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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all, Ernest F.(1868-1955, NP) / McLear, Harriet(1872-1959, NP)
 작성자 : 3학년 4반 김태영  2019-11-26 10:41:34   조회: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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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023 / Hall, Ernest F.(1868-1955, NP) / McLear, Harriet


어니스트 홀 선교사 / Ernest F. Hall (1868-1955)

1. 인적 사항’

Ernest F. Hall (홀 / 미국 / NP) / 부인 McLear, Harriet (맥리어 / 미국 / NP)
1. 생몰연도 : 1868 – 1955.12.16.
2. 학력 :
3. 경력 : 1903. 9. 1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어학 공부
1905 맥리어와 결혼, 충북 청주 선교부에서 파송을 받았으나 건강이 나빠 부임 못함
1908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1910 새문안교회 신축때 강대비품 일체를 기증
1955. 12. 16 메릴랜드주 코원타원에서 소천
4. 가족사항 : McLear, Harriet (부인;1872-1959)
5. 논저: [논문] A Beacon Light, KMF, Vol.2, No.1, 1906.1; Buried among the Heathen, KMF, Vol.2, No.1, 1906.6.
6. 문헌: 기백 16권; HKMP Ⅰ,Ⅱ.

2. 홀 목사의 생애와 조선 사역

(1) 어린아이들을 ‘복음의 봉화’로 보았던 홀 선교사

홀 선교사는 1903년 35살의 젊은 나이로 조선이라는 나라로 들어왔다. 그는 서울에서 어학 공부를 거친 다음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그는 자신의 사촌에게 보낸 편지 홀은 1903년 조선에 부임하기 직전 미국 미시건 주에 중국인 주일학교에서 일하는 그의 사촌에게 편지를 보냈고 오늘도 이 편지가 남아있다.
에 기록했듯이 조선 선교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과 타지에서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한다는 외로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시는 그곳에서 열심히 사역을 감당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홀이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역은 기독교 교육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논문인 ‘A Beacon Light’(봉화)에서 조선인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임을 강조했다. 논문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고려해보았을 때 홀 선교사님이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던 대상은 10세에서 12세정도 되는 조선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홀 목사님은 그들이 아직 읽지도, 음악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부모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조선의 많은 아이들이 먼저 회심의 은혜를 경험했음을 밝히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선교에 주된 관심사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또 다른 논문인 ‘Buried among the Heathen’에서 조선과 만주 지역이 장차 세계 선교와 그리스도의 왕국에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을 강조하며 선천으로부터 평양에 이르기까지 조선과 만주의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함을 강조한다. 홀 선교사가 남긴 글은 단 두 편뿐이지만 두 편 모두에서 홀 선교사는 교육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홀이 조선에서 가장 하고자 했던 사역은 바로 어린이와 교육의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맥리어와의 결혼 그러나 건강의 악화

홀 선교사는 1903년 부산에서 시작했던 그의 사역을 1905년에 접고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http://kcnp.com/m/page/detail.html?no=5012
그리고 그보다 1년 늦게 한국으로 들어온 맥리어 선교사를 만나 언더우드의 집에서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충북 청주 선교부로 부부가 함께 파송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선교 경력에서 보듯이 충북 청주로 파송을 받았지만 부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홀 선교사를 괴롭히던 육체의 질병 때문이었다. 정확히 어떤 질병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질병이 선교 사역의 진행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심한 고통과 불편을 홀 선교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HKMP는 이에 대해서 “1905년 그 해 결혼한 홀 선교사와 그의 아내 맥리어 선교사가 서울로부터 청주로의 파송을 명받았지만 건강의 이유로 한국에서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해 1907년 에드윈 카긴 선교사가 홀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HKMP, 132.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던 홀 선교사는 190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한 것과 선교 본부가 홀 선교사의 후임을 2년후에 파송한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 자신의 건강을 잘 추스르고 자신이 사랑하는 청주의 영혼들에게로 가기를 소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190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3) 그가 만난 Dr. Rhee와 조선을 잊지 않은 선교사 홀

홀 선교사는 자신의 모국인 미국으로 귀환하여 뉴욕에서 건강을 추스르게 된다. 비록 조선에서의 선교사역은 외형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뉴욕 시내에서 한 조선 젊은이를 만나게 된다. 그는 홀 선교사가 조선에 있을 당시부터 알고 지내던 Rhee라는 성을 가진 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하버드를 졸업하여 떠난 1908년 여름, 일단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 기숙하며 신학 수업을 듣는 한편, 기회가 되면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할 생각으로 몇몇 강의를 청강하고 있었다. 그 청년에게 홀 선교사는 자신의 모교였던 프린스턴으로의 입학을 강권했고, 그 청년은 프린스턴으로 진학을 결정하게 된다. 이 청년은 훗날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프린스턴에서의 유학을 훌륭히 해내게 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미주에서의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전의 선봉으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세우기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게 되고 그의 꿈은 결국 1948년 8.15일 대한민국이 건국 되며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홀 선교사는 비록 조선 땅에서의 선교는 실패하여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훌륭한 조력자로 다른 방식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
언더우드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홀 선교사는 언더우드 목사님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더우드가 세운 새문안교회가 거듭 부흥을 경험하여 규모가 매우 커져서 신작로로 위치를 옮기게 되고 청일전쟁을 거치며 더욱 그 규모가 커져서 새로운 벽돌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홀 선교사는 자신의 아내 맥리어와 함께 조선의 교회를 위해 자신들을 헌신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결국 새문안 교회의 건축에 들어가는 강대비품의 모든 것을 부부가 헌신하여 기증함으로서 몸은 멀리 미국에 있지만 자신의 마음은 여전히 조선 땅에서 조선의 교회들과 조선의 영혼들을 품고 있었음을 증명해 낸다. 그렇게 요양과 함께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던 홀 선교사는 1955년 코원타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였다.
2019-11-26 1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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