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9.15 화 11:15
 
 내한선교사/B126/Tait, Maisie G.(생몰연도 미상) / 내용올리라 하셔서 다시 올립니다 수정이 안되네요
 작성자 : 명노아  2019-12-16 18:51:02   조회: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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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내용 수정했더니, 안돼서 다시 올립니다.
제출 기한 날짜 어긴 것아니니, 처음에 올린 게시물 날짜 확인 부탁드립니다.

Ⅰ. 기본사항김승태, 박혜진 편, 『내한 선교사 총람 : 1884-1984』, 서울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bjoon63&logNo=3010215290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정병준,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p150


1. 이름 : Tait, Maisie G. / 타이트 / 한국명 : 태매시
2. 생몰연도 : 알 수 없음
3. 출신 및 소속 : 호주, 호주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 1919-1922(거창), 1923-1941(마산)
5. 연표
1918. 디커니스 훈련소 졸업
1919. 한국에서 Miss Ebery가 철수하면서, 여선교연합회에서 선교사가 됨
1919.3.31. 디커니스로 세움 받음
1919.8 호주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거창에서 2년간 여성 선교사업 주관
1922 마산으로 옮겨 20년간 경남지방 선교사업에 헌신
- 여성중심 사경반 운영하며 여전도회 사업을 도움
- 진주 경남여자성경학원 교수로 봉직
1938 이후 신사참배반대운동 적극 후원(경남여자성경학원, 경남여전도회 중심)
1941.4 신사참배반대운동 가담혐의로 검속되어 3일간 구금
1941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6. 가족사항
부친 : 리스고우 타이트(Rev. Lithgow Tait, 1851-1936), 선교에 동행하지는 않음















Ⅱ. 선교사 소개: 타이트(Tait, Maisie G., ?~?)

1. 소명을 받은 목사의 딸
타이트(Tait, Maisie G.)는 키네튼의 리스고우 타이트 목사(Rev.Lithgow Tait, 1851~1936)의 딸이다. 1904년 여름휴가 중에 그녀와 여동생은 교회캠프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 목사님이었던 아버지는 교회의 학생들에게 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그녀가 받은 작은 카드에는 “너는 기쁨으로 나갈 것이며 평강으로 인도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혹시 이 글이 언젠가 내가 선교사로 갈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녀의 부친이 그리스도의 대의에 따라 살도록 강조했을 때 타이트는 성만찬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한 부흥사가 복음성가 가수와 함께 그녀가 사는 마을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가수의 노래 안에서 타이트는 “달콤한 확신” 즉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경험, 그의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경험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깊은 종교적 체험을 한 것이다. 그리곤 그녀의 친구와 많은 대화와 친교를 나누고 난 후, 타이트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정병준,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p158


그 후 타이트는 수년 동안 사무실 일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간호사로 훈련받은 그녀의 친구가 키네튼을 방문했다. 아티으는 만족할 수 없는 사무실 일을 그만두고 멜버른 병원에서 네 달 반의 간호사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디커니스 훈련소에 입학했고 1918년에 졸업했다. 1919년 한국에서 에버리(Miss Ebery)가 철수하면서 공석이 생겼을 때, 여선교연합회는 타이트를 선교사로 받아들였고, 타이트는 1919년 3월 31일에 디커니스“deaconess”는 (일부 교회에서 deacon과 같은 일을 하는) “여성 부제”라는 의미, 네이버 어학사전
로 세움을 받았다.Maisie Tait G., “What Led me to Became a Missionary, KMF(Nov.1922), pp.241-242
복음주의적 가족의 영향과 부흥집회에서의 회심의 경험이 그녀의 선교동기가 되었던 것이다.정병준,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p158
실로, 많은 빅토리아 장로교 선교사들은 그들의 복음주의 가정, 혹은 선교사 가정으로부터 선교적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한국 선교사들 중에, 목사의 자녀는 매크래이 목사, 커닝햄 목사, 볼란드 목사, 마가레트 데이비스, 마가레트 알렉산터, 매이지 타이트, 진 데이비스 의사였다.

2. 한국으로 파송됨(1), 거창
여선교연합회는 1919년 타이트를 거창으로 파송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주일 학교에서 가르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여학교와 야간학교를 운영할 책임을 맡았고 여러 차례 순회사역에 나섰다. 그녀는 최소한 한 번의 여름방학을 서울에 있는 한국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보냈다.8)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bjoon63&logNo=3010215290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그 당시 거창에 있던 선교사들은 목사로서는 토마스 부부와 켈리 부부, 그리고 전도사로서는 위더스와 타이트가 있었다.

호주장로교의 거창선교지부가 설립된 1913년 6월 이전부터 거창지역에는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다. 거창지역에서의 복음과의 접촉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진주나 서울 등 외부지역을 왕래하는 현지인들이 기독교에 대한 소문이나 이야기를 전해주거나, 외부지역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접촉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경우이다. 두 번째는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1905년을 전후로부터 거창에는 선교사들의 왕래가 있었고,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거열휴 선교사도 한국인 조사 박성애와 함께 거창을 순방하며 복음을 전하였었다. 1909년 10월 10일에는 거창교회도 설립되었다. 이후 호주장로교 거창선교지부가 설립되어, 선교사들이 파격되고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거창 지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호주 장로교 거창 선교지부의 교육사업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기초를 이루었다. 이러한 호주선교사들의 교육선교는 많은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특히 그 당시 배움의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하고 학령을 넘긴 여성들이나 정규학교에 입학을 할 수 없었던 가난한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주성택, [호주장로교회의 경남지역 선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5석사학위논문, p.20-21


3. 한국으로 파송됨(2), 마산
1923년 그녀는 마산으로 이전해서 18년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녀의 임무들은 전도하고, 지역을 철저하게 순회하고, 교회들의 여성들을 중심지로 모아서 사경회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임무들 중 일부는 전도부인들의 사역을 감독하는 것이었는데 타이트는 전도부인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녀는 또한 성경학원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위해 매년 준비반을 모아서 가르쳤고, 성경학원에서도 가르쳤다.10)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bjoon63&logNo=3010215290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4. 신사참배와 저항
호주장로교의 교리적 표준은 웨스트민스터 표준서였다. 호주선교사들의 신학은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복음주의적 진보사상’을 가진 이들이었다고 평가 된다. 이들은 복음주의적 계열에 서 있지만 자유주의적 신학을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을 지닌 호주장로교에 있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였다. 신차잠배 강요는 특히 학교교육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였고 선교사들 간에도 적지 않는 문제를 야기하였다.이상규, [호주(빅토리아)장로교회의 부산, 경남지방 선교활동], p.81-82
당연히 호주선교사들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반대하며 저항하였기 때문이다.

호주장로회는 일본 당국이 미션 스쿨에 대해 신사참배 요구를 해왔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1936년 2월 7일 마산에서 모인 선교협의회는 만장일치로 다음의 안건을 통과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복종과 충성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 우리의 임무를 인정한다. 우리의 학교들이 모든 국가의식에 참여할 수 있기를 요망한다. 그러나 인류의 아버지로서 계시된 우주의 창조주이며 통치자인 한분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다른 영에게 봉헌된 신사에 참배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은 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참배를 할 수 없고 우리 학생들에게 그것을 하라고 가르칠 수 없다.Extracts, Vol.23, 1936, p.78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저항의 운동 가운데 타이트도 참여하였다. 참배반대운동의 대표적인 여성지도자인 최덕지는 마산과 통영에서 참배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주로 부흥사경회를 통해 이 운동을 확산시켰다. 당시 반대운동에 참여한 전도부인들은 마산의 타이트 선교사의 집에 모여 3-5일간의 기도모임을 가지고, 다시 지역 교회로 흩어지곤 했다. 1940년 4월에 한상동 목사와 이인제 조사는 타이트의 집을 방문해서 반대운동의 방법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논의했다. 그리고 타이트는 김두석 선생에게 평양의 여자신학원에서 공부하도록 제안하였다. 마산의 비밀모임은 타이트 선교사 집 외에도 개인 집과 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40년 7월에 일부 동지들이 체포된 이후, 타이트 선교사는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금지 당했다. 김두석 선생은 타이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정병준,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p334


그녀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마르는 날이 없이 우리들 즉 신앙의 동지들을 위하여, 그리고 조선교회의 수난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단 한번이라도 우시지 않으신 때가 없었다. 동료 선교사들에게까지 “너무 고집스럽다”고 미움을 받으시면서도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이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김승태 엮음, 『증언』, p.64


5. 일제에 의한 추방
1941년 3월부터 일제는 2월 28일에 열린 “만국부인기도회사건(the Women’s World Day of Prayer)”을 빌미로 선교사들을 추방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이 세계기도운동은 세계복음화, 세계평화, 하나님 나라를 촉진하기 위해 미국 장로교 국내 선교부 의장 다윈 제임스 부인에 의해 1887년에 시작되었다. 일제는 이 기도모임을 반국가 활동으로 규정했다. 1941년 기도회의 주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였다. 특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계시록 11장 15절의 성경본문은 일본 경찰을 자극했다. 그들은 반전의 경향성과 평화운동이 일본의 전쟁체제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4월 1일 호주선교사 마가레트 알렉산더와 타이트는 기도회 순서지를 배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호주의 해외선교위원회와 여선교연합회는 선교사들의 안전에 대해 매우 염려하였으며, 타이트가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질롱노회는 한국의 여선교사들이 귀환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편지를 해외선교위원회에 보냈다.정병준,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p323


1941년 동안 대부분의 호주 선교사들은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진 데이비스 의사, 호킹, 매클라렌 부인과 그의 딸 레이첼은 1941년 4월 호주에 도착했다. 6명의 여선교사들 레가트, 에드거, 릿치, 왓킨스, 딕슨, 오만은 5월 12일에 한국을 출발해서 6월 28일에 멜버른에 도착했다. 알렉산더와 타이트는 6월 말에 석방되었으나 경찰의 강한 압력 때문에 11월 17일에 귀환했다.정병준,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p325


6. 이후의 활동
1941년 철수한 타이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PWMU의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 장로교회에서 분립한 독립해외선교부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이 선교부의 선교사들은 해방 이전에 일제가 한국인에게 강요한 신사참배에 저항했는가, 부분적으로 굴종했는가 하는 문제로 경남지역 교회들 안에서 야기된 긴장을 더 악화시켰다. 수년이 지나서 타이트는 한국의 주요 장로교단들로부터 분리된 가까운 한국인 여성친구들이 이끄는 작은 단체1948년 2월 18일 최덕지 전도사가 중심이 되어 경남 동래군 기장에서 30여 교회가 참석하여 세운 예수교재건교회 중앙위원회이다. 타이트 선교사는 신사불참배운동을 함께 벌인 최덕지 전도사와 뜻을 같이하여 1949년 5월 16일 진해에서 모인 제3회 재건교회에 참여했다. 한국전쟁 이후 태매시는 재건교단의 극단주의에 반대하여 재건 교단을 떠났다.
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1955년 6월 경에 호주선교회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18)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bjoon63&logNo=3010215290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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