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Hunt, Charles L.(1889-1950, ANG)
 작성자 : 최고선물  2019-07-02 18:08:27   조회: 706   
Hunt, Charles L.(1889-1950)
Ⅰ. 기본사항
1. 이름 : Hunt, Charles L. / 한국명: 洪葛路(홍갈로) / ANG)
2. 생몰연도 : 1889 ~ 1950.11.20. 영국에서 출생
3. 학력 : 영국 어거스틴신학교 졸업
3. 출신 및 소속 : 영국 성공회 신부
4. 한국선교기간 : 1915 ~ 1950.11.20.
5. 경력 : 1915 영국성공회 선교사로 내한, 강화에서 한국어공부
1916 부제가 되면서 충북 진천교회에 부임
1917 사제 서품을 받고, 서울대성당 소속되어 사목
1928 경기교구 총사제로 경기도지역 교회 관할
여주에 성 안나병원 설립, 가난한 농민에게 의료혜택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1946 재내한
주교보좌로 쿠퍼주교를 도와 서울의 성공회재건사업 추진
1950.7.18. 쿠퍼, 윤달용 등과 공산군에게 체포, 죽음의 행진
1950.11.20. 중강진 근방에서 사망
6. 가족사항 : 결혼은 하지 않았다
7. 논저 : 성인전; 晩小課(만소과)


Ⅱ. 선교사 소개 : Hunt, Charles(홍갈로)는 1889년생으로 더람(Durham)대학을 마친 후 아놀드와 함께 캠브리지의 성어거스틴대학을 다녔다. 그는 연극, 문학 등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서 이광수(李光洙) 등과도 교제를 가졌고 세익스피어를 공연하기도 했다.
1915년 12월 9일에는 두 명의 성직후보자로 헌트(Charles Hunt, 한국명: 홍갈로)는 아놀드(Enerst Arnold, 한국명: 안을도)와 함께 한국 선교에 참여했다. 1915-1915년에 서울 정동 장림성당에서 부제와 사제성직서품을 받았으며, 헌트는 1950년 한국동란에서 순교할 때까지 한국 선교의 중심역할을 했다.

홍갈로 신부

1) Hunt, Charles(홍갈로) 선교사 첫 배움과 사역
영국의 어거스틴신학교를 졸업하였고 1915년 한국 선교사로 내한했다. Hunt, Charles(홍갈로)는 한국과 교인들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뜨거워 가장 먼저 강화에 머물면서 한국말을 익혔다.
사랑과 열정은 곧 사명으로 이어졌다. Hunt, Charles(홍갈로)는 성미가엘신학교에서 교회사와 함께 헬렌(He-len Constance, CSP)의 도움을 받아 교회음악을 가르쳤으며, 여기에 영어와 한문고전 강의도 이루어졌다. Hunt, Charles(홍갈로)가 한글을 익히고 더 나아가 한문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성미가엘신학교에서 한문고전 강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Hunt, Charles(홍갈로)의 의료선교
성공회의 경우 의료선교활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코프(고요한) 주교가 첫 선교사업으로 병원을 개설하였다. 첫 선교 동역자로 미국 “랜스”와 외과의사 “와일스”이다. 성공회의 의료선교는 북장로교회와 똑같이 3개의 병원을 개설했다. 하지만 1895년 진료자 수는 795명으로 북장로교회의 339명보다 많았다.
Hunt, Charles(홍갈로) 또한 1928년 경기를 관할하면서 여주에 성 안나병원을 개설했다. 여주에는 특히 가난하고 병든 농민들이 많았다. Hunt, Charles(홍갈로)는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과 농민들의 진정한 친구로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베풀었다.
하지만 지금 경기도 여주에 성 안나병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료와 검색을 통해서도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과 핍박으로 당시 폐허가 된 후 영국성공회에서 여주의 성 안나병원에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라진 게 아닐까? 라는 발표자들의 논의가 있었다.

3. Hunt, Charles(홍갈로) 강제 추방과 재내한
Hunt, Charles(홍갈로)는 재내한 전에도 쿠퍼 주교와 많은 사역을 같이 이루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같이 재내한 하고 같은 시기에 강제 추방을 당했기 때문이다.
1940년 일제에 의한 강한 탄압과 핍박이 심했다. 1940년 3월13일에 성미가엘신학원이 폐교되고, 병원이나 사회사업기관들도 모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좌절한 신자들도 상당수가 교회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Hunt, Charles(홍갈로) 또한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본국에 송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종군 신부가 되어 몇 년 근무하다가 1946년 10월4일 오랜 기도와 인내 끝에 재내한 하였다.
재내한 하여 Hunt, Charles(홍갈로)는 순교하는 그 날까지 쿠퍼 주교와 한국동란으로 인해 폐허가 된 교회를 ‘새 교회’로 만들어 갔고 성공회재건사업에 집중했으며 직위는 주교보좌였다.
가장 먼저 1946년 7월8일에 1940년에 건축한 바 있는 안중교회의 성당을 축성하였고 5월 18일부터는 남한지역의 각 교회 순방에 나섰다(쿠퍼 주교와 함께). 또한 1949년 9월12일에 인천 성미가엘신학원을 다시 개원하는데 쿠퍼 주교와 함께 헌신했다.
강화읍교회 이도암, 강베드로, 이미카엘 씨의 서품 기념식에 참여한 홍갈로 신부-중간줄 왼쪽 끝

영국성공회는 선교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의 매개체로 출판물을 사용했다. 후원 모금과 선교 기금을 위해 정기간행물로 ‘모닝캄’을 발간했는데, Hunt, Charles(홍갈로)는 영국 성공회에 있을 때와 한국에 파송 되고, 추방당하고, 재내한 해서도 문서 사역을 계속이어 나갔
다.
한국 파송 이전에는 Hunt, Charles(홍갈로)를 중심으로 ‘The Guild of S. Nicho-las’rk 1928년 2월에 창간한 ‘St. Nichola Chronicle’dl 있다. 이 월간지를 발행한 ‘성니콜라회’는 한국 선교부의 일종의 청년조직으로서 회장에 Hunt, Charles(홍갈로)를 , 부회장에 영국 클러큰웰의 성구주교회 사제인 도슨이었으며, 총무와 이 잡지의 편집책임은 몽턴(Miss Dorothy G. Moncton)이 담당했다. 한국 선교의 기도와 후원을 위해 조직된 이 단체는 이 월간지를 간행하면서 헌트의 목회서신과 거니(김우일)의 연작 이야기인 ‘동상의 호랑이’(The Tiger of Tong Sang) 등을 연재하였다. 특히 이 잡지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소개를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4. Hunt, Charles(홍갈로)의 순교
Hunt, Charles(홍갈로)와 쿠퍼(구세실) 주교는 6·25사변을 목전에 둔 마지막 순간까지도 목회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다른 교파의 미국 선교사들은 이미 서울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의 상황은 ‘모닝캄’의 보고에 따르면, 선교사들이 서울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지킨다’는 목회적으로 ‘당연하고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희생은 너무 컸다. 6·25사변이 터지고 피신하라는 영국대사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인들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서울에 남아 있던 헌트는 7월3일에 총감사제로 서울에 남아 있던 Hunt, Charles(홍갈로)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었다. 한편 Hunt, Charles(홍갈로)와 쿠퍼(구세실)주교와 마리아 클라라는 평양을 거쳐 포로로 끌려가다가, 마리아 클라라는 한만국경을 넘지 못하고 기아와 추위에 지쳐 1950년 11월6일에 중강진에서 사망하고, Hunt, Charles(홍갈로)는 해창리에서 11월 20일 역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쿠퍼(구세실) 주교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
Hunt, Charles(홍갈로) 신부와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나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무서운 100마일 행군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행군을 하면서 죄의 고백기도를 했고 죄를 사하는 기도를 했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면서 가진 귀한 예식이었다.
대한성공회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전쟁 중 교회를 지켰던 순교자를 기념하여
Hunt, Charles(홍갈로)의 추모비를 제작하였다.

홍갈로 선교사 순교비



Ⅲ.참고문헌

“Doriss, Anna S.” 파트를 참고하여 작성.; 김승태, 박혜진 엮음.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대한성공회백년사 편찬위원회 편 ; 대표집필 이재정. 『대한성공회 백년사 1890-1990』. 대한성공회 출판부, 서울, 1990.
대한성공회출판부. 『사진으로 본 대한성공회 백년 <상권: 1890-1964>』. 서울: 대한성공회 출판부, 1991.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 발행인 한영제. 『기독교대백과사전 제 16권 학~힛데겔』. 기독교교문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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