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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illman Mary R
 작성자 : 이모세  2020-07-03 18:27:26   조회: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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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기말보고서

Hillman, Mary R.





Ⅰ. 기본사항

1. 이름 : Hillman, Mary R.
2. 생몰연도 : 1870.4.21.-1928.2.1.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미감리회
4. 학력:
5. 경력:
1900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1900-06 제물포선교부에서 15년간 여성 선교사업 종사
1907- 강화, 삼산, 교동, 연안, 해주까지 순회하며 복음전도
여자사경회 조직·인도, 매일학교(Day School) 지도
1916 원주선교부로 전임, 원주, 강릉지역 선교사업에 헌신
1925 서울로 이전, 정동에서 조선예수교서회 번역 도움
1928.2.1. 서울에서 소천, 양화진에 안장
6.


Ⅱ. 선교사 소개: Hillman, Mary R. (생몰연도 : 1870.4.21.-1928.2.1)

1. 생애 Mary R. Hillman은 1870 년 4월 21일 오하이오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링컨에서 초등학교와 그램-마르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에서 몇 년 후에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로 가서 오하이오 웨슬리란 대학을 다녔다. 그녀는 1892년 바시포드 주교가 대통령이었을 때 졸업했다. 이후 그녀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 있는 개신교 병원에서 1년간의 간호 훈련을 받았고, 뉴욕 헤르키머에 있는 폴츠 선교 연구소에서 잠시 공부하기도 했다. 그녀는 19세기의 마지막 날에 서울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이 2세기에 이르렀다고 말하곤 했다. 서울에서 몇 달 후에 그녀는 제물포에서 여성 선교회의 첫 번째 직원으로 임명되었다.
그 센터에서 지시된 일에 그녀는 생애 최고의 세월을 보냈다. 몇 년 전 그녀는 원주에 임명되었다. 이후 건강이 나빠져서 서울에 와서 한국여성을 위한 번역 작업에 마지막 해를 보냈다. 이것은 한국인과 그녀의 선교사 동료와 친구들에게 축복이 넘치는 멋진 삶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의 메시지가 어떤 식으로든 더해질 것이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회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우리의 주의를 매우 분명하게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힐만 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몇몇 친구들에게 그들이 그녀를 그렇게 사랑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첫 번째 답변 중 하나는 "그녀의 깊은 영성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대답은 진정한 통찰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더 고상한(고결한)" 분위기가 전혀 없었지만, 베다니의 마리아와 함께 주 발 앞에 앉아 주님을 알게 되고, 주의 영으로 들어가는 모든 여성에게 주어진 위대한 분명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주의 발 앞에 앉았다. 그녀의 잘 표시된 성경이 그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언이다. 그녀의 기도의 힘은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였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기도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완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깊은 영적 삶의 또 다른 증거는 그녀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이었다. 사람들이 육지와 바다에는 결코 비치지 않는 그 영광의 빛을 보기 위해 온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한 목사가 "나는 힐먼 양을 보러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얼굴은 항상 빛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님의 영광을 정직한 얼굴로 보았고, 주님의 영에 의해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뀌었다. 영적 생명과 권능의 숨겨진 샘에서 그렇게 먹이는 삶이 그녀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넘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여기에는 자기 추구와 이기적인 야심에서 비롯된 마음의 기쁨이 있었다. 그녀는 남을 돕고 축복하기 위해 살았다. 오랜 세월의 시골 여행과 성경 수업 일을 생각해 보라. 그녀의 주인처럼 착한 일을 하면서 친절과 사랑의 작은 행동들을 기억하라. "그녀를 그렇게 사랑하게 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것은 그녀의 애정 어린 동정이었다. 그녀는 완벽한 친구였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 속에 들어갔다. 그녀는 한국인들을 사랑했고 그녀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동료들을 똑같이 아름답게 사랑했다. "그녀는 시야가 넓었다."라고 한 사람이 말했다. 물론 그녀는 사랑을 보기 때문에 그랬고, 진정한 사랑은 홀로 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일을 끝내고 육체적인 병폐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서 인생에 찬란한 입문식을 갖도록 그녀에게 주어졌다. 그녀의 여행은 정말 멋졌다. 그것은 죽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러 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녀는 "생각해보니, 나는 밤중에 가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조금 후에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들어왔을 때, 그녀는 간단히 "모든 것이 준비됐어."라고 말했다.

3. 십일조회
1909년 9월, 평북 영변에서는 감리교인들을 중심으로 ‘십일조회’(Tither's Class)가 조직되었다. 돈이 아닌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기로 서약한 부인들의 모임이었다. 즉, 1년(52주) 중에 5주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고, 2주 동안 교리와 전도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후 3주 동안 ‘둘씩, 둘씩짝지어’365) 농촌으로 들어가 전도하였다. 경제력이 없는 부인들이기에 여행경비만큼은 선교사들이 지원했다. 앞서 살펴본 ‘날 연보’ 보다 한층 발전된 헌신과 전도법이었다. 전도부인들의 열기는 선교사들을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십일조회”는 다른 지역 선교사들에게도 자극이 되었다. 1910년 1월에는 평양에서도 십일조회가 조직되어 52명이 교육을 받고 자원 전도에 참여했는데 마침 백만명구령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여서 여성들의 호응이 날로 증가했다. 인천에서도 힐만과 밀러 주도하에 십일조회를 운영했다. 인천에서는 교육 내용을 십일조부인들에게만 인쇄해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피교육자들에게도 나누어 주도록 준비하였다.

4. 추가

그녀는 신시내티에서 1900년에 보냄을 받았다. 그리고 1901년 그녀는 교육과 복음을 위해 제물포와 그 외곽을 순회하도록 임명되었다. 그녀의 능력과 헌신으로 제물포 전역에 붙어있는 교회들의 여성리더십이 기독교의 믿음과 작업확장에 매우 효과적인 발전으로 지역에 세워졌다.

미국 감리회 여선교사이다. 1870년 4월 21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여 선교사로 1900년 내한하였다. 1900년부터 1906년까지 인천에서 여성 선교사업에 여학교 책임자로 종사하였다. 1904년 12월부터 1905년까지는 이화학장의 당장서리로 봉직하였다. 1907년 강화, 해주 등지를 순회하며 여자 사경회 조직과 매일학교를 지도하였다. 1916년 원주로 자리를 옮겨 강릉지역까지 선교사업에 헌신하며 1925년 조선예수교서회 번역 사업에 조력하고 1928년 2월1일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양화진 제1묘역 사-8열)되었다.

선교사를 조사하며 제일 처음 놀란 것이 여성 선교사라는 사실이었다. 1900년의 한국은 일제강점기였을 시기에 일본의 많은 탄압이 있었을 것인데 이 와중에 온 선교사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더 대단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런 힐만 선교사는 특히 여성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를 위해 노력을 한 것 같다. 이는 그녀가 여서 선교사업으로서 여학교의 책임자로 종사한 것과 또 이화학장의 당장서리로 봉직한 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그가 여성이기에 여성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여성들을 교육하는데 힘 썼으며 이는 우리의 선교를 함에 있어 중요한 자세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서 우리의 100%모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큰 열매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힐만 선교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녀는 독신으로서 여성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 여성이 겪는 불평등함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나라 여성들의 교육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2020-07-03 18: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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