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Howard, Clara(1895-1995, MS)
 작성자 : 김주향, 정유나  2019-08-27 08:53:01   조회: 774   
하워드 클라라 선교사 / Howard, Clara(1895-1995) 소개


I. 기본사항
1. 이름 : Howard, Clara / 하워드 클라라 / 한국이름: 허길래
2. 생몰연도 : 1895.08.19.-1995.12.17.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남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 1923.09.07-1964.03.05(40년 7개월 사역)
5. 연표
1895. 08.19 미국 조지아 주 캐서린 지방 출생
1912-1916 앤드류 초급대학 입학 및 졸업
1916~1919 조지아 주의 공립 초등학교 교사 생활
1919-1921 스카릿 성서대학 입학 및 졸업
1921-1923 피바디 사범대학 편입학 및 졸업, 문학사
1923.08.23 한국으로 출발(밴쿠버 B.C에서 '캐나디언 엠프레스 호'를 타고 출발)
1923.09.07 한국 개성에 선교사로 부임
1923~1925 호수돈 여고에서 영어 교사 및 호수돈 부설 5개 유치원 원장 역임
1925-1926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과 교수
1927-1928 호수돈 여고에서 영어 교사 및 호수돈 부설 5개 유치원 원장 역임
1928-1929 1차 안식년
1929-1930 유치원 원장 및 개성 미리홈 보통여학교 교장 대리 겸임
1931 전국 감리교단부설 유치원 책임자 취임 / 지도 및 장학(만주포함 102곳)
1935 기독교 가정생활운동 시작
1935-1936 콜롬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 취득
1936-1940 전국감리교단부설유치원책임자 및 전국감리교단유치원 지도 및 장학
1937.07 개성에 거주하면서 전국 감리교 유치원 교사 지도
1941 일본 총독부에 의해 강제 출국
1941-1945 미국 테네시 주 내쉬빌의 웨슬레 회관 부속 유치원 교사
디트로이트Merrill-Pamer 연구소에서 가정생활 및 발달에 대한 연구
1946.11 부산항을 통해 다시 내한
1946-1950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 교수 및 유치원장 역임
1948 ACEI 한국 어린이교육협회 창설
1950-1952 한국 전쟁으로 일본 경유 미국 거주
1952-1955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 교수 및 유치원장 역임
1953 피난민 및 빈민여성을 위한 기숙사 관리/운영
1954 어린이용 도서 '옥토끼' 발간
1955.03 기독교 가정생활운동 전개
1955.04.26 대전보육초급대학 개교 / 초대원장에 취임
1956.05.04 대전보육초급대학 문교부 인가 / 초대학장에 취임
1961.01 대던보육초급대학 명예학장 취임
1961.11.22 교육공로자상 수상(정부 수여)
1964.03.05 은퇴(40년 7개월의 한국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
1966 이화여자대학교 명예박사
1966 앤드류 대학 명예박사
1968-1995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의 브룩수 호웰 양로원 거주
1975 대전보육초급대학 창립 20주년 기념식 / 충남도지사 공로상 수상
1982 한미 친선 도모 공로자 선정(한미수교 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1995.12.17 향년 101세로 미국에서 소천


Ⅱ. 선교사 소개

1.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하여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준비된 선교사

클라라 하워드(Clara Howard, 1895-1995, 한국이름 허길래)는 1895년 8월 19일 미국 조지아 주 캐서린 지방에서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가정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하루 두 번 기도 시간을 가질 만큼 하나님의 뜻과 성경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경건한 감리교 가문이었다. 특히 하워드 가문은 인종차별과 빈부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웃을 섬겼기 때문에 자손들은 자연스럽게 봉사하는 태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워드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경건한 기독교 신앙과 봉사 정신을 함양할 수 있었다(안신, 2015).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하워드는 앤드류대학, 스카릿 성경 대학, 피바디 사범대학 등 3개의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예비 선교사로서의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앤드류 대학은 보수적인 기독교 정신을 강조하는 학교로 사회 문화적 환경에 차별을 두지 않고 봉사하는 것을 강조하여 졸업생들이 해외선교사로 지원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워드 역시 이러한 학풍에 큰 영향을 받았고, 선교 집회를 통해 인도 선교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하워드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스카릿 성경학교에서 2년간 선교훈련을 받았다. 스카릿 성경학교는 보수적인 기독교 가치관을 옹호하고 경건주의, 복음주의 신앙사상을 기초로 예비 선교사들을 훈련하는 학교였다.
이후 하워드는 피바디 사범대학에 편입하여 교육학을 전공함으로써 유치원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강화하였고, 피바디 재학시절 어느 한국 학생의 권유로 인도 선교 대신 한국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또한 하워드는 선교사 안식년을 이용하여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김윤자, 2015). 이렇듯 클라라 하워드는 정식 선교사가 되기까지 교육전문 선교사로서 철저하게 준비하였으며,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내한 선교사로서 헌신의 삶을 선택하였다.


2.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유치원 교육선교, 한국 초기의 유아교육 확립에 기여

하워드는 기독교 정신에 기반 한 교육선교를 통하여 한국에 유치원을 보급하고 한국의 유아교육 확립에 공헌한 선교사이다. 그녀는 경건주의 신앙을 소유한 선교사로서 목사 안수를 받지는 않았지만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전파의 수단으로서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20년대 당시 한국 부모들은 오늘날과 마차가지로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신교육 차원에서 유치원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 유치원 설립이 증가하였고, 특히 유치원은 상급학교에 비해 일제의 탄압이 적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말과 글로 후세대를 교육하고자 했던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기독교 유치원 설립이 크게 증가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유치원 교육 수요에 반하여 유아교육 전문가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김윤자, 2015).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여 하워드는 28세인 1923년 9월 23일 개성에 도착하여 1930년까지 호수돈 여학교 부설 유치원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1930년대에 한국 감리교단 산하 전국 유치원 책임자로 취임하여 유치원 102개소, 원아 약 5000여명, 교사 200명을 상대로 전국적인 유아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및 유치원 원장으로서 유치원의 재건에 노력하였으며 60세가 되던 1955년 4월에는 유치원 교육의 확대를 위하여 국토의 중심부인 대전에 대전보육초급대학 설립하였다. 초기 이 대학의 전체 교사 및 학생들은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제자들은 하워드의 지도를 받은 후에 모교회로 다시 돌아가 교회 부속 유치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교육자로 봉사하였다(김윤자, 2015). 하워드는 유치원 교사를 양성함과 동시에 교회의 평신도를 육성하는 일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또한 대전보육초급대학은 현재의 배재대학교 유아교육과의 전신으로 하워드의 유아교육 사상은 현재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무엇보다 하워드는 유아교육과 기독교 교육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였기에 유아교육이 기독교 선교를 위한 교두보로 사용되기를 원했다. 자녀교육에 열성적인 비기독교인 부모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김윤자, 2015). 하워드는 스스로가 체험한 구원의 경험, 기도 생활, 성경의 진리를 유치원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교사들, 학생들, 부모들에게 전파하였다. 특히 어린이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썼는데 이는 유치원과 교회 주일학교를 신앙교육을 위한 통합 교육기관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안신, 2015). 이러한 교육철학은 교회부설 유치원 설립과 양적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모범적인 기독교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기독교가정생활위원회의 사업도 진행했다. 이렇듯 하워드는 유아교육과 기독교 교육과의 완전한 통합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유아교육의 발전 방향에 시사점이 크다(김윤자, 2015).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하워드는 한국 유아교육의 질적, 양적 성장을 주도하였으며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둔 유아교육 사상을 전개함으로써 40년 7개월 동안 한국 전역에 걸쳐 교육 선교로 큰 공헌을 하였다.


3.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한 선교사

하워드는 사역 초기부터 일부 서구출신 선교사들이 가지는 우월감이나 선입관에 빠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선교활동에 임하여 한국 사람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수용하였다. 그녀는 선교지 한국과 개성에 대한 사전 정보와 훈련을 받고 내한하였지만 막상 한국에 도착 해보니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워드는 한국문화를 존중하여 한국인처럼 살았다. 하워드는 평소에도 한복을 즐겨 입었고, 온돌에 이불을 펴고 잠을 잘 뿐 아니라 된장찌개, 김치, 꽁치, 콩나물, 호박 등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면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였다(허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1996)
그녀는 한국에서 머무는 세월이 더할수록 한국의 전통 풍속과 예의범절을 존중하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제자들에게 한국적인 예의범절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하워드의 삶의 태도는 선교사로서 한국에서 교육 선교활동을 펼치는데 큰 힘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제자들에게 깊은 귀감이 될 수 있었다.
4.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한국 선교, 여성인재 양성의 선구자

19세기 말 서양 여성들의 사회적 권리는 점차 개선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교육의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한국에서는 더욱 심각한 여성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전문교육을 받은 하워드는 여성 차별적인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시대에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모든 면에서 차별받고 있었으며 특히 배움의 기회를 얻기가 어려웠다(안신, 2015).
그녀는 한국에서 사역하는 전 기간에 걸쳐 여성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여성들을 위한 교육활동과 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어머니 교육을 실시하고, 나아가 가정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무엇보다 교육의 기회가 없었고 가정에서 성적으로 억압 받던 조선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은 서양의 여자 선교사는 그 자체로 교육을 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김윤자, 2015). 특히 하워드가 설립한 대전보육초급대학은 여성 유아교육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배재대학교 유아교육과로 발전하여 2015년 기준, 60년간 2300명의 졸업생을 배출 했을 만큼 한국 유아교육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5. 마무리

1923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온 클라라 하워드는 은퇴 후 1964년에 미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40년 7개월 동안 한국 선교에 헌신하였다. 그녀는 한국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으로 일본 정부의 선교사 출국 조치로 미국으로 송환되었을 때나, 한국 전쟁 발발로 미국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어김없이 한국 선교 현장에 다시 돌아왔다.
3개의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 했을 만큼 준비된 선교사였던 하워드는 독신으로 살면서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 교육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였다. 특히 유아교육을 선교를 위한 교두보로 삼아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둔 유아교육 사상을 전개함으로써 한국 초기 유아교육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55년 유치원 교육확대를 위해 세운 대전보육초급대학은 헨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선교사가 1885년에 세운 배재학당과 1978년에 통합하여 지금의 배재대학교가 되었을 만큼 유아교육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수용의 태도로 한국 선교와 후진양성에 힘쓴 클라라 하워드는 1995년 소천 이후 그녀에게 교육 받았거나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녀의 한국 이름을 딴 ‘허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발간 할 만큼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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