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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Kern, Paul Bentley(1882-1953, MS) / Kern, P. B.(미상, MS)
 작성자 : 육성민 조성진  2019-07-02 18:36:51   조회: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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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언 선교사 / Paul Bentley Kern (1882-1953)


I. 기본사항

1. 이름: Kern, Paul Bentley / 알렌 / 한국명: 커언
2. 생몰연도: 1882.6.16.-1953.12.16.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33.11.14..-1933.12.
5. 연표
1882.6.16. 미국 버지니아주 알렌산드리아에서 출생
1897-1899. 랜돌프 메이컨 대학에서 수학
1905. 벤더빌트 대학 졸업, 테네시연회 입회
1905-1907. 벤더빌트에서 교직생활, 목회자 위한 통신학교 봉사
1910-1915. 내슈빌, 벨버클, 머프리스볼, 테네시에서 목회
1915. 남감리회대학교 설립 때 교수로 취임, 영어, 성서, 목회학 강의,
1920-1926 학교의 신학부장으로 임명됨
1926-1930. 텍사스 주의 샌 안토니오에서 목회.
1930. 남감리회 감독으로 선출되어 4년간 동양지역 관장
1933.11.14. 내한하여 한달간 서울, 개성의 선교사업 시찰, 한국주재 감리교회 선교사협회 조직하고 돌아감
1934-1938. 남 캐롤라이나 주와 북 캐롤라이나 주의 4개의 협의회를 주재하는 주교 됨
남북 감리회 합동 실무위원으로 활약, 교육사업에도 업적
남감리대학교와 벤더빌트 대학교, 에모리 대학교 등등에서 빈번히 강의
1953.12.16. 밴더빌트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Kern, Lucy Campbell
자녀: Kern, John Campbell / Kern, Virginia / Kern, Katherine


II. 선교사 소개: 커언(Paul Bentley Kern, 1882-1953)

1. 커언의 한국에서의 사역

커언은 1930년 댈러스에서 열린 남감리회 총회에서 중국, 일본, 한국을 관장하는 동양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남감리회의 동양감독으로서 공식적으로 총 2번(1930, 1933년)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커언이 한국에 체류한 일수는 두 시기를 모두 합해도 채 5개월이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커언의 첫 번째 방한 시기는 한국의 감리교회가 미국의 북감리회와 남감리회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고 ‘기독교조선감리회’를 창설한 1930년 12월 2일 어간인데, 1930년 7월 2일에 발행된 기독신보에 따르면 커언은 9월 즈음부터 상하이나 서울에 머무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커언의 1차 방문 시기를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상정한다면 그는 총 4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커언의 두 번째 한국 방문은 1933년 11월 14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이루어졌는데, 대략 보름 정도 되는 시간을 한국에서 체류한 것이다. 그렇다면 커언은 결국 자신이 남감리회의 동양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는 5년의 시간 동안 채 5개월도 되지 않는 4개월 15일만을 한국에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추정치일 뿐, 그의 첫 번째 한국 방문이 9월보다 늦어졌다면 이보다 더 짧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커언의 공식적인 한국방문과 체류기간을 추정하는데 도움을 준 자료는 다음과 같다, 윤춘병, 『한국 감리교회 외국인 선교사』 (서울: 신앙과 지성사, 2001), 158; 기독신보 11권 412.
하지만 그는 이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에 머물며 조선감리회가 남북으로 갈라진 미국의 감리회와 달리 하나의 연합된 자치-기구를 형성하는데 일조하였을 뿐만 아니라(1930년 12월 2일), 감리회선교사협회를 조직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와 미국의 남북감리회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를 만듦으로써 한국의 감리교회가 범우주적 감리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1934년 11월).

2. 커언을 둘러싼 역사적 신학적 배경

커언이 속해 있던 미국의 남감리회는 노예제도를 격렬히 반대하였던 북감리회와 1844년 총회를 기점으로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적인 분리 노선을 걸었다. 교단 총회의 분리 이후 대략 2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발발한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년)은 두 교단이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속에서 두 감리회는 미국 사회와 더불어 화해와 연합을 도모하는 회복의 물결에 동참하였다. 김홍기에 따르면 “남북교회들은 각각 상대방의 총회에 대표들을 파견하고, 함께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며, 합동을 위해 연방교회회의(the Federal Council of Churches)같은 기구를 만들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동예배서와 공동예식서를 만들어 1905년과 1935년에 출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홍기. (1998). 미국감리교회 형성과 발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신학과세계, (36), 63-108.
결국 두 감리회는 1935년 합동위원회를 가동하여 연합의 기초를 닦고 1938년에는 양 교단이 합동계획안에 동의함에 따라 1939년 4월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개최된 캔사스시티총회에서 ‘The Methodist Church’란 이름으로 역사적인 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특별히 커언은 남감리교를 대표하는 실무위원으로 합동위원회에 참여하였는데 이후 합동교단(The Methodist Church)에서 엡워스 청년동맹(Epworth League)과 주일학교연합회(Sunday School Boards)를 현(現) 교육총(General Board of Discipleship)의 전신인 교육부(Board of Education)로 통합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McIntyre, Dean. "Honoring Paul Bentley KErn (1882-1953) On the 130th Anniversary of His Birth-June 16, 2012." GBOD [General Board of Dicscipleship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http://gbod.org.s3.amazonaws.com/legacy/kintera/entry_3733/19/BishopPaulKern130anniversary.pdf (accessed May 31, 2014), 5. 기독교대백과사전, 14권 1163

그런데 미감리회가 남과 북으로 갈리고 다수파와 소수파로 나뉘어져 있던 분열의 시대(1844-1939년)의 한 복판에 태어난 커언은 신학적으로도 감리교 내부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상호 대립하며 응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를 살아갔다. 김홍기. (1998). 미국감리교회 형성과 발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신학과세계, (36), 63-108.
커언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이어주는 교두보이자 양자 모두를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기초로서 감리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웨슬리의 성결신학(Wesleyan Holiness Theology)에 주목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Methodism Has a Message’에서 “현대 기독교의 가장 큰 비극은 성결을 향한 열망을 상실한 것이다.”라고 탄식하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감리교 내부의 신학적 합의가 바로 이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Methodism Has a Message, 184
그런데 커언이 이처럼 웨슬리의 성결신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복음이 증거하고 있는 다차원적 성결의 개념이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사회복음(social gospel)과 보수주의자들이 힘주어 이야기하는 개인복음(personal gospel)의 연결시켜주는 고리이자 양자 모두가 뿌리를 두고 있는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언은 보수주의자로서 자유주의적인 감리교회가 범할 수 있는 극단을 ‘The basic beliefs of Jesus’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며 지적하였다.

“우리는 사회복음(social gospel)과 개인복음(personal gospel) 사이에서 하나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둘 모두를 열렬히 신봉한다. 그러나 불의하고, 비양심적이며, 포식자적인 면모를 풍기고 있어서, 지옥의 무지와 이기심에서 제조된 악마의 솥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사회구조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양심과 분노가 우리들로부터 수많은 사회개혁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우리 자신에게 사회 구조 안에 있는 교회 사역의 독특한 기능에 관하여 물어야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이 변화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 해야만 한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분주한 것’은 매우 좋지만, 그러나 이것이 복음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 개인의 영적 가치의 발현과 결부되기 전까지는, 기독교 지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Paul Bentley Kern. The Basic Beliefs of Jesus: A Study of the Assumptions Behind a Life. Nashville: Cokesbury Press, 1935. 41-42.


이처럼 커언은 웨슬리의 성결신학을 기초로 감리교 내부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합의점을 복음주의적인 신앙에서 찾고 미감리교 사이의 연합을 도모하려 시도하였다. 커언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보편적 인류가 추구하는 완전한 성결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데, 예수는 보편적 인류의 궁극적 관심이 쏠려 있는 완전한 진리와 성결의 계시자요 열망의 대상으로서 ‘교회의 연합과 범세계적 형제애(Unity and World Brotherhood)’의 좌소가 된다. 커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성의 만족을 찾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선을 갈구할 때 그것을 그분 안에서 풍성하게 발견하기 때문이며, 미를 갈망할 때 그분이 그것의 주요한 영감자요 계시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진리를 추구할 때 그들이 진리가 한 사람에게서 왔다면 그것이 ‘내가 진리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모든 차이를 관통하고, 우리의 이기적인 적대심을 잠잠하게 만들고, 가장 높으신 분을 추구하고 경외하도록 연합시켜주는, 인류의 영적 물음의 답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영혼 안에서 인간은 그들 자신의 열망 안에 있는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것들을 거울에 비취이듯이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차이들이 해소되고 우리의 연합이 성취되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대령이 되신다.” Paul Bentley Kern, The basic beliefs of Jesus, 153-155.


그런데 커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연합의 근거와 범세계적 형제애를 미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문제와 세계 선교 현장에서 자치적인 교회를 세우는 방면으로까지 적용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남감리회와 북감리회가 분열을 겪고 다시 합동을 이루는데 있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상황 속에서 커언은 “우리는 멕시코인, 슬라브인, 폴란드인, 아프리카인들을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는 한 형제로 여겨야한다.”라고 주장하였다. Paul Bentley Kern, The basic beliefs of Jesus, 164.
또한 커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연합과 범세계적 형제애를 근거로 선교지에 세워진 현지인 교회들이 서방 교회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치적인 교회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특별히 이때 커언은 자신이 동양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던 중국, 일본과 더불어 한국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이 적용됨을 밝히고 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이와 같이 새로게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국가적 배경과 영적 재능에 부합하는 양식을 따라 교회를 세우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비기독교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프로그램이나 힘 혹은 신조가 아닌 그리스도입니다. 인도인들의 애석한 심령으로부터 간청의 소리가 들려오고, 옛 조선의 외로운 강산을 따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며. 문명화된 일본에서도 고함치는 함성이 들리고, 피로 물들어 있는 중궁의 전쟁터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울고 있는 친구처럼 그곳에 흐느낌과 간청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이 한 마리만을 던지고 있습니다.” Paul Bentley Kern, The basic beliefs of Jesus, 170.


3. 커언의 한국에서의 사역 목적

커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신학적 맥락 가운데 미감리회의 연합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형제애를 근거로 범우주적인 교회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였는데, 그가 한국을 방문한 이유 역시 ‘기독교조선감리회’라고 하는 연합된 자치-기구를 한국 땅에 세우고 ‘감리교선교사협회’를 통해 범우주적인 감리교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커언은 자신의 저서 ‘A Methodist Church and Its Work’ 에서 “교재(fellowship)”, “예배(worship)”, “교육(teaching)”, “사회 봉사(social service)”를 교회의 존재 이유로 삼고 세계화(world-wide) 시대에 범우주적 교회가 이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연합된 자치 기구가 설립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Paul Bentley Kern and Worth Marion Tippy, A Methodist church and Its Work. Smith & Lamar, 1919. 7월 1일 접속.
커언은 바로 이 놀랍고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일본의 식민지에 불과했던 조선 땅에 이루기 위해 남감리회의 동양감독으로서 방문한 것이다. 비록 그의 방한 시기는 짧았지만, 그는 대략 4개월 15일간을 조선 땅에 머물며 한국감리교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가 세계의 여러 교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등한 위치에 서게 하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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