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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72 / Woodberry, Earle J.(1892-1982, NP) / Woodberry, Ada W. Pierce(1892-1995, NP)
 작성자 : 이상혁3반  2020-07-03 14:27:53   조회: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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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이름 : Woodberry, Earle John

1. 생몰연도 : 1892년 ~ 1982년 4월
2. 출신 및 소속 : 미국 / 북장로교
3. 한국선교기간 : 1949년 ~ 1958년
4. 가족사항

아내 Woodberry, Ada W. Pierce(1892년 12월 4일 ~ 1995년 1월 11일)

아들 Woodberry, J. Dudley(1934년 2월 5일~ )

Ⅱ. 선교사 소개

1. 개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1892년 미국에서 출생, 1930년 중국지방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가 1949년 한국 선교사로 전임되었으며, 부인(Ada W, Pierce)과 함께 그 해, 11월 7일 내한, 경북 대구 선교부에 부임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전도 및 선교부 일에 전념하다가 1958년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특히 그는 6.25사변 당시 국군과 UN군에게 잡힌 중공군 포로 2만 2천명을 대상으로 한병혁, 이대영 목사 등과 함께 선교하여 많은 결신자를 얻은 바 있다.

2. 6.25 전란기의 중국인 포로선교

한국인 포로들은 그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로교회가 그들에 의해서 먼저 시작되었던 데 비해, 중국인 포로선교는 중국에서 다년간 선교한 경험이 있던 우드베리(Earle J. Woodberry) 군목과 그를 도운 한국인 목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51년 봄부터 밀고 밀리던 전선이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교착되면서 중국인 포로들의 수도 급증하였다. 이렇게 중국인 포로들이 증가하고 있을 때 당시 한국에 있는 화교들 사이에서 사역을 하고 있던 우드베리는 중국인 포로들 사이에서 사역하도록 초청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민간인 신분의 연락 군목으로서의 직임을 받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서 중국인 포로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1951년 3월 말경부터 대구제일교회를 담임하다가 피난 온 한병혁 목사와 중국 산동지방 선교사를 지낸 이대영 목사 등과 함께 포로선교를 시작하였다. 선교를 시작한 첫 달에 철조망이 쳐진 포로수용소에서의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청중이 1,500~2,000명에 이르렀고, 그 후에는 4,000~5,000명에 이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1952년 2월 무렵에는 집회 참석자가 6,500~7,000명에 이렀다. 이런 대규모의 중국인 포로수용소가 두 곳이었으므로 일상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그 연인원은 그 두 배에 이르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중국에 파송되었던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대영 목사가 도우면서 처음부터 중국인 포로들 가운데 결신자들이 생겼다. 첫 달에 600명의 중공군 사병들과 장교 98명 가운데 75명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등록하였다. 그리고 첫 3달 동안에 수 백 명의 사병들과 493명의 장교가 등록했다. 그 후에도 개인적인 결신자들이 꾸준히 늘었다. 이들 그룹들의 신앙을 굳게 세워주고 있는 것은 성경공부와 성경 암송, 찬송이었다. 이들의 신앙 성장에 대한 열심은 아주 열렬하여 신앙 서적의 공급이 그들의 요구를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수용소에서의 나날들은 긴장되고 길었지만, 사람들이 수 천 명의 동료 포로들 가운데서 영광에 빛나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쳐들고 일어설 때 그 보상은 감동적인 것이었다.
우드베리는 1952년 2월호 미국성서공회 기관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들의 선교 방법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쟁에 지치고 약하고 겁먹고 당황한 새로운 (포로) 그룹들이 다섯 줄로 손을 잡고 포로수용소에 도착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곳 정문에 나가 있는다. 이 첫 날들은 우리가 그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따뜻한 마음과 미소, 그리고 그들 자신의 말, 그리고 나서 읽을 소책자와 복음서로 그들의 마음을 안심하게 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이날에는 거의 언제나 그들의 용모가 펴지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 이렇게 소리 지른다 “이봐, 저것 좀 들어봐! 저 사람이 중국말을 하잖아.” 그리고 대부분 월요일인 '공휴일'은 병원 선교 사역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정규 포로수용소로 가기 전에 거기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선교사들이 그곳에서 소책자들을 나누어 줄 때 그들이 가장 잘 하는 표현들은 “저에게 큰 것을 주세요.” “저에게 두꺼운 것(복음서를 의미함)을 주세요.” “다른 것 하나 더 주세요.”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재방문 약속 시간을 기억해 두고 있다가 인사할 때 “당신은 전에 두 주 후에 온다고 했는데 세 주 째에 왔네요.”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늦은 이유는 교통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은 것인데...

그곳을 방문했던 한 방문객은 그가 본 것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전에 중국과 한국 선교사였던 얼 우드베리 군목은 매일 4,000명 이상의 공산주의자 군중에게 설교하고 있다. 나는 그와 함께 장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는 기쁨을 가졌다. 그곳에는 800명의 완전히 교화된 중국 공산당원들이 복음을 듣고, 거의 모든 사람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공산군의 전쟁을 취하셔서 그것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철의 장막 뒤에서 결코 그것을 듣지 못했을 수 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펴기 위해 사용하고 계신다.

그 방문객은 부산에서 가까운 수용소 중 하나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는데 그날 새벽기도회에는 4,800명이 참석했다. 그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여기에서 이런 일은 경험하게 될 줄이야!”라고 말했고 그는 아침 식사 후에도 계속해서 “나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이런 우드베리 선교사 일행의 중국인 포로선교를 돕기 위해서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는 1952년 10월 10일 중국 선교예산에서 3,500불을 우드베리 선교사가 사용할 자동차를 사도록 지원하였다. 그들은 중국인 포로들이 거제도로 이송되자 그들을 따라 거제도에 가서 선교사역을 하고, 다시 제주도로 옮겨가자 제주도까지 따라가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휴전협정이 성립되어 판문점에서 포로를 교환할 때까지 이들 포로들을 따라가 그들이 송환 거부를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선교부 실행위원회는 1954년 2월에 우드베리가 대만에 건너가 대만을 선택한 '중국인 포로들 사이에서 그들을 양육'하려는 계획을 승인하였다.
이와 같이 우드베리는 그를 돕는 중국어를 말할 수 있는 한국인 목사들과 함께 1951년 봄 부산에서부터 중국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설교, 교육, 영화 상영, 기독교 문서 배포 등의 활동을 포함한 가장 효과적인 전도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것이 중국인 공산포로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것이었는지는 우드베리와 그의 선교활동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모함에 가까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군 포로의 대다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용소 내의 전도활동에 대해 저항하거나 반응이 냉담했다. 수용소 내의 선교활동은 이미 순수한 종교적인 의미를 벗어나 반공산주의 이념을 심어주기 위한 명목으로 이용했다고 간주했으며, 그들 목사나 신부, 혹은 불교 스님의 역할은 마치 비밀경찰과 같았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인물 Woodberry라고 하는 중국 전문가인 목사가 있었는데, 중국군 포로들은 그가 낮에는 선교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반공포로들에게 비수 등을 제공하여 친공 포로들을 살상하는 데에 선동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했다.

* 출처: 김승태. "6ㆍ25전란기 유엔군측의 포로정책과 기독교계의 포로선교." 한국기독교와 역사. 21(2004): 37-71. 중 발췌

3. 자녀들

Woodberry, Earle J. & Mrs. Woodberry는 이슬람 선교의 대가 J. Dudley Woodberry의 부모이기도 하다. J. Dudley Woodberry(1934년생) 박사는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World Missions)의 이슬람학 전공 선임 교수이며 명예 교수이다. 그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등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사와 교사로 봉사했다. 우드베리의 이슬람-기독교 관계 분야에 대한 주요한 기여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기독교 전도, 신학적 비교연구, 세계의 기독교-이슬람 관계와 관련된 주제들에 관한 수많은 성찰과 글을 썼다. 그는 또한 신학적으로 건전하고 행동과학에서 배운 선교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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