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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owman, Charles Elmer(1868-1924, OMS) / Cowman, Lettie Burder(1870-1960, OMS)
 작성자 : 박신준  2019-12-05 20:43:35   조회: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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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E. and Lettie B. Cowman (1868-1924 /1870-1960) /

I. 기본사항
A. Charles E. Cowman
1. 이름: Charles E. Cowman / 찰스 카우만
2. 생몰연도: 1868.3.13.-19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0 - 1920
5. 연표1868.3.13. 미국 일리노이주 툴론에서 출생.1881. 감리교 감독교회에서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함.1889.6.18 Lettie Burd와 결혼.1892.12. 시카고 은혜감리교회에서 회심을 경험함.1893. 75명을 주님께로 인도함.1893. E.A. Kilbourne을 주님께 인도함.1894. 레티와 함께 심프슨 박사의 선교대회에 참여하여 선교사로 헌신함.1901.2.21. 일본에 도착.1902. 길보른과 성서 신학원을 세움.1905.11. 동양선교회 창설.1911.3. 무교동 전도관 안에서 성서학원을 개설(서울신대의 전신)1924. 찰스 카우만 소천.
B. Lettie B. Cowman
1. 이름: Lettie B. Cowman / 레티 카우만
2. 생몰연도: 1870.3.13.-19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0 - 1960
5. 연표1870.3.3. 미국 아이오아의 애프톤에서 출생.1889.6.18 Charles E. Cowman과 결혼1893.12. 시카고 은혜감리교회에서 회심을 경험함.1894. 남편과 함께 심프슨 박사의 선교대회에 참여하여 선교사로 헌신함.1901.2.21. 일본에 도착.1905.11. 동양선교회 창설.1924. 카우만 소천.1933.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순회하며 십자군 전도운동을 일으킴.1960.4.17. 레티 카우만 소천.
6. 가족사항부인: Lettie B. Cowman(1870-1960) / 남편: Charles E. Cowman(1868-1924)
II. 선교사 소개: 카우만 부부
(Charles E. and Lettie B. Cowman (1868-1924 /1870-1960)

I. 찰스 카우만의 출생, 결혼
카우만(Charles E. Cowman)은 1868년 3월 13일 일리노이주 툴론(Toulon)의 전통적인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감리교의 속장이었고, 그의 집은 종종 감리교의 순회전도자들이 머물곤 했다. 21살 되던 1889년에 카우만은 어맀을 때부터의 친구인 레티 버드(Lettie Burd)와 결혼을 하였다. 레티는 1870년 3월 3일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가로서 성공하여 레티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가정에서 비교적 풍요하게 살았다. 결혼 후에 카우만은 1892년까지 세속적인 삶을 즐겼다. Lettie B. Cowman, 박창훈 역, 『찰스카우만, 동양 선교회 창립자』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 2008),


2. 카우만 부부의 회심
1892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레티는 시카고 은혜감리교회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집회에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생활을 버리고 복음송을 부르는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레티는 이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 세속적인 음악에서는 찾을 수 없는 평안을 얻었다. 이 집회에서 레티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였다. 예수를 영접한 레티는 자기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카우만은 여기에서 자기의 삶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이 부부는 새로운 자세로 살아가기 시작했고, 은혜감리교회의 열심있는 신자가 되었다. Lettie B. Cowman, Missionary Warrior: Charles E. Cowman (N.P.: Cowman Publication, Inc., 1929), 34.

이런 회심의 체험을 한 다음에 카우만은 은혜감리교회의 신실한 신자인 시미스터(George Simister)로 부터 온전한 성화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시미스터는 카우만에게 회개한 다음에도 여전히 죄악의 “옛 사람”이 인간의 마음 속에 남아 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완전히 씻어 질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시미스터의 이 말에 자극을 받은 카우만은 회개 이후에 오는 제 2의 축복인 성결의 은혜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이 두번째 은혜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3. 선교사로서의 첫 발돋움
카우만은 “나는 나 자신과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받아 주셨다. 그러므로 이후부터의 삶은 이전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고 말했다. Cowman, Missionary Warror, 71-72.
카우만이 온전한 성화, 즉 성결을 체험한 뒤에 그는 열심히 여러 신앙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침 그때 전국 엡윗연맹대회 (Epworth League Convention)가 테네시 챠타누가(Chattanooga)에서 열리게 되었고, 여기에 카우만은 은혜감리교회의 대표로서 참석하게 되었다. 엡윗연맹의 중요한 강조점의 하나가 선교였다. 이 대회의 강사였던 조이스 감독(Bishop Joyce)은 열열한 성결운동의 지도자로서 세계선교에 대해서 강조했다. 이 조이스 감독의 설교는 카우만에게 선교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이 카우만의 첫번째 선교각성이었다. Cowman, Missionary Warrior, 84. 조이스 감독은 1901년 시카고에서 열린 제2회 성결총회(General Holiness Assembly)의 발기인이었다. 이 성결총회는 성렬 운동가들의 모임이었다. S. B. Show, Echoes of the Ceneral Holiness Assembly (Chicago: S. B. Show, 1901), 12.
카우만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그후 계속되었다. 시카고의 무디교회에서는 심프슨(A.B. Simpson)을 강사로 대 선교집회가 열리게 되었다. 카우만도 여기에 참석하게 되었다. 카우만은 심프슨이 아내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오직 믿음만으로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맡기고 아프리카의 오지에 들어가서 선교한 젊은 사업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카우만은 그의 일기에 “나는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기록하였다. Cowman, Missionary Warrior, 84.


4. 선교잡지들을 접함
카우만은 여러 신앙집회에 참석하면서 동시에 선교잡지들을 읽기 시작했다. 카우만은 선교잡지를 통하여 인도선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건강 때문에 인도에 갈수 없었다. 카우만이 낙심하고 있을 때 당시네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지도자인 피어슨(Arthur T. Pierson)을 만나게 되었다. 피어슨은 카우만에게 조급하게 서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기다려요. 젊은이.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요”라고 말했다. 카우만 부인은 그 남편에 대한 전기에서 “그[카우만]는 친구인 아더 피어선 박사를 매우 사랑했고, 그의 책을 열심히 읽었을 뿐만아니라, 특별히 외국 선교에 관하여 피어슨을 글을 자주 인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Cowman, Missionary Warrior, 84, 246.


5. 카우만의 선교관
여기에서 우리는 카우만의 선교관에 대해서 살펴 보아야 할 것 같다. 카우만은 심프슨과 피어슨의 영향을 받았다. 이 두사람은 소위 “신앙선교”운동의 주창자들이다. 신앙선교란 선교에 필요한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을 인간적인 기구나 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서 해결하는 선교방식을 말한다. 이런 원칙에 대해서 심프슨과 피어선은 다같이 동의 하면서도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카우만은 심프슨의 극단적인 방법 보다는 피어슨의 온건한 방법을 따른 것 같다. Dana L. Robert, "Arthur Tappan Pierson and Forward Movements of
Late-Nineteenth-Century Evangelicalism," (Ph.D. diss., Yale University,1984), 259-280.
회심 직후부터 카우만은 시카고 복음화에 나섰다. 카우만은 “작은 지옥”이라고 불리우는 시카고 슬럼지역의 전도관에 자원 봉사자로서 참여하여 전도활동을 하였다. 이 슬럼지역에는 “친구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한푼 없는”(friendless, homeless, and penniless) 버림받은 인생들이 살고 있었다. 카우만은 이들에게 들어가서 성결의 복음을 외쳤다. 그리하여 노름판과 술판에 메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단 앞으로 인도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였다. 카우만에게 있어서 이 “작은 지옥”은 전도훈련학교였다. 후에 카우만이 일본에서 선교할 때 이 슬럼지역의 “비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down-and-outs)은 정성을 다해 카우만을 도와 주었다. Cowman, Missionary Warrior, 67-69.


6. 도시선교, 직장선교에 힘씀
카우만은 한편으로는 도시선교에 힘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직장선교에 힘을 썼다. 카우만은 시카고에서 전신회사에 다녔고, 여기에서 부서의 책임자로서 일했다. 이곳에서 카우만은 열심히 전도했다. 그의 전도의 첫 열매는 그의 평생의 친구이자 동역자인 길보른(Earnest A. Kilbourne)이었다. 카우만은 길보른과 함께 이 회사에서 전신선교단(Telegraph's Mission Band)를 조직했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주일 오후에 모여 기도하며, 선교를 위해 헌금도 하였다. 이 단체는 카우만과 길보른의 선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후에 카우만과 길보른은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전신선교단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7. 개렛복음주의신학교에서 공부함
카우만이 하나님의 일을 계속함에 따라 그는 성서지식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애반스톤(Evanston)에 있는 개렛복음주의신학교의 특별과정에서 공부하였다. 카우만은 감리교인이었으므로 감리교계통인 이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이 과정을 공부하기에는 힘이 들었다. 직장시간과 공부시간에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카우만의 직장시간이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이기 때문에 그는 무디성서학원 (Moody Bible Institute)의 오전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카우만의 집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카우만은 이 학교에서 1900년까지 6년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무디성서학원은 19세기 후반에 기존의 신학교육이 당시의 교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아래 시작된 성서학원운동의 하나이다. 즉 이론적인 신학교육보다는 실천적인 훈련을 강조하며, 자유주의적인 고등비평보다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숙달하게 하고,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각각 맡은자리에서 최선의 봉사를 하게 하였다.
웨슬레안 성결운동과 무디성서학원은 성결론에 있어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웨슬레안은 성결은 중생이후에 성령의 능력으로서 인간의 부패성에서 온전하게 벗어나는 것으로 부고있다. 즉 온전히 죄에서 벋어나는 것을 성령의 제 2의 축복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서 토레이는 죄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그런 의미의 성결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도 근본적으로 성결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보았다. 토레이는 공공연하게 웨슬레안 성결론을 공격하였다. R. A. Torrey, The Baptism with the Holy Spirit (New York: Fleming H. Revell Co., 1895), 12; 15.
여기에 대해서 카우만은 자기는 분명히 무디성서학원과 토레이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카우만은 토레이가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가 하신 일(What Christ did FOR US)만 강조 할 뿐, 우리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세례(the Sanctifying Baptism of the Holy Spirit of The Holy Ghost IN US)를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Roots of the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Doctrine of Holiness” (STM thesis, 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1992), 82-89


8. 일본을 향해 떠남.
카우만이 본격적으로 선교사를 지망했을 때, 그는 당연히 감리교 선교부의 문을 두드렸다. 이것은 물론 그가 어려서 부터 감리교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카우만은 무디성서학원에서 일본인 나까다 쥬지를 만났다는 점도 작용했다. 나까다는 일본의 감리교의 전도자로서 카우만에게 일본에 와서 선교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정작 감리교선교부 당국은 카우만의 지원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뒤에 감리교선교부는 카우만부부에게 일본에서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했지만 이미 카우만 부부가 교단 선교에 대해서 마음이 떠난 뒤였다. 카우만은 이 당시에 신시내티에 있는 냎(Martin W. Knapp)을 찾아가고 있었다. 카우만은 오래 전부터 냎이 발행하는 신앙잡지인 [부흥사](Revivalist)를 구독하고 있었다. 카우만은 냎과 자신의 선교에 대해서 상의하는 가운데 냎으로 부터 교단선교부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선교지로 떠나는 것이 보다 신앙의 길이라는 말을 듣고, 더 이상 교단 선교부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선교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카우만은 냎이 조직한 신앙단체인 만국 사도적 성결연맹에 의해서 안수를 받고 1901년 1월에 미국을 떠나 일본을 향하였다. 이 안수식에서 카우만부인도 함께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만국성결연맹의 안수받은 교역자의 명단에 기록되어있다. 카우만부인은 동양선교회의 3대 총재로서 동양선교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Cowman, Missionary Warrior, 112. 카우만부인은 만국성결연맹의요람의 안수받은 교역자의 명단에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9. 평가
이명직목사의 약사에는 동양선교회는 카우만과 길보른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명직,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약사] (경성: 성결교회이사회, 1929), 5-10.
. 그러나 미국측의 자료와 일본측의 자료는 좀 다르다. 미국의 동양선교회 총재를 지낸 어니(EdwardErney)는 그의 책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에서 동양선교회의 창립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여기에는 카우만부부와 나까다 쥬지, 길보른 네사람을 기록하고 있다. 즉 카우만 부인과 나까다쥬지를 더 넣은 것이다. Edward & Esther Erney, No Guarantee But God: The Story of the Founders of Oriental Missionary Society, Charles Cowman, Juji Nakada, E. A.
하지만 최근 훌러신학교선교대학원의 선교학박사논문으로 제출된 논문 “일본동양선교회성결교회: 1901-1983”에서 동양선교회의 일본선교사 머윈(John Merwin)은 위의 네사람에 사사오 데쓰사브로를 덧 붙이고 있다. John Merwin,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 Holiness Church in Japan 1901-1983" (D. Miss. diss., 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World Mission, 1983).

누가 동양선교회의 창립자인가 하는 것은 동양선교회의 역사가 밝혀 주어야 한다. 비록 1901년 부터 카우만과 나까다가 일본에서 선교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특별한 명칭이 없었다. 공식적으로 동양선교회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1905년 11월이다. 동경성서학원에 일본인 외에도 한국인과 중국인이 공부하게 되고, 따라서 선교의 비젼이 아시아로 확대됨에 따라 이 선교회의 공식명칭을 동양선교회라고 정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여기에서 동양선교회의 회장에는 나까다 쥬지, 성서학원의 원장에는 사사오 데쓰사브로, 전도에는 나까다 쥬지, 재정과 섭외에는 카우만부부와 길보른이 맡았다. “동양선교회란 무엇인가?” [焰의 舌] 144호 (1905년 11월).
그리고 이 다섯 사람이 동양선교회의 창립자로 되어있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 찰스 카우만 생전 사진.


▲ 레티 카우만의 노년의 사진.

▲ 연구 중인 카우만 부부 사진. 선교사 부부로서 그들은 학업에도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IV. 참고문헌

[단행본 및 논문]
Lettie B. Cowman, 박창훈 역, 『찰스카우만, 동양 선교회 창립자』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 2008),
Lettie B. Cowman, Missionary Warrior: Charles E. Cowman(N.P.: Cowman Publication, Inc.,1929), 34.
Dana L. Robert, "Arthur Tappan Pierson and Forward Movements ofLate-Nineteenth-Century Evangelicalism," (Ph.D. diss., Yale University,1984)
R. A. Torrey, The Baptism with the Holy Spirit (New York: Fleming H. Revell Co., 1895),
“Roots of the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Doctrine of Holiness” (STM thesis, 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1992),
Edward & Esther Erney, No Guarantee But God: The Story of the Founders of Oriental Missionary Society, Charles Cowman, Juji Nakada, E. A.
John Merwin,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 Holiness Church in Japan 1901-1983" (D. Miss. diss., 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World Mission, 1983).
이명직,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약사] (경성: 성결교회이사회, 1929),

[학술지]
“동양선교회란 무엇인가?” [焰의 舌] 144호 (1905년 11월).
2019-12-05 20: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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