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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cofield, Frank W.(1889-1970, UCC)
 작성자 : 이현준  2019-12-05 13:52:52   조회: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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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110 / Frank W. Schofield(1889 - 1970)/3-6/ 2015210391/ 이현준


Ⅰ. 기본사항

1. 이름 : Frank W. Schofield / 스코필드 / 한국명 : 석호필(石虎弼)
2. 생몰연도 : 1889.3.15 - 1970.4.12
3. 출신 및 소속 : 영국, 캐나다 연합장로교 의료선교사(UCC)
4. 한국 : 내한 1916. 이한 1970
5. 관련지역 및 사역지 : 서울, 세브란스의과대학,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6. 연표
1889.3.15 영국 워리크 주 럭비시에서 4남매의 막내로 출생. 아명 프랜시스.
1895 프랜시스 매너즈 부인 사립초등학교 입학. 프랑크로 이름 개명
1907 캐나다 이민. 토론토 대학교 온테리오 수의과대학에 입학
1910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수의과 수석 졸업. 온테리오 주 보건국 소속 세균학연구소 조교 근무.
1911 토론토 대학교 수의학박사 학위
1913.11 앨리스와 결혼
1914 토론토 대학교 세균학 강사 취임
1916.11 아내와 한국 입국. 세브란스 의전 세균학, 위생학 담당.
1917. 선교사자격획득을 위한 한국어 시험 합격. 부인 앨리스 병으로 귀국. 부인 캐나다에서 아들 출산.
1919.3 3.1운동 위해 이갑성과 밀회. 해외 정사파악, 홍보 임무. 일인 주간 영자신문에 익명 기고(일본정책 비난)
1919.4 제암리 사건. 현장 답사 기록과 위로함.
캐나다 선교본부에 제암리 학살 만행 보고서 제출.
1919.5 서대문형무소 심방.(유관순, 어윤희 등)
.............하세가 총독, 미즈노 정무총감 방문, 일본 만행 중지 호소.
.............3.1 운동 기록, 찍은 사진 정리
1919.7.1 ‘한국 사태를 조사할 제국조사위원회’ The Japan Advertiser 게재
1919.7.26 『수촌리 학살 만행 보고서』 “Report of the Su-chon Atrocities”를 Presbyterian Witness 게재
1920.4. 한국을 떠남. 캐나다, 미국에서 한국 소개 운동 적극 전개
1921 토론토 병원 병리학 연구실에 근무.
1926.6 한국 잠시 방문
1935 토론토 대학교 수의병리학 교실 정교수 취임
1940 부친 별세
1952 독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 명예 수의학박사 학위
1955 토론토 대학교 교수직 은퇴
1957 부인 별세
1958 한국 입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병리학 담당.
1959 스코필드 기금 설치
1965.2. 경북대학교 명예 수의학박사 학위
1965.5. 고려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학위
1966.2. 경희대학교 대학장
1969.2. 천식 발작으로 국립중앙의료원 입원
1970.4.12 국립중앙의료원 별관 32병동 5호 병실 사망
1970.4.16 서울 남대문교회 영결식 집행.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Ⅱ. 선교사 소개

1. 학창시절

스코필드는 아버지 프랜시스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클리프’ 라는 선교사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대학에서 구약 성경과 그리스어를 강의하셨다. 스코필드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적인 부분에서 아버지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스코필드가 8살이 되던 날 한국인 여병현은 그의 부친을 찾아왔고, 그는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다. 이 때의 만남의 기억이 후에 스코필드가 한국인 선교사로 결심하게 되는 것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본다. 스코필드의 누나 메리는 왕립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년간 병리학에서 가르쳐왔으며, 훗날 리드시의 모든 여성병원의 감독이 된다. 누나 역시 스코필드가 자신의 진로를 정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스코필드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재정을 지원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의 성적 역시 당시에는 대학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당시 영국은 계층 구조가 경직되어있었기 때문에 돈을 벌어도 대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스코필드는 대영제국의 일부인 캐나다로 이민가서 대학에 진학하기를 결심한다. 캐나다에 이민을 간 이후 학비를 위해 6개월간 농장일을 하는 중 그는 말을 돌보다가 치료하고 회복되는 것을 경험한다. 이에 흥미를 느끼며 학업의 방향성을 수의학으로 진학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캐나다에서 스코필드는 너무 가난하였기 때문에 제대로된 하숙집을 구할 수 없었고, 학교 양계장 구석에서 잠을 잤다. 아마 그가 젊었을 때 가난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훗날 그의 삶동안 가난한 자들을 위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치열한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스코필드는 토론토 대학에서 병리학 강의를 하는 아미오 박사를 만난다. 그는 수의학계에서 존경받던 교수였다. 아미오 박사는 스코필드를 고용하게되고, 스코필드는 그의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그의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스코필드는 학교 졸업 이후 온타리오 보건국 조수 연구를 거쳐 온타리오 수의학과 강사를 하며 그의 경력을 쌓는다. 이 때 쌓은 그의 학업적 지식과 연구, 경력은 후에 한국에서 선교사의 사역을 할 때 귀하게 쓰임받는다.

2. 한국 선교사로

1909년 한국에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된다. 의전 학장으로 O. R. 에비슨 박사가 임명되었다. 그는 1893년까지 토론토 대학 의대 교수로 재직한 자였다. 세브란스 의전에 세균학 박사가 필요하였고, 세브란스 병원은 선교기관으로 독실한 크리스천이 필요하였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섬길 자는 강한 의지력과 인내심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스코필드가 그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자였다. 스코필드는 1916년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에서 근무하던 중 세브란스 의전에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주변 지인들은 그의 마비된 팔, 다리로 인해 반대하였지만, 스코필드의 마음에 불행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으며 이를 수락하게 된다. 세브란스 의전 관활인 캐나다 장로교회에 수락을 받고 한국으로 오게 된다.
한국에서 강의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고, 한국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점차 한국인들의 어려움에 동정심을 가지게 된다. 스코필드는 선교사로서 설교도 많이 하였으며, 연구도 하였고, 한국 독립 투쟁에 깊은 관심도 가졌다. 학생들의 종교수업을 가르쳤고, 한국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독립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하였다.
독립협회 부회장을 담당하였고, 1916-1920년 간 일본 압제를 타도하기를 원하였으며 한국인들을 돕고 조언하였다. 일본 군대의 악행을 담기위해 여러 도시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서구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19-1920년에는 봉기,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3.1 33인이 낭독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였으며 일본에 항의하고 비판하였다. 이에 한국 독립운동 34번째 민족 대표 칭호를 얻게 된다.
스코필드는 제암리, 수촌리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서구에 알린 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4월 17일 스코필드는 언더우드, 커티스, 테일러 일행과 자동차로 수촌리 현장을 확인하러 가던 도중 우연히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목격하였다. 4월 18일 스코필드는 홀로 제암리와 수촌리를 방문한 이래 여러차례 오가면서 사후 수습을 도왔던 한편 “제암리/ 수촌리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끌 수 없는 불꽃』 이란 책을 펴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스코필드는 캐나다인이자 영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따라서 영국과 우호적 관계에 있던 일본은 스코필드를 손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따라서 선교회 본부에 압력을 가하여 1920년 스코필드를 한국에서 쫓아내게 된다. 스코필드는 이후 케나다에서 한국인을 위해 싸우게 된다.

3. 캐나다에서

1919년 캐나다로 돌아가게 된 스코필드는 캐나다 토론토 종합 병원에서 세균학자로 근무하게 되었고, 1921년에는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에 돌아가 가축 위생 및 연구과장으로 재직했다. 수의학과 의학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동물, 인간 질병 치료에 큰 영향을 주었다. 66세 시력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에서 은퇴하게 된다.

4. 다시 한국으로

1958년 눈이 회복되면서 한국 친구들은 스코필드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요청한다. 그는 서울대 수의학과 대학에서 일하였으며 수의병리학 교수가 되었다. 연대 의과대학과 중앙대 약학대학 등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당시 한국의 농민들의 처지 문제, 도시 물신주의 문제, 전쟁 고아의 방치 문제 등을 마음아파하며 지적하였으며,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후원을 하였다. 한국 정부의 독재와 부패, 잔학 행위에는 강하게 비판하였다. 한국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한국정부로부터 그는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정적으로 저술, 연구, 학문지도와 논평, 조언, 복음전파를 계속하였다.
1968년 스코필드는 캐나다에서 휴식과 회복을 취하러 1년 반을 지냈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인으로서 최고 예우인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한다. 스코필드가 머무르고 있던 온타리오의 브레슬로까지 와서 백선엽 한국대사가 훈장을 수여하였다.
건강의 악화로 국립중앙 의료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1970년 4월 12일 서울에서 숨을 거두었다.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은 1970년부터 매년 스코필드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서울대학교에서 스코필드 기념 강연을 하게 되었다.

5. 한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선교사

한국인을 사랑하여, 자신의 삶을 선물로 준 귀한 선교사였다. 복음을 끊임없이 전하였으며,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선교사였다. 한국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시켜주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는 자로 정부와 저항하는 정의를 외치는 리더가 되어주었다. 서구에게 일제로부터 억압받는 한국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알려주었다. 또한 의학적 지식을 통하여 한국의 의학 연구를 발전시키고 후학들을 양성함으로서 의료계의 진전을 선물해주었다. 생명의 마지막을 한국에서 맞이할만큼 삶으로 한국을 향한 사랑을 나타낸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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