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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Mott, John Raleigh(1865-1955, M, YMCA)
 작성자 : 배경태  2019-12-13 00:43:20   조회: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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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068 / Mott, John Raleigh(1865-1955, M, YMCA)


모트 선교사 / Mott, John Raleigh(1865-1955, M, YMCA)

Ⅰ. 기본사항

1. 이름: Mott, John Raleigh / 모트 / 한국명:
2. 출생: 1865 미국 뉴욕 매너리빙스턴 출생
3. 학력: 아이오와 대학 졸업, 1888 코넬대학 졸업
4. 경력: 1888~1915 국제 YMCA위원회 학생부 간사로 지도력과 조직력 겸비
1895 세계기독학생연맹(WSCM) 창설,
초대 총무로서 동양과 호주 등을 방문하여 기독학생운동 활성화시켜 큰 성과
1910, 1921 국제선교대회(IMC) 의장으로 에큐메니칼운동 주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적대국 양편 왕래하며 YMCA운동, 화해의 모색
1926 YMCA 국제 위원회 의장
1948 세계교회협의회(WCC) 창설의 산파역할, 명예의장
1907, 1927 등 4차례 한국 방문, 선교활동 격려
기독학생운동(SVM)을 비롯한 실질적인 기독교운동을 고무
1946 노벨평화상 수상(제2차세계대전 이후 원조 사업에 대한 공로)
1955.1.31. 플로리다주 올란드에서 사망
5. 참고문헌: [기백] 6권; 개신교사; 기독교회사; 한국기독교사; 기독교사연구; J.R. Mott, Addresses and papers, 6 vols(1946-47); B. Mathews, John R. Mott, 1934; R. Rouse, The World’s Student Chrisrian Federation, 1948; KMF, vol.31, No.6; ODC; SER; EWM; 기독신보 영인본 15권, p.495; 한국감리교회 외국인 선교사


II. 선교사 소개

한국 기독교인에게 존 모트의 이름은 익숙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를 산 기독교인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유명한 이름이 존 모트였다. 홉킨스(C. Howard Hopkins)는 그의 글, “존 모트의 전설”(Thelegacy of John R. Mott)의 첫 문장에서 그를 “20세기 전반기 동안 세계를 주도하는 개신교 연합회와 선교운동에서 정치적 지도자였다. 그는 우정과 연합을 향해 많은 사고와 행동을 궁리하는 경향이 있었던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현대 연합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려 질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대규모 전도 집회를 이끈 부흥사형 전도자는 아니었다. 인생 대부분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선교사와 현지 기독교인의 필요를 채우고, 갈등을 조정하고, 함께 연합하고 동역하게 만들며, 사역과 목회에 원칙과 방향을 제시한 조정자·행정가·설계자·조언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이런 역할로 그는 서양인뿐만 아니라, 비서양 지역 현지 기독교 지도자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가장 많이 만나고 대화한 인물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모트는 기독교 선교계의 유명 인사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평화와 화합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4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존 모트에 대한 이러한 거창한 소개는 그가 한국교회에 미친 선교적 영향이 국내에 거주하며 선교활동을 했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와 달리, 그가 가진 국제적 영향력으로 인해 미친 선교활동이었기 때문이다.

1. 선교 동원가 존 모트
존 모트는 1888년부터 1920년까지 학생자원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 SVM) 조직의 대표 의장으로 32년간 활약했다. 학생자원운동(SVM)은 1945년까지 학생 총 2만 745명을 해외 선교에 동원하는데, 이는 실제로 1888년 이후 1920년대 말까지 해외 선교에 자원한 미국 개신교 선교사의 약 7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다. 같은 시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70~80%가 다양한 학생자원운동(SVM) 유관 모임을 통해 한국에 자원했다. 특히나 맥코믹 신학교가 학생자원운동(SVM)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는데, 맥코믹 신학교 출신의 마펫, 번하이셀, 곽안련 등이 한국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한국을 다섯 차례 한국 방문으로 영향력을 미친 존 모트
모트는 한국에 다섯 차례 방문했다. 첫 방문은 1907년 1월로, 역사적 평양 대부흥이 막 시작된 무렵이었다. 모트는 세계적으로도 유명 인사였기에, 왕실에서조차 크게 환대했는데, 왕실 리셉션을 무려 3일간 진행할 정도였다. 모트는 1907년 2월 6천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면서(통역 윤치호) “장차 한국은 동양의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고 했다. 그는 부인 릴라에게 편지하며 “누구든지 한국의 기독교인을 처음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종교적인 신앙의 열정이 무엇인가를 비로서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이야 말로 비기독교인의 세계인 극동 아시아에서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되어질 것임이 틀림없다.”고 말하였다.
모트의 두 번째 방문은 1913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방문은 1912~1913년에 아시아 각국, 즉 인도, 중국, 만주, 한국, 일본에서 에든버러 1910년 대회의 후속 위원회 활동이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모트는 당시 한국인을 대상으로 천막 전도집회를 열었는데 3,000명이 참석했다. 모트는 이 집회를 “살아있는 내내 잊지 못할 장면”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사랑스런 한국인의 얼굴들”이 자기 마음의 눈에 늘 보인다고도 회고했다.
모트의 세 번째 방문은 1922년에 이루어졌다. 그는 베이징에서 4월에 열릴 WSCF집회를 주목적으로 가는 길에, 일본과 한국을 잠시 거치는 방문이었다. 모트는 서울에서 이틀을 지내며 왕실 인사와 선교사, YMCA활동가들을 만났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집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장대현 교회로 추정)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집회를 인도했고, 동행한 아내는 다른 교회에 모인 여성을 대상으로 집회를 인도했다.
모트의 네 번째 방문은 1925년에 이루어졌다. 이번 방문은 IMC의장 자격으로 찾은 방문이었다. 그는 이 기간 선교사와 한국인 기독교 지도자를 포함한 60여명이 조선호텔에 모여 “한국교회와 선교사의 관계”라는 의제로 한국 기독교의 현실과 상황을 놓고 토론하였다.
모트의 다섯 번째 방문은 1929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 방문은 5일간 이루어졌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여섯 차례 이상 설교와 연설을 했고,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기독교인이 모인 작은 대화 모임을 만들어, 당면한 문제를 상호 조정하여 해결할 수 있게 도왔다.

3. 한국 YMCA와 한국NCC 창설에 도움을 준 모트
모트는 한국 청년들의 YMCA 설립 청원(1899)에 응답해 라이언(D. W. Lyon)을 조사관으로, 질레트(P. L. Gillett)를 한국YMCA 조직 간사로 파송했다. 그 결과 1903년 10월 28일, 서울 정동 유니온클럽에서 37인의 발기인이 모여 황성기독교청년회를 조직하면서 한국YMCA가 시작되었다. 1911년 일제가 ‘105인 사건’을 조작해 YMCA지도자들을 투옥하고 2년 뒤에는 유신회(維新會)라는 어용단체를 조직, YMCA를 점령하고 해산을 시도할 때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사건 수습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현 한국Y연맹)’를 창립(1914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로써 한국YMCA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게 되는 한편 1924년 세계Y연맹에도 가입하게 된다.
1924년에는 모트(당시 국제YMCA 위원회 총무)는 한국YMCA 총무 신흥우의 요청에 응답하여 한국 농촌을 지원하였다. 모트는 한국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분야 전문 미국 간사를 1년에 2명씩 5년간 10명을 파송하기로 약속하고, 농촌진흥운동을 전개했다.
모트는 한국NCC(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 창설을 지원하고, 한국NCC운동을 지원했다. 특별히 두 번의 방문을 통해 1925년에는 전국교계지도자대회(의장 윤치호)가, 1929년에는 전년도에 개최했던 국제선교협의회(IMC) 세계대회(예루살렘국제선교대회·한국 대표단장 신흥우 YMCA 총무)의 보고대회가 열렸다.
모트의 전세계적인 영향력은 막강했다. 모트의 배려로 1920년에 열린 에든버러 대회의 의장이었는데, 질레트, 마펫, 언더우드, 윤치호 등 15명이 한국대표로 참석할 수 있었다.

4. 전 세계에 한국교회의 부흥에 대한 소식을 알린 모트
모트의 『기독교 선교의 적정기(The Decisive Hour of Christian Mission)』 중 ‘부흥하는 영적인 물결’(The Rising Spiritual Tide) 이라는 장에서는 한국의 선교과정과 발전상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1887년 성탄절, 한국에 첫 선교사가 입국한 지 3년이 지나고 7명의 첫 세례자가 나온 후 기독교 복음이 급속하게 확산되어 오늘날에는 20만 명이 넘은 한국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영접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은 매년 30퍼센트 이상 증가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이 나라에 거대한 능력으로 일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으며,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들어오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긍정적인 한국교회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한국인들은 성서 공부하는 기독교인이다”(The Koreans are Bible-studying Christians)라면서 성경판매 및 성경보급이 가장 잘 되어 성경 훈련반 및 컨퍼런스가 잘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은 기도하는 기독교인이다”(The Koreans are praying Christians)라며,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한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과 성장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베푸는 기독교인들(giving Christians)이라면서 한국교회의 자급(self-supporting)을 소개 하고, 수백 명의 한국 지도자들이 평신도 설교가이며 어떠한 보수도 없이 섬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한국여성들 도 자신의 결혼반지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데 헌신하고 있다는 존스(Rev. George Heber Jones)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교회의 헌신적인 성장과 토착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한국은 근대 선교사 역사에 있어 기독교화 된 첫 번째 비기독교 국가가 될 것이라는 언급과 함께, 윤치호의 말을 인용하였다. “이 다음 10년 동안에 그 이전 50년 이후보다 더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말할 것입니다.”(The next ten years will tell more for the evangelization of Korea than the fifty years thereafter.) 심지어 그는 한국의 개신교 선교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선교적 평가를 내린다. “이 한 나라의 전적인 복음화는, 실지로 성취되는데, 한 실제적인 좋은 본보기로서 전 교회(the whole Church)에게 도움이 되고, 모든 다른 비기독교 국가들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고무될 수 있는 영향력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언급 이후 바로 중국교회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아시아교회에 대한 선교적 기대감을 드러내곤 하였다. 이러한 자신감 있는 한국교회의 부흥에 관련한 소개는 Korea Mission Field에서도 나타나는데, 1907년 대부흥 당시 한국을 다녀간 그는 “최근 내가 극동을 여행하는 동안, 만일 한국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여러 선교부가 응분의 지지를 받고 당장 사업을 확장한다면, 한국은 비기독교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국가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선교 사업에 투자한 액수에 비하여 한국에서와 같이 크고 견실한 성과를 얻은 피선교지를 알지 못한다.” 라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세월이 지나서도 영적 부흥의 결과로 비기독교국가에서의 교회설립과 토착화로 인한 기독교성장을 서구 사회에 놀라운 선교적 이야기로 다루면서 강연의 주요 주제로 자주 사용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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