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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13 / Johnson, Woodbridge O.(1877-1949, NP) / Johnson, Edith Parker(1871-1958, NP)
 작성자 : 조충성  2020-07-03 12:39:27   조회: 176   
 첨부 : 내한선교사_3-3반_13_조충성.pdf (1771140 Byte) 
Ⅰ. 기본 사항

Johnson, Woodbridge O. (우드브리지 O. 존슨 / 한국명 : 張仁車)



1. 생몰연도 : 1877(1869. 6. 9.) - 1951. 7. 19.



2. 출신 및 소속 : 미국 / (미국) 북 장로교



3. 한국선교기간 : 1897. 12. 23 - 1913



4. 연 표

<내한 전>

1869.6.9. 미국 일리노이주 갈레스버그시 출생

1891.6 펜실버니아 이스톤 시 라파엣대학 졸업

1895.6 펜실버니아 의대 졸업

1897.10.28. Johnson, Edith Parker 결혼

1897.6.21. 한국 선교사 임명일

1897.11.18. 미국에서 떠난 일자



<내한 후>

1897.12.23.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경북 대구에 파송

대구제일교회 구내 초가집에 의료원 개설, 제중원이라 칭함

1899 동산동에 새 건물 마련 이후 대구 동산기독병원으로 발전

대구 최초 교인 서자명이 조사로 도우며 병원 사업 활기

1903-06 건강문제로 귀국했다가 귀환하여 의료 활동 계속함

1910 플래처에게 병원사업 인계, 복음 선교사로 전환

안동에서 잠시 활동 후 대구에서 계속 활동

대구지방에 개량사과 도입하여 발전시킴

부인은 대구지방 여성사업의 기초를 다짐

1912.11.15 병으로 인해 대구를 떠남



<귀국 이후>

1913.11.17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목회

1951.7.19 캘리포니아 벤누이스에서 사망

1958.4.13 캘리포니아 커비나에서 부인 사망



4. 가족사항 : Johnson, Edith Parker(부인)

* 생몰연도 : 1871. 9. 28 - 1958

* 한국선교기간 : 1897 - 1913

* 학력 : 바자르 대학



5. 논저 : “Personal report for 1909-1910 of Woodbridge O. Johnson, MD,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 The Korea Mission Field 6(11) (1910)



6. 키워드

- 사역지 : 대구제일교회 의료원, 제중원, 대구 동산기독병원

- 관련인물 : 베어드(배위량), 서자명, 플래처(별리추), 브루엔(부해리), 부마태, adams(안의와) - 관련지역 : 대구, 안동, 계명대학교

- 기타 키워드 : 개량사과



Ⅱ. 선교사 소개



1. 출생 및 성장

johnson이 태어난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1869년과 1877년으로 나뉜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 주 게일즈버그(Galesberg) 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891년 6월에 펜실베니 아 이스톤 시에 있는 라파엣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그는 대학시절 무디(Dwight L. Moody)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학생 자원 봉사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에 가입하고 자 신은 장차 의료 선교사가 되어 해외에서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였다. johnson이 살던 시대는 미국 부흥각성 운동을 통해 많은 청년들이 선교에 자원하였는데, johnson도 그 청년들 중 한명 이라고 말할 수 있다. johnson은 의료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대학을 졸업한 즉시 1891년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1895년에 졸업하였다. 이어서 뉴 브루클린(New Brooklyn)의 킹스 카운티(King's County)병원과 윌키스 바레(Wilkes Barre) 병원 두 곳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의사가 되므로 선교의 꿈에 한발 짝 더 다가갔다. 더불어 그는 선교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johnson의 부인이 될 Edith. Parker는 뉴욕의 슬로운(Sloane) 모자병원에서 선교에 도움이 되 기 위하여 조산학의 단기과정을 이수하였다. 뜻을 같이한 두 사람은 1897년 6월 21일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고, 이어서 10월 28일에 결혼하였다. 그리고 11월 18일에 한국 선교를 위해 출국하 였다.



2. 내한 및 한국에서의 사역



<부산 -> 대구>

johnson 부부는 1897년 12월 22일에 부산에 입항하였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대구의 adams 부인의 출산이 임박했으니 곧장 대구로 와달라는 전갈을 받고 조랑말을 타고 3일간의 힘겨운 여 행 끝에 대구에 도착하였다. johnson 선교사는 성탄절이자 주일이던 1897년 12월 25일 조랑 말을 타고 대구 남문 안에 들어왔다. 대구에의 johnson부부의 부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서 대구의 첫 의료선교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배경 : 대구 - 영남지역의 복음화 선두 지역>

대구는 johnson이 오기 전, 앞서 온 선교사들이 순회 전도여행을 통해 대구에 정착해 있었다. adams, 브루스 선교사가 교회와 선교기지를 마련하여 이 지역의 초기 선교활동에 크나 큰 공헌 을 하였다. 이후 johnson이 합류하여 대구 선교 3인방이 결성되었고, 대구 선교는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구선교의 3인방인 미구 북장로교 선교사 adams, johnson, bruen은 남문 안에 있던 선교 본부를 이리로 옮겼고 이 분들이 언덕에 서서 대구읍성을 바라보며 “우리가 선 땅은 천지를 창 조하신 여호와 이레의 땅(Jehovah-jireh)”이라고 하였고 bruen 선교사는 대구 읍성을 바라보며 “다윗의 망대가 서있는 예루살렘 같다”고 외쳤다고 한다. 이 선교사들의 뜨거운 선교사역을 통해 대구는 영남지역의 복음화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이들을 통해 대구를 중심한 영남지방에 교회가 설립되고, 서양식 병원과 학교가 세워지는 등 한국 개화기가 진행되었는데, 이들은 지역 선교와 발전을 이끌어간 선구자들이라 하겠다.



<1897-1899 의료선교 지연>

johnson은 대구에서 의료선교를 곧바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제중원의 개원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겨 2년 정도 지연이 있게 되었다. 그 문제점 중 하나는 의료품이 빈약하고 조달되지 못한 문제였다. 1899년 7월에 약품이 도착해서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johnson은 한국어를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1899-1902 제중원 사역>

johnson은 2년 뒤인 18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대구의 첫 교회인 남문 안 예배 당(현 제일교회) 옆 하인들이 쓰던 작은 초가집을 고쳐 ‘미국약방’을 설립하고 약을 나눠주기 시 작하였다. 이 약방과 제중원이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효시이다. 미국에 주문한 약품이 들어오고 진료활동을 하면서부터 ‘제중원(濟衆院)’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에는 한국식의 오래된 집인 초가(밀짚, 나무, 흙으로 만든 집)를 이용했다. 이 집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냄새, 연기, 소음에 문제가 있었다. 이후 여러 번 건물 보수와 신축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이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johnson이 정성껏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치료하자 그것이 소문이 나서 이듬해인 1900년 여름까지 약 1,7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50 여회의 수술을 집도하였으며, 80여회의 왕진의 기록을 세웠다. 1901-1902년 치료 환자 수는 2천여 명이었다. 너무 몰려드는 사람들과 구경꾼들 때문에 병원 주변에 철조망을 치기도 하였다. 당시는 나병(한센병) 환자가 속출했으며, 결핵, 말라리아, 기생충이 성행했다. 제중원은 나환자 구제 사업과 풍토병 치료, 천연두 예방접종, 사회보건 계몽 등을 통해 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함께 나눴다. johnson이 본국의 선교본부에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무릎이 다쳤음에도 한국의 한의사들이 침술로 고치려 한 잘못된 치료 방법으로 심하게 상처를 입은 환자를 고친 경험이 있으며 매 주 일(Sabbath)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그들은 한국의 토속 신앙에 실증내고 새롭게 하 나님의 복음에 관심을 보이게 된 자들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johnson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날로 늘어갔다고 한다. 스님이 성도가 됐고, 최초 안과수술 을 받은 환자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으며, 소문난 절도범이 복음을 받아들여 지역에 복음의 씨 앗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보아 johnson의 삶은 의학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 는 일에도 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선교보고를 통해 의료와 선교를 병행하는 까닭을 볼 수 있다.

“영적인 영역에서 결과들을 얻기 위해서는 기독교 병원에서 외과적으로 의학적으로도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

이렇게 제중원을 통한 johnson의 사역은 큰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우리는 제중원이 세워질 수 있었던 계기를 간과하면 안된다. johnson이 대구에 제중원을 설립할 수 있었던 계기는 1882년 3월 우리나라가 미국과 체결한 조미수호조약에 따라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대구를 평 양 및 서울에 이어 선교의 중심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1903~1910 제중원 사역>

대구 선교지부가 입지 조건이 좋은 언덕으로 옮겨감에 따라 제중원도 이곳에다 병원을 신축하 게 되었다. 1903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설계의 결함 때문에 건물 구조가 약해서 1905년 태풍 으로 무너졌고, 현재 동산병원이 있는 대구 중구 동산동으로 이전해 1906년 제중원을 신축하였 다. 신축한 제중원에 환자들이 몰려왔다.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진료한 환자 수는 5,000명이었다. 1909년 6월 27일에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시도하여 성공했다. 또한 이 무렵, 제중원에 근무하던 청년들 중 7명을 선발해 현대의학을 가르쳤는데, 이는 현대 의학사에 중요하게 기록됐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johnson의 의료 선교는 환자 치료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지 않았다. 치료를 통한 복음 전파가 언제나 사역의 최종 목적이었다. 그는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조수이자 병원 전도인 서자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고 또 약 봉투에도 전도문을 실었다. 그 전도문에 그의 의료 선교 정신이 잘 드러났다. “이 약을 조심해 드시면 당신의 병은 반드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많은 약을 드신다 해도 당신은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자! 당신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그 약은 어떤 것인지 남문 안에 있는 예수교리 병원(=Jesus Doctrine Dispensary)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병원 전도는 수십 개의 교회를 설립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결신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1911~ 제중원의 발전>

1911년 취임한 2대 병원장 플레쳐(별리추) 선교사 때부터 제중원을 동산의료원으로 불렸다. 1924년에는 동산의료원에 간호부 양성소를 설립해 세균학, 간호술, 드레싱, 해부학, 산수, 성경, 영어, 일본어 같은 과목을 개설해 간호사를 양성했다. 이 양성소는 계명대 간호대학으로 발전했 다. 동산의료원은 6.25전쟁 이후 한국 최초로 아동병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를 무료로 치료하는 등 어느 기관보다 무료진료를 많이 실시했다. 7대 병원장 마펫 의료 선교사는 46년간 재직하며 병원 시설을 신축·확장하고 현대식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등 동산의료원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 다. 1980년 지역 대표적 기독교 사학기관인 계명대학교와 병합하면서 의과대학을 세우고, 1982 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으로 거듭났다.



<애락보건병원>

이 외에도 johnson은 1909년 그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나환자들을 위해 병원 근처에다 작은 초가집을 매입하여 나환자 보호소를 설립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그 보호소가 오늘날 대구 애락보건병원의 모체가 되었다.



<건강 악화>

johnson은 제중원 초대 원장을 맡아 활발하게 운영했으나 건강이 나빠져 원장 직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아치발드 플레처 박사(1882~1970. 한글이름 별리추)가 원장 직을 이어 받았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사역으로 johnson의 몸에 탈이 났고 그는 1901년 발진티푸 스에 걸려 드러 눕게 되었다. 그의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고 또 약을 처 방할 대 곁에서 돕는 전문 간호사나 약사가 없어서 병원의 모든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해야 했고, 게다가 병원 운영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약해진 몸으로 1903년에는 환자 진료 외에 병원 신축 공사를 지휘 감독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안식년 휴가를 1905년에 받았다. 1906년에 돌아와서 일을 시작하자 병이 다시 도졌다. 선교부는 그에게 의료 사역을 중단하고 쉬도록 권고 했다. johnson은 육체적 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의료 선교사를 포기하고 그 대신 목사 안수를 받아 복음을 전하고자 했 다. 그의 뜻이 잘 받아들여졌다. 1912년 제4회 경상노회(8월 31일)에서 bruen이 그의 안수를 발의하고 총회에 헌의되었다. 그해 제 1회 장로회 총회에서 그의 목사 장립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역의 과로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어 귀국하였기 때문에 목사가 되어 마음껏 전 도하고픈 그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johnson은 건강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자 부득이 그의 젊음을 바친 대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1912년 11월 15일 그는 정든 사람들과 슬픈 작별 속에 귀국하였다. 한국 선교지부는 그의 사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헌사를 바치고 있다.

“우리들은 선교회의 창립회원인 johnson 의사 내외의 사임기사를 읽고 슬퍼하고 있다. 그들은 1897년 내한하여 비위생적인 도시환경에서 의료사업을 시작하다 결국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었다. 목숨은 건졌으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서 원기를 회복할 희망을 단념해야 했다.(중략) 그의 이름은 그가 한 평생을 바쳐 사역한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며 사랑을 받을 것이다.”



<사과나무>

johnson 선교사는 대구에 복음 뿐 만 아니라 특별한 선물을 해주었다. 대구 동산기독병원 선교박물관 옆에는 오래된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초대 병원장 johnson이 자기 집 정원에 심은 미국 미조리주 묘목 3종류 72그루의 묘목들 중 유일하게 한 그루가 살아남았다. 이것이 대구에 퍼져 오늘날 대구를 사과생산지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동산의료원 100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1999, 48쪽>은 최초로 서양사과를 도입한 사람 은 johnson과 adams 두 사람이라고 적시했다. 다만 보급방법에 있어 차이가 있었는데 ‘johnson은 묘목을 수입 그대로 나눠주고 adams는 접목한 후에 나눠준 것에 차이가 있고, 수입 처도 johnson은 미조리주이고, adams는 켄서스주라는 사실이 다르다. 아무튼 johnson이 사과 나무를 수입해서 동산에 심고 교인들에게 보급하였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봐야 될 것이다.’라고 했다. 2세목 앞에 설치해 둔 <사과나무 100년> 표석(標⽯)에 의하면 ‘여기에 뿌리내린 이 사과나무 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최초의 서양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 동산 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이다. 또한 2세목의 열매가 서양 사과답지 않게 작은 이유는 당초 johnson이 들여온 것이 실생묘 (實⽣苗, 종자로 싹을 틔워 키운 나무)라는 점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과일나무는 접목을 해야 크고 충실한 열매가 열린다.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보다 더 정확한 자료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는 다면 대구의 서양사과나무의 도입년도는 1899년이며, adams와 johnson 두 사람에 의해 최초로 들여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보호수는 접붙인 나무가 아닌 것을 그 대로 보급한 johnson이 미조리주에서 들여온 나무의 2세목이다.



<부인 Johnson, Edith Parker와 신명학교>

Johnson이 의료사역에 집중했다면, 부인 Edith M. Parker는 교육사역에 헌신하였다. 특별히, 그녀는 신명학교와 관련이 있다. 신명학교는 1902년 5월 10일에 선교사 Martha Scott Bruen (부마태)여사(부해리 선교사 부인, 유방암으로 55세 별세)가 의료선교사 Edith M. Parker의 바 느질 반과 놀스 양(Miss Nourse)이 가르치던 매주 월요일 오후반의 15세미만 소녀 14명을 인 수하여 대구 선교지부에 신명여자소학교를 설립 개교하였다. 신명학교는 1911년 4월 22일에 한일병합에 의한 사립학교 재등록으로 신명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19 3월 8일에는 이재인 선생 지도로 전교생이 대구의 3ᆞ8 만세 운동에 참가하기 도 하였다. 1927년 4월 1일에 여학생만을 위한 대구신명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34년 4월 1일부터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와 경북노회가 공동으로 경영하다가 1939년 4월 1일 일제의 탄압으로 선교회가 철수하고 조선 예수교 장로회 경북노회가 인수하여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이후에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 6.25전쟁으로 학교 건물이 미 공군에 의해 징발되는 등 많은 어 려움을 겪었지만 지금도 남녀공학인 신명고등학교로 건재하고 있다.



3. 귀국 이후

johnson 부부는 1913년 11월 17일에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고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로스 앤젤레스에서 남은 생애동안 목회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 외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는 기록에서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보내고 1951년 7월 19일 캘리포니아 벤누이스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958년 4월 13일에 그의 부인은 캘리포니아 커비나에서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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