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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Walter, Althea Jeannette(1885-?, M)
 작성자 : 제희성  2019-12-12 02:43:15   조회: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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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145 / Walter, Althea Jeannette

Ⅰ. 기본사항

1. 이름: Walter, Althea Jeannette / 월터 / 한국 이름: 우백태(禹白泰)
2. 생몰연도: 1885. 2. 3 ~ ? / 미국 펜실베니아주 래트럼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감리교회
4. 학력: 베이커대학, 노드웨스턴대학, 컴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원 졸업
1959. 5. 6 이화여대 명예문학박사 학위 취득
5. 한국선교기간: 1910. 12 ~ 1933
6. 연표
1910. 12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이화학당 교사로 취임, 영외와 체육 교육
1919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의 시체 인수
1920 ~ 1921 학당장서리로 봉직
1921 4. 제5대 이화학당장에 취임하여 이화학당 발전시킴
1921 ~1925 한미협동이사회 이사로 이화 재정에 큰 기여
1933 퇴임 후 귀국
7. 가족사항: 미상




Ⅱ. 선교사 소개: 월터(Walter, Althea Jeannette, 1885. 2. 3 ~ ?)

1. 미북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튼의 파송 및 이화학당 설립, 월터의 내한

스크랜턴(Scranton, W. B.)은 미북감리회 선교사, 의사로서 미국 코네티컷 주 뉴하벤에서 출생했다. 1878년 예일 대학 졸업, 1882년 뉴욕 의과 대학을 마치고 오하이오에서 2년 동안 병원을 경영하다 한국 의료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1885년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함께 아내, 어머니까지 데리고 인천에 도착했으나, 조선의 당시 정국이 불안하여 일본으로 물러갔고, 수신사 박영효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 당해 5월 마침내 서울에 들어왔다. 이화학당은 바로 스크랜턴(Scranton, M. F.) 부인이 한국 여성의 지위가 너무 낮은 것을 보고, 1886년 5월 31일 한 명의 여학생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1887년 2월에 고종 황제가 ‘이화학당’이라는 명칭을 하사했다.


그 후 1907년 당장으로 취임한 프라이(Frey, E. L)는 1910년 9월부터 대학교를 설치하여 15명에게 고등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대학교육에 필요한 교수진의 부족으로 미국에 강력히 호소한다. 그래서 그 해 12월 파이, 하몬 등과 함께 월터(Walter, A. J) 선교사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2. 이화학당의 여선교회 조직과 월터의 사역

한국 선교 초기에는 여성이 중심이 된 선교 단체가 꽤 있었으나, 주로 성인 위주였다. 그러나 점차 선교사들이 기독교 학생들의 신앙을 훈련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고, 이러한 영향은 이화학당에도 미쳤다. 1903년 최초 학생 단체는 ‘러빙 소사이어티(Loving Society)’인데, 프라이는 이 단체를 통해 학생들이 “규칙에 따라 매일매일 살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그들의 “삶이 날로 주님의 사역에 합당한 재목들로 변화되어” 간다고 보고했다. 바로 러빙 소사이어티는 학생들의 신앙 훈련과 도덕적 생활을 주요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러빙 소사이어티는 지도하던 여메레가 1906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고 떠나면서 폐지되었다.


이후 이화학당에는 두 번째 학생 단체가 생긴다. 바로 ‘이문회(以文會, Literary Society)’이다. 이것은 1907년 생겼는데, 당장 프라이와 교사 이성회가 조직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하란사가 1908년 교사로 부임하면서 이문회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곳으로 변했다. 회의 조직법, 진행법, 발언법 들을 가르쳤다. 이 회는 점점 학생들 자치적으로 되어갔고, 매주 금요일에 정기 집회로 모여 연구회, 웅변, 토론과 같은 학술적인 모임과 문학, 음악 활동을 겸해서 진행했다. 초기에는 원하는 학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으나, 1917년 무렵에는 15세 이상 고등과 학생으로 자격이 제한되었다. 1917년 당시 이 회를 지도했던 제6대 당장 아펜젤러(Appenzeller, A. R)는 매우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이 회에서 학생들은 자기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발견합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각종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서로가 보는 앞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우아한 웅변이나 시, 현안 문제들에 대한 의견 발표, 혹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실험합니다.”

이문회는 러빙 소사이어티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의 능력 계발과 민주주의 훈련에 목적이 있었다. 이것은 3·1운동 당시 이화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이문회 간부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 회는 3·1운동 이후에 1923년 ‘이화 YMCA’로 발전했다.


지금까지의 두 모임은 학생들의 심성 훈련과 능력 계발에 주안점이 있었다면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신앙훈련을 위한 학생 단체로 만들어진 것이 ‘공주회(公主會, Kinng Daughter’s Circle)’이다. 공주회는 학당의 정기 예배만으로는 신앙심을 북돋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학생들이 1909년 가을에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 회는 이화학당의 모든 학생이 가입할 수 있었고, 학기 중에는 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방학이 되면 작은 서클로 나눠서 전도 및 특별 신앙수련을 하기도 했다.
특히 공주회는 1910년 12월에 내한한 월터(Walter, A. J) 선교사가 이화학당의 영어와 체육을 담당하는 교사로 부임하여 1911년부터 지도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인상적인 것은 한 회원의 친구나 친척이 기독교인이 될 때까지 연합해서 기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저녁에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공주회 회원들이 통성으로 기도하여 학교가 기도 소리에 파묻히기도 했다.


이 외에도 월터(Walter, A. J) 선교사는 ‘미여선교회(Womens Misionary Society)’가 전국에 여선교회 센터를 설립했을 때 1912년 서울 지부에서 상동교회의 전도사업 담당 임원으로 활동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그녀가 유관순 열사의 시체를 인도하여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1919년 4월 2일 아오내 장날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잡혀 천안 헌병대에 구속되었고, 공주 검사국으로 넘겨졌다. 경성복심법원의 재판 결과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상고하였으나, 재판거부로 인해 법정 모독죄가 추가되어 우히려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이화학당 선배 박인덕과 어윤희 등을 만나 1920년 3월 1일 법정투쟁으로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시위를 죄수들과 함께 벌였다. 이 일로 심한 고문을 당하였고, 1920년 10월 12일 일본 순사의 칼에 사지가 토막이 나서 죽고 말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관순 열사가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가 옥고를 치를 당시 월터(Walter, A. J) 선교사는 학당장서리였다. 그녀는 귀국 후 자서전을 썼는데, 여기 143쪽에는 유관순 열사의 시신 수습 과정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감옥에 갇힌) 몇 달 후 16세의 어린 소녀인 유관순이 감옥에서 죽었다. 우리는 그녀의 시신을 학교로 운구해 왔고 학생들은 그녀를 매장하기 위해 무명으로 된 옷을 준비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학생들은 유관순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해 밤새 비단 옷감을 찾아내 비단으로 그녀의 시신을 다시 입혔다. 우리는 유관순의 학급 친구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장례)예배를 보는 것만(일본 당국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이것은 월터(Walter, A. J) 선교사가 한국민족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월터(Walter, A. J) 선교사는 1920~1921년까지 학당장서리로 봉직하다가 1921년 4월 제5대 이화학당장에 취임하였다. 그녀는 학생의 보건위생과 행정에 관심이 있어 280평의 심슨홀을 증축하고, 한국 최초의 유치원 교사 100평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1922년 10월 아펜젤러에게 당장을 물려주고 프라이홀 건축에 착수, 오직 건축 총감독에만 주력했다. 또한 1923년 11월 1일 김활란과 함께 세계회의선교단 간부회의에 참가하여 이화학당 신축 대지기금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1933년 이화에서 퇴임하고 귀국하였다가 1959년 5월 6일 다시 내한하여 이화창립 73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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