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Goodwin, Charles(1913-1997, ANG)
 작성자 : 양순안 이근복  2019-07-02 18:23:28   조회: 690   
 첨부 : 내한선교사 조사과제(양순안 이근복).hwp (852480 Byte) 
 첨부 : 내한선교사 조사과제(양순안 이근복).pdf (243264 Byte) 
내한 선교사 조사 과제

선교사 찰스 구드윈(Goodwin, Charles(1913-1997 , ANG)

Ⅰ. 기본사항

1. 이름: Goodwin, Charles/한국명: 구두인/ 具斗仁/ 미국/ ANG
2. 생몰연도: 1913.05.05. - 1997.06.28.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트 출생
3. 학력: 1931 성 바울학교 졸업
1935 예일대학 졸업
1936 영국 유학, 옥스퍼드 대학 수료
1939 미국 케일브리지성공회신학교 졸업
1960 예일대학 신약학 박사학위 취득
4.경력: 1939-60 미, 영국에서 성서원전과 신약학 전동, 고전어 대가
1960.9 대한성공회 주교로 내한,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1979년까지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로 성서원전, 고전어 강의
1997.06.28.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
5. 논저: [논문] 희랍어와 한국어 발음 비교; 살아계신 예수님의 숨어있는 말씀; The Mind of the fourth Evangelist; The Meaning of judge; How Did John Tregt his source?; Om St.Paul's Idea of justification;Allrgro Ben Marcato
[역서] A.E. Hosman, 비평가의 예술

Ⅱ. 선교사 소개: 찰스 구드윈(Goodwin, Charles, 1913-1997)

1. 그의 젊은 시절
찰스 구드윈 (Charles Goodwin, 具斗仁)은 1913년 5월 5일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의 법률가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콩코드 성 바울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5년 예일대학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학자의 성품을 지니고 자랐던 그는 예일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3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밸리올대학에 2년간 유학하였다. 
성공회(Anglican, Church of England) 성직자가 될 꿈을 안고 1939년 미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성공회신학원에 입학하여 3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 성공회의 성직자(사제)가되었다. 그가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는 집안의 권유도 있었지만 세계 2차대전 말의 비극적인 상황에서 평화를 지향하는 그의 결단의 결과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1939년부터 미국과 영국에서 성서 원전과 신약을 전공하여 1960년 6월 철학(신학전공)박사 학위를 받고 고전어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히브리어, 희랍어, 아람어, 시리아어 등 고전어를 연구하였다. 그의 학위 논문은 “The Mind of the Fourth Evangelist"이고 당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2. 사제가 된 이후
미국 성공회는 예일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구드윈을 한국 성공회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평화를 사랑하던 그는 전쟁의 상처를 입고 아직도 분단의 고통 중에 있던 한국선교사로서 1960년 9월 내한한 것이다. 한국에서 그의 주된 선교사 활동은 대한성공회 서울관구 소속으로 봉직하면서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에서 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에 힘썼다. 특히 고전학의 권위자로서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성미가엘신학원’은 캐나다 성공회가 보내준 5만$의 기금으로 1957년 1만 1천 평 규모의 부지를 마련하고 유럽풍의 건물 1동을 구입함으로 시작되었다. 이 신학원의 본격적 성직후보자 교육은 1961년 9월부터 이었다. 이때 교수진은 구드윈(具斗仁) 오스틴(오수진) 등 이었다. 

3. 교수, 연구기간
연세대 신과대학에서 1961년부터 1978년까지 신약성서 전공 교수로 성경원전과 고전어를 강의했다. 그의 논문에는 <희랍어와 한국어의 발음 비교>, <살아계신 예수님의 숨어있는 말씀>등이 있다. 1974년 연세대 신과신학회는 구드윈 박사 회갑기념논문집(신학논단 12집)을 출판하였다. 그는 특히 성경원어와 한국어의 비교 연구에 공헌 하였으며, 한국어의 우수성을 입증하고자 문법적인 구사에도 노력하였다. 

그는 한국성공회에 큰 그림자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전현직 관구장인 김성수 주교와 김재헌 주교, 서울교구 정철범 주교 등 성공회의 중심 인물들을 길러냈으며, 1978년 정년으로 은퇴한 뒤 부산으로 내려가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부산대학교에서 고전어를 강의하기도 했다. 1994년 5월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로 위촉되어 다시 서울로 올라와 라틴어 희랍어 등의 고전어와 신학에 관하여 강의를 계속했다. 서울외국인교회 객원 설교자로 봉사하기도 하였다. 

4. 평가
그가 한국에서 보낸 38년간의 생활은 삶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끊임없는 학문의 연구 결과로 한국인에게 도움을 준 선교사였다. 그는 교회음악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1991년 ‘성공회성가’ 발간에 기여 하였다. 그의 위트와 유머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그는 신학자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난한 학생들과 고아들을 돌보는데도 큰 힘을 쏟았다. 그는 한국의 미술,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고, 이 땅에 평화의 진리와 사랑을 위하여 헌신한 “천사 같은 선교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스스로 아주 문법적인 정확한 한국어 구사에 노력하였으며 그의 논문 “희랍어와 한국어의 발음 비교”는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성직자로서도 사랑과 희생의 삶을 살았다. 특히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여 개인적으로 1백여명의 고아들을 보살펴왔다. 단지 경제적 도움만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하면서 사랑으로 이들을 감쌌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은 “단벌 양복에 떨어진 양말을 신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이웃에 나눠줬다.”고 말했다.
구드윈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이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가난한 이웃과 고아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사회의 역군이 된 사람들은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지에 100여명에 이른다고 그의 양아들 조용해(현재 성공회대학교 총무처 근무)씨는 증언하였다. 그는 1997년 6월 28일 별세하였으며 7월 4일 양화진 제3묘역(성공회구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1997년 9월 5일 성공회 교육선교사로 38년간 봉사의 삶을 실천하고 후학양성과 학문연구를 통해 한국기독교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미국인 고 구두인선교사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였다.
2019-07-02 18:23:28
121.xxx.xxx.174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8796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8876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21155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30656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7565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2567
1994
  내한선교사_42_Hoffman Clarence S.   3학년 2반 이상재     2020-07-08   8
1993
  내한선교사/57/McLellan, E. A.   조혜진     2020-07-08   25
1992
  내한선교사 / 49 / Keller Frank Goulding   임예창     2020-07-08   13
1991
  내한선교사/ 55/ MacRae, Frederick John Learmonth(1884-1973, AP) / MacRae, M. Hall   조동진     2020-07-08   7
1990
  내한선교사_12_Fraser, Edward James Oxley(1878-1977, CP) / Fraser, E. J. O. (Mrs.)   강예권     2020-07-07   8
1989
  내한선교사 / 18 / Goodsell Daniel A   김세현     2020-07-07   12
1988
  내한선교사 / 38 / Nelson Augustus Bryan (1)   손성원   -   2020-07-07   11
1987
  내한선교사 / 48 / Jones, George Heber   이호빈     2020-07-07   9
1986
  내한선교사 / 62 / Moore, James H.   현종훈     2020-07-07   1
1985
  내한선교사 / 9 / Forsythe, Wiley Hamilton   윤석인     2020-07-07   6
1984
  내한선교사/36/Henderson Lloyd Putnam   양승희     2020-07-07   16
1983
  내한선교사 / 58 / McPhee, Ida   주영찬     2020-07-07   29
1982
  내한선교사 / 51 / Swanson, Ererett E   김민석     2020-07-07   44
1981
  내한선교사 / 35 / Helstrom, Hilda L.   안상구     2020-07-07   49
1980
  내한선교사 / 1 / Edward Adams, Mrs. E. Adams Susan Comstock) (1)   양승일     2020-07-07   48
1979
  내한선교사 / 23 / Grove, Paul H.(미상, M) / Grove, P. H.(미상, M)   김태형     2020-07-07   60
1978
  내한선교사/24/Bigger. John Dinsmore   김정현1     2020-07-07   54
1977
  내한선교사/70/Winn, Rodger Earl   박철진     2020-07-07   45
1976
  내한선교사/ 08/ Appenzeller, Henry Dodge (1890-1953, M)/ Appenzeller, Ruth Nobel(1894-1986, M)   박제윤   -   2020-07-06   47
1975
  내한선교사 / 56 / Trudinger, Martin(1883-1955, AP) / Trudinger, M.   정다니엘     2020-07-06   43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405 / 전체 : 15,415,664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