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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_3학년3반_35(Reid, Clarence Frederick)_주현우
 작성자 : 주현우  2020-07-06 16:06:01   조회: 359   
Reid, Clarence Frederick & Reid, C. F.(Mrs.)


I. 기본사항


1. 이름 : Reid, Clarence Frederick [한국명 이덕(李德)] & Reid, C. F.(Mrs.)

2. 출생: 1849년 7월 14일, South Oxford, Chenango County, New York, USA

3. 소천: 1915년 8월 8일(만 66세), Kenton County, Kentucky, USA

4. 묘지: ‘Highland Cemetery’, Fort Mitchell, Kenton County, Kentucky, USA

5. 출신 및 소속 : 남감리교 선교사

6. 한국선교 기간 : 1895년 10월 – 1910년

7. 연표
1849년 7월 19일 미국 뉴욕 주의 신앙이 두터운 의사 가정에서 출생
1874년 전도사 직첩을 받음
1874년 9월 남감리교회 켄터키연회 학습회원으로 입회
1878년 남감리교 켄터키 연회원으로 목사 안수를 받음. 중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상해(上海)에 도착
1886년 중국 선교연회를 조직
1893년 3월 헨드릭스(E.R. Hendrix) 감독과 함께 한국을 방문
1895년 10월 상해를 떠나 제물포(인천)에 도착
1895년 10월 20일 서울을 떠남
1896년 5월 두 번째 내한 : 주택 수리
1896년 8월 14일 상해의 가족을 데리고 다시 내한
1896년 12월 김주현(金周鉉)과 김흥순(金興順)과 함께 서울 근교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
1897년 5월 선교연회에서 중국 선교의 연장으로 한국 선교처를 인정하고 리드를 그 관리자로 임명
1897년 5월 2일 리드 목사의 집례로 고양읍에서 장년 24인, 유년 3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를 조직함으로 남감리회 최초의 고양읍교회가 탄생
1897년 6월 21일 서울 리드 목사의 집에서 처음으로 공중예배를 시작
1897년 9월 10일 리드 목사의 사회로 제1회 한국지방회를 개최하고 서울구역과 개성구역으로 분할하였으며 리드 목사는 한국지방 회장이 되었고 윤치호는 서기가 됨
1899년 4월 20일 부인의 병환으로 귀국
1901년 5월 17일 부인이 미국에서 별세
1901년 9월 14-18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선교회 때에 한국에 와서 선교 관리자로서의 모든 선교 업무를 처리하고 귀국
1904년 미국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는 동양인에게 선교하는 사무를 관리하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중국인 교회와 일본인 교회를 설립 전도
1906년 한국인에게 전도하여 한국인 교회를 창립하고 양주삼과 함께 〈대도〉(大道)란 월간 잡지를 발행
1910년 남감리교회 평신도선교사업의 총무로 피선되어 활동
1915년 10월 7일 켄터키 주에서 66세로 별세

6. 가족 사항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74712054/clarence-frederick-reid

- 배우자: Mary Wightman Reid (1855-1901)
- 자녀: Wightman T. Reid (한국명: 이위만)



II. 선교사 소개

1. 이덕 선교사의 교단 배경

1844년 6월 제14회 미국 감리회 총회에서 “안드류감독의 직권정지안”이 110표 대 68표로 가결이 되자 남부 총대들은 오히려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안드류 감독(Bishop Andrew, J.O)에 동정하여 남부 노예주에 속하는 14주 연회 대표들이 별도로 총회 조직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1846년 5월 피터스버그시(Petersburg, Va.)에서 미국 남감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므로 분열되어 해외선교도 각각 추진하게 되었다.
한국 선교도 미감리회는 1885년 4월에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를, 1895년 10월에는 남감리회가 리드(Clarence F. Reid)를 10년 사이를 두고 각각 처음으로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감리회와 남감리회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오다가, 1930년 12월 합동하여 “기독교 조선 감리회‘라는 이름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비록 미국에서는 두 모교회가 한국 선교를 실시했으나 선교지 한국에서는 하나로 통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10년 늦게, 1940년 4월에 미감리회, 남감리회, 감리회 프로테스탄트 등 3파가 합동하였다.


2. 중국 선교사

1849년 7월 19일, 미국 뉴욕 주의 신앙이 두터운 의사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7세에 부친을 잃은 후 모친과 함께 삼촌 댁에서 성장하여 공립학교와 사범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목사가 되기 전에 "평신도 선교운동(The Laymen's Missionary Movement)"의 총무로 활동하다가 1874년 전도사 직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9월 남감리교회 켄터키연회 학습회원으로 입회하였다.
1878년 남감리회 켄터키연합회원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그 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 받아 상해로 부임하여 선교사로 일선에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추진하여 크게 공헌하여 서주지방의 감리사(장로사)가 되었고, 1886년에 중국 선교연회를 조직하는 데도 중심인물이었다. 이후 중국에서 17년간 선교 경험을 쌓았다.


3. 한국과의 만남

리드 선교사는 1892년 2월 중국에 입국해 중국 북부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 그곳 사정을 시찰하던 중 이미 “다른 여러 선교회에서 벌써 점거”한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남감리교 교인이자 남감리교가 운영하는 중서학원 교수를 지낸 윤치호로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고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양문물을 접한 윤치호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서양교육이 근대 문화 형성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깊이 인식하고 남감리교 선교부에 한국선교를 호소했다. 1892년부터 1894년까지 모교 중서학원(中西學{院) 교수로 봉직하다 한국 정부 교육부 차관에 임명을 받고 귀국했다. 1893년 3월 11 일 윤치호는 에모리대학 총장이며 후에 남감리교 감독이 된 캔들러 (Warren A. Candler) 에게 자신이 저축한 200여 달러를 선교기금으로 보내 “그 돈으로 우리 남감리교회에서 한국 선교사업”을 착수하는데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1895년 8월 19일 윤치호는 헨드릭스 감독에게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간청하는 서신을 보냈고,헨드릭스 감독이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 리드(C. F. Reid)와 함께 1895년 10월 13일 주일에 내한해 서울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4. 한국에서의 선교 시작

1895년 10월 이들은 상해를 떠나 제물포(인천)에 도착하였다. 당시 한국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난 직후로 민심이 흉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고종을 만나 한국에 훌륭한 교사들을 많이 보내서 문화 발전에 기여해 달라는 당부를 들었고, 이에 헨드릭스 감독은 즉각 한국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
리드 목사는 이미 한국 선교를 시작한 미감리회 선교사인 스크랜턴의 주선으로 현재 한국은행이 있는 곳에 선교기지를 구입하고, 1895년 10월 20일 서울을 떠났다가 1896년 5월 두 번째 내한하여 주택을 수리하고, 상해로 가서 가족을 데리고 8월 14일에 다시 내한하였다. 1897년 5월 선교연회에서 중국 선교의 연장으로 한국 선교처를 인정하고 리드를 그 관리자로 임명하였고, 1907년에 이르러 중국 선교와는 별도의 한국 선교가 이루어졌다.


5. 고양읍교회와 광화문교회 창립

1896년 12월부터 전도사역에 힘쓸 때에 미감리회 상동교회 담임자 스크랜튼 목사(Rev,Scranton,W.B)가 그 교회 청년 김주현과 김흥순을 리드 목사에게 보내어 협조하도록 하였는데 그들을 매서인으로 서울 근교에 복음을 전하여 경기도 고양읍내에 그 결실을 보아 1897년 5월2일 리드목사 집례로 고양읍에서 장년 24인 유년 3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를 조직하니 남감리회에서는 최초의 고양읍교회가 탄생하여 이날이 남감리회 기념일이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한국인 전도자 중 김흥순은 1911년 10월 1일 정춘수, 주한명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써 한국인 최초의 남감리회 목사가 되었다.
이렇게 농촌 교회로 고양읍교회를 세우고 그 다음 달인 6월 21일에는 서울 리드 목사 댁에서 처음으로 공중 예배를 시작하였는데 윤치호 선생이 설교했다. 이 교회가 뒤에 광화문교회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10일 리드 목사의 사회로 제1회 한국지방회를 개최하고 서울구역과 개성구역으로 분할하였으며 리드 목사는 한국지방 회장이 되었고 윤치호는 서기가 되었다.


6. 한국 선교의 마지막

리드 목사는 부인의 병환으로 1899년 4월 20일 미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그의 부인은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1901년 5월 17일 미국에서 별세하였다. 한국 선교를 잊지 못한 리드 목사는 그 해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선교회 때에 한국에 와서 선교 관리자로서의 모든 선교 업무를 처리하고 귀각하였다. 1904년부터는 미국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는 동양인에게 선교하는 사무를 관리하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중국인 교회와 일본인 교회를 설립 전도하였으며, 1906년에는 한국인에게 전도하여 한국인 교회를 창립하고 양주삼과 함께 <대도>(大道)란 월간 잡지를 발행하였다. 1910년에는 남감리교회 평신도선교사업의 총무로 피선되어 활동하다가 1915년 10월 7일 켄터키 주에서 66세로 별세하였다.


7. 백만인 구령운동의 기도자

백만인구령운동은 1909년 7월 12일,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남감리교 개성 선교부의 몇 명의 선교사들, 갬블(F. K. Gamble), 리드(C. F. Reid), 스톡스(M. B. Stokes)가 한국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는 기도모임을 함께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열기가 시들어지면서 “기도와 봉사에서 자신들의 능력의 결핍을 깊이 염려한” 이들 남감리교 선교사들은 이 민족 가운데 다시 한 번 놀라운 부흥운동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경공부와 기도로 일주일을 온전히 보내기로 결정했다. 기도회 4일째 되던 날 한밤중까지 기도회가 계속되었고, 그날 리드의 고백대로 “우리 중 몇이 상당한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에 응답하셔서 만족하실 때까지 간절히 기도했고, 성령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겸허하게, 그리고 교만과 이기심과 불신앙과 같은 죄들을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심령을 발가벗겨 놓은 상태에서 우리 각자가 새벽 4시까지 하나님 앞에서 기다렸으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매우 은혜롭게도 우리 위에 놀랍고 형언할 수 없는 성령의 부으심을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심령의 정결함과 그분의 충만하심을 분명히 증거하여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충만한 영광의 즐거움으로 그분을 찬양하도록 인도하셨다.


8. 리드 선교사의 후손

그의 아들인 이위만(W. T. Reid, M.D, 李慰萬) 의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07년부터 경기도 개성에서 의료선교사업을 시작하였다. 아버지 리드 목사가 미국에서 벌인 모금운동으로 버지니아 주의 아이비(W. C. Ivey)에게 의연금 5천 달러를 기증받아 1907년 개성에 아이비 기념병원을 설립하였고 이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활동을 하였다. 1909년에는 100만명구령운동을 주도하는 등 의료사업과 복음사업에 전력하다가 192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첨부 파일 참조)

사진
▲ 리드 선교사
▲ 갬블, 리드, 스톡스 선교사
▲ 리드 선교사
▲리드 선교사 부부의 묘비
▲ 백만인 구령운동
▲ Asheville Gazette-Newss 1915.08.26., 부고 기사



Ⅳ. 참고 자료

[단행본]
-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8), 442-44
- 기독교대한감리회역사정보자료실, https://his.kmc.or.kr

[기사]
- Ashevillee Gazette-News 1915.08.26. 부고 기사

[웹사이트]
- http://www.1907revival.com
- https://kmc.or.kr
- https://www.findagrave.com/
2020-07-06 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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