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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_3학년3반_26(Lowe DeWitt S)_정진솔
 작성자 : 정진솔  2020-07-03 18:43:36   조회: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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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e, DeWitt S. / Lowe, Gladys Livingstone

I. 기본사항

1. 이름: Lowe, De Witt S.(로우 /盧斗義 /미국 /NP)
2. 생몰 연도: 미상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 장로교
4. 한국선교 기간: 1929.9.28.-1941.8.6
5. 연표
1929.9.28. 북 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1929.9.28.~ 청주지방을 중심으로 의료선교 활동
1937.~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반대 시작
1941.1.14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일본에서 배부한 가미다나를 회수
1941.2.25 가미다나를 옮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
1941.7.22 법정 공방 끝에 석방
1941.8.6 강제 추방 당함
6. 가족사항: 부인 Lowe, Gladys Livingstone


II. 선교사 소개: 로우(Lowe, DeWitt S.)

1. 북 장로교의 의료선교사로 파송
서울에 정착했던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들은 서울과 경기도를 맡아 사역에 임하였으며 경기도와 인접해 있는 충청북도 청주에는 1904년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 밀러(F.S. Miller. 민노아)가 선교부를 설치하였으며 그 후 계긴(E. Kagin, 계군) 퍼비언스(Dr.W.C.Purvince, 부반서), 쿡(W.T. Cook, 국유치), 퍼디(J.G. Purdy, 부례선), 로우(Dr.D.S. Lowe, 노두의), 솔타우(T.S. Soltau, 소열도), 헌트(B.F. Hunts, 한부선) 등 많은 선교사가 청주를 중심으로 충북지방 선교사역에 임하였다.
청주선교기지는 3년(1919-1922) 동안 선교회로부터 아무런 의료사역자도 공급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1920년 4월 선교회는 선교부에 의료사역자를 긴급히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병원 세 곳이 문들 닫았고, 지난 8년 동안 한국에는 단 한 명의 의사만 파송되었으며, 그동안 다섯 명의 결원이 생겼다고 진술하였다.
청주 선교기지에 의료사역자를 공급하려는 두 번째 시도가 1922년에 이루어져 맬콤슨(O. K. Malcomson) 의사 부부와 간호사 캐틀린 이스텝(Kathlyn M Esteb) 양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맬콤슨이 평양으로 옮겨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스텝 양이 그를 잇게 되었고, 그녀는 1929년에 로우(D. S. Lowe) 의사 부부가 오기까지 한국인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선교기지의 의료 사역을 지속시켰다.

2. 로우 선교사 부부의 부임과 활동
미국 북 장로교 의료선교사인 ‘로우’(DeWitt S. Lowe, 로두의)는 1929년 9월 28일 부인(Gladys L. Lowe)과 함께 내한하여 곧바로 청주 소민 병원에 부임하였다. ‘로우(Lowe)’ 선교사 부부는 간호선교사 에스텝(Kathlyn M. Esteb, 예사탑)의 도움을 받으며 활발한 의료선교 활동을 펼쳤다.
로우 선교사의 원장 재임 시절인 1930년대 후반 소민 병원의 환자 수는 5000여 명에서 8000여 명으로 늘었고, 1936년 한 해 동안 병원을 통해 배포된 전도지가 5500매에 달했다. 1937년 봄 청주를 휩쓴 물난리 때 소민 병원은 청주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 로우 선교사는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여 청주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3. 디캠프 선교사와 함께 신사참배에 반대하였고, 결국 강제 추방 당함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로우(Lowe)’ 선교사는 1941년 1월 일제가 각 가정에 가미다나(神棚) 위패를 배부하자 디캠프 선교사와 함께 기독교인의 가정집을 돌며 다시 그것을 전부 회수하였다. 이후 1941년 2월 25일 가미다나(神棚)를 옮겼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대전형무소에 수감 되었고, 대전지방법원의 법정에서 첫 재판을 받게 되었다.
1941년 4월 9일에 대전지방법원의 첫 번째 판결에서 그들은 ‘신사를 존경하지 않았다는 것’과 ‘신사 숭배에 방해하였다’는 혐의로 10개월의 징역과 노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들은 이에 항소하였고, 서울의 조선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의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그들은 다른 죄수들처럼 법정에 나올 때, 수갑이 채워지고 밧줄에 묶인 채로 있었고, 붉은색 죄수복을 입고 겨울에도 맨발로 있었다고 한다.
조선고등법원에서 6월 6일 첫 항소심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6월 27일로 연기되었다. 그렇게 진행된 항소심에서 7월 4일 일본 검사는 그들에게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7월 11일에 조선고등법원의 다카시마 판사는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법에 따라 피고의 행동을 항목별로 말하자면, 신사를 존경하지 않은 것은 형법 74조 2항에 해당 되고, 숭배를 방해한 것은 형법 188조 2항에 해당 된다. 위의 내용은 이 한 가지뿐 아니라 형법 54조 1항과 10조에 의해 몇 가지의 혐의를 포함한다. 그리고 위의 피고들은 심각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적합하다. 우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10달의 고된 노역과 함께 구금을 선고해야 한다.
하지만 피고들이 선교사역에 종사하고, 기독교를 전하는데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나라(일본)의 기원인 이세진구(Ise Jingu)를 신으로 존경받고, 그리고 이세진구의 상징인 진구 타이마(Jingu Taima)가 아침 저녁으로 일본인들에게 의해 숭배된다는 국가적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와 같은 죄를 지었다. 피고들은 그들의 범죄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그들이 후회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피고에게 내려진 판결의 집행이 형법 25조, 절차법 358조 2항을 적용하여 2년 유예되었다.”

이와 같은 판결에 따라, 조선고등법원은 디캠프와 로우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1941년 7월 22일 석방되었다. 이로써 그들은 2월 25일부터 7월 22일까지 5개월간 구속 기간을 겪었다. 이후 그들은 8월 6일 강제 추방을 당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4. 의의
‘로우(Lowe)’ 선교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료가 매우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로우 선교사의 생몰 연도조차 알 수 없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 부부가 매우 활발한 의료선교를 펼쳤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할 점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기독교인들의 가정에 위패가 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기독교 가정을 직접 순회하며 위패를 회수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5개월의 법정 공방과 함께 감옥에 수감 되었던 사실은 인상이 깊어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위의 상황을 통해 선교사님의 사역을 볼 때, 로우 선교사 부부는 한국인들의 건강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의 삶을 헌신한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선교사 부부를 통해서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선교사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고 계신다.
아쉬운 것은 이렇게 고귀한 희생의 내용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고 또 이런 분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선교사님의 사역 자료가 부족한 것과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나에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한 의도를 가지지 않았던!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던 선교사님의 모습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청주탑동양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3-5호) 소재지: 청주시 상당구 탑동
제5호 양관(노두의 기념관)

제5호 양관(노두의 기념관) 외부 전경
처음 지어진 4호 양관(포사이드 기념관)의 남쪽에 1911년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 성경학교로 사용하고자 지은 것으로 미국 켄터키 주 위치타(Wichita)에 살던 매클링(J. S. McClung) 부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두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8백 불을 기부하여 지었다.

제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내부

이 건물은 소민 병원(蘇民病院: Duncan Memorial Hospital)에 근무하던 의사와 간호사 등 선교부의 가족들이 사택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노 의사라고 불리던 소민 병원 원장 노두의(盧斗義 : D. S. Lowe) 의사가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여 선교사들이 모두 강제 출국당할 때까지 살았던 건물이다.

제6호 양관 소민 병원 전경
이 건물은 1908년 던컨 부인이 병원 건축을 위하여 7천 달러를 기부하여 1912년에 완성하였으며, 청주 최초의 근대적 면모를 갖춘 병원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선교사들은 던컨 기념병원이라 불렀으나, 청주 시민들은 소민 병원(蘇民病院)이라 불렀다. 이 병원은 진료실과 수술실을 갖추고 병상 20개를 가진 청주 최초의 현대식 병원으로,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1917년에 소민 병원의 진료소가 제일교회 옆에 마련되자 이 건물은 주로 입원실로 사용되었다.


Ⅳ. 참고문헌
[단행본]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기독교문사, 1980.
김승태, 박혜진 편 『내한 선교사 총람』.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최재건 역.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Ed. by Harry A. Rhodes.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Seoul :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Dept of Education, 1984
문혜만. 디캠프 선교사의 생애와 사상. 서울: 케드마북스. 2020.

[웹사이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61426, 기독신문. 2020년 7월 3일 접속.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hemaway&logNo=221213287726. 2020년 7월 3일 접속
http://blog.daum.net/tourismhighschool/15532669. 2020년 7월 3일 접속.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sunnong&logNo=220717476246. 2020년 7월 3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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