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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acy, John V.(1896-1965 , M) / Lacy, Mary Ella Appenzeller(1893-1963, M)
 작성자 : 신승훈  2019-12-13 09:16:14   조회: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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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035 / Lacy, John V.(1896- ,M) / Lacy, Mary Ella Appenzeller(미상,M)


Lacy, John. V. / Lacy, Mary Ella Appenzeller


Ⅰ. 기본사항

1. Lacy, John. V.
1) 이름: Lacy, John Veere / 레이시 / 한국명: 예시약한(禮是約翰)
2) 생몰연도: 1896 ~ 1965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Methodist)
4) 한국선교기간: 1919 ~ 1931
5) 연표
1896. 미국 위스콘신주(州) 밀워키에서 출생
1913. 미감리회 뉴욕연회에서 목사 안수
1915. 오하이오 웨슬리안대학(Ohio Wesleyan Univ.) 졸업
1917. 시카고 보스턴대학 신학과, 게렛신학교 졸업
1919.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1919-23. 서울에서 감리교 종교교육협의회 총무
1920. 아펜젤러의 막내 딸 메리 엘라(Mary E. Appenzeller)와 결혼
1924-25. 인천 제물포에서 활동
1926-30. 서울에서 주로 주일학교 총무일, 협성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 강의
1931. 귀국
1965. 3. 24. 향년 69세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출라 비스타(Chula Vista)에서 사망
6) 가족사항
부인: Lacy, Mary Ella Appenzeller
자녀: Lorna Lacy Short (1922-1984)
John V. Lacy Jr. (1924-1996)
Mary Lois Lacy Huffman (1925-2013)
David Lacy (1927-2006)

2. Lacy, Mary Ella Appenzeller
1) 이름: Lacy, Mary Ella Appenzeller / 레이시
2) 생몰연도: 1893 ~ 1963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Methodist)
4) 한국선교기간: 1917 ~ 1931
5) 연표
1893. 미국 펜실베니아주(州)에서 출생
1917.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정동제일, 아현, 동대문교회 등지에서 선교활동
1920. 레이시 요한(Lacy, John V.)과 결혼
1931. 귀국
1963. 향년 70세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 사망
6) 가족사항
아버지: Appenzeller, Henry Gerhart (1858.2.6-1902.6.11, 미국, 감리교)
어머니: Appenzeller, Ella Jane Dodge (1854-1916)
형제자매: 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
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
Ida Hannah Appenzeller Crom (1891-1955)
남편: Lacy, John Veere (1896-1965)


Ⅱ. 선교사 소개: 레이시 부부(Lacy, John V. / Lacy, Mary E. Appenzeller)

1. 레이시 부부, 한국으로 오다
존 레이시(John V. Lacy)는 1896년에 미국 위스콘신주(州)의 밀워키(Milwaukee)에서 출생했다. 그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적은 분량인데다가 그의 신상에 대한 정보도 자료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미국 감리교의 배경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며, 그의 배경과 성장 과정은 머나먼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레이시는 적지 않은 나이였던 어린 시절부터 신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해 왔던 것 같다. 그는 이미 17세의 나이에 미감리회의 뉴욕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세였던 1915년에는 미국 오하이오주(州)에 소재한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Ohio Wesleyan University)을 졸업하기도 했다. 이 학교는 한국으로 오기 3년 전인 1881년에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레이시는 또한 1917년에 “시카고 보스턴대학 신학과”와 “게렛신학교”(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GETS)를 “각각 졸업한 후 뉴욕 콜롬비아대학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그는 그렇게 신학 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나서, 드디어 선교사로서 한국에 입국했다.
레이시의 부인이었던 메리 엘라(Mary Ella Appenzeller)에 대한 정보 역시 매우 적은 편이다. 그녀는 한국 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던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와 그의 부인 엘라 제인 닷지 아펜젤러(Ella Jane Dodge Appenzeller, 1854-1916)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딸로서, “1893년 4월 8일”에 미국 펜실베니아주(州)에서 출생했다. 메리 엘라가 1917년에 한국으로 입국하기 전까지 활동했던 이전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한국에 입국했다는 점에서 한국 선교를 위한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쳤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렇게 레이시와 메리 엘라는 각각의 성장 배경 속에서 한국 선교를 위한 준비 과정을 거쳤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각 1917년과 1919년에 머나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2. 타국 땅에서 서로 만나다
레이시는 1919년에 한국에 입국한 이후로, 1923년까지 줄곧 감리교 종교교육협의회(Council of Religious Education)에서 총무로 사역했다. 한편 메리 엘라는 레이시보다 2년 전인 1917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사역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인 아펜젤러 목사의 집례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1885. 10. 11)되었던 정동제일교회와, 그밖에 아현교회와 동대문교회 등지에서 선교 사역을 했다. 이로 보건대, 두 사람은 미국에서 이미 결혼하여 함께 들어온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서 서로 만난 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선교지인 한국에 와서 서로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한 점은, 레이시와 메리 엘라 두 사람이 선교지에서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정확히 어느 장소에서 결혼했는지 알 수 없지만, 1920년에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고향이 아닌 머나먼 타국 땅에서 결혼했다. 아마도 선교 사역 때문에 서로 만났을 개연성이 가장 클 것이다. 이로 보건대, 두 사람의 만남은 동역자로서, 또는 평생의 동반자로서 선교 사역에 힘이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함으로써 서로에게 힘이 되어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부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또한 그들은 선교지에서 4명의 자녀를 출산하여 새로운 가족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다.

3. 주일학교연합회와 종교교육협의회
레이시가 한국에서 13년 정도 있는 동안에 주력했던 선교 사역은, 종교교육협의회와 주일학교연합회에서의 사역이었다. 그러나 그가 시작했던 사업은 아니었고, 그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여러 교단과 교파에서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사업이었다.
이미 1893년부터 감리교에서는 여러 지역의 교회에 있는 “주일학교를 망라하여 주일학교연합회를 조직”했었다. 그러나 교파를 넘어서 주일학교연합기구가 생긴 것은, 1905년에 장감 선교사들이 모여 “‘재한복음주의신교선교사통합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를 조직하고 그 공의회 안에 주일학교위원회를 둔 것이 최초였다.” 1921년에는 전국적으로 주일학교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는 “서울 YMCA, 태화여자관, 승동교회, 감리교 중앙교회에서 2천 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의 개최는, 한일합방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1920년에 동경에서 열린 세계주일학교대회에 참가를 거부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20년 10월에 동경에서 주일학교 대회를 “마친 세계 대표들 3백여 명이 7회에 걸쳐 한국교회를 방문해” 주었고, “강연회와 예배와 설교로서”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해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주일학교가 전국에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대회에서 레이시는 “남궁혁, 홍병선, 변성옥, 한석원” 목사 등과 함께 강사로 섬겼다. 제2회 전국주일학교대회는 1925년 10월에, 제3회 전국주일학교대회는 1929년 10월에 4년 간격으로 개최되었다. 윌리엄 클락(William Clark, 곽안련)이 기록한「주일학교잡지」제5권 제10호(1929)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3회 대회에서 레이시가 “고등과 심리교수”라는 과목을 담당하여 강사로 섬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레이시는 1924년에 주일학교연합회 안에 조직된 하기아동성경학교 실행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장감 연합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전국주일학교운동이 각각의 교단 차원에서 별개로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인하여 감리교의 신학이 큰 변화를 맞이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감리교는 장로교와 별도로, “‘감리회 총리원 교육국’의 전신인 ‘감리교종교교육협회’를” 조직했는데, 이는 레이시 선교사와 변성옥 두 사람의 지도하에 이루어졌다.
주일학교 및 종교교육과 관련된 레이시의 글이「더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의 여러 곳에 실렸다. 다음은 그가 쓴 글의 제목의 목록을 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니, 자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참조하길 바란다.

KMF 16-5, 105, 1921.5 New Plans of the International Sunday School Committee
KMF 16-7, 135, 1921.7 Sunday School Year A Necessity
KMF 16-7, 153, 1921.7 Wanted A Demonstration Sunday School
KMF 16-7, 154, 1921.7 A Sunday School Problem
KMF 17-5, 95, 1922.5 There are Schools and Schools
KMF 17-12, 276, 1922.12 The Korea Sunday School Association
KMF 23-7, 145, 1928.7 Methods for Work With Boys
KMF 23-11, 227, 1928.11 The Field of the Religious Educator in Korea
KMF 24-1, 6, 1929.1 The Sunday School Association
KMF 24-4, 72, 1929.4 Religious Education Conference That Acts

4. 레이시의 아내, 메리 엘라(Mary Ella)의 선교 사역
레이시 선교사의 아내인 메리 엘라 선교사가 했던 사역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매우 적다. 단지 그녀가 이화학교에서 교사를 했으며, “정동제일교회, 아현교회, 동대문교회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벌였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녀의 사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어도, 朝鮮監理會年會錄(조선감리회연회록)에 남겨져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벌였는지 알 수 있다.
그녀가 한국에 입국한 해인 1917년에는 평양 지역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레이시와 결혼하고 나서 1921년부터 1923년까지는 아현교회 등 서울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벌였고, 1924년에는 제물포에서, 1925년에서 1926년까지는 안식을 가졌으며, 1928년부터 귀국 1년 전인 1930년까지는 동대문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녀가 안식을 가진 시기가 자녀를 출산했던 시점과 맞물린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메리 엘라는 한국에 온 이후로 귀국하기 전까지 거의 복음 전도와 가르치는 사역에 매진했던 열정의 사람이었다.

5. ‘아무도 모르는 집’에 거주?
레이시 선교사 부부는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동안 어디에 거주했을까? 아마도 선교 활동을 벌였던 지역에 따라 거주했던 장소가 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더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 1930년 5월호에 실린 블록(M. Bernita Block)의 글에서 그들의 거주지에 대한 일부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 For some years after that the work was continued but eventually it became a residence. This small house, which is now in a most dilapidated condition, has sheltered people of many climes and occupations. Dr. William B. Scranton was the first to make his home there. Among others whom many will remember are Alex Kenmure, of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Ernest Holmes of the British Consulate, Rev. and Mrs. H. C. Taylor, Dr. and Mrs. W. C. Rufus, and Dr. and Mrs. E. M. Cable. The Billings Family, aside from Mr. Burdick who is there at present, has the record for living in it the longest. I am told they enjoyed it and stayed within the shaky walls and under the leaky roof for five years. Rev. and Mrs. S. A. Beck, Mr. and Mrs. M. Zuber and the J. V. Lacy family have more recently used it as an abode.”

잡지에 실린 블록의 글의 제목은 “The House Nobody knows”(아무도 모르는 집)이다. 여기서 이 집은 스크랜톤(W. B. Scronton) 선교사가 구입한 집을 개조하여 만든 ‘시병원(施病院)’이라는 곳이다(‘Ⅲ. 사진 및 기타자료’에 사진 첨부). 블록이 이곳을 ‘아무도 모르는 집’이라고 부른 것은 “‘1895년 8월 7일에 옛 시병원 건물이 헐리고 대신 그 자리에 정동제일교회가 건립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록의 글은 그 당시 있었던 시병원 건물이 블록이 글을 쓴 당시까지에도 건재했으며, 심지어 레이시 선교사 가족이 거주했다고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926년 이후에 서울에서 활동했을 당시, 레이시 가족은 아마도 이 건물에서 실제로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6. 귀국, 그리고 그 이후
레이시 선교사 부부는 한국에서의 선교 일정을 마치고 1931년에 자신들의 고향인 미국으로 귀국했다. 아마도 레이시와 그의 가족들 모두가 함께 귀국했을 것이다. 레이시는 1965년 3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출라 비스타(Chula Vista)에서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며, 그의 아내 메리 엘라는 1963년에 캘리포니아주(州)에서 7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1931년에 귀국하고 나서 약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 그들이 무엇을 하며 활동했는지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다만 온천제일교회 홈페이지에서 그들의 귀국 이후의 생활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흥미로운 글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각주를 참조하기 바란다.
2019-12-13 09: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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