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Black, Nannie G.(미상, MS)
 작성자 : 에스더신애  2019-07-05 11:42:01   조회: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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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다가 간 아름다운 그녀
부락기(Black, Miss Nannie G) 선교사


Ⅰ.기본사항

1. 이름: 부락기(Black, Miss Nannie G 富樂寄)
2. 생년월일: 미상
3. 학력: 미상
4.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5. 한국선교기간: 1924 ~ 1949
6. 가족사항: 미상
5. 연표
1924. 내한.
1924~ 원산 루시 여학교 음악교사로 활동
1928~ 개성 호수돈 여학교 음악교사로 활동
1934~ 개성 고려여자관 관장
1940~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강제 송환
1945. 다시 내한
1949. 본국으로 귀국


Ⅱ. 기본사항 해설

부락기(Black, Miss Nannie G.)
한국 선교 역사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Morning Calm), 쇄국정책으로 인해 꽁꽁 닫혀있던 땅, 조선에 젊은 여성이 홀로 선교하러 오는 것은 아마 그녀의 인생 전체를 드리는 일이었을 테다. 필자는 20대에 서울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앞에 ‘선교센터’를 두고 한국에서는 선교 동원 및 훈련을 하는 선교단체에서 훈련팀 간사로 사역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는 20대에 조선 땅에서 순교하신 아름다운 선교사님 ‘루비 켄드릭’의 묘비가 남아있는데, ‘블랙 나니‘ 선교사님을 조사하면서 ‘루비 켄드릭’이 많이 생각났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선 땅을 섬기신 그녀를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 감리교 여선교사의 역사(1897~1990)에 보면 ‘한 줄짜리 프로필’을 볼 수 있다. 그녀는 ‘미국 남감리회 해외선교부‘ 소속이다. 또한 그녀가 1930년 ’루시 여학교‘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남감리교 1911~1930년 연회록에 한 줄 기록 정도이다. 한국 기독교대한 감리회 역사 자료실에서는 한국 감리교 여선교사의 역사 보다는 조금 더 추가된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이름은 Black Nannie G. 한국에서는 부락기 라는 이름으로 사역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한국에서 주로 했던 사역은 학교들이며, 특히 여자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 여교사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그녀가 소속되었던 남감리교의 사역의 특징으로는 사회 사업등에 중점을 두며, 학교를 많이 설립하였다. 남감리교의 대표적인 학교로는 미리흠 여학교, 원산 루씨고등학교, 호수돈 여학교등이 있는데, 부락기 선교사는 위의 대표적인 남감리교 소속의 학교가운데 원산 루시고등학교와 호수돈 여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녀가 선교하였던 루시여학교는 1903년 11월 19일 함남 원산에서 미 감리회 여선교사 캐롤에 의해 설립된 여성교육기관이었다. 남감리교의 여선교부는 당시 서울, 원산, 개성, 춘천, 철원등지에서 여성 사역을 했다. 남감리교의 선교는 성경학교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필요에 따른 선교로 그 방향을 넓혀 갔다. 1924년 자료에 의하면 음악반에 일 년 동안 출석한 사람의 수는 22명이며, 총 학생의 출석수는 725명이었다. 그 가운데 이화전문학교, 이화 유치원 사범과,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각각 한 명씩 진학하게 된다. 이후 루시 여학교를 통해 많은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이 배출된다.
그 후 그녀는 ‘개성’으로 선교지를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호수돈여학교의 선생님으로써, 그리고 선교사로써 사역을 하게 된다

호수돈 여학교 1904년 12월 4일날 여선교사인 와그너와 캐롤에 의해 12명의 학생들과 함께 시작된 여학교이다.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감리교의 특징이 선교의 초기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1930년 자료에 의하면 15명의 교사가 있었으며, 7개 학급에 293명의 학생들이 재적하였다.호수돈 여학교는 6.25때 소재를 남한의 대전으로 옮기게 된다.
이후 부락기 선교사는 개성의 ‘고려여자관’ 관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고려여자관은 1922년 5월에 시작되었다. 고려 여자관의 주된 역할은 가르침이었다. 여자들의 사회적인 위치를 높여주기 위해, 또한 사람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교육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고려여자관에서는 여자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신앙생활에 대해 가르쳤다.
한국 내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선교 활동이 막히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신사참배에 대한 강요를 하면서부터이다. 기록에 의하면 1936년 북장로교 선교부 소속의 숭실전문학교장 매륜과 9월에 귀환한 숭의여학교장 스눅을 포함하여 다수의 선교사들이 신사에 참배를 거부함으로써 본국으로 송환되게 된다. 1940년 9월 25일, 일본의 성공회 감독인 아베도 일본기독교 연맹의장은 주한 선교사 대표 30명을 조선호텔에 초청하고 그들에게 선교사들을 철수할 것을 권고하게 된다.그해 10월 10일 미국 총영사는 본국의 지시에 따라 미국 소속 선교사들과 주한 미국인들에게 철수를 권고하는 안내장을 보낸다. 10월 21일에는 미감리교 선교부 실행위원회도 전원 철수할 것을 결정하였다. 부락기 선교사 또한 1940년 본국인 미국으로 이 때 송환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후 그녀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를 하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1949년 그녀의 선교 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부락기 선교사가 어떻게 조선 땅에 오게 되었고, 이 땅에서 사역하였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혼자 원산과 개성 땅에서 교사 선교사로 이 어둠의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다가 돌아가셨다. 사진 한 장, 가족사항 조차 남아있지 않는 그녀는 참으로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예수의 향기’를 남기고 이 땅을 떠나셨다.


-내한 선교사 과제 후기

한 학기 동안 교수님의 열정적인 ‘한국교회사’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총신의 어두운 날들을 뒤로 하고 새롭게 ‘개강 하던 날’ 교수님을 통해서 들을 ‘3.1운동 100주년 의의와 사명’에 대한 말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의 ‘평양 산정현 교회’ 사진을 보며, 필자도 저 곳에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무너진 곳을 다시 보수하는 자로 살아드리고 싶다는 기도를 드리며 많이도 울었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종강하던 날, 3-1반 교실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수업이 마치는 대로 김한규 전도사님과 함께 ‘한국교회사 연구소’를 방문했습니다. 나눠주신 여러 자료를 뒤져봐도 나니 선교사님의 자료가 몇 줄 없었습니다. 막상 연구소에 가서도 선교사님의 자료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저 연구소를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며, 마치 양화진에 온 듯이 ‘조선 땅에 와주신 많은 선교사님들께 감사한 마음’만 더욱 커져갈 뿐이었습니다. 마침, 연구소에 찾아주신 교수님께서 ‘미국 남감리회 파송 기록‘을 찾는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어쩌면 현존하고 있는 그녀의 정확하고 유일한 기록인지도 모르는 자료였기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교수님의 진지한 연구 태도를 보는 짧은 순간에도 가슴 속에 뜨거운 교훈이 새겨졌습니다. 이번 과제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과 선교사님들의 헌신을 되돌아보며, 한국 교회의 남은 과업과 저의 길도 그려봅니다.
2019-07-05 11: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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