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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Davie, Minnie C.(1904-?, NP)
 작성자 : 3-4반 강명훈  2019-12-13 10:38:26   조회: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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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012 / Minnie C. Davie / 2017210202 강명훈 / 3학년 4반

한국교회사 내한선교사 소개: Minnie C. Davie 편

I. 기본사항

이름: Davie, C. Minnie / 데이비 / 한국명: 도희민(都熙敏)
1. 생몰연도: 1904 - 날짜미상
2. 출신 및 소속: 미국, 북 장로교
3. 한국선교기간: 1932.09.27. - 1959.?
4. 연표
1904.? 미국 출생 일제 강점기 당시 수사관이 그녀의 출생을 자세히 기록한 문서가 있는데 이 조서에 의하면 그녀는 미국 California 주의 Los Angeles의 데일리가(Daily Street)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듯하다. 또한 Minnie C. Davie 선교사는 미국으로 귀국하였을 당시 California에 있는 Santa Cruz 근방의 교회에서 자선행사를 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에서는 그녀의 활동은 주로 California 주와 그 지역의 장로교회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1932.09.27. 북 장로교 출신의 선교사로 내한, 청주 지역에서 교육 사업을 담당.
1941.?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을 당할 당시, 밀러 부인(F. S. Miller)과 교회와 학교를 지킴
1942.06 미국으로 일시 귀국함.1948.?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여 청주에서 학교와 교회재건에 집중함
1950.06.25. 한국 전쟁 당시 일본으로 피신함
1953.?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킨슬러(F. Kinsler), 밴리어럽(P. Van Lierop), 디캠프(O. DeCamp) 등과 시청각순회전도단 구성하여 경안노회 지방에서 전도활동을 전개. 또한 청주여자성경학교, 세광학교 등에서 교육사업을 진행함. Minnie C. Davie 선교사의 사망연도나 그녀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1959년까지 스테이션 선교회의 일원으로서 계속해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

5. 가족사항혼인여부: 미혼 문서들은 도희민 선교사를 ‘Miss Minnie C. Davie’라고 지속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사망 전까지 미혼 상태로 선교 및 교육 사역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II. 선교사 소개: 데이비(Minnie C. Davie, 1904-?)

1. Minnie C. Davie 선교사의 내한 이전의 삶

1904년 캘리포니아 주(California)에서 태어난 Minnie C. Davie는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학생으로서 교육을 받아오다 가정 형편 때문에 재학 중이던 대학을 자퇴하고 3년제 신학교에 진학, 졸업하게 된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신학교(San Franciso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를 하였고 졸업을 한 바로 그 해에 한국에 입국하여 선교사로서 활동을 한다. 그녀는 북 장로교에 소속된 교회들 85개를 순회하면서 전도에 집중하였고 스테이션회의 여전도사로서 활동하였다.

2. 불의에 저항한 무명(無名)의 북 장로교 출신의 여성 선교사, 도희민

도희민(Minnie C. Davie, 1904-?)의 이름은 의구심을 자아낸다. 영어 음가인 ‘미니 데이비’라는 이름을 차용하자면 ‘도희민’이 아니라 ‘도민희’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한국식 이름의 뜻을 풀이하자면 都熙敏, 즉 “기쁨을 빠르게 전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복음(Good News)을 전파하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본분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다잡기 위해 이름을 지은 듯하다. 그녀가 입국할 당시(1932)년의 한국은 암울한 상태에 놓여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였다. 조선이라는 왕조는 사라지고 한민족의 정신과 주권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말살당하고 있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시기에 한국에 들어와 그녀는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는데 열중하였다. 더 나아가 사회계몽 운동 및 일제의 불의와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평화가 찾아온 뒤에는 교육 사업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사회적 및 교육적 인프라(infrastructure)를 형성하는데 노력을 다하였다. 1913년에 세워진 한 건물에서 밀러 부인과 도희민 선교사는 피신하는 선교사들을 보내고 자신들이 이 장소에서 사역을 하였다.


3. 萬國婦人祈禱會事件(만국 부인 기도회 사건)에 연루되어 탄압받다!

도희민 선교사는 1941년 “만국 부인 기도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불구속 상태로 심문을 받았다. 아마도 그녀가 소지한 인쇄물들이 문제가 된듯하다. 진술에 따르면 그녀는 이 사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문서들과 그에 따라 신앙 활동을 위한 지침을 하위 교회들에게 전달한 것 같다. 당시 수사관은 인쇄물에 대해 질문을 하였지만 큰 혐의점은 찾지 못하였고, 그 후 그녀의 신앙관과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물어보았다. 도희민 선교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며 자신은 평화주의자며 정치에 대해서 개입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렇듯 일제는 그녀에 대한 탄압을 지속하였지만, 그녀는 한국 땅을 떠나지 않은 듯하다.

4. 1950.06.25. 한국전쟁 발발과 일본으로 피신

한국전쟁 발발 15일 후 공산주의자들이 3.8선을 넘어 청주로 진격하였고 이 당시 많은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핍박을 받았으며 청주의 교육 기관들은 약탈하였지만 폭격 당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도희민 선교사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잠긴 일본으로 피신하였고 훗날 1953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 사업에 매진하게 된다. 도희민 선교사가 동경에 거주할 당시 그녀는 가와사키와 세타가야구 지역(당시 한국인이 6,000명 가량 있었음)에서 한국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사역하였다. 그녀와 또 한명의 한국인 여성은 지프차를 타고 노방 전도 및 강회를 하였으며 1952년에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녀는 선교사들과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의 지원을 받아 빛을 지지 않고도 교회를 세웠으며 당시 교회 출석 성도의 수는 45명이었다.


5. 한국전쟁 이후 사회 복구를 위한 헌신과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

도희민 선교사는 한국전쟁 이후 귀국하여 자신이 본래 섬기던 지역인 청주로 돌아와 학생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진행하였다. 일단 한국전쟁 이전의 청주는 세속적인 교육을 제공하지는 않았는데 1937년에만 하더라도 50명의 남자 학생, 80명의 여자 학생들이 등록된 상태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전에는 ‘세광 학교’라는 고등학교가 세워졌고 1959년에는 500-700명의 학생들이 등록하였는데 도희민 선교사가 보고하기를 이 부지는 전에 선교회가 여자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장소였으며 장로교회가 이를 다시 사들인 것이라고 하였다.
2019-12-13 10: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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