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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1 / Dodson, Mary Lucy(1881-1972, SP) 도마리아
 작성자 : 김찬양  2020-07-03 15:50:08   조회: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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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10085 3학년 2반 김찬양
내한선교사 조사 Dodson, Mary Lucy.

I. 기본사항
이름: Dodson, Mary Lucy(한국명: 도마리아)

1. 생몰연도: 1881년 5월 17일 미국 (Trenton, Georgia) 출생
1972년 12월 28일 심근경색으로 소천

2. 출신 및 소속: 미국 / 조지아 주 트랜톤, 벧엘교회 세례 / 리치몬드의 장로교

3. 한국선교기간: 1912. 8. 23 – 1919 / 1920. 10 – 1926 / 1929. 9 – 1935 / 1938. 8. 22 – 1942. 6. 1 / 1947. 11. 5 – 1950. 6. 29.(한국전쟁으로 귀환)

4. 가족사항
아버지: George Washington Dodson(1840-1916)
어머니: Naomi Salina Dodson(1849-1937)의 둘째 딸로 태어남
오빠: 도대선(Samuel K. Dodson)

5. 연표
1890. 9. 7 조지아 주 트랜톤, 벧엘교회에서 세례.
1893. 8. 27 텍사스 주 산타아나로 이주.
텍사스 공립학교를 거쳐 Brownwood에 있는 Daniel Baker 대학에서 공부.
대학시절 여름학기 중 한국에 선교사로 소명을 받음
킹스빌에 있는 텍스 맥스(Tex-Mex) 학교에서 교사 생활
이후 리치몬드에 있는 장로교 Assmebly Training School에서 성경을 공부함.
1912. 8. 23. 만주호에 몸을 싣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선으로 기항
1912. 9. 23. 목포를 거쳐 광주로 부임
1912-13. 어학공부를 하며 엄언라의 지역을 순회 연수함
1914. 언어 연수중이며 장성과 무장, 고창, 광주 일부를 포함한 북서지역 순회 전도와 타마자 지역 연수
1915. 광주 북서, 북동, 남서 지역 순회 사역자로 일함
1916-19. 광주 북서구역 순회 전도
1920. 10. 첫 번째 안식년 마치고 조선으로 귀환
1920. 10-11월 남 장로교 부인조력회 창설자인 윈스브로 여사 일행이 전주, 군산, 목포와 순천의 선교기지를 방문하고 광주에서 부인들을 위한 사경회를 가짐
도마리아는 윈스브로와 선교현장을 함께 다니며 부인조력회 비전을 함께 나누며 그 동안 서서평이 전도부인을 양성하고 여성 성경공부반을 인도하면서 성미제도를 만들고 지역 미 자립교회를 도운 사실에 주목하면서 평생 부인조력회 사역을 함께 하는 동지로 나섬.
1922. 12. 26. 서서평 선교사 사택에서 광주지역 부인조력회 창설
1922. 10. - 1924. 5. 약 2년간에 걸쳐 순천지부로 옮겨 백미다의 안식년 동안 매산여학교에서 가르치며 졸업생 배출
1926. 6. 두 번째 안식년
1929. 9. 병가를 마치고 오자마자 안식년 휴가 중인 서서평 선교사가 운영하던 이일성경학교 교장 직과 광주 북서 지역 외곽의 전도사역을 맡음
1930. 3. 14. - 4. 26 여성 성경 공부반에서 가르침.
이 과정에 군산 여성성경공부반 10일 진행
1930.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예수고 장로교 총회에서 중국 산동에 여선교사 한 사람을 파송하기로 결정함.
도마리아 선교사,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열린 제 3차 여전도회 연합회장에 취임함. 총회 회장 도마리아 선교사, “내년 경영은 중국 산동성 여선교사 1인 봉급 520원을 정립하였다가 명년 총회 후 파송코자 함”이라고 보고함.
1931. 9. 11. 금강산 온정리 수양관에서 열린 20회 총회에서 서평이 힘써 키웠던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총회를 연합 여전도회총회로 개칭하고 도마리아가 제 4차에 총회장에 재선됨, 1933년까지 수피아 교감으로 일함, 광주 북서지역과 남동 시골지역의 순회전도 사역자로 일함.
1932. 서서평 선교사가 광주와 전남 부인조력회 전반을 관장하고 도마리아와 루스 밀러 선교사가 금정교회의 부인사역을, 페이슬리 부인이 양림교회를 담당함
1932. 10. 12. 유양돌기염과 얼굴과 머리에 생긴 단독 합병증을 수술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김.
1933. 4. 숭일 수피아 연합 초등학교 교장 사역 시작 / 금정교회 사역
1935. 7. 변마지, 매티 테이트와 함께 안식년 시작
1938. 8. 22. 병가로 임시 안식년 마치고 광주로 귀임
1938. 9. - 41. 9. 신사참배로 자진 폐교할 때까지 이일학교 교장직을 마음
1941. 3-6. 매달 일주간씩 도마리아 선교사와 순천의 애양원에 머물며 복음 전도와 상담 사역을 하며 손양원 목사 가족을 돌봄, 애양원에서 나환자의 어린 딸을 입양하여 ‘진주’라 이름 짓고 유화례와 함께 양육
1941. 12. 7. 일본 점함 미국의 진주만 폭격으로 미 일간 전쟁 상태에 돌입하고 모든 선교사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한국을 출국함. 그러나 도마리아는 동료 유화례, 타미자 내외와 선교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잔류를 결정하였으나 12월 8일부터 1942년 6월 1일까지 광주에서 연금 상태가 됨.
1942. 6. 1. 연금에서 해제되어 6월 16일 고베에서 “Asama Maru”호를 타고 홍콩, 사이공, 싱가포르, 마프토(모잠비크)에서 스웨덴 그립쇼름호를 타고 8월 25일 뉴욕 도착.
1947. 11. 5. 해방 후 다시 광주로 돌아옴
1948. 광주 YMCA에서 영어 성경을 가르침
1949. 5. 26 미국에 도착하는 스케쥴로 마지막 안식년 휴가를 예정해으나 건강이 회복되어 취소함(휴가 예정지로 밝힌 주소 709 West 25rh St, Austin, TX)
1950. 6. 29. 전란에 휩싸인 부산에서 미국으로 철수, 37년 9개월에 걸친 사역을 마침
1951. 7. 도마리아, 선교사직에서 은퇴
1952. 5. ‘조선에서의 반 평생’이라는 타이틀로 조선에서의 38년 사역을 회고하는 책을 텍사스 주 Naylor 출판사에서 펴냄
1958. 6. 27. 유화례 선교사, 텍사스에 거주하는 도마리아 자택 방문 1021 Ward Street, Marilin, Texas
1961. 1. 수피아 여학교 시절의 제자 조아라가 텍사스로 방문함, 텍사스 대학 캠퍼스 근처에 살면서 국제자원봉사 위원회의 멤버로 자원봉사
1972. 12. 28. 도마리아, 향리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92세 급성 심근경색으로 소천
마지막 주소: 78705 Austin Texas. U.S.A
묘지: Austin Memorial Park Cemetery Austinm Travis County, Texas, USA
Plot: 8, 6, 3

II. 선교사 소개

1. 선교사로 방한 전까지.
‘조선에서의 반평생’『Half a Life Timein Korea, 1952』의 저자 도마리아는 1890년 9월 7일 조지아 주에서 출생했다. 텍사스로 이주한 그는 텍사스 공립하교를 거쳐 브라운 우드에 있는 Daniel Baker에서 공부하던 중 대학시절 여름학기 중에 한국에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이 후 리치몬드에 있는 장로교 Assmebly Training School에서 성경을 공부를 하고 1912년 8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선으로 기항하였다.

2. 첫 번째 안식년까지(1912-1919)
1912년 9월, 서른 한 살의 미혼 여성으로 한국에 와서 37년 9개월(1912-1950)간 한국인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다. 한일합병 직후인 1912년 미국 남장로회의 선교사로 조선 땅, 광주에 왔다. 도마리아의 사역 초기는 한국어 공부에 집중했다. 광주지역 순회전도부인이었던 엄언라와 함께 다니며 어학공부를 하며 지역을 순회 연수하고 장성, 고창 등 북서지역 순회 전도와 타마자 부인의 지역을 연수하였고 광주 북서, 북동 남서 지역을 순회하면서 사역자로 일하였다. 지금도 지리산과 무등산 일대에는 키 작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도마리아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3. 두 번째 안식년까지(1920-1926)
1920년 10월에 남장로교 부인조력회 창설자인 윈스보로 여사가 광주에서 부인들을 위한 사경회를 가졌을 때 도마리아는 윈스보로와 함께 선교현장을 다니며 부인 조력회 비전을 함께 나누며 평생 부인조력회 사역을 함께 하는 결심을 하게 되어 1922년 12월 26일 서서평 선교사 사택에서 여전도회의 근간이 된 광주지역 부인조력회를 창설한다. 광주를 중심으로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사역했던 도마리아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미미했던 시절 여성들의 친구로 지내며 여성 지도자를 길러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1922년에는 백미다(Biggar)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매산 여학교를 맡아 남동생 샘(Sam, 도대선)과 10년을 거주하며 졸업생을 배출한다.

4. 세 번째 안식년까지(1929-1935)
병가 안식년을 마치고 오자마자 안식년이었던 서서평 선교사를 대신해 이일성경학교 교장 직과 공주 북서 지역 외곽의 전도사역을 맡았다. 1930년에는 양림교회에서 조선 부인들과 함께 기도회도 가졌다. 한국간호협회를 창설한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한국명 서서평)이 세운 여성신학교인 광주이일성경학교와 수피아여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으며, 평양에서 열린 제3차 여전도회 연합회장에 취임하여 여선교사를 파송하기로 보고하기도 하였다.
1932년에는 유양돌기염과 얼굴과 머리에 단독 합병증이 생겨 수술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이후 잘 회복하여 1933년 광주 숭일수피아초등학교 교장으로 7년간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금정교회에서 사역하였다.

5. 또 다시 내한 그리고 연금(1938-1942)
1938년부터 1941년까지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 위해 미션스쿨을 자진 폐교하며 저항하기도 하였고 이일학교 교장직을 맡고 순천 애양원에서 복음 전도와 상담 사역을 하며 손양원 목사의 가족을 돌보기도 하였다. 그녀는 순천 문둥이 촌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였고 아이를 맡기기 위해 대구로도 가기도 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나는 상황이었지만 도마리아는 선교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잔류하다가 광주에서 가택연금상태가 되고 6개월간의 연금에서 해제되어 한국을 떠났다.


6. 해방 후 사역(1947-1950)
해방 후에 광주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이일성경학교 학생들을 돌보며 일본, 서울, 인천 등을 거쳐 다른 선교사들과 박사들도 만났다. 그러다가 1948년 광주 YMCA에서 영어 성경을 가르치며 사역까지 맡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 양화진 선교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건강이 악화되어 1949년에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회복되어 취소하고 사역에 매진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국으로 철수하여 37년 9개월 간의 선교사역을 마쳤다.
일기 형식으로 된 그녀의 선교사역 일지는 다른 곳보다 비교적 짧은 4년의 해방 후 사역 때에 가장 내용이 많다. 교회를 섬겼고 박사들부터 목사, 그리고 이름만 들으면 알 것 같은 선교사들까지 만나며 사역을 공유하고 주의 나라를 위해 힘써 달렸다. 아마도 마지막 사역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7. 귀국 이후 소천까지
귀국 후에 도마리아는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며 자신의 한국 생활을 책으로 묶어내면서 한국을 마치 애인 상대 하듯 사랑을 고백했다. 책은 도마리아의 선교와 조선 여성들에 대한 헌신적 봉사 활동 뿐만 아니라 광주 수피아여고 초대와 2대 교장을 지낸 그레이엄(한국명 엄언라)과 매퀸(한국명 구애라), 쉐핑 같은 당시 여성 선교사의 활동상과 선교를 위해 망아지나 뗏목을 타야 했던 당시 조선의 시대상도 담고 있다.
그녀는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신사적이고 호의적이고 인정 많은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습과 특징들을 미래의 세대들이 알 수 있도록 보존하고자 하는 바람에서입니다.’라고 적었다. 또한 그녀의 제자들을 미국에서 만나며 지내다가 1972년 92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8. 개인적 평가 및 소감
도마리아 선교사님은 그녀의 저서의 제목 ‘조선에서의 반 평생’처럼 38년이라는 세월을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바친 사람이었음을 발견했다. 그녀를 소개할 때 ‘조선을 사랑했던’의 수식어가 붙는데 정말 도마리아 선교사님은 조선을 사랑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녀는 많은 시간 이일학교의 교장을 맡기도 애양원과 문둥이 촌에서도 사역을 하는 등 아이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힘을 쏟았고 다른 선교사와 목사들과도 협력하여 많은 사역들을 이루어냈다. 특히 애양원에서 ‘진주’라는 딸을 입양해 유화례와 함께 양육한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조선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조선에서의 반 평생’의 책 속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부단히 조선을 위해 살아왔는지 피부로 와닿는다. 그 당시의 느낌과 상황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고 날짜별로 사역의 행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매 숨 쉬는 순간이 선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죽을 뻔 하는 고비도 있었고 성공이나 편함이 보장되지 않는 조선 땅에 와 조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낮은 곳에서 복음을 가지고 이 나라를 섬겨준 도마리아 선교사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2020-07-03 15: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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