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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Colton, Susanne Avery(1878-1972, SP)
 작성자 : 정전도  2020-06-16 10:03:15   조회: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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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Miss Susanne Avery Colton (콜튼/공정순/미국/미국남장로교)
2. 생몰연도: 1878 – 1972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1 – 1940
5. 연표
1878. 미국 몰겐튼 출생
1899. 퀸스대학 졸업
1911.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전주 기전여학교에서 성서 강의, 교장대리의 직무수행
1913. 09. 01. 전주 기전 여학교 4대 교장 취임
종교교육과 농촌교회의 주일학교 지도하며 농촌부녀자 교육
1923. 04. 11. 당시 완주 우전면 구룡부락에 교회를 개척(구릉리 교회)하고
문맹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함
1937. 06. 24. 전주 기전 여학교 교장 퇴임(24년 3개월)
1938. 전주 성경학교 교사
1941. 일제말 선교부의 폐쇄로 귀국
1943. 남장로교 세계선교본부에서 활동하다가 은퇴
1972. 내쉬빌의 은퇴선교사관에서 소천
6. 가족사항:
7. 논저:
8. 참고문헌: 기백 14권; 기전 80년사; 호남기독교사; MTK; In Memorial Miss S. A. Colton by J. B. Hopper.

Ⅱ. 선교사 소개

1. 출생 및 성장
콜튼 선교사의 성장 출생과 성장에 관한 내용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라 알려진 사진을 구글에서 찾아보니, Elizabeth Avery Colton 이라는 풀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효자동 교회 측에 전화를 해보니, 자신들이 소유한 사진도 그 사진이며, 어떤 선교사님이 그 사진의 주인공은 아마도 콜튼 선교사 본인이 아니라, 동생인 것으로 알려 주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비교해보았을 때, 서로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동생이 아니라 언니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콜튼 선교사보다 엘리자베스 콜튼이 먼저 태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구글 검색에서 나온 이 여성분이 콜튼 선교사의 언니이거나 동생이라는 추측 속에서 소개된 영어 번역을 통해 그녀의 어린 시절을 그려본다.

엘리자베스 에이버리 콜튼은 1872년 12월 30일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태어났으며, 남부군과의 남북전쟁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제53대 레그트의 채플레인으로 임관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Elizabeth Avery Colton was born unto this world December 30, 1872, the 2nd born of eight children to a Father who was commissioned as a Chaplain of the 53rd Regt., North Carolina Troops during the Civil War with the Confederate forces.)

그녀는 한국 선교사가 된 수전누나와 MD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부교수로 있던 몰튼 형제를 둘 예정이었다. (She was to have a sister, Susanne, who became a missionary to Korea, and a brother, Molton, who was an associate Professor of modern languages at the Naval Academy in Annapolis, MD.)

이 가족은 매우 강한 종교적, 교육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이 이야기가 전개될 때, 여러분은 이 연약하지만 단호한 여성이 자신의 믿음의 횃불을 평생 동안 지니고 다녔다는 강건함과 헌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was a family that had very strong religious and educational traditions and as this story unfolds you can understand where the fortitude and dedication came from that this frail but determined female was to carry the torch of her beliefs into and through the rest of her life!)

당신은 그녀의 삶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헌신적이었고, 가장 확실한 것은 그녀는 특히 남부의 젊은 여성들을 위해 미래를 향상 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You could say that her life was dedicated to helping others and most certainly she was instrumental in bettering the future for young women of college age, particularly in the Southern States.)

따라서 콜튼 집안은 전반적으로 교육열이 뛰어나고, 남자와 여자라고 해서 교육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종교적으로도 보수적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콜튼 선교사도 이러한 영향을 받았을 터이고, 한국에 내한하여 그녀의 선교사역이 여성을 향해 있었다는 점도 이러한 집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2. 내한 선교사 사역

(1) 기전 여학교 사역
콜튼 교장은 1911년에 입국하여 2년 동안 전주에서 선교사업에 힘쓰다가 박세리 교장대리의 뒤를 이어 정식으로 4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콜튼교장은 1911년 남장로교회 선교사로 농촌 부녀자 교육을 수행 하던 중에 1913년 기전여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이후 24년간 기전의 교장직을 맡아서 기전을 육성했다. 어느 면에서 보면 기전을 위해서 살다가 기전을 위해서 가신, 오직 기전인이라 할수 있겠다. 콜튼 교장은 기전여학교의 초창기 학교의 발전과 학생들의 독립정신으로 인한 각종 사건들 사이에 기전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꿋꿋하게 자신의 정열을 다 쏟았다. 학제의 변경에 대한 법령에 따라 정부의 시책에 순응하여 새로운 학제의 개편을 서둘러야 했고 1915년에 조선총독부가 사학의 숨통을 끊기 위해 발표한 일련의 교육령에 의거, 많은 시련을 콜튼 교장의 힘으로 극복해야 했다. 콜튼은 학교가 일제에 의해 폐쇄를 당하자 운동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기전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1941년 학교가 폐쇄를 당해 귀국하였다.

<기전 여학교 일화소개>
1915년 10월 어느 주일에 학생들은 기숙사를 나와 교회로 가던 중 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쓰개치마를 입고 가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학생들이 감기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학생 임영신과 오자현이 콜턴(MissSusanne Avery Colton 1913년 9월1일 제 4대 교장으로 취임 후 24년간 봉직) 교장을 만나 이 낡은 풍습인 쓰개치마를 벗개 해 달라고 사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콜튼 교장은 완강하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아직 전주사회가 보수적이라 학교가 비난을 받을 것이라 두려워서 였습니다. 학교 측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학측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쓰개치마 반대에 앞장선 다섯학생을 퇴학처분을 하였습니다. 몇 주일 후 어느 주일날 전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퇴학 학생들이 복학하지 않으면 전 학생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의를 하였습니다. 콜튼 교장은 만일 해산하지 않으면 학생들 역시 퇴학시키겠다고 강압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모든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이 시골인 임영신 등 7,8명이 동급생인 김인애 집으로 갔는데 그 곳이 바로 서문교회 김인전 목사댁이였습니다. 학생들은 김인전 목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도와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김인전 목사님과 학부형들이 학교로 와서 콜톤교장에게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 줄 것을 청했습니다. 장시간 회의 끝에 퇴학당한 학생들이 복학을 하고 구시대 여성의 속박의 상징물인 쓰개치마를 다시는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기전학생들의 이 선구자적인 작은 항거가 우리나라의 명실상부 여성인권해방 운동의 효시라고 하겠습니다.

기전 공주회는 비밀리에 모금을 하여 상해임시정부로 보내곤 하였습니다. 김인전 목사도 이 소식을 듣고 암암리에 공주회와 함께 기도하다가 삼일운동 이후 교회를 사임하고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부의장이 되었습니다. 1915년 공주회 오자현 학생이 제안하기를 매일 아침 조회 때마다 부르는 일본국가를 부르지 않기로 하니 학생들이 찬성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강당에 모이고 일본인 하세가와 선생의 제창으로 일본 국가를 부르는데 학생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또 동방요배를 하는데 학생들은 뻣뻣이 서 있었습니다. 분노한 하세가와가 경찰에게 알리니 일본 경찰이 달려와 주동자를 찾으나 모두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콜튼 교장이 일을 잘 마무리하여 다음부터는 일본국가나 동방요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교실마다 천황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공주회 결사대는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교실마다 걸려있는 천황 사진의 눈을 꼬챙이로 뚫어놨습니다. 다음날 이를 알게 된 콜튼 교장은 이일이 학교 존립의 문제라 생각하고 주모자를 찾으나 모든 학생들이 자기가 하였다고 나섰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다시는 교실에서 천황의 사진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1월 3일(일요일)은 일본에게는 메이지유신의 상징인 메이지 천황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치절(明治節)이었지만, 조선인들에게는 음력 10월 3일 즉,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이었습니다. 한국인의 시조를 기념하는 날에 일본 천황의 생일을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불러서 축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선인 학생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교길에 일본인 학생들과의 충돌사건을 불공정하게 보도한 광주일보에 몰려 들어가서 항의할 정도로 그들의 반일감정은 폭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부터 학생 항일 만세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되어 350개교가 참여하였습니다. 이런 학생운동에 기전여학교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고등과 2학년 오원애 신애덕 전순덕 신태순 이 순 등과 보통학교 5학년 이준례 김순길 등이 주동이 되어 비밀 회합을 가졌습니다. 기숙사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대한독립만세” ‘동감만세“ “일본은 물러가라”는 등의 플래카드도 만들었습니다. 안례아 사감은 모른척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1월 24일 콜튼 교장이 눈치를 채고 학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을 시킨 후 “오늘부터 임시 방학으로 들어가겠소. 모두 집으로 가 있다가 등교하라는 통지가 있을 때 나오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애덕 오원애는 본래 1월 26일을 거사일로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노심초사 준비하던 항일운동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아 오늘 바로 시작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감추어 두었든 태극기와 프래카드를 들고 나와 “기전학생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닙니다. 광주학생들의 만세 사건에 대해 우리도 따르지 않을수 없습니다. 다같이 시내로 나갑시다. 대한독립만세! 동감만세!” 신애덕의 외침에 급장 문유덕이 앞장서 학생들은 시내로 만세를 외치며 나갔습니다. 신흥학교를 지나며 신흥학생들을 불러냈습니다. 신흥학교에서도 박철웅(전 조선대학교총장)의 주도하에 준비하던 중이라 다음날 만세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50여명 기전여학생들이 잡혀와 그중 신애덕 오원애 신태순 문유덕 김준례 김순길이 정식 구속이 되었습니다.

(2) 효자동 교회
효자동교회는 1923년 4월 11일 ‘구룡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기전학교에 근무하던 콜튼(Coleton) 선교사가 완주군 우전면 구룡부락에 교회를 개척하고 전라노회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은 것이 모태가 되었다. 이후 ‘효자리교회’로 한 차례 명칭을 바꾸고 1957년부터 ‘효자동교회’라는 오늘날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정순선교사(Colton) 는 1923.4.11 당시 빈촌이였던 완주군 효자리 구룡부락에 단칸방을 얻어 부락에 사는 당시 남자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을 뿐 아니라 글을 배울수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들을 모집하여 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세워진 교회가 지금의 효자동교회이다.(효자리교회→구룡리교회→효자동교회) 효자동교회는 공정순 선교사가 사역하는 동안 여성들만으로 구성되어 처녀교회라고하는 닉네임이 지금도 따라다니고 있게 된 것이다. 효자동교회 처녀 신자들은 결혼기가 되어 청혼이 들어오면 예수 믿어야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을 우선적으로 하고 결혼하면 효자동교회 같이 다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결혼하게 되어 남자 성도들이 하나씩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이 친구들을 전도하여 자연스럽게 남자들이 전도되어 교회 일원이 되었다.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결혼하여 권사가 되고 장가온 신랑은 장로가 되셔서 평생을 효자동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하고, 작고하신 분 몇 분을 꼽아보면 이정례 권사(최덕산 장로), 이봉덕 권사(이순만 장로), 이귀순 권사(김준용 장로)등 다수의 권사와 집사들이 교회를 가족처럼 이루어 온 것은 여성들의 교육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귀국 이후 소천까지
1941년 학교가 폐쇄를 당해 귀국하여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본부에서 활동하다가 은퇴 후 1972년 12월 20일 내쉬빌 은퇴 선교사관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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