1933-1937년: 장로교와 개혁 교회의 국제 세계 동맹 부회장
•1937년: 유진 필드 소사이어티 (국립 문학 협회) 회원


Ⅱ. 선교사 소개 (Arthur Judson Brown)

1.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의 신학 사상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선교사는 미국 북장로회 해외 선교부 총무를 오랫동안 역임하였다. 1895년 해외선교 총무로 임명되어 1929년 은퇴할 때까지 34년간 전 세계를 무대로 해외 선교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의 신학 사상은 그가 살아온 흔적들을 보며 알 수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힘썼던 것과 한국에 들어온 청교도적인 신학 사상을 비판했던 것으로 보아 진보적인 입장에 서있던 것으로 보아 진보주의 신학사상을 가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보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중간에 위치한 중도주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브라운은 19세기와 20세기의 에큐메니컬 및 세계 선교 운동의 선구자로 기억 될 것이라는 평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주목할만한 직책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브라운의 신학 사상은 레인신학교의 영향을 받아 개방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레인신학교는 미국 장로교가 보수적인 구파와 진보적인 신파로 나뉘어 갈등할 때 진보적인 입장에 섰던 학교이기 때문에 브라운 선교사는 이에 영향을 받아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 개신교의 전통과는 다르게 그리스도를 최고 권위로 삼았고, 성경이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입장에 서있던 여러 신학교들과 달리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입장에 서있던 레인신학교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며 B. A. 와 M. A. 두 개의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신학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 선교사는 1911년까지의 선교사들에 대해 신학과 성경 비평학에 있어서는 강한 보수주의였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전천년설적 견해를 아주 중요한 진리로 생각했고 고등 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은 아주 위험한 이단으로 생각했다고 말하며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계 어느 나라 선교사들과 비교할 때 매우 탁월한 자들이었고 신학적으로 매우 건전한 자들이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운 선교사는 이러한 신학을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브라운이 바라본 선교사들은 청교도 형의 신앙을 가졌고 주일성수를 중요시 하였으며 춤이나 흡연, 카드놀이 등을 죄악시하였고 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전천년설을 따르고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이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위험한 이단으로 보았다며 지적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연히 이러한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신학과 신앙 역시 지적하기도 하는 브라운 선교사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진구는 이러한 브라운 선교사의 신학에 대하여 보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도주의로서의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
더 나아가 아서 브라운 선교사는 청교도적 패러다임을 비판하는데, 이러한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 초기 모습을 비판하기도 한다. 타계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과 보수적인 교리적 배타성이 한국 개신교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한국교회에서는 사회적인 책임이나 교육적, 경제적인 상황들에까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책임이나 교육, 경제 등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더욱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 선교사가 지적하는 문제점들은 반드시 재고되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복음과 교리는 강조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책임이나 개혁에는 앞장서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현 한국교회에서도 많이 놓치고 있으며 간과한다. 이 시대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복음과 교리가 선행되어야 하며, 브라운 선교사 그리고 많은 신학자, 목회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책임과 여러 영역에 대한 관심은 교회 안에서 복음과 교리를 중심으로 하여 반드시 행해져야 할 것이다.

2. 한국(조선)에 대한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의 평가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 선교사는 한국장로교 총회 설립 2년 전, 1910년에 학생자원운동의 로체스터 대회(Rochester Convention)에서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보잘것없는 이 나라(한국)가 이제 비기독교 국가들 중에서 복음화 되어 더 거대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처럼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보고는 1세기가 지난 현 시대를 보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당시 조선의 모습은 소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선교사들, 특별히 지금 살펴보고 있는 아서 브라운 선교사의 눈에는 복음을 통한 조선의 희망이 보인 것이다. 아서 브라운 선교사가 “일본인은 전쟁할 수 있고, 중국인은 일할 수 있고, 한국인은 사랑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을 통해 삼국의 개별적인 특성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도 알 수 있지만, 한국에 대한 소망을 봤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 그리고 이를 통한 사명이 아서 브라운을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사역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아서 브라운 선교사는 자신의 저서 「극동의 지배」에서 “한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신앙 형태는 1세기 전인 1700년대 말 미국에서 극복된 것이었다.”고 지적했는데 이 말은 한마디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신앙형태는 100년 전에 미국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매우 보수적인 신앙 형태였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선교사들의 신학과 신앙이 한국교회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초기 한국교회의 신학은 보수적이며 또한 청교도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한국의 신학 사상을 발전시켜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기초는 선교사들의 신학과 신앙인 것을 우리는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선교부를 오랫동안 담당한 아서 브라운 선교사가 선교사들을 위해 쓴 안내서에서 한국에 대한 사례를 언급하는데 그 가운데 한국의 언어에 대한 것과 미신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서 브라운 선교사가 한국에 큰 관심과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언어에 대한 한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처음에 해야 할 어려운 일은 언어에 관한 것이다.……그 지역 언어에 기독교의 근본적인 개념에 해당하는 말이 없을 수도 있다. ‘하느님’이라는 말이 그 지역 사당에 모셔지는 나무 우상을 지시할 수도 있으며, ‘죄’가 단순히 관습의 위반을 가리킬 수도 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를 번역하는 것은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빵이 없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안다’는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양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일본 농부에게 이 말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아서 브라운 선교사와 더불어 당시 선교사들의 고민이 무엇이었을지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전하는 내용과 본질은 동일하지만, 그 문화와 언어에 맞게 고민하여 전해야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서 브라운 선교사의 이러한 고민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도전을 준다. 복음을 접하는 대상의 문화나 생각하는 방식 등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본질 혹은 바른 내용을 전하는 것이 불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기독교 국가를 여행하는 사람의 눈앞에는 슬픈 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미신을 잘 믿는 한국인들은 길가 나무 발치에 돌을 던져 놓거나 나무에 천을 매어놓는다. 그들은 나무의 귀신이 돌이나 천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만족하는 동안 슬쩍 비켜지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 행해졌던 미신 행위들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나온 모습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신 행위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 역시 마찬가지로 당시 한국의 문화와 모습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없다면,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것에 큰 방해가 될 것이다. 미신숭배가 있던 당시 문화를 고려하고 극복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시 선교사들의 고민과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한국교회의 신학이 발전해가는 모습에 있어서 미신행위나 이러한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서 브라운 선교사는 당시 조선에 미신행위가 성행했으며 조선 문화의 한 부분이었던 점을 잘 파악하였다.
또 아서 브라운은 부산에 도착한 이후 한 달간에 걸쳐 부산, 서울, 평양 등 세 곳을 답사하면서 기록한 '한국방문보고서'(1902)에서 한국의 문제점을 정치와 선교라는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해서 분석했는데, 한국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을 매우 부정적으로 분석했다. 한국의 정치적 문제들을 허약한 정부, 타락한 관리, 열악한 재정, 외제의 범람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파산, 불안한 통화, 가난한 국민들로 보았고, 유동적인 정치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반정부적인 투쟁과 혁명에 나서는 것을 위험으로 여기고, 선교사들에게 철저한 정교분리를 강조했지만 동시에 아서 브라운 선교사는 한국선교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왜곡된 한국 국민의 자질이 기독교로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과 한국은 외국인에 대하여 중국과 같은 반외국인 감정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이며 도움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서 브라운 선교사의 ‘한국 방문 보고서’는 한국 장로교 선교회에 세 가지 정책 변화를 가져왔는데 첫째는 한국장로교의 비정치화가 가시화된 것이며 둘째는 1902년 평양신학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목회자 양성에 들어간 것, 그리고 셋째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은 설립을 인가하고 1905년에 개원하여 의료 선교를 실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서 브라운 선교사는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가지며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문화, 정치, 경제 등 전반적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의 저서(The Mastery of the far east를 중심으로)

아서 브라운 선교사는 1895년 해외선교 총무로 임명되어 1929년 은퇴할 때까지 34년간 전 세계를 무대로 해외선교를 진두지휘하며 수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그의 저서 중 한국을 주제로 다룬 저서로는 극동의 지배자(The Mastery of the far eas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저서는 그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1919년에 출간되었고 2013년 5월 15일 류대영, 지철미에 의해 번역되고 성도들의 후원으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아서 브라운 선교사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1919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이 책을 이 책을 출간하기 이전에도 필리핀, 중국, 러시아 등 각국의 역사와 정세에 대한 단행본을 여럿 출간한 바 있으며 이 책의 출간 이후에도 일본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등 상당히 완성한 저술 활동을 보여주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19세기말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급변하는 정세를 서술하고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 선교의 의의를 논한 것이다. 이 책의 기초 자료가 된 것은 두 차례에 걸친 극동 지역 여행(1901년, 1909년), 다양한 인물들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관한 기존의 연구 성과물이다. 책의 내용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 제3부까지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서술하는 데 초점을 둔 반면, 제4부는 기독교 선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 순서에 따라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 극동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타이틀을 단 제1부는 한국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개관에서 시작하여 한국인의 관습과 교육, 문학, 종교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이러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은 당시 서양인에 의해 집필된 대부분의 책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이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무지와 가난, 미신에 찌든 사람들로서 지배층과 외세에 의해 끊임없는 억압을 받아온 ‘불쌍한’ 민족이었다. 또한 한국은 학문을 중시하지만 변변한 문학작품도 내지 못했고 교육 방식은 세상에서 가장‘공허’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처럼 무력하고 절망적인 역사를 지닌 한국은 종속국의 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선교사의 도래’와 ‘일본의 지배’에 의해 한국의 운명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았다. “한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제2부는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한국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 러시아, 일본의 경쟁에 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 책의 논리를 잠시 따라가 보자. 한국은 서기 202년 일본에 의해 정벌되고 1,000년 이상 동안 일본에 조공을 바쳤는데, 조선 왕조의 개창과 더불어 충성의 대상을 일본에서 중국으로 돌리자 분노한 일본이 임진왜란(1592)을 일으켰고, 임진왜란에서는 패배했지만 300년 뒤에 일으킨 청일전쟁(1894)에서는 일본이 승리하였다는 것이 과거 동아시아의 역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하여 일본 중심의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브라운 선교사에 의하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은 그 특징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무력감을 느껴온 한국인의 경우 독특한 정신상태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덜 씩씩하고 덜 야심차며 덜 독립적이다.” 그리고 아서 브라운은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으로 바라본다. “악정, 부패, 부정, 그리고 궁핍의 시궁창”이었던 한국을 일본의 통치가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압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 예를 들면 서북지방의 기독교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제가 날조한 ‘105인사건’에 대해서는 “흥분한 경찰의 상상력과 주제 넘음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일본에 만연한 마약 및 매매춘이 한국사회로 전파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식민통치가 세계적으로는“최고의 유익”이며 한국인에게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2. 아서 브라운(Arthur J. Brown)이 한국에 미친 영향
선교행정가로서 브라운이 한국 기독교와 관련하여 실제로 기여한 중요한 공헌은 미션스쿨의 종교교육에 관한 것이다. 브라운은 일본 정부가 모든 교육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는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총독부가 <사립학교규칙>을 통해 기독교학교에서 종교교육 및 종교의식을 거행하지 못하도록 한 정책에 대해 항의하였다. 실제로 그는 북미 해외선교대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총독부 관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일본 측 논리를 반박하면서 사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을 인정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는 식민지 정책의 전반적 기조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긍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선교사와 일본 정부 사이에
‘우호적 조정’이 있기를 기대하였다. 브라운 선교사는 신앙과 종교 방면에서는 확고한 노선을 견지하려고 한 반면, 정치 방면에서는 기존의 지배 체제를 수용하려고 하였다.
2019-07-02 17: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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