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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lark, Charles Allen(1878-1961, NP) / Clark, Mabel Craft
 작성자 : 최주헌  2019-12-13 16:04:04   조회: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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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A010 / Clark, Charles Allen / 3-4 / 한태훈, 최주헌


Ⅰ. 기본사항

이름: Clark, Charles Allen / 클라크 / 한국명: 槨安漣
생몰연도: 1878-1961.5.26.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네소타주 출생, NP
한국선교기간: 1902-1941
연표
1878.11.17 미국 미네소타주 출생
1899 세인트폴의 메카레스터대학 졸업
1902 시카고의 매코믹신학교 졸업
1902.9.22. 북장로교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서울에서 선교준비, 곤당골교회(현 승동교회) 개척전도
1905 승동교회의 새 교회당 건축, 20여년간 시무하며 계급관념, 남녀차별의 형평운동에 공헌, 부흥
1908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후진양성에 매진
1910 매카레스터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
1912 신사리교회 동사목사 시무
1913-1915 마배교회 동사교회 시무
1916-1940 정교수가 되어 실천신학, 기독교교육을 담당, 신학지남의 편집 책임을 맡아 계속적인 저술활동
1916 조선예수교장로회 회계
1917 조선예수교장로회 부회장
1921 시카고대학 문학박사 학위
1929 시카고대학 철학박사 학위
1934 조선예장 총회의 표준성경주석 발행책임자로 선임
1940 신사참배 거절
1941 세계평화기도문 사건으로 추방
1946.11.17. 부인 소천
1948 정년은퇴 후 오클라호마에서 저술활동
1961.5.26. 오클라호마에서 소천
가족사항: Clark, Mabel Craft(부인), Clark, Allen D.(아들), Katherine E(딸)


Ⅱ. 선교사 생애
목사, 선교사로서 부르심에 대한 순종
곽안련이 미네소타 대학에서 2년을 마쳤을 때, 그를 주목한 노회는 맥칼레스터 대학에서 남은 2년의 수학을 하고 신학교를 갈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공부하는 동안 목사가 되기보다는 라틴어와 헬라어 교수가 되기를 희망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목사가 될 시 미개한 나라의 선교사로 나가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곽안련은 매고믹 신학교를 졸업하기 4개월 전 목사가 된다는 생각을 굳혔으나, 여전히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목사가 되는 문제에 대하여 10년 동안이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격론을 벌이다가 신학교 졸업 4개월 전에야 드디어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해외선교사로 가는 것만은 원치 않았다.”
그가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을 거부했던 이유는 형을 잃고 장남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은 외아들까지 보내셨다는 메시지를 듣고 자신은 동생이 있는데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신을 맡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단 선교부가 보내온 신청서의 항목을 기재한다.
평소 한국을 다녀온 친구가 한국에 대한 말을 많이 했기에 먼저 한국을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곽안련을 한국이 필요한 선교사로 결정하였다. 당시 동기 44명 중 18명이 선교사 지원을 하였고, 많은 지망생들이 한국을 지원했으나 곽안련과 그의 친구 컨스(kerns)만 한국으로 가게 됐다. 곽안련은 1902년 매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9월 22일 부인 Mabel Craft와 함께 내한한다.


교회개척과 목회사역
곽안련은 처음 서울에 머물면서 선교준비에 힘쓰는 한편 곤당골교회(현 승동교회)의 개척전도를 위하여 활동했다. 1905년 승동교회의 새 교회당을 직접 감독하여 건축했고 부흥을 경험한다. 1907년에 이미 승동교회는 8백 명이 모이는 대교회로 성장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동 교회에 시무했다.
그러나 그의 목회 무대는 실로 넓었다. 그가 품고 있던 끊임없는 전도의 열기는 150여 교회들을 개척하기에 이르렀으며, 자신이 당회장으로 성례를 집례해야 했던 교회가 매년 20여 교회였다. 다방면에 걸친 선교활동에 몰두했다. 그는 서울의 동부지역, 양평·양주·시흥·광주·강릉 등지를 전국적으로 순회전도하여 여러 곳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순회전도에 참여하였는데, 전도의 과정에서 때로는 위험한 고비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의 순회는 주로 장마철에 있었고, 이 기간 동안에는 시골에 물이 범람하고 중국벌레가 온 누리에 가득했다. 농부들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와야 했고 학습과 세례문답을 한 후 성례를 해야 했기에 우리의 예배는 보통 밤 11시에 시작됐다. 교각은 홍수로 망가졌기에 나는 물이 불어난 위험한 개천을 건너야 했고, 어느 때는 물 깊이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물길을 헤쳐 가다가 건너편 사람들이 바로 앞의 물이 12자가 넘는다고 소리 질러 위험의 순간을 면하기도 했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심인 사역 때문에, 곽안련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은 대략 3천 명이 넘을 정도였다.
전도사역뿐 아니라 그는 1905년부터 승동교회 안에 면려회를 조직하여 청소년 사역에 정성을 기울일 뿐 아니라 주일학교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1921년 서울 YMCA, 태화여자관, 승동교회, 감리교 중앙교회에서 2,000명의 전국주일학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주일학교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곽안련은 국내 강사로 수고했다. 이 면려회는 주로 학생들이었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의 나이가 많아서 면려청년회 또는 면려학생회라고 불렸다. 1907년에는 여학생도 참가하게 하였다. 평균 집회 인원은 50여 명이었고, 모임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은 토론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좌석을 휘장으로 갈라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의 진행이 잘 되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이 휘장은 1930년 경까지 지속되었다.
또한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이던 계급관념과 남녀차별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그 형평 운동에 크게 공헌했으며, 사회적으로 음주와 흡연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때 사회의 정화를 위한 목회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나타내기도 하였다.


3. 평양신학교
마포삼열 선교사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평양신학교의 신학적 전통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은 곽안련 선교사였다. 1902년 한국에 파송된 그는 1908년에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여 1922년에 전임교수가 되었다. 그는 실천신학과 기독교교육 분야 담당교수로 1940년 학교가 폐교될 때까지 계속 봉직하였다. 1910년도의 교수진은 북장로교의 스왈른, 클락, 언더우드, 게일, 샤프, 남장로교의 맥쿠첸, 벨, 불, 호주 장로교의 엥겔 그리고 캐나다의 푸트였다. 1학년 과목은 신약주해, 소요리문답, 구약사 및 구약 성경 지리, 설교연습, 구약주해, 신학, 설교학, 구약사였고, 클락은 설교학을 가르쳤다. 16년에 간행된 「학교 요람」에 따르면 평양신학교 초창기 교수진의 소속 선교회와 부임 연도는 다음과 같다.

마포삼열(북장로교, 1901년) - 교장
이길함(북장로교, 1901년) - 신구약 해의, 신도, 교회정치, 성례, 교회사기
언더우드(북장로교, 1905년) - 신도, 심리학
소안론(북장로교, 1901년) - 도덕학, 신구약해의
한위렴(북장로교, 1903년) - 신구약해의
배위량(북장로교, 1901년) - 교회사기, 구약해의
편하설(북장로교, 1903년) - 도덕학
왕길지(호주장로교, 1906년) - 교회사기, 교수법
이눌서(남장로교, 1906년) - 신도, 신약해의
사우업(북장로교, 1907년) - 목사지법, 구약사기
곽안련(북장로교, 1908년) - 실천신학, 설교학
배유선(남장로교, 1908년) - 신도, 신약해의
기일(북장로교, 1908년) - 말세학, 신약해의
마로덕(남장로교, 1909년) - 신구약해의
어도만(북장로교, 1911년) - 구약해의
나부열(북장로교, 1913년) - 신구약해의
업아력(캐나다장로교, 1915년) - 교회사기, 신약해의

당시 평양신학교에는 설교학 분야를 강의할 수 있는 교수가 없었다. 곽안련 선교사가 설교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던 때는 1907년 대각성부흥운동의 파도가 전국을 한창 휩쓸던 시기였다. 이때 말씀의 바른 선포와 해석과 적용을 위한 교육은 어느 과목보다 절실한 때였다. 바로 그 때 그가 설교학 책을 들고 평양신학교에 입성하였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에 깊은 뜻을 두신 하나님의 섭리라고 봄이 타당하다. 그는 설교학, 설교실제, 예배모범, 목회학, 목회실천, 교회정치와 권징, 교육학, 청년사역, 사회봉사, 개인전도, 기독교심리학, 아동심리학, 주일학교 조직 등의 과목을 만들면서 실천신학의 분야를 점차 넓혀가게 되었다. 특히 곽안련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을 다섯 가지로 경험해 보도록 권고했다. 시내의 전도소에서, 공장에서, 역전 광장에서 전도를 하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전도하며, 시장과 병원에서 전도해 보도록 권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접하는 전도 대상자의 이름과 주소를 매주 적어내도록 하였다.
특히 곽안련 선교사는 수많은 연구서와 신학지남의 기고를 통해 평양신학교 발전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 북장로교 한국선교부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에서 그리스도 사역을 위하여 곽안련 박사와 같이 그렇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공헌을 한 특권이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신학지남의 3분의 1을 기고했으며, 신학교 교재 설교학과 예배학을 비롯한 50권의 한국어 책을,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비롯한 6권의 영어 책을, 그리고 레위기, 민수기, 사무엘, 에스라, 느히메야, 욥기, 시편, 6권의 선지서, 또 공관복음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분량의 표준성경주석을 집필한 주인공이었다.


4. 일본에 대한 태도
선교사들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투쟁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1908년 2월 15일 곽안련 선교사가 보낸 편지에 나타난 대로, 한국인의 의무는 일본에 복종하는 것이고 독립을 위한 일체의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 선교사들이 주장하는 불편중립중립주의라면 그들이 말한 불편중립주의는 “불편주의가 아니고 확실히 편파적”이었다. 이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친일적으로 비추어지기에 충분했고, 좀 더 객관적 평가를 한다 해도 그들의 입장은 일본의 대한 통치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다대수 선교사들은 쿤스나 클락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105인 사건을 통해 이와 같은 시각이 어느 정도 수정되게 된다. 한국에 전래된 이후 기독교는 한국의 문화, 사회 전반에 놀라운 개혁세력으로 자리 잡아 왔다. 금주, 금연, 조혼의 폐습 개혁, 노비 해방, 천민구호 등 일련의 사회개혁과 국민계몽이 기독교를 통해 추진되었다. 사경회와 부흥운동,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운동, 그리고 기독교의 놀라운 성장은 교회에 영입된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민족의식을 불어넣어주었다. 1909년부터 전개된 백만인구령운동이 보여주듯, 당시 민족복음화는 한국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소중히 간직한 비전이었다. 1912년 브라운이 한국 105인 음모사건에서 지적한 것처럼, 총독부는 자신들이 볼 대 놀라운 성장을 구가하며 민족의 구심점으로, 민족계몽과 사회개혁의 선도자로서 자리 잡아 가는 교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일제는 1910년 12월 29일 데라우찌 총독이 선천을 지나가는 기회를 타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계획했다며, 총독암살음모 사건을 날조하여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한국 주재 미국 선교사들은 이 105인 사건을 통해 일제가 입증될 수 없는 거짓 증거를 가지고 그런 음모를 세워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모습을 목도하고 적지 않은 실망을 하게 됐다. 이들은 105인 사건이 한국에서의 “기독교운동을 억압하고자 하는 일본 정책의 증거”라는 사실을 떨칠 수 없었다.
일제의 탄압은 신사참배 강요로 이어졌다. 기독교학교에서 신사참배가 크게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이지만, 찰스 알렌 클락이 지적한 것처럼 이미 1913년에 공립학교에서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있었고, 1920년부터 천황예배나 신사참배로 인한 마찰이 있었다는 증거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탄압 앞에서 1938년 9월 9일 오후 8시, 역사적인 제 27회 총회가 평양 서문외예배당에서 개회되었고, 이 총회는 장로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신사참배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장로교 교단 신학교인 평양신학교 학생들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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