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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6반 심보람 201221365 내한선교사 과제
 작성자 : 심보람2012210365  2019-12-20 07:21:36   조회: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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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ing, Margarete (사리영, 솔링)

1. 서론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 묘에 가보면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들어오던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기독교 서적에서도 잘 알려진 몇 명의 선교사들의 이야기들만을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있기까지는 그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괄목할 만한 선교적인 성과로서 학교나 병원을 세우는 등의 열매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국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이 땅에서 자신의 삶을 썩게하여 영혼의 열매를 맺으려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선교사들의 생애와 사역을 들여다보게 될 때에 한국의 교회는 유익을 얻게 된다. 첫째, 한국 선교의 역사를 더욱 입체적이며 풍성하게 이해함으로써 그 정신을 더욱 계승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각 선교사들이 뿌린 씨들이 오늘날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 혹은 아직 열매 맺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를 깨닫게 도와준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 선교사들이 여러 모습으로 활동해왔음을 발견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선교를 정검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 뿐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여러 분야에서 어떻게 효과적인 선교사명을 담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사리영 선교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이다. 한국 교회사와 관련된 연구소에서 본 과제를 위한 선교사 자료를 함께 찾아주시던 연구원 분도 이렇게 자료가 없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이 과제가 더욱 가치있게 느껴지게 된다.


2. 본론

1) 기본 사항 김승태, 박혜진 편 『내한선교사 총람:1884ー1894』 (서울:한국기독교사역연구소, 2007)
한영제, 『기독교 대백과 사전』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문사, 1983)



1889
덴마크 출생
1911.1.12
덴마크 구세군 사관학교 입학
1911.7.5
사관학교 졸업, 부위가 됨
1912.11
덴마크 코펜하겐 구제부에서 봉사
1912.12
정위로 승진, 한국 선교사관으로 임명
1914.3.7
구세군 선교사로 내한

충남 공주 유구에서 어학공부
1916.6-1920
여자육아원 원장
1920-22
신병으로 귀국하여 휴가
1922-1930.12
다시 귀환하여 여자고아원 원장보, 원장
1930.12-1938.2
여자육아원 원장, 외국인 자녀 기숙사 사감, 원산의 사관휴양소 소장 겸임, 참령까지 오름
1936.7.5
25주년 근속상을 받음
1938.2-
본국으로 휴가를 떠남,
휴가마친 후북중국에 개설된 곳으로 전속
1950
죽음



2) 선교사 소개

가. 짧은 생애를 한국 선교에 바치다.
61년의 짧은 생을 살았다. 25세에 한국 선교사로 와서 49세까지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청년 때와, 뜨겁게 일하는 중년의 때를 모두 한국 선교에 바쳤다. 49세에 중국으로 전속되긴 했으나 12년 후에 그녀는 하나님 곁으로 떠나게 된다. 중국에서의 사역에 대한 자료를 찾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생애의 거의 절반을 바친 한국이다. 그녀의 젊음과 열정과 온 마음을 주고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었을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나. 근면성실함과 리더쉽, 다양한 재능을 갖춘 사람이었을 것이다.
- 근면함
구세군에서 25년 근속상을 받았다. 일본의 압제속에서 한국의 정세가 혼란스러운 때 한국에서의 선교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주 사역은 여자 고아들을 데려다가 그들을 양육하고 교육하여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여성에 대하여서 평가절하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에게 처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였다. 중국에 새로 신설된 곳으로 전근을 가기 전까지 그녀는 여자고아원의 책임자로서 자리를 계속해서 지켰다.
덴마크에 휴가를 장기간 다녀온 것은 단순한 쉼을 넘어서 병을 치료하는 목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녀는 국내에 있는 동안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만주 안동현에 있는 덴마크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었다. 한영제, 『기독교 대백과 사전』


-인정받은 리더쉽과 행정력
뛰어난 리더쉽과 행정력을 갖춘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그녀에게 처음 맡겨진 사역은 ‘혜천원’ 여자고아원 사역이었다. 뒤에서 자세히 한번 더 설명하겠으나, 당시 고아원이 거의 세워지지 않을 시기였으며, 여자고아원은 우리 나라 최초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구세군의 주력사업으로서 주목을 받는 기관이었다.
윌리엄 부스에 의해 한국개척사관으로 임명받은 로버트 허가드가 1908년 10월 1일 한국땅에 당도함으로써 한국 구세군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사역은 바로 혜천원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김준철 『한국 구세군 백년사』 (구세군 출판부, 2008) 184-5

그런데 이런 의미있는 자리에 경력도 거의 없고, 나이도 어리고 계급도 많이 높지 않았던 사리영이 실업관장 김준철 『한국 구세군 백년사』 119-120
으로 자리했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사관학교와 코펜하겐 구제부에서 그녀의 리더쉽과 행정력이 인정받아 왔을 것이다.

- 실업교육 능함
혜천원에서 그녀에게 맡겨진 사역은 한국의 여자 고아들에게 자활능력을 길러주어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영제, 『기독교 대백과 사전』, 983
그녀는 자수, 편물, 수예 등을 가르쳤다. 제2대 한국 총사령과으로 부래지 정령이 임명되어 갖는 공식 환영집회가 있었다. YMCA 강당에서 열린 이 공식 환영집회에는 당대의 선교부 지도자들과 정치계인사들이 참여하였었다. 이 자리에서 혜천원 원생들의 교련시범이 있었다. 김준철 『한국 구세군 백년사』 126-7
한국에서의 구세군의 선교사역의 열매로서 혜천원이 주목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혜천원 아이들은 일본과 스위스 등 여러 나라의 행사에 다녀오기도 했고 캐나다의 노래 사절로 가서 그곳 부녀선교대회를 크게 지원하기도 했다. 한영제, 『기독교 대백과 사전』, 16권, 522-23


- 뛰어난 언어습득 능력
한국의 첫 구세군 선교사로서 그녀를 포함한 8명의 사관들이 임명을 받고 도착했다. 그중 1명은 영국인, 8명은 스웨덴 사람이었다. 여성이 7명, 남성이 2명이었다. 여사관은 부관 허스트(영국), 정위 어륵손, 정위 사리영, 부위 본크비스트, 부위 윤선, 부위 안귀지, 부위 하변찬이었다. 남사관은 부위 옥서홈, 부위 위설영이었다.
3월에 입국하고 2개월이 지난 때에, 하변천, 안귀지, 본크비스트와 함께 사리영은 충남 공주 유구지방영으로 임시 판견되어 조선을 공부하게 된다. 2년간의 어학공부를 통하여서 그녀는 한국어를 사용하여 여자고아원 실업관장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외국인 자녀 기숙사 사감을 맡게된다. 그녀의 영어실력이 뛰어났음을 알게해주는 대목이다.


생애의 말년을 중국에 신설된 기관으로 파견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면성실하고 우수한 리더쉽과 행정력으로 신설된 기관을 탄탄하게 세워가는 역할을 했으며, 새로운 언어에 대하여 빠르게 습득함으로써 타국 선교사들 및 선교지의 현지 사역자들과도 원활한 의사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원함도 있었을 수도 있으나, 중국에서의 구세군 사역을 위하여 신설된 기관에 그녀를 파견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 한국 기독교 사회사업의 시초, 여성 고아원 혜천원 원장
영국복음선교회에 소속되어서 한국 경서 양오개에서 사역하고 있던 엘렌페쉬 선교사가 있었다. 그녀는 1916년 5월 1일 한국에 있는 영국복음 선교회의 주택, 학교, 교회, 조선집, 소재하는 토지 등을 실업학교와 소녀의 집 건립과 운영을 목적으로 구세군에 기증하였다. 이 법적인 절차를 위하여서 조선주재 영국 총영사 아서레이를 대신하여 부영사 버틀러의 입회와 서대문영 부관 조지팔머가 증인으로 보는 가운데 엘렌페쉬의 서류를 합법적으로 작성했다. 그전에 1916년 4월 29일 부관 조지 팔머는 페쉬가 구세군에 기증하 재산을 경성 공등 변호사 사무소 법적 변호사에게 의뢰하였다. 대지는 죽청점 3의 58번지(현 서대문구 충정로 3가) 659평이었고, 재단법인 등기원본에는 1916년 7월 18일 구세군 영국인 로버트 호가드로 이전, 1931년 10월 28일 조선 구세군 유지재단법으로 이전된 것으로 작성되었다. 페쉬여사는 구세군으로 이전할 때에 여자 고아 12명(맹인2명 포함)도 함께 넘겨주었다. 1916년 10월 5일 구세군을 이 대지 위에 혜천원을 신축하였고 여자실업관장으로 사리영을 임명하며 정식으로 개관했다. 혜천원은 소녀양육 뿐 아니라 사관들의 연합집회 장소와 대회 때 사관들의 친교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김준철 『한국 구세군 백년사』 119-120

당시에는 전국에서 인천에 성공회 고아원이 작게 하나 있었을 정도였다. 때문에 혜천원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사회사업의 시초라고 평가될 수 있다. 한영제, 『기독교 대백과 사전』, 16권, 522-23


유트브, ‘한국구세군의 시작’, 구세군한국군국, 게시일 2016, 검색일 2019.12.17


라. 한국 사회에 있어서 여성 리더쉽으로서의 모델
구세군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65년 영국에서 출범하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도시 뒷골목이 빈민들로 넘쳐났고 실업난이 심각했다. 그런 와중에 소녀들을 성의 노예로 만드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구세군은 결혼연령을 12세에서 18세로 높여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었다. 일제의 압제속에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놓여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과거의 영국과 비슷했다. 한국에서 구세군의 첫 정식활동이 고아와 윤락여성을 돕는 혜천원이었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만 하다. 1999, 12, 23, 매일경제 43면 기사 ‘땡그랑,,,땡그랑,,,훈훈한 사랑의 ‘전도사’ 구세군‘ 참고


일찌감치 캐서린부스는 1895년 초안한 사관군령군율에서 선교에서 여성과 남성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고 여성 사관의 위치를 명백하게 밝혀왔다.

‘ 구세군이 근거하고 있는 주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권리이다. 세상을 향한 구원을 선포하는 위대한 사역에서 남성과 동등한 몫을 가지는.... 여성은 구세군에서 담임사관 직부터 대장직까지 권위 또는 힘을 갖춘 지위를 소유할 수 있다. ...여성은 모든 지적 사회적 관계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전광표, 황선엽 『구세군 한국선교백주년 보고서 2008』 ( 구세군한국선교백주년본부, 2008), 92-94


캐서린 부스가 이러한 주장을 할 때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반대를 겪으면서도 이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일평생 전념했다. 여성이 남자 사관들과 같은 권위를 넘어 더 높은 위치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임명했으며 유능한 여성들에 의해서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사역이 성공적으로 개진되면서 구세군에서의 여성사관의 사역은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다. 구세군은 서양과 동양에서 여성의 지위향상에 있어서 한 부분을 공헌함이 분명함이다. 박종덕, 『구세군의 기원과 발전』 (구세군출판부, 2014) 30-31

사리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덴마크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여성리더쉽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이 있던 때에 그녀는 사관학교에서 리더쉽과 행정력을 꾸준히 다듬어 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녀가 맡은 여성 고아원에서의 사역은 여성 리더쉽이 사회안에서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를 긍적적으로 잘 보여준 모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자녀 기숙사 사감, 원산의 사관휴양소 소장을 겸임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사역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3. 결론
본 과제를 수행하면서 우리 교단 뿐 아니라 군소교단 및 단체의 한국에서의 역사에 대하여 아는 것이 유익할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이를 통해서만이 전체적인 시각에서 본 교단의 정체성과 특색들을 더 분명하고 날카롭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여겨졌다. 일제강점기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에 어떠한 방향으로 교회가 사회 안정화를 위해 도움을 주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에, 구세군은 특유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돕는 사회사업들로 한국사회의 안식처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대중들의 마음을 녹이고 열여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한국의 중심지역에 위치한 최초의 여성고아원인 혜천원은 여큰 의미를 갖고 있다. 큰 대지와 건물을 갖춘 체계잡힌 한국의 최초의 고아원, 여성만을 위한 전문화된 기숙사와 교육사업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사업을 한국사회에 심어주었으며, 동시에 여성의 인권이라는 개념과 그 실제적인 모델들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한국에서 첫 구세군의 주력사업이 되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사역을 책임지게 된 사람이 사리영이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었으나, 한국에 오기 전부터 그녀의 리더쉽과 행정력 등이 구세군 리더쉽 안에서도 크게 인정받아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혜천원의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하여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교육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리더쉽과 행정력이 전문화 되어지면서 그녀는 외국인 자녀 기숙사와 사관 휴양소 사역까지 리더로서 맡게된다. 그리고 중국에 새로 신설된 기관으로 파견되게 된다. 그녀가 행정력과 리더쉽 뿐 아니라, 한국어, 영어, 중국어에 능통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일평생의 반을 한 기관의 책임자로서 훌륭하게 그 사역을 감당해낸 사리영을 이렇게 재발견하게 된 것은 나에게 큰 도전과 감동이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여성이기에 잘 할 수 있는 사역들이 있음을 보게되었고, 나의 사명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참고문헌
1. 단행본
김승태, 박혜진 편 『내한선교사 총람:1884ー1894』 서울:한국기독교사역연구소, 2007
한영제, 『기독교 대백과 사전』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문사, 1983
김준철 『한국 구세군 백년사』 구세군 출판부, 2008
전광표, 황선엽 『구세군 한국선교백주년 보고서 2008』 구세군한국선교백주년본부, 2008
박종덕, 『구세군의 기원과 발전』 구세군출판부, 2014

2. 신문기사
“ 땡그랑...땡그랑...훈훈한 사랑의 ‘전도사’ 구세군” < 매일경제 >, 1999년 12월 23일, 43기사,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7B%22mode%22%3A1%2C%22sort%22%3A0%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10%2C%22keyword%22%3A%22%EC%A0%84%EB%8F%84%EC%82%AC%20%EA%B5%AC%EC%84%B8%EA%B5%B0%22%2C%22startIndex%22%3A1%2C%22status%22%3A%22success%22%2C%22page%22%3A1%2C%22startDate%22%3A%221920-04-01%22%2C%22endDate%22%3A%221999-12-31%22%7D, 12월 17일 접속

“ 새 구세군 사령관 김순배 정령의 글” < 경향신문 > 1980년 12월 10일, 3면기사,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7B%22mode%22%3A1%2C%22sort%22%3A0%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10%2C%22keyword%22%3A%22%EC%A0%84%EB%8F%84%EC%82%AC%20%EA%B5%AC%EC%84%B8%EA%B5%B0%22%2C%22startIndex%22%3A1%2C%22status%22%3A%22success%22%2C%22page%22%3A1%2C%22startDate%22%3A%221920-04-01%22%2C%22endDate%22%3A%221999-12-31%22%7D, 12월 17일 접속

3. 웹사이트
“구세군 역사 박물관” 홈페이지. http://museum.salvationarmy.or.kr/main/main.php
2019년 12월 17일 접속

“한국구세군의 시작”, 유트브 2016, 구세군한국군국 게시자, https://www.youtube.com/watch?v=fuQ0oJClVtY201
2019-12-20 07: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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