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Rapp, Robert S.(1933- , IP)
 작성자 : 홍이레  2019-11-25 18:19:31   조회: 446   
 첨부 : 내한선교사_3학년5반_B093_홍이레.pdf (367401 Byte) 
 첨부 : 내한선교사_3학년5반_B093_홍이레.hwp (4879360 Byte) 
내한선교사 / B093 / Rapp Robert S (1933- / IP)


내한선교사 자료 조사 - Rapp, Robert S(라보도) 선교사 조사

2017210334 3학년 5반 홍이레 (010-8313-0655)

1. 기본사항
1.1. 성명 : Rapp, Robert S. 라보도(羅寶道)
1.2. 생몰연도: 1932-3년 출생(어떤 자료에서는 1932년 8월 19일 출생으로 기록), 현재 펜실베니아 랭커스터에 위치한 Calvary Fellowship Homes에 거주
1.3. 출신 및 소속 : 독일계 미국인으로 미국 펜실베니아 뉴켄싱턴 출신, 국제기독교연합회(ICCC,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소속으로 선교활동, 이후 매킨타이어와의 불화로 독자적인 미국 웨스트민스터선교부 구성하여 선교활동
1.4. 학력 및 경력
1.4.1.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1.4.2. 페이스신학교 신학사와 신학석사 학위
1.4.3.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 연구
1.4.4. 그레이스신학교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
1.4.5. 해군장교로 복무 후 예편
1.4.6. 브라질 선교사로 자원하여 4년간 활동
1.4.7. 한국 선교사로 내한 후 「예장 장신측」 총회 구성
1.4.8. 웨스트민스터선교부를 독자적으로 구성 한국과 파키스탄 선교활동 지원
1.4.9. 이후 헝가리에서 봉사하며 섬김
1.5. 한국선교기간 : 1967년 7월 5일에 김포공항을 통하여 내한하여 1992년에 헝가리로 가라는 성령님의 강권에 순종하기까지 25년간 사역
1.6. 연표
-1932년 08월 19일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주 뉴케싱턴 출생
-1954년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1956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2년간 장교로 군복무
-1960년 5월 페이스신학교에서 신학사와 신학석사(Th.M.) 과정 졸업
-1960년 미국 성경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 받음
-1961년 미국 장로회해외독립선교부 선교사로 브라질에서 4년간 사역
-1966년 그레이스신학교대학원 졸업, 신학박사(Th.D) 학위 취득
-1967년 07월 05일 김포공항을 통하여 한국 입국
-1967년 11월 09일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서울 흑석동 소재) 설립
-1978년 04월 25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장신교단과 협약자로서 협약 체결
-1984년 02월 27일 웨스트민스터 비브리칼선교회 한국지부의 한국지부장으로 선임
-1992년 09월 01일 웨스트민스터신학원(1989년 03월 01일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서 교명 변경) 명예교장으로 추대
-1992년 헝가리로 사역지를 옮기며 교장직 퇴임, 헝가리에서 신학교 사역 시작
-2001년 10월 18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으로 위촉
-2016년 02월 17일 1997년에 폐교되었던 웨스트민스터신학원 복교 후 지원 시작
-2017년 04월 01일 첫 번째 편지를 시작으로 총 5편의 편지를 제자(동문)에게 발송
1.7. 가족사항 : 가족들의 정확한 성명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본인인 Robert와 아내인 Clara의 슬하에 3명의 자녀와 13명의 손자, 그리고 5명의 증손자가 있음


2. 선교사 소개
Rapp, Robert S.(한국명 라보도, 이하 라보도라 칭함)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이며 신학자로 한국에서 약 25년간의 선교사역을 충실히 감당했다. 그는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페이스신학교에서 신학사와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에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레이스신학교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2년간 장교로 복무 후 예편했다. 라보도는 브라질, 한국, 파키스탄, 그리고 헝가리에서 선교사역에 헌신했다. 그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으며 다양한 저술활동과 신학교사역에 힘을 쏟았다.

2.1. 선교사로서의 헌신과 사역의 시작
라보도는 펜실베니아 주 랭커스터에서 열린 선교사 회의에 참석하여 선교 사업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재학하고 있을 때 I.V.F 학생운동 집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세계적인 구약학자인 맥크레이(Allen A. Macrae)의 설교를 듣고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성경장로회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라보도는 미국 독립장로회 해외선교부에 가입하여 1961년에 남미 브라질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고, 1965년까지 4년간 사역했다. 안식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맥크레이 박사의 추천으로 그레이스신학교 대학원에서 세계적인 구약 학자 위트콤(John C. Whicomb)박사의 지도를 받아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나님 앞에서 목사가 되기로 서원하고,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심한 라보도의 결단은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헌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라보도의 열심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안겨주는데, 브라질에서 라보도가 섬긴 사역은 보수적인 장로교신학교(상파울로)에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4년간의 사역을 뒤로하고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보다 더 깊고 체계적인 신학교 사역을 위하여 박사학위를 공부했다. 자신에게 맡겨진 선교지의 학생들과 그들을 통하여 성장할 양들을 위해 기꺼이 학업과 연구, 그리고 다양한 저술 사역에 자신을 헌신했다. 이를 통하여 라보도의 선교사역은 철저히 그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2. 내한 선교사로서의 열매 :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 설립 및 총회(장신) 설립
그레이스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라보도가 1966년에 브라질 선교지로 복귀하려고 할 때 선교본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바로 라보도에게 한국으로 가서 선교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신학생들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선교사가 필요했고, 라보도는 기도하며 결단하여 인디아나주립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라보도는 자신이 섬기기로 결단했다면 그들을 잘 가르치고 사역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성육신적 선교사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사였다.
그는 1967년 11월 9일에 김달생 박사와 함께 ‘진리확립, 진리 보수, 진리 전파’의 기치를 높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학교의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장신)를 설립했다. 비록 분열의 역사가 있기는 했지만 오늘날에 이르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신학원’은 라보도의 선교사역의 열매로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라보도를 사용하셔서 이 땅에 남기신 귀한 유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덕분에 웨스트민스터신학원(WTS)은 라보도를 명예총장으로 위촉했으며, 비록 그의 뜻에 의해 사퇴했을 지라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WGST)로부터도 명예총장으로 위촉받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라보도는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오가며 강연을 진행했다.

2.3. 평생의 소명 : 자유주의에 대한 비평
라보도는 신학적으로 정통주의와 반에큐메니칼주의, 그리고 반공주의의 입장을 지지하고 고수했다. 그의 신학적 배경은 페이스신학교의 성별주의와 입장을 같이하며 루이스 벌코프와 입장을 같이 한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비판에 힘썼으며, 반공강연을 통하여 반공선교사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라보도는 이후에 결별했을지라도 맥킨타이어와 ICCC에서 함께 사역했는데, RES(Reformed Ecumenical Synod)에 대하여 분명한 자기소신에 찬 비판과 의견을 피력함으로 그 실체를 해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는 RES에 대해 비판함으로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명백하게 밝히고 고수했다.
라보도는 WCC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는데, 세계교회협의회의 본질적인 정체성과 신학사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것들에 대한 비판 강연을 이어갔다. 비록 그를 향한 NCC의 도전과 고발이 수차례에 걸쳐 몰려왔을 때에라도 그는 문화공보부 장관과 전두환 대통령,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일평생 자유주의 신학과 싸워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웨스트민스터신학원 후배와 동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가 속했던 ICCC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전투적으로 변호하고, 신앙의 순결을 위해 분리주의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표방했었다. 비록 그가 매킨타이어와 결별하고 웨스트민스터 비브리칼 선교부를 조직하기는 했으나 그의 신학적 입장이 변하게 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2.4. 다양한 저서 및 저술 활동
라보도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RES」, 「미국 독립장로교 선교회」, 「바른 신학」, 「에큐메니칼 운동의 동향」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방언은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가?」, 「개혁신학(1-5집)」, 「가나안족에 대한 성경 고고학적 연구」, 「용공주의적 세계기독교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신앙」, 「미국의 초기 역사에 끼친 퓨리탄주의의 영향」, 「세계교회협의회의 최근 동향」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라보도는 그의 보수적인 신학을 제시하고 지키는데 자신의 저술활동을 이어갔다. 이 외에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 「한국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는데, 기독신보에 게재된 라보도 박사의 글만 해도 「오늘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의 기독 신자의 의무」, 「내가 알고 있는 WCC」, 「한국에 대한 최근 국제 정세와 나의 기도」, 「라보도 박사의 반공 강연 요지」 등 다작의 행보를 걸어갔다. 라보도는 꾸준히 연구하고 최근의 상황과 정세를 바라보고 글을 썼다. 신학적 주제는 물론이고, 정치와 국제정세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에 대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저술한 것이다. 그는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알고 지켜야 할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며 활동한 것이다.

2.5. 후배와 동문을 향한 지속적인 뜨거운 사랑
라보도는 그의 선교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열매인 웨스트민스터신학원(WTS) 후배와 동문을 향한 지속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표현했다. 그의 선교사역은 단순히 복음 전도 후 떠나는 사역이 아니라, 떠나고 난 후에라도 지속적으로 선교지를 돌아보고 그들을 교정하려는 애정이 녹아있다. 라보도는 2017년 4월 1일부터 총 5편의 편지를 그의 후배와 동문들에게 보냈다. 첫 번째 편지는 그의 4개국(브라질, 한국, 파키스탄, 헝가리)에서의 선교사역과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편지에는 개혁주의 신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처음 세 문답을 통하여 전했다. 세 번째 편지에서는 여성안수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WGST)에 대한 라보도의 지원중지 및 명예총장 사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네 번째 편지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다루었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편지에서는 세상의 방식에 대해서 뜻을 전하며 좁은 길로 걸어가기로 결단해야함을 전했다.
2019-11-25 18:19:31
121.xxx.xxx.173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8574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8647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20006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29511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6423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1423
2647
  내한선교사/37/Hendrix, Daisy F.   양혜민     2020-07-08   6
2646
  내한선교사 / 13 / Frey, Lulu E.(1868-1921, M)   구교찬     2020-07-08   3
2645
  내한선교사 / 45 / Hunt John K   2반 이요한     2020-07-08   8
2644
  내한선교사 / 27 / Hanson, Marjorie(미상, M).   문끄리스띠안     2020-07-08   14
2643
  내한선교사 / 28 / Hard Theodore   박성전     2020-07-08   6
2642
  내한선교사_42_Hoffman Clarence S.   3학년 2반 이상재     2020-07-08   5
2641
  내한선교사/57/McLellan, E. A.   조혜진     2020-07-08   18
2640
  내한선교사 / 49 / Keller Frank Goulding   임예창     2020-07-08   12
2639
  내한선교사/ 55/ MacRae, Frederick John Learmonth(1884-1973, AP) / MacRae, M. Hall   조동진     2020-07-08   7
2638
  내한선교사_12_Fraser, Edward James Oxley(1878-1977, CP) / Fraser, E. J. O. (Mrs.)   강예권     2020-07-07   6
2637
  내한선교사 / 18 / Goodsell Daniel A   김세현     2020-07-07   9
2636
  내한선교사 / 38 / Nelson Augustus Bryan (1)   손성원   -   2020-07-07   9
2635
  내한선교사 / 48 / Jones, George Heber   이호빈     2020-07-07   9
2634
  내한선교사 / 62 / Moore, James H.   현종훈     2020-07-07   1
2633
  내한선교사 / 9 / Forsythe, Wiley Hamilton   윤석인     2020-07-07   5
2632
  내한선교사/36/Henderson Lloyd Putnam   양승희     2020-07-07   10
2631
  내한선교사 / 58 / McPhee, Ida   주영찬     2020-07-07   12
2630
  내한선교사 / 51 / Swanson, Ererett E   김민석     2020-07-07   26
2629
  내한선교사 / 35 / Helstrom, Hilda L.   안상구     2020-07-07   32
2628
  내한선교사 / 1 / Edward Adams, Mrs. E. Adams Susan Comstock) (1)   양승일     2020-07-07   31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1,326 / 전체 : 15,413,429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