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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awton, Burke R.(미상, M) / Lawton, B. R.(미상, M)
 작성자 : 유재환  2019-12-13 16:07:33   조회: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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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 B038 / Lawton Bruke. R / 3-4 / 유재환


노태인(로태인) 선교사 / Lawton Bruke. R(미상)

I. 기본사항
1. 이름: Lawton Bruke. R / 한국명: 노태인(로태인)
2. 생년월일: 미상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09-1917
5. 연표미 상. 미국 콜로라도 오스틴에서 출생1909. 내한1912. 3 주일학교 및 구역 담당 사역(1913. 6에도 동일한 기록이 있다.)1912. 3 서울 지역 선교회좌정위원, 인천 통계표위원으로 사역함1913. 6 주일학교 및 구역 담당 사역, 교육위원회 사역, 지역 교회 담당1913. 제물포 지방(경성지방에 포함)에서 복음전도자로 활동1914. 경성지방 신학교 사역1914. 제물포 지방에 파송 (1914년 제7차 조선 미감리교회 연회에서 경성과 제물포 지방을 분리)1915. 제물포 지방 순행목사 사역19xx. 감리교협성신학교 교수 역임1916. 논문 「유대민족이 사로잡혀가 있던 곳에서 귀환함과 성전을 재건축함」 저술1916. 안식년을 맞이하여 귀국
6. 가족사항부인: Lawton Bruke. R

II. 선교사 소개
1. 1913년 재물포 사역(1913. 9)
노태인은 재물포에서 100일 동안 14번의 선교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25일 동안 성경 수업이 열렸고 노태인은 로튼 부인과 함께 가르쳤다. 평균 출석자는 남자 157명, 여자 170명이었다. 그리고 그중 성인 40명과 아이 83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면서 노태인은 지도자들을 세웠다. 그중 제물포 첫 번째 교회의 목사인 이익모 목사가 있으며 세 개의 섬에서 교회를 보살피며 사역한 최척일 목사가 있다. 젊은 학생 중에는 김광국이 있다. 그는 열정적으로 남강화에서 순회 사역을 하였다. 강화시에는 훌륭한 조직력으로 교회의 기간 사역을 번창하는데 일조한 조내덕이 있다. 그 외에도 노태인은 4명의 신학생을 세웠으며 당시 한명은 신학교를 막 졸업한 상황이었다. 당시 노태인의 지도 아래에 남자학교는 학생 590명과 교사 41명이 있었다. 그중 3명의 학생은 졸업 후 일정 기간 교사로 근무하기로 장학계약에 따라 배재고에 입학했다. 영흥도에도 학교가 세워졌을 때 학교의 두 명의 교사 중 한 명은 배재고를 졸업한 학생이었다. 이를 통해 노태인은 제물포 일대의 섬에서 교육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육자들을 세워 한국교회가 자체적으로 세워지도록 힘썼음을 알 수 있다.
2. 섬 여행 일정(1914. 11)
The Korea Mission Field(1914) 가운데 “ISLAND ITINERATING”라는 제목을 가진 노태인의 글이 있다. 이에 의하면 1914년 11월경 2주간의 섬 여행에 관한 기록이 담겨있다. 노태인에 의하면 노태인과 그 일행은 교동을 포함한 교동 일대에 아직 방문해보지 못한 교회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1914년 제물포 지방에 파송 받아 교회를 돌아보는 사역을 노태인이 감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태인이 기록한 이 글에 따르면 노태인이 사역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의 사역이 단순히 교회 사역뿐만 아니라 교회 간에 이동하면서 겪은 험난한 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노태인이 단순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역만 한 것이 아니라 제물포 지방에 파견받아 섬에 있는 여러 교회를 직접 돌아다니며 교회를 돌아보았음을 알 수 있다.
3. 신학교 사역
노태인의 신학교 사역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케이블, 데밍과 함께 신학교에서 사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신학교가 감리교협성신학교임을 그의 논문 “유대민족이 사로잡혀가 있던 곳에서 귀환함과 성전을 재건축함”을 통해 그가 알 수 있는 정도이다. 글에 따르면 유대민족이 처음 돌아올때에 세스바살이 인도하였음을 언급하면서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동일한 인물인지 알 수 없으나 셰인의 평론을 언급하며 이들이 동일인물이 아님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에스라의 귀환과 성전건축을 말하며 이것이 중단되어 158년간 학개와 스가랴에 의해 독려되면서 재진행 되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첫 제사에 대한 찬송이 시편 95~100편일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성전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집이 하나이며 이전의 성전과 동일한 것임을 언급하며 이는 에스라의 묵시를 말하여 그 가운데 여화와께서 떠나심을 보던 집에서 여호와께서 다시 그 집에 거하시기 위하여 돌아오심이라 말한다. 이처럼 노태인은 신학교 교수로서 후진 양성을 위해 힘썼음을 알 수 있다.
4. 논문: 유대민족이 사로잡혀가 있던 곳에서 귀환함과 성전을 재건축함
신학세계에 기록된 노태인의 글을 살펴보면 노태인은 감리교협성대학교 교수로 사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 글의 내용은 이사야 41장 2절 말씀과 에스라, 역대하 말씀을 통해 유대민족이 사로잡혀 있던 바벨론에서 고레스로 인하여 귀환하게 되었으며 성전을 재건축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5. 순행목사로서의 사역(한국감리교회의 역사_ 유동식_기독교대한감리회)
제물포 지방은 1913년까지 경성지방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1914년에 독립되었다. 그렇기에 1914년 교회 구역과 파송 현황을 살펴보면 노태인은 제물포 지방에 자신의 부인인 노태인 부인과 감리교 외국부인선교회의 밀러, 샤프, 헤스 양과 함께 파송 받았다. 1915년 제물포 지방 감리사인 최병헌의 보고에 따르면 노태인은 제물포 지방의 순행목사로서 사역을 하였다. 당시 제물포 지방에는 부평, 인천, 강화, 교동, 영종이 걸쳐있었다. 1914년 9개의 계삭회, 69개의 교회, 6885명의 교인, 19개의 매일학교, 54명의 교사, 910명의 학생이 있었다.

IV. 참고문헌
[노태인 선교사 저술]
노태인. “유대민족이 사로잡혀가 있던 곳에서 귀환함과 성전을 재건축함”, 「神學世界」 Vol. 1 No. 2 (1916).
한국기독교사 연구회. “CHEMULPO MISSION IN 1913”, The Korea Mission Field(1913), 한국기독교사 연구회, 1986: 251.
한국기독교사 연구회. “ISLAND ITINERATING”, The Korea Mission Field(1914), 한국기독교사 연구회, 1986: 351.

[단행본 및 논문]
윤춘병. “한국 감리교회 외국인 선교사 Methodist Missionaries in Korea”. 서울: 감리교본부교육국, 1989: 53.
유동식. “한국감리교회의 역사, 1884-1992”, 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1994: 351-359.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基督敎大百科事典” Vol. 5, 서울: 기독교문화사, 1994: 301.
기독교 대한감리회 백주년기념 사업위원회. “朝鮮監理會年會錄” Vol. 2(1906-1914), 서울: 기독교 대한감리회 백주년기념 사업위원회, 1984.
기독교 대한감리회 백주년기념 사업위원회. “朝鮮監理會年會錄” Vol. 7(1912-1921), 서울: 기독교 대한감리회 백주년기념 사업위원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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