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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Kendrix, Ruby(1883-1908, MS)
 작성자 : 서범진, 허지천  2019-07-05 11:58:12   조회: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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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켄드릭 (Ruby Kendrick)



2017222019 서범진
2017222050 허지천

1. 기본사항
출생일 : 1883년 1월 28일
사망일 : 1908년 6월 20일
출생지 : 미국 텍사스 주 플로노
한국선교지 : 개성
한국선교기간 : 1907-1908년, 약 9개월
가족사항
-부 : 존 타일러 켄드릭 (John Tyler Kendrick)
-모 : 케이트 바넷 켄드릭 (Kate Barnett Kendrick)
-형제 : 레이첼 클퍼 (Rachel Klepper), 엘렌 켄드릭 (Ellen Kendrick)

2. 선교사 소개
루비 캔드릭은 1883년 1월 28일 미국 텍사스 주 플로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존 타일러 켄드릭 (John Tyler Kendrick)과 어머니 케이트 바넷 켄드릭 (Kate Barnett Kendrick)는 미국 텍사스 남감리회 소속의 독실한 믿음의 가정이었다. 어머니 케이트 바넷 켄드릭은 루비 캔드릭이 4살 때 죽고 말았다.
소녀시절부터 불신자들을 향한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녀는 텍사스의 웹워스 청년회의 회장이 된다. 1903년 Plano High School을 졸업한 후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에 있는 Scarritt Bible and Training School를 2년간 다니게 된다. 졸업 후 텍사스 주에 있는 노스 텍사스 훈련 학교 (North Texas Training School)에서 1년동안 성경 교사로 일하게 된다. 성경 교사로 일하면서 그곳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의 조수로 봉사하였고 영원 구원에 열심이었던 그녀는 선교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905년 미국 남감리교 선교부를 찾아가 조선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하며 조선으로 선교를 보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당시 22살, 텍사스 남감리교 선교부에서는 루비 캔드릭 선교사가 선교사 파송 연령 제한에 걸려서 보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2년을 기다기고 기도하면서 그녀는 다음 해 (1906-1907) 남서부 대학교에서 선교 사업을 위한 추가적인 기술을 습득하면서 선교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07년 감리교 감독 교회의 여성 선교사 협회 (Women 's Foreign Missionary Society에서 조선에서 5년동안 봉사할 것을 파송 받아 마침내 조선의 선교사로 조선으로 오게 된다. 1907년 8월 29일에 조선에 도착한 그녀의 첫 선교지는 개성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조선말을 배우면서 언어학과 주일학교를 맡아 아이들을 교육하는 아동교육으로 선교를 시작하게 하였다.
당시 동료 선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루비 캔드릭 선교사가 조선의 여학생들에게 “내 사랑하는 조선의 동생들”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에 대한, 그리고 조선에서 자신이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조선의 여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1908년 액워스 청년회가 텍사스에서 선교대회를 열고 있을 때 조선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당시에는 조선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내면 일본을 거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선박으로 다시 미국 내에서는 육로를 통하여 수개월씩 걸려서 전달되었다. 켄드릭의 선교사활동보고는 이렇게 전달되곤 하였다. 켄드릭은 조선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하여 진지하게 글을 썼다. 조선의 기후환경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소개하는가 하면 인심이 넉넉한 조선 사람들을 극찬하면서 하루빨리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서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는 내용으로 꽉 들어찼다.
그러면서 “내게 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 편지를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엑워스 청년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한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더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런데 이튿날 루비 켄드릭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보가 도착되었다. 편지는 수개월을 걸려서 전해지지만 전보는 즉시 전달된다. 급 전보를 받은 엡윗청년회 모두는 큰 충격에 빠졌으며 대회장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그녀가 조선에서 사역을 하던 중 급성 맹장염에 걸리게 된다. 그래서 개성에서 서울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던 중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하고 만다. 1908년 6월 20일, 그녀가 조선에 들어온지 약 9개월정도 되었을 때 였다. 조선선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5세의 나이로 꽃다운 청춘을 낯선 땅에서 마감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들에게 열 명씩, 스무 명씩 조선선교사로 오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미국 텍사스로 가서 묻힌 것이 아니라 예수를 전하기 위해 왔던 이 땅, 그리고 사람들 속에 묻어달라고 하여 조선에 묻히게 된다. 이 말은 텍사스 엑워스 청년회 선교대회장에 전달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선교의 불씨를 지피기에 충분하였다.
이를 계기로 루비 캔드릭의 추모 기금이 12만 달러가 보이게 되었고 20명의 선교사로서 결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20명은 조선으로 오게 된 이들도 있지만 조선 뿐만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으로 훝어져 선교를 하게 된다.
그렇게 조선으로 온 선교사들은 루비 캔드릭을 위해서 묘비를 만들었다. 그 묘비가 지금 선교사들의 묘지공원인 양화진에 있다. 그 묘비의 모양이 포도송이 모양이다.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묘비에는 그녀가 했던 말인 “만일 내게 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치리라” 이라는 문구가 세겨져 있다. 그 이후 텍사스에서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쏙해서 선교비를 보내주고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다.
그리고 루비 캔드릭 선교사가 부모님께 마지막 쓴 편지 내용도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아버지, 어머니! 이곳은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일주일도 안 되는 서너 명이 이 나라 관리들에게 끌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곳은 토머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를 당한 땅입니다. 선교본부에서는 모두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오히려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밤에 나도 모르게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설렙니다. 어머니! 외국인들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내가 선교사 지망을 하고 출발하려던 그때, 부두에까지 나와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 많이 부탁합니다.』

루비 캔드릭 선교사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어찌보면 짧은 시간을 조선에서 선교를 하며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그런 큰 업적을 이룬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크게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 기도하며 애썼던 그 모습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감동이 되고 감사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말도 낯설고 음식도 낯설고 사람도 낯설고, 모든 곳이 낯선 곳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여학생들을 사랑했던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죽으면서까지 9개월이라는, 어찌보면 짧은 사역의 시간을 보냈지만 죽어서 자신의 고향에 묻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역했던 땅에 묻어 달라고 한 것을 보면서 얼마나 조선이라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주신 나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나라라고 생각하였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러한 그녀의 조선을 향한 사랑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엑워스 사람들도 감동하여서 많은 선교자금이 모이게 되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조선에만 선교사가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는 정말 한 알의 밀알을 통해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된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많은 업적을 남기지 못한 그녀이지만 짧은 그녀의 사역을 통해서 그 당시에 그녀와 함께 사역하며 또 복음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통해서 많은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이 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9-07-05 11: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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