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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air, Blanche Rosa(1888-1938, M)
 작성자 : 김기쁨 , 송진형  2019-07-05 11:43:06   조회: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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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례 선교사 / Bair, Blanche Rosa(1888-1938)

I. 기본사항

1. 이름: Bair, Blanche Rosa / 베어 / 한국명: 의례(義禮)

2. 생몰연도: 1888.-1938.3.10.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1913-1938.3.10.

5. 연표1888. 미국 디모인에서 출생1902. 바나드칼리지(Barnard Collage여자대학)과 연계한 여학생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1913. 콜롬비아 대학 졸업, 미감리회 해외선교부 파송, 언니의 가족과 함께 내한, 해주,
공주, 인천지역에서 전도 및 여성 사업에 종사 1927. 서울 여자 태화관으로 이주 1929. 일본 YMCA 야간 영어학교 교사 봉직(1년) 1930. 한국 북, 남 감리회가 ‘기독교조선감리회’ 조직 1931. 첫 여성안수식(목사로 안수 받음), 태화 여자관 관장(여성사업 주력) 1933.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귀국 1934. 내한, 천안 지역 여성 사업 전념 1938. 3. 10. 별세(세브란스병원)

6. 가족사항아버지: Bair, Watson Monroe 어머니: Bair, Josephine H. (Olsen)
언니: Chaffine, Anna Bair (1883-1977)
형부: Chaffin, Victor D (1881-1916)
조카 : 모텔


II. 선교사 소개: 배의례 선교사 / Bair, Blanche Rosa (1888-1938)

1.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 로사 B. 베어 선교사

베어(Bair, Blanche R.) 선교사는 1999년 미국 디모인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했으며, 선교사의 꿈을 꾸고 언니인 안나 B. 채핀(Chaffin, Anna Bair, 蔡富仁)과 형부인 빅터 채핀 선교사와 함께 미감리회 선교부의 파송 선교사로 내한했다.
1929년경 감리교회와 신학교는 남. 북 감리교 합동운동이 추진되고 있었다. 1926년 미감리회와 남감리회 한국 연회는 비록 미국 본 교회는 아직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국에서만이라도 단일 감리교회를 조직하자는 취지를 내비쳤고, 두 교회 대표들로 ‘조선남북감리교회 통합방침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통합 방안을 본격적으로 는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미국의 두 감리교회에서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고, 1928년에 미감리회의 총회와 1930년 남감회의 총회에서 승인을 얻었다. 이후에 남북 감리교 합동에 따른 교리와 교회법을 제정한 후 1930년 12월 2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기독교조선감리회 제1회 총회를 개최하고 양주삼 목사를 초대 총리사로 선출함으로 자치교회로서 한국 감리교회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미국교회보다 9년 앞서 남,북 감리교 합동을 이룩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감리교회는 미국교회도 아직 실시하지 못하고 있던 ‘여성 안수’ 제도를 채택하였다. 곧 여성 목사 안수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15년 이상 선교사로 활동했던 남가리회와 미감리회 소속 여선교사 가운데 후보자 14명을 선정하였고, 이들은 1931녀 6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기독교조선감리회 중부, 동부, 서부, 연합연회에서 ‘정회원으로 허입’됨과 동시에 양주삼 총리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기독교조선감리회 중부·동부·서부 연합연회 회록」 1931, 35, 77쪽.


‘미감리회 소속: 마커(J.B. Marker, 1905년 내한) 샤프(A.H. Sharp, 1900년 내한), 밀러(L.A. Miller, 1901년 내한), 헤쓰(M.I. Hess, 1914년 내한), 채핀(A.B. Chaffin, 1913년 내한), 스네블리(G.E. Snavely, 1906년 내한), 헤인스(E.I. Haynes, 1906년 내한), 베어(B.R. Bair, 1913년 내한), 커틀러(M.M. Cutler, 1892년 내한)’

‘남감리회 소속: 쿠퍼(S.K. Cooper, 1908년 내한), 와그너(E. Wagner, 1904년 내한), 에드워드(L.E. Edwards, 1909년 내한), 틴슬리(H. Tinsly, 1911년 내한), 올리버(B.S. Oliver, 1912년 내한)’

베어 선교사와 언니인 채핀 선교사가 이때 여성으로 첫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먼저는 세계교회 역사상 최초 여성 목사가 한국 땅에서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 목사들이며 미국인이었던 선교사들에게 한국인 총리사였던 양주삼이 안수를 베풀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여성 안수에 있어서 한국 감리교회가 선구적인 역할을 감당했으며 이때 베어 선교사도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고 ‘자매 목사’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이다.


2. 베어 선교사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베어 선교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언니인 안나 채핀 선교사와 형부인 빅터 채핀 선교사다. 빅터 D. 채핀(Chaffin, Victor D., 蔡彼得) 선교사는 1881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1911년 6월 안나 채핀과 결혼하였고 1913년 4월 23일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채핀 부인과 딸 그리고 제저인 로사 베어 선교사와 함께 내한했다.
빅터 채핀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해서는 감리회 선교사에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소속을 바꾸어 활동했으며 경기도의 고양과 김포 지역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동사목사로 활동했다. 새문안 교회, 양평동 교회등 여러 교회를 순회 시무하였다. 선교를 활발히 하던 중에 35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였다. 경중노회록에는 채핀 선교사의 죽음과 관련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원두우(언더우드) 목사와 동사목사로 시무한 채피득(채핀) 목사가 세상을 떠나... 섭섭하고, 슬프고, 막막한 일이며 애도한다“

한편 베어 선교사의 언니인 안나 채핀(Chaffin, Anna Bair, 蔡富仁) 선교사는 1883년 9월 26일 미국 아이오와주 매닝에서 출생했으며 빅터 채핀과 결혼하여 딸 모텔을 낳았고 남편을 따라서 선교사로 내한했다. 1916년 남편과 사별하고 감리회 부인성경학원 교사가 되었으며 1920년에는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또한 베어선교사와 같은 날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가 되었고 협성여자신학교와 협성신학교가 통합되면서 부교장으로 여성교역자 양성에 힘을 썼다. 언니인 안나 채피 선교사는 베어 선교사가 별세한 이후에 베어 선교사를 대신하여 동생의 활동지에서 선교사역을 이어갔다.
채핀 부부 선교사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베어 선교사는 해주, 공주, 인천 지역에서 전도 및 여성사회사업에 헌신하였다.

3. 베어 선교사의 사역

베어 선교사는 빅터채핀과 안나채핀 선교사와 함께 1913년 내한하여 한국에 화서 공주와 해주, 서울 각지에서 활발하게 사역하였다. 특히 일본말이 유창하여 서울의 일본인 기독교청년회인 YMCA 일본 야간 학교 영어 교사로 봉직하면서 일본인 기독교 학생들의 활동을 지도하기도 했다. 언니인 안나채핀 선교사가 피아노를 전공했듯이 베어 선교사 역시도 피아노를 잘 쳤으며 예능 분야에도 재능이 많아서 여학생과 교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Yasutaro Kasaya, "Tribute to Miss Bair", KMF Jun. 1938, p. 117

베어 선교사는 서울 태화여자관 관장을 제직하면서 여성사업에 주력했다. 태화여자관은 1921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이다. 태화여자관은 미국 감리교회 여성들의 헌금과 후원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파송되었던 마이어스 여사가 초대 관장직을 담당하였다. 이 기관은 당시에 사회문제 중 가정이나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성들의 사회교육, 지도력 개발 등을 중점사역으로 다루었다. 또한 기독교가 여성의 해방과 문제해결의 기본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처지에서 여성들에게 성경을 공부할 기회를 자주 제공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베어 선교사는 당시의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고립되어 있는 여성들을 위해서 살신성인으로 사역했다. 태화여자관의 기능과 취지에 합당하게 관장직을 수행하며 여성들을 위한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베어 선교사는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에 1934년부터는 천안지방으로 파송 받아서 그곳에서도 여성을 위한 사역을 중점적으로 감당했다. <조선감리회보> 1949.6.15.; “여선교사 임명기”


4. 베어 선교사의 소천

베어 선교사는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에 사역지를 천안지방에 두었다. 그곳에서 여성을 위한 선교에 헌신하였다. 그러던 중 베어 선교사는 뇌질환을 얻게 되었다. 병세는 심각해졌고, 종종 돌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여 지방 사역자들과 교인들 사이에서는 ’괴팍한 선교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덕주, 「신석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심자가를 지다」, 신앙과지성사, 2012, 231-232쪽.
결국 베어 선교사는 뇌질환으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결국에는 1938년 3월 10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베어 선교사의 사역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 남편을 잃고 사역하던 언니 채핀 선교사는 동생의 장례를 치른 후에 동생의 선교지였던 천안지방으로 파송을 자원하였고, 그곳에서 베어 선교사가 못 다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곳에서 동생의 질병으로 인한 실수를 치유하기 위해서 헌신했으며 그곳에서 동생과 함께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사역하였다.
당시에 국내에서도 가장 열약한 상황이었던 천안지역은 두 자매 선교사를 통해서 큰 감동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다. 천안읍교회에서는 ’배의례(베어) 목사 1주기 추모식‘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추모식에서 베어 선교사가 남기고간 유산 3천 원을 천안읍교회 예배당 건축기금으로 내놓았으며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에서 보내온 조의금 2천원을 합하여 천안지방 여전도인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기금으로 천안지방회는 매년 여전도인 1명 생활비를 댈 수 있었다. <조선감리회보> 1939.4.1.; “고 배의례 선교사 추모식”

베어 선교사는 이렇게 한 알의 밀과 같이 한국 여성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하나님의 복음을 쏟아 부었으며 후에 천안지방의 복음화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이후에 천안읍교회는 3.1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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