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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31/Merriman Colbert Harris(1846-1921, M)
 작성자 : 배예준  2020-06-27 17:04:23   조회: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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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맨 콜버트 해리스/Merriman Colbert Harris
( 1846년 7월 9일 ~ 1921년 5월 8일)

Ⅰ. 기본사항

1.이름:Merriman Colbert Harris

2.생몰연도: 1846년 7월 9일 ~ 1921년 5월 8일

3.출신소속: 미국 감리교 선교회 피츠버그 연례회. 선교부 장

4.한국에서 활동: 1904~1916 미감리회 총회에서 한일 동시 선교감독으로 피선됨 메리맨의 미감리회 총회, 참고문헌 참조


5. 연도
1846. 7.9 미국 오하이오 주 벨 스빌에서 출생 메리맨의 출생, 참고문헌 참조

1858. 감리교 성공회 일원을 세례
1863~65 미국 남부전쟁의 오하이오주 기갑부대 병사로 3년간 복무. 상병으로 전역. 이후 워싱턴 아카데미와 헬렘 스프링스 신학교에 참석 메리맨의 군대와 신학교, 참고문헌 참조

1869 감리교 성공회 피츠버그 연례회의 일원으로 목회자와 선교사로 봉사. 피츠버그 연례회, 참고문헌 참조

1871 오하이호 주 슈트벤빌에서 클라크 주교로부터 목사 안수 메리맨의 안수, 참고문헌 참조

1873  Allegheny College 에서 학사 학위
1873 3 일본 선교사로 임명
1873 10.23 FloraL과 결혼
1873 12. 14 요코하마도착
1874 하코다테에서 미국 영사관 역임 메리맨의 영사관 역임, 참고문헌 참조

1874 일본 훗카이도에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활동
1874 1.24 캐나다감리회, 미감리회 연합하여 일본감리회선교연히 조직
1877 Allegheny College에서 석사 학위.
1877 삿포로 농업학교 침례식 삿포로 농업학교 침례식, 참고문헌 참조

1878 도쿄로 이동
1882 질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귀국
1886 태평양 연안에서 일본인 선교부의 첫 번째 교육감으로 임명
1886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본 선교부 감독관 임명
1998 감리교 성공회 선교 제 25주년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방문 감리교 성공회 선교 25주년 참가, 참고문헌 참조

1890 하와이 제도를 포함한 태평양 연안 감리교 일본의 모든 선교사들의 전도사로 일함
1892. 일본을 떠나 미국 태평양 연안과 하와이에 일본선교사를 설립
1898. 일본 정부로부터 성스러운 보물 4계급 훈장을 수여받음
1904. 5 한국과 일본 주재감독으로 피선되어 일본에 부임
1905. 일본 정부로부터 성스러운 보물 3계급 훈장을 수여받음
1906. 6 엡윗청년회가 을사조약 반대투쟁에 참가했다고 해체, 친일감독
1909. 부인FloraL 9.7 아오야마 학원 선교사관에서 사망
1916. 일본 정부로부터 성스러운 보물 2계급 훈장을 수여받음
1916. 일본에서 은퇴 후 귀국.
1919. 12 파리 평화회의 방문/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사촌 엘리자베스 베스트와 재혼하여 아오야마 카쿠인에서 거주
1921. 5.8 도쿄 아오야마에서 74세 사망

6. 가족사항
부인:
첫번째 부인: Flora Lydia Best Harris (1850.02.14 – 1909.09.07.)
두번째 부인: Elizabeth Best. (1866. 4.29. 1948. 10.19)

자녀:
피렌체 (여) (1877. 12. 11 – 1878. 10. 17) 피렌체의 죽음, 참고문헌 참조



Ⅱ.선교사 소개

1. 출생 및 성장

메리맨은 미감리회 감독으로 오하이오 주 빌스빌에서 출생했다. 1863년 17세 때 남북전쟁에 출전하여 3년간 기갑부대 병사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전역 후에는 워싱턴 아카데미와 헬렘 스프링스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미감리회 피츠버그연회에 입회하고 1871년 클라크 주교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873년 알레게니대학을 졸업해 12월 14일 일본 선교사로 부임한다. 1874년 1월 24일 일본 북해도 하코다데 항구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일본에서 캐나다 감리회와 미감리회를 연합하여 일본 감리회 선교연회를 조직한다.

2. 메리맨의 일본 사역

그는 우치무라 간조, 니토베 이나조 등의 기독교인들을 태생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감당했다. 예화로 그는 일본에 왔을 때 받은 방어용 권총을 "나는 일본인의 목숨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불필요하다" 라며 버린다. 그는 평소에 자신을 가리켜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라고 말하며 일본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메리맨의 일본사역, 참고문헌 참조
1882년, 부인의 병 때문에 잠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혼자 나와서 활동했으나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간다. 1886년 미국 안에 있는 일본인 교회의 선교 관리자가 되었다.

3. 메리맨의 한국 사역

1904년 5월 미감리회 총회에서 한국과 일본 주재 감독으로 피선되어 다시 일본에 부임한다. 그는 한국보다는 일본을 위하여 일하였고 일본 정부에서 여러 차례 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친일분자로서 한국의 엡윗청년회원들이 상동교회에 모여 1905년 을사조약 반대 투쟁을 했다 하여 해산명령을 내린 바도 있다. 1911년, 미감리회 총회에서 한일 동시 선교감독으로 활동하던 당시, 한국의 기독교서회 개관식 때 축사를 한다. 대한 기독교서회 빌딩(1), 메리맨의 축사, 참고문헌 참조
아직 자립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언짢았지만 축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배경으로 볼 때,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의 한국 통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른 나라가 다스릴 바에 일본이 다스리는 것이 한국에게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대적인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자, 선교사들도 일본에 대해 돌아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한국에 기독교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기에 더 이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약소국, 한국을 돕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리맨은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일본의 입장에서만 한국을 바라본다. 그에게 일본은 이미 자신의 고향 같은 곳이었기에 분명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으로써의 역할을 행하지 않았다.

1914년 가을 미감리회 동양선교회가 중국 남경 금릉대학에서 모였을 때 노블(W.A. Noble) 선교사는 회의석상에서 해리스 감독을 면전에서 공격하고 책망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혹평하였다. "먹장같이 검은 흑인도 백인의 살결같이 결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흰눈과 같이 흰 백인도 흑인의 살결같이 검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 해리스다. 이 해리스는 사소한 일본인의 뇌물에 눈이 어두워 한일합방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많은 해독을 주었다. 우리는 결코 그 일들을 용서할 수 없다. 한국인은 솔직하고 정의가 두텁고 두뇌가 명석한 민족이어서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동정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유독 해리스만은 한국인을 해치고 있으니 같은 미국인으로서도 용서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사람이다." 많은 선교사들 앞에서 수치를 당한 그는 “이 늙은 몸이 백발로 평안히 지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2』, 154
다윗을 핍박한 시므이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메리맨은 1916년 은퇴하고 귀국한다. 귀국하여 1919년에 아내 플로라의 사촌 엘리자베스와 재혼하여 도교 아오야마에서 거주하다 1921년 사망하였다.

4. 평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감리교 선교사 드밍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감독의 행함과 믿음은 과연 사도 요한과 같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평가이다. 물론 그는 일본의 기독교계의 지평을 연 인물이었다. 일본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선교사였다. 그러나 그의 편협한 행보는 일본의 잘못된 일들까지 수용하게 되어 버렸다. 사도 요한 같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자여야 한다. 철저히 자기 사람만 챙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왜곡된 그의 사랑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독교사에 암적인 존재로 남게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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